이정은

이정은 부국장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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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현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정책의 흐름을 정확하고 빠르게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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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칼럼100%
  • 번지수 잘못 짚은 민주당의 신(新)한일전 [오늘과 내일/이정은]

    “기형 물고기라는 게 있잖아요. 어디든 기형은 꼭 나오기 마련이니까…. 그게 우리나라 앞바다에서 나오면 후쿠시마 오염수와 상관없다고 정부가 입증하기는 어차피 어렵지 않겠어요?” 지난해 여름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국내 여론이 들썩일 때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이 한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는 실제 인과관계와는 상관없이 기형 물고기를 오염수 문제와 엮겠다는 ‘작전’ 구상을 숨기지 않았다. 방류에 나선 일본은 물론 이를 반대하지 않은 윤석열 정부를 공격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언제까지 반대 목소리를 낼 것이냐는 질문에 그가 내놓은 대답은 “총선 때까지는 계속 끌고 가야지”였다.외교, 국방 영향력 급속히 늘리는 日 4·10총선 유세 과정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번 총선은 신(新)한일전”이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서 당시 이 중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거 쟁점도 아니었던 외교 사안을 뜬금없이 앞세운 이 대표의 발언은 여당 후보들을 ‘나베’ 등으로 부르며 친일로 몰아세우는 과정에서 나왔다. 한일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은 그때나 이번이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총선 개표가 진행되던 10일, 워싱턴에서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미일 간 전략적 협력의 새 시대”, “동맹 수준이 전례 없이 높아진 역사적 순간” 같은 표현들이 공동 성명을 장식했다. 양국은 24쪽 분량의 팩트시트에 협력 내용을 꽉꽉 채워 넣었다. 화려한 국빈 만찬과 공연, 선물 교환 등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먼저 거쳐간 것들이지만 미일 양국의 협력 범위와 깊이, 밀착 속도가 심상치 않다. 일본은 미국·영국·호주의 3국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에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 참여하는 기회도 얻었다. 오커스 회원국들과 극초음속 미사일을 비롯한 첨단 방위기술 협력이 가능해진 것이다. 영국과 호주의 견제에도 미국이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역할 확대를 노리는 일본은 국방 분야에 거액의 예산을 쏟아붓는 중이고, 미국은 주일미군사령부의 격상을 검토하고 있다. 미일 양국은 더 나아가 필리핀까지 참여하는 3국 정상회의를 열었다. 미일 두 나라를 밑변으로 한 대중(對中) 삼각연대를 구축하는 모양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필리핀은 3국 간 ‘발리카탄’ 연합 군사훈련에도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을 중심축으로 놓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끌어들이는 ‘소다자(mini-lateral)’ 협의체를 하나씩 늘려 나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할수록, 북-중-러의 밀착이 강화될수록 미일의 협력 밀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이는 일본의 외교적 영향력을 더 밀어올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시다 총리는 기립박수가 쏟아진 미국 의회 연설에서 “일본이 이제는 미국의 지역 파트너가 아닌 글로벌 파트너”라고 했다. 한국으로서는 일본이 좋든 싫든 더 자주 마주치고 협의해야 할 외교 상대가 된다는 말이다.‘반일 프레임’ 갇힌 정치로는 대응 못해 제22대 국회에서 활동하게 될 민주당 의원들 중에는 지난해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판에도 일본까지 날아가 ‘오염수 방류 반대’ 시위를 벌였던 이들이 있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죽창가 선동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본성에 친일적 요소” 운운하며 여당 정치인의 국가관까지 문제 삼는 이 대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이 끌고 갈 192석의 거대 범야권이 정치적으로 단맛을 본 ‘반일’ 프레임에만 갇혀 있다간 한국 외교의 퇴행을 막기 어렵다. 국내 정치를 휘저어 놓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국가적 손실이 될 것이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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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의료원장에서 보건소장으로… “의사 후배 6명이 따라왔다” [월요 초대석]

    《최장수 삼성의료원장이자 ‘이건희 주치의’였던 이종철 전 원장이 경남 창원의 보건소장으로 자리를 옮긴 건 70세이던 6년 전이었다. “고향에서 마지막 의료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렇게 4년간의 창원살이를 마치고 자유인으로 돌아갔던 그에게 올해 초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강남구보건소장직을 제안받고 ‘의료인생 제3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지난달 중순 새 업무를 시작했다는 이 소장의 사무실에 걸린 일정표 판은 벌써 빽빽했다. 기자와 만난 이 소장은 “임상 의사, 대형병원장과 지방 보건소장의 경험 세 가지를 엮어 공공의료 활성화를 시도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앞에 진행 중인 현실은 ‘의대 증원 2000명’으로 불거진 의료 파행이다. 그는 “이대로 장기화하면 엄청난 의료 퇴보가 일어날 것”이라며 “서로 한 발씩 양보하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2시간의 인터뷰 중 상당 시간을 현행 의료 시스템의 한계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 정책의 문제점 지적에 쏟았다.》―대형병원장에서 지방 보건소로 옮긴 결정은 당시 의료계의 화제였다. 창원시보건소장으로 보낸 4년은 어땠는가. “푸른 바다가 있는 내 고향에서 돌봄이 필요한 지역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퇴임 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그동안 내가 받은 것들을 갚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창원의 첫인상은 보건소 행정이 참 잘돼 있다는 것이었다. 좋은 터전에서 하고팠던 진료를 하면서 굉장히 재미있게 살았다. 나를 보고 후배 6명이 창원으로 내려왔다.” ―지방으로 따라온 후배들에게 책임감을 느끼진 않으셨나. “환자들이 서울에서 의사가 왔다고 좋아해주니 보람을 느낀다면서 다들 즐겁게 일했다. 어떤 후배는 금방 1년 이상 진료 예약이 찼다. 다른 동료들에게도 권해야겠다고 하더라.” ―그래도 생활환경과 업무 변화 등으로 어려움 또한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창원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서울에 있는 병원 좀 보내주세요’였다. 보건소 의사를 구하기 위해 진료 수당을 100만 원 더 올리자고 했는데 창원시에서 거부당하기도 했다. 초반에는 보건소 사람들이 ‘진료를 하시면 안 된다’고 뜯어말렸다. 보건소 업무 영역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규제가 이유였다. 코로나19가 터지고 보건소가 대응 전면에 서게 된 뒤에야 이게 바뀌었다.” ―퇴임 후 개업의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 “내가 삼성의료원장 할 때 부회장급인데도 삼성 상무보다 월급이 적었다. 그래도 나는 의사로서의 가치, 그걸 알아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훨씬 커서 몇십 배의 연봉이 진짜 안 부러웠다. 우리 다 똑같이 세끼 먹지 않나. 요즘 출퇴근도 지하철로 한다. 어디에,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다.” ―여생을 즐기는 대신 또다시 보건소 일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 “일을 맡아 달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하나님의 계시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평생 아프셨기 때문에 의사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의사라는 일은 나에게 운명이랄까. 소명이다. 주변에서 강남 지역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했을 때도 손사래를 쳤다. 언젠가 병원에 와서 강연을 해주셨던 김수환 추기경이 ‘생명 살리는 일을 하는 의사 여러분이 참 부럽다’고 한 말씀을 잊지 못한다.” ―젊은 MZ세대 의사들 중에는 다르게 생각하는 이도 많은 것 같다. 안정적 고소득을 이유로 의대를 선택하는 이도 적잖다. “참 안타까운데, 지금 젊은 세대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울 거다. 우리 세대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라떼는 말이야’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때는 힘든 일을 그냥 하거나 오히려 좋아하기도 했는데, 요즘 세대는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들에게 ‘나 같은 삶도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때로 죽음을 마주치기도 하면서 충실히 일하다 보면 의사들은 바뀌고, 성장하게 돼 있다. 이들을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 ―의료 파행 사태가 한 달을 넘어서면서 전국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상황이 장기화하면 의료계에 굉장한 퇴보가 일어날 거다. 당장 학회들이 멈춰 서니 거기에 써야 할 논문들이 다 중단돼 버린다. 의대 교수들이 정말로 손을 놔버리면 오래 못 간다. 우리나라는 분명한 의료전달 체계를 갖고 있고, 3차 진료기관에서 봐야 하는 중증 환자들이 존재한다. 교수들이 전공의를 데리고 해 온 이런 업무가 중단되면 어떻게 되겠나. 중소병원들이 대신할 수 있다고 하는 건 턱도 없는 소리다.” 인터뷰 초점이 의료 파행으로 넘어가자 인자하던 노(老)의사의 눈빛은 점차 매서운 보건 행정 전문가로 변해갔다. “이대로면 정말 환자들이 죽어 나가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그의 목소리 톤은 어느새 높아져 있었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2000명 증원’이라는 숫자 앞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병원 경영도 11년을 해보고 나서야 이제 좀 알겠다는 느낌이었다. 얼마가 적정한 증원 규모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마 없을 거다. 환자가 늘어나는 고령화만큼 심각한 게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초저출산 문제 아닌가. TV에 나오는 정부 고위 당국자들 중에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나. 의대 증원의 낙수효과만 기대하고 하루아침에 2000명을 늘리려고 하니까 이런 고통이 오는 게 아닌가. 이건 누가 이기고 지느냐 하는 게임이 아니다. 서로 한 발씩 양보하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도 의대 증원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다. 의사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상당하다. “의사들도 그동안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일부가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에 쏠리는 것도 잘못됐다. 다만 의료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가난한 환자들도 치료해야 하는 사회주의적 성격이 있지만, 한편으로 의료 자체가 굉장히 많은 돈을 창출해낸다. 어느 한쪽만 부각되면 결국 양쪽 모두 힘들어진다.” ―서울 소재 의대에 한 명도 배분하지 않았는데, 비수도권에 몰아준 증원 조치가 지방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나. “증원이 결정된 지역 의대 상당수가 서울의 대형병원을 수련 병원으로 두고 있는 곳들이다. 합치면 1000명쯤 되던데, 결국 증원 규모의 절반이 다시 서울 및 수도권으로 올라오게 될 것이다. 정말 지역 의료를 살리고 싶으면 그 지역에 남아서 살 사람만 뽑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 일본에 연수 갔을 때 보니 도쿄 암센터보다 외곽 보건소에서 일할 때 보수가 더 많더라.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거기로 일하러 가는 것을 보았다. 필수의료 인력 확보도 해법이 다르지 않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이 늘어나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건강보험 재원만 갖고 해결하려니까 안 된다는 거다. 왜 국가 예산은 안 쓰나. 의료는 공공성이 있기 때문에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진료만 해도 환자 머릿수로 수익이 계산되는 현재 민간 병원 시스템에서는 환자를 보는 시간이 1명당 3분 정도밖에 안 된다. 외국 병원에서 통상 초진이 15분, 재진이 10분인 것과 너무 다르다. 병원장으로 있을 때 ‘이러다가 오진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늘 불안해하며 마음을 졸였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의료 시스템 강화 필요성을 강조해 오셨는데, 이런 시도가 도움이 될까. “웨어러블 의료기기와 첨단 장비를 사용해 질병을 조기 발견하고 치료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서 병동 가동률을 예측한다거나 환자들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식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환자들과 눈과 눈을 맞댈 시간이 생기지 않겠는가. 1분이라도 더 대화하고 웃기도 할 수 있지 않겠나.” ―공공의료 투자와 발전은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우리나라는 의료의 90%가 민간에 의존하는 구조다. 공공의료가 20∼30%는 돼야 하는데 지금 10%밖에 안 되는 것이다. 전공의 수련 비용만 해도 국가가 아닌 병원이 내고 있다. 전공의들에게 적은 급여로 더 많은 일을 시키게 되는 이유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의 경우 미국의 ‘어전트 케어 센터(UCC)’처럼 상급종합병원과 1차 병원의 중간단계 응급실 시스템을 검토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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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뉴욕 타임스스퀘어처럼… 광화문광장의 ‘디지털 변신’

    대형 스크린들 위로 수백만 개의 LED 불빛이 꺼지지 않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은 24시간이 현란하다. 그 한복판에서는 “여기저기서 샴페인이 펑펑 터지는 파티장 가운데 서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건축학자인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말한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등장하는 광고가 쏟아지니 “세계적인 연예인 수십 명이 한 장소에 있는 대종상 시상식 레드카펫 위 같다”고도 했다. 연간 6000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을 붙잡는 매력으로 꼽힌다. ▷자생적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지속해 왔다는 도시의 진화는 이제 첨단 디지털 기술이 뒷받침한다. 건물 외벽 등에 대형 스크린과 LED 조명을 설치해 디지털 영상을 펼쳐내는 미디어 파사드는 그 핵심 중 하나다. 개별 전광판을 넘어 스크린이 벽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스케일이 커졌다. 그 위에서 구현되는 다채로운 색과 디자인, 역동적 움직임들이 도시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보행자가 찍은 사진이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뜨도록 하는 식의 상호 작용도 가능해졌다. ▷미디어 파사드 설치는 주변의 빛 공해와 건물 일조권 등의 문제로 규제가 까다로운 편이다. 범람하는 상업적 광고가 거리의 전통이나 품격을 되레 해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영국 ‘피커딜리 서커스’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1800년대 초 형성된 원형 광장은 고풍스러운 대리석 건물 위 스크린에서 화려한 광고 영상들이 펼쳐지고, 그 앞으로 거리의 버스커들과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코카콜라부터 삼성,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신제품이 광고를 통해 가장 먼저 공개되는 산업 정보의 현장이기도 하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명동,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이 국내 대형 디지털 광고 무대로 활용된다. 7년 전 처음으로 시도된 서울 강남 코엑스 일대에 이어 제2차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된 것이다. 유동인구가 많고 관광지와 고궁, 박물관 등 상징적 공간들이 위치해 있는 공간들이다. 이 세 곳은 광고물의 모양, 크기, 색깔, 설치 방법 등 규제가 대폭 완화돼 자유로운 디지털 광고 설치가 가능해진다. 이른바 ‘한국판 타임스스퀘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서울과 부산은 이제 전 세계인들이 오가는 글로벌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연간 외국인 관광객 수를 코로나 팬데믹 이전보다 많은 2000만 명까지 늘리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미디어 파사드는 그 주요한 동력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딱딱한 아스팔트와 회색 빌딩에 색을 입히고, 각 공간의 개성과 테마를 살리는 콘텐츠를 채워 넣는 숙제가 던져졌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살아 숨쉬는 도시로 만들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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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나란히 ‘올해의 피노키오’ 명단 오른 바이든-트럼프

    ‘4년간 틀렸거나 진실을 오도하는 발언 횟수 3만573건. 평균으로 따지면 매일 21건.’ 미국 워싱턴포스트(WP) 팩트체커 팀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발언을 분석한 결과다. WP가 주요 인사들의 거짓말을 분석해 선정하는 ‘올해의 피노키오’ 명단에 트럼프는 올해까지 9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달 초 아이오와주 유세에서만 12초마다 사실과 다르거나 부정확한 주장들을 내놓은 것으로 집계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가 소방관들과의 간담회에서 꺼낸 자택 화재의 경험, 젠더 평등을 거론하다가 1960년대 남성들끼리 키스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의 스토리 등은 세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선 후보 시절 “아들(헌터 바이든)이 중국과 관련해 돈을 받은 일이 없다”고 했는데 이후 헌터 본인이 시인하면서 거짓말이 됐다. 가족의 비리 혐의를 부인한 바이든 또한 ‘올해의 피노키오’ 명단에 포함되면서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이 모두 발언의 신뢰가 흔들리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정치인들이 청중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극적으로 스토리를 포장하는 과정에서 세부 내용을 부풀리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80대 고령인 바이든 대통령은 스스로 “실수 제조기”라고 부른 적도 있다. 기억이 흐려진 상태에서 말실수를 했다는 식이다. 반복된다면 거짓임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내놨다고 보는 게 맞다. 바이든 대통령이 예산과 관련해 잘못된 주장을 한 횟수가 최소 30차례에 이른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미국 언론들이 문제 삼는 내용은 명백한 거짓말뿐 아니라 잘못된 수치부터 과장된 표현과 아전인수식 평가,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주장까지 포함한다.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의 발언을 평가하는 잣대는 그만큼 엄격해야 한다는 의미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백신 관련 청문회에서 코로나로 입원한 어린이 수를 실제보다 부풀려 말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피노키오 리스트에 올랐다. WP 팩트체커 팀은 잘못된 주장을 최소 20회 이상 반복한 ‘(추락의) 바닥 없는 피노키오’ 리스트도 따로 관리한다. ▷정치인의 반복된 거짓말은 어느 순간 습관이 되고, 이는 국민들을 호도해 결국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이 아니지만 특정 우호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이른바 ‘푸른 거짓말(blue lie)’이 늘어나고 있다고 학자들은 우려한다. 가뜩이나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허위 정보의 위협이 커지는 시대에 정치인들이 이를 만들어 퍼뜨리는 데 앞장서서야 되겠는가. 과거 발언이나 공약의 번복, 거짓 논평, 허위 선동 논란 등으로 늘 시끄러운 우리 정치권에 울리는 경종이기도 하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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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덜란드 방문 과잉의전 논란 [횡설수설/이정은]

    네덜란드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한국 대사를 초치했다는 국내 언론 보도가 나왔다. 네덜란드 측이 최형찬 주네덜란드 대사를 불러 경호와 의전에 대한 한국의 요구에 ‘우려와 당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한국이 경호에 필요하다며 방문지 엘리베이터 면적 같은 정보까지 달라고 한 것,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의 기밀 시설인 ‘클린룸’에 제한된 인원수 이상의 방문을 요구한 것 등을 조목조목 열거했다고 한다. ▷‘초치(招致)’는 한 국가의 외교 당국이 상대국에 주로 불만을 제기하거나 항의하기 위해 상대국 대사를 불러들이는 것으로, 부정적 뉘앙스가 강하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을 놓고 우리 외교부가 가장 먼저 내놓는 대응이 일본 대사 초치다. 네덜란드 측이 한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불과 열흘 앞두고 최 대사를 초치한 것은 그만큼 준비 과정에서 인식한 문제가 가볍지 않았다는 의미다. “소통의 일환”이었다는 외교부의 해명은 군색하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1961년 양국 수교 이후 첫 국빈 방문이었다. 네덜란드는 윤 대통령이 탄 비행기에 자국 F-35 전투기 2대를 붙여 호위했고 붉은 카펫과 21발의 예포, 화려한 왕실 만찬 등으로 극진히 예우했다. 분 단위로 움직이는 순서와 타이밍, 동선, 외교 프로토콜을 놓고 초긴장 상태의 신경전도 벌어졌을 것이다. 그럴수록 상대국을 존중해 가며 세부 사항들을 매끄럽게 조율해 내야 하는 것이 외교다. ‘정상 외교의 꽃’이라는 의전에서 잡음이 불거진 것은 이런 기본이 흔들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의 잦은 교체와 공백은 상황을 악화시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올해 3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블랙핑크 공연을 둘러싼 논란 속에 의전비서관이 사실상 경질됐고, 이벤트 대행회사 대표 출신으로 자질 시비가 붙은 후임자는 약 6개월 만에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로 사퇴했다. 지난달 임명된 신임 의전비서관 역시 외교와 의전 경험이 전무하다. 비(非)전문성에 과잉 충성심이 덧대어지면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아닌지 복기해 볼 일이다. ▷단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의전 업무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한다.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상대국을 당혹하게 하는 요구들을 지나치게 밀어붙였다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우를 범할 우려가 있다. 가뜩이나 해외 순방에서 제기된 윤 대통령의 의전 관련 논란들이 누적돼 온 상황이다. 취임 후 16번째인 해외 방문 횟수와 578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놓고 비판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정상외교의 성과마저 이런 문제들에 묻히고 빛바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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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물가 도둑 잡아라”… 뒤늦은 ‘슈링크플레이션’ 단속

    ‘모든 데이터가 물가 인상은 없다고 보여주는데 왜 모든 사람이 생활비 부담에 점점 짓눌린다고 느낄까.’ 영국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2009년 자신의 저서 ‘시그널’에서 제기한 의문이다. 그는 기업들이 가격은 놔둔 채 상품의 양이나 부피를 줄이는 현상에서 답을 찾는다. 이를 설명하면서 줄어들다(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 단어는 지난해 9월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 공식 등재됐다. ▷소비자가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사실상 가격을 올린 기업들은 1950년대 이후 계속 존재했다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알음알음 진행되던 이 교묘한 꼼수 인상이 사회, 경제적 문제로 불거진 것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치솟는 물가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자 업체들이 너도나도 슈링크플레이션에 나선 것이다. ‘인색하게 군다’는 뜻의 영어 단어(skimp)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스킴플레이션’ 등도 거론되는 횟수가 늘었다. ▷초콜릿칩 아이스크림에 검은 점(초콜릿)은 보이지 않고, 베이글은 중간에 구멍이 더 커지고, 오레오 쿠키 속 크림 두께는 얇아지고…. 해외 소셜미디어에는 슈링크플레이션 제품을 찾아 변화 전후를 비교하는 콘텐츠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용량 수치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확연히 차이를 느낄 정도로 쪼그라든 제품들도 있다. 그렇게 줄어든 비율이 최대 25%에 이른다고 한다. 용기 크기를 줄인 회사가 “끝까지 다 먹기 어렵다는 소비자 불만을 반영한 것”이라거나 “손에 잡기 쉽도록 홀쭉하게 만든 것”이라는 식으로 내놓은 해명에는 조소가 터져 나온다. ▷정부가 그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대책들을 내놨다. 식품과 생활용품의 용량, 규격, 성분 등을 변경할 경우 이를 포장에 표시하거나 판매 장소에서 고지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어기는 기업은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각오해야 한다. 이제라도 대응책이 나온 것은 다행이지만 이미 용량과 부피를 줄여버린 제품들이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것까지는 막지 못하는 조치다. 한국소비자원의 최근 조사 결과 슈링크플레이션이 확인된 제품은 아몬드와 소시지, 핫도그, 만두 등 37개에 이른다. ▷재료값과 에너지 등의 비용 인상을 반영한 가격 조정이 기업으로선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것은 신뢰를 갉아먹는 기만행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외국 기업 중에는 이렇게 줄여놓은 제품을 묶음 판매하면서 오히려 ‘대박 할인’이라는 식으로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투명하고 정직한 가격 정책을 펴지 않으면 결국 시장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이제라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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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워싱턴이 열심히 일할수록 미국은 더 나빠진다”

    케빈 매카시 전 미국 하원의장은 워싱턴에서 가장 굴욕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소속당인 공화당 강경파들의 반대로 올해 초 15번의 투표를 거치고서야 간신히 의사봉을 손에 쥐었고, 그마저 9개월 만에 내려놔야 했다. 예산안 처리를 위해 민주당과 손잡았다는 이유로 동료 의원들에게 당한 미 역사상 최초의 하원의장 해임이었다. 임기 내내 강성파에 휘둘리던 그가 쫓겨나자 하원의장직에 “워싱턴 최악의 일자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매카시 전 의장이 9선 중진으로 17년간 지속해온 정치 인생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퇴임의 변 차원에서 월스트리트저널에 낸 기고문의 한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워싱턴이 더 많은 일을 할수록 미국은 더 나빠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고 했다. 정치가 나라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결과적으로 해악을 끼쳤다는 쓴소리다. 그의 해임 사유가 된 임시예산안만 해도 시한을 넘길 경우 연방정부가 셧다운되는 위태로운 상황이었건만 당내 강경파는 끝까지 반대했다. ▷정작 매카시 본인도 망가진 미국 정치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불복과 극렬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를 옹호했던 게 그였다. 트럼프를 비판한 리즈 체니 하원의원 축출에 앞장섰고, 하원의장 시절에는 직권으로 바이든 대통령 가족에 대한 탄핵 조사를 지시했다. 트럼프가 “나의 케빈”이라고 부를 정도로 예스맨 역할에 충실했다. 그의 해임안이 통과된 시점에 나온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 의회 신뢰도는 13%까지 떨어졌다. ▷워싱턴 의회 활동이 다른 나라에서까지 정치 교과서처럼 여겨지던 시절은 옛말이다. 극심해진 양극화 속에 민주당과 공화당 간 갈등은 물론이고 당내 혼란과 충돌도 잦아지고 있다. 정치인들의 몽니와 거짓말, 버티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댄 포퓰리즘이 ‘뉴노멀’이 되어가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한다. 지난달 상원에서는 격투기 선수 출신의 의원이 청문회 증인과 말싸움을 하다 몸싸움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싸움을 말리던 버니 샌더스 상임위원장의 입에서 “미국인들은 이미 의회를 충분히 경멸하고 있다”는 시니컬한 경고가 나왔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등의 주제를 연구 중인 학자들은 “출구가 안 보인다”며 한숨이다. 망가지는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는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공화당은 매카시가 던진 메시지를 자성의 계기로 삼기보다 줄어든 의석수가 가져올 표차 계산에 바쁘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면 정치인들은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다. 여야 할 것 없이 민생 입법과 예산 처리, 협치와 혁신은 미뤄둔 채 강성 지지층만 보고 달리는 한국 여의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논리일 것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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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헨리 키신저, 1923∼2023

    말년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구부정하고 어눌했다. 때로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래도 ‘올빼미 눈’이라고 불려온 그의 눈빛은 그대로였다. 지난달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비판하고 중동지역의 분쟁 확산을 경고하는 그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지난해 19번째 저서를 내고 최근까지도 각종 강연과 기고 활동을 해온 키신저의 행보는 100세라는 나이에도 거뜬히 계속될 듯 보였다. ▷‘미국 외교의 전설’, ‘죽(竹)의 장막을 열어젖힌 미중 외교의 상징’, ‘동서 데탕트 외교의 주역’…. 30일 타계한 키신저에게 따라붙는 헌사는 끝이 없다. 국익을 앞세운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냉전시대 미국 외교의 밑그림을 그려낸 게 그다. 스스로를 역사가라고 칭했던 그는 1, 2차 세계대전 전후 유럽의 역사와 세력 구도, 메테르니히와 비스마르크 같은 인물에 천착했다. 핑퐁 외교로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과의 세력 균형을 시도한 외교 구상에는 이런 역사적 식견이 영향을 미쳤다. ▷한국전쟁부터 베트남전쟁, 아랍과 이스라엘 갈등, 중남미 정쟁까지 키신저가 현직에서 다뤄 보지 않은 글로벌 외교 현안은 없다. 기록해야 할 내용도 많았는지 그가 생전에 낸 회고록들의 분량만 3800페이지에 달한다. 퇴임 후까지 합쳐 그가 조언한 미국 대통령은 12명. 닉슨 행정부 때부터 유지돼온 대중 정책 기조를 뒤집어버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조차 그에게 조언을 구했고, 중국과의 물밑 통로로 그를 활용하려 했다.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한 과정을 놓고 “1971년 닉슨 방중을 성사시킨 키신저의 방식을 따라했다”는 학계 분석도 있다. ▷미국 외교안보를 좌지우지해온 거목이 100세까지 장수한 기록은 전례 없는 장면들을 연출해냈다. 50년간 봉인되는 기밀문서들이 그의 눈앞에서 해제돼 버린 것이다. 비정부기구(NGO) 등의 요구에 따라 국무부가 공개한 수천 페이지 분량의 녹취록에는 “소련이 유대인들을 가스실에 넣는다고 해도 그것은 인도주의적인 우려이지 미국이 걱정할 바가 아니다” 같은 냉혹한 발언들이 담겨 있었다. 미국의 대만 정책 선회 같은 민감한 결정 과정부터 기자들과 나눈 밀담까지 그대로 공개된 것은 그에게는 꽤나 민망한 일이었을 것이다. ▷키신저가 95세부터 인생의 마지막 과업으로 삼았던 것은 인공지능(AI)이 세계 외교안보에 미치는 영향 연구였다. 그는 올해 에릭 슈밋 전 구글 CEO와 함께 쓴 책에서 핵무기보다 대응이 어려운 AI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이를 관리할 국가기구 설립과 전략 독트린 마련 등을 제언했다. 여기저기서 전쟁이 터지는데 미중 갈등은 심화하고 신기술의 위협까지 커지는 세상, 키신저의 경륜과 조언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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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여의도를 떠도는 낡은 ‘북풍’의 망령

    북풍(北風)이라는 단어의 정치적 의미는 음험하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북한 변수’란 개념을 넘어 특정 세력이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유도한다는 음모론적 뉘앙스가 강하다. 1997년 집권 보수당이 대선을 앞두고 안보 불안을 키워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 시도했던 ‘총풍 사건’ 등의 잔상 탓이다. 진보당이 집권했을 때는 평화 공세로 표심을 끌어들인다는 이른바 ‘신(新)북풍’ 논란도 거셌다. 어느 쪽이 먼저 이용하든 총선, 대선 때만 되면 정치권에서 튀어나오곤 했던 게 바로 이 단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9·19 남북 군사합의에 대한 정부의 일부 효력정지 결정을 놓고 북풍을 언급했다. “(정부가) 북풍처럼 군사 도발을 유도하거나 충돌을 방치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우려를 전하는 형식이었지만, 9·19 합의의 효력정지 이후 발생할 북한 도발이나 남북 간 국지적 충돌은 정부가 의도한 결과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발언이었다.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민주당의 현안질의 기류도 다르지 않았다. 기동민 의원은 “남북 정권이 티키타카 하듯이 정밀한 호흡을 맞춰서 가고 있다는 의구심과 불안감을 거둘 수 없다”며 “윤석열 정부가 꿀 빠는 상황”이라고 했다. 북한과 윤 정부를 두고 ‘일란성 쌍생아’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김병주 의원은 9·19 합의의 일부 효력정지 원인이 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해 “1등 공신은 러시아, 2등 공신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실패”라고 했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우려한다면 예상되는 시기와 방식, 그에 따른 우리 군의 대응 시나리오 등부터 따져보는 게 순서이건만 그런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때 정치권 선거 전략의 단골 메뉴였던 북풍은 더 이상 과거 같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미 연합 방위태세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고 북한 관련 정보도 많아졌다. 군사적 긴장감을 지나치게 부추겼다간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최근 10여 년간의 전례들을 살펴봐도 북풍의 효과는 모호하다. 한기호 국방위원장도 지적했듯 19대 대선과 20대, 21대 총선 앞두고 북한이 미사일을 여러 차례 발사했지만 선거 결과는 모두 민주당 승리였다. 더구나 남한을 겨냥한 북한의 전술핵과 무인기, 극초음속 미사일, 군사정찰위성 개발 등은 모두 2021년 내놓은 국방발전 5개년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것들이다. 우리 선거 상황을 보며 감행하는 단발적 대남 전략이 아니라는 의미다. 북한이 기다렸다는 듯 9·19 합의의 전면 파기를 선언하고 곧바로 최전방 감시초소(GP)에 중화기를 배치하며 엄포를 놓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만 놓고 내년 4월 총선에 미칠 북풍 영향을 운운하는 것은 섣부르거니와 근거도 약하다. 야당은 습관적으로 북풍 가능성을 제기해 놓고는 그 정치적 활용의 이해득실만 따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북풍을 갖고 우리 정치권만 다시 시끄러워지는 모양새다. 이는 북한이 우리 선거를 좌지우지할 카드라도 쥐고 있는 양 기고만장하게 만들 뿐이다. 러시아와의 밀착 속 기술을 바탕으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위협은 과거 판문점에서의 총격이나 연평도 포격사건 같은 국지 도발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이 내년에는 7차 핵실험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국가정보원의 분석이다. 북풍 음모론에 빠져 우리끼리 삿대질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국가적 안보 위기 앞에서만큼은 여야가 초당적으로 한목소리를 내라는 게 과한 요구가 되어선 안 될 일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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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인큐베이터 아기마저… “병원이 묘지” 된 가자지구 참상

    눈조차 뜨지 못하는 가냘픈 미숙아들이 한 줄로 뉘어진 한 장의 사진.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전기가 끊기면서 인큐베이터에서 꺼내진 가자지구 아기들의 모습이다. 작게는 800그램, 기껏해야 1.5kg밖에 되지 않는 조산아들은 숨쉬기도 힘겨워 보인다. 공습 중에 출산했거나 마취제도 없이 제왕절개를 한 엄마들은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다. 체온 유지와 산소, 영양 공급이 되지 않은 상태에 노출된 39명의 조산아 중 3명이 이미 숨졌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된 지 40일째. 가자지구 내 병원들은 한계 상황에 몰려 있다. 가자지구 내 최대 의료시설인 알시파 병원마저 약품과 연료, 물, 식량이 바닥났다. 의료진은 컴컴한 치료실에서 촛불이나 휴대전화 조명에 의지해 650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복도에 늘어선 이동 침상조차 확보하지 못한 피투성이 소녀는 병원 바닥에서 치료를 받았다. 병원 역내에는 잇단 공습 때문에 매장하지 못한 100여 구의 시체가 쌓여 있고, 일부는 부패하기 시작했다. “병원이 공동묘지”라는 절규가 터져나온다. ▷위태롭게 버텨오던 알시파 병원은 15일 새벽 이스라엘군의 급습으로 아비규환 상태다. 이스라엘은 “병원 지하에 하마스의 작전본부가 있다”며 탱크 6대와 특공대원 100여 명을 투입했다. 병원은 전쟁 중에도 국제법상 보호되는 인도적 시설로, 공격 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이스라엘군은 “병원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하마스의 행위야말로 전쟁범죄”라고 반박하고 있다. 하마스가 병원 내 환자들을 ‘인간방패’로 삼은 채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사망한 가자지구 주민의 수는 1만1200여 명, 이 중 어린이가 4600명으로 40%를 넘는다. 운 좋게 살아남은 어린이들 앞에 닥친 것은 추위와 두려움, 굶주림이다. 잿더미가 된 길 한복판에서 “이 두 손으로 시체들을 옮겼어요”라며 울부짖는 소년의 눈동자엔 공포가 가득하다. 구호식량을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치켜드는 절박한 손길도 상당수가 아이들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체를 장악해 하마스를 궤멸할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 완강하다. ▷“아기들이 얼마나 더 버텨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대로면 알시파 병원 내 미숙아들은 매일매일 더 죽어나갈 것이라고 의료진은 호소하고 있다. 5만 명으로 추산되는 가자지구 내 임신부들이 전쟁 스트레스로 조산하는 사례마저 늘어나는 상황이다. 소중한 새 생명이 포염 가득한 세상에 나오기 무섭게 꺼지는 비극이 반복될 것이란 의미다.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도 용납이 안 되는 21세기 한복판에서 어린이들의 희생마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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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대법관도 부패할 수 있다”… 美 대법원 첫 윤리강령

    호화 크루즈 여행과 리조트 숙박, 26회의 개인 제트기 사용, 스포츠 경기 VIP 입장권, 골프 투어…. 클래런스 토머스 미국 대법관이 그동안 공화당 큰손 후원자 등에게서 받아온 향응 리스트는 화려하다. 그가 “친한 이들에게서 받은 ‘개인적 호의’는 신고할 의무가 없다”며 공개하지 않았던 수백만 달러어치 특혜들이다. 최근 언론의 추적 보도를 통해 뒤늦게 공개되면서 미국 사회에 깊은 실망과 충격을 안겼다. ▷단 9명만이 존재하는 미국의 연방대법관은 ‘시대의 지성이자 양심’으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다. 종신직으로, 사법부의 다른 법관들과 달리 이들을 구속하는 명문화된 규범이 없다. 철저히 자기 규율에 따라 외부 강연이나 행사에 참석하고 정재계 거물들과도 교류한다. 사적 이해관계가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사건을 기피해야 하지만, 그 판단 또한 대법관 스스로 내린다. 토머스 대법관이 억만장자 클럽에 가입해 수년간 부자 친구와 지인들이 제공하는 ‘호의’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다. ▷불붙는 도덕성 논란과 비판에 직면한 미국 대법원이 처음으로 자체 윤리강령을 채택했다. 14페이지 분량으로 ‘대법관이 사건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게 만들 수 있는 외부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을 명시했다. ‘대법관 윤리 규정이 필요하다’는 설문조사 응답이 75%에 이르는 상황을 버티지 못했다. 갑부 지인의 전용기를 타고 알래스카로 고급 낚시여행을 다녀온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내가 안 탔으면 어차피 비어 있었을 자리”라는 식으로 반박한 것은 악화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근엄한 법복 속 대법관도 결국 사람이다. 권력과 부의 달콤함에 맛 들이면 부패와 타락의 함정에 빠지지 말란 법 없다. 불법은 아니지만 오해를 사거나 부적절한 결정을 내릴 위험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토머스 대법관의 경우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불복 관련 심리에서 9명 중 유일하게 트럼프에게 유리한 의견을 내놓은 게 바로 그였다. 갑부 친구들이 여는 클럽 행사 장소로 대법원을 내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사상 첫 대법관 윤리강령이라는 고육지책에도 법률 전문가들은 “반쪽짜리”라는 혹평을 내놓고 있다. 실제 이행을 강제할 메커니즘도, 대법관 활동을 모니터링할 주체도 없다는 것이다. 초고령화하는 일부 대법관들의 업무 역량이 떨어지는 문제와 맞물려 ‘종신직을 폐기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보수 대법관이 잇따라 임명되면서 판결이 너무 한쪽으로 쏠린다는 우려가 반영된 흐름이기도 하다. 정의와 공정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할 대법원이 스스로 신뢰를 지켜내지 못하면 결국 외부에서 철퇴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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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사람이 상자인 줄… 죽음 부른 ‘사람 잡는 로봇’

    ‘로봇이 공장에서 사람을 죽였다.’ 최근 경남 고성의 한 농산물 선별장에서 산업용 로봇 팔에 40대 작업자가 끼여 숨졌다는 사고 소식은 해외로도 빠르게 보도됐다. 컨베이어 벨트를 세워놓은 채 센서를 점검하던 상황에서 로봇이 사람을 박스로 오인한 결과로 추정되는데, 이를 타전한 외신 제목들은 적나라했다.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달로 로봇이 급속히 지능화, 고도화되는 시점에 로봇이 일으킨 인간 사망 사건이 그만큼 크게 주목받은 것이다. ▷생산 현장에서 로봇으로 인해 사람이 사망한 첫 사례는 1979년 미국 포드자동차의 생산공장 사고다. 기계가 느려지자 현장에 있던 작업자가 수동으로 이를 손보려다 1t짜리 로봇 팔에 맞아 즉사했다. 2015년 폴크스바겐 공장에서는 로봇 팔이 22세 청년을 잡아올려 강철판 위에서 짓눌렀다. 국내에서도 올해 군산과 대구, 예천 등지의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이어졌다. 산업용 로봇은 무게만 수 t에 달하는 대형 기계여서 한번 사고가 벌어지면 심각한 인명 사고를 피하기 어렵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례들은 모두 로봇의 오작동 결과다. 기계 결함 혹은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엔 없는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경우들이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 체스대회에서는 AI 로봇 선수가 7세 소년의 손가락을 잡아 부러뜨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년이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너무 빨리 말을 옮겨버려 로봇이 혼란에 빠졌다는 게 이유였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이런 기계적 결함을 넘어 로봇이 의도적으로 사람을 공격하게 될 수 있다는 경계심도 상당하다. ‘아이, 로봇’ 같은 SF 영화에서 진작에 구현된 미래 상황이다. ▷실제 로봇 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클라우드 로봇은 스스로 인터넷에 접속해 새로운 과업을 업데이트하고, AI 두뇌를 이용해 제품이나 재료를 조건별로 분류해내는 일도 척척 해낸다.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는 고무를 이용한 로봇용 인공근육 개발이 한창이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주는 첨단 로봇은 이제 공장의 단순노동뿐 아니라 고난도 설계 작업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산업 현장을 파고드는 추세다. 아마존이 현재 전 세계 물류센터에서 운영하는 로봇만 20만 대가 넘는다. ▷제조업이 발달한 한국은 산업용 로봇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로봇 기술 경쟁력은 세계 5위권 안팎으로 평가받는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개발 경쟁 속에 로봇 활용은 더 늘어날 것이다. 너무 똑똑해진 휴머노이드 로봇이 파업에 나서거나 CEO 자리를 뺏는 반란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상황에 대처할 안전장치 또한 더 정교하고 철저해져야 한다. 인간과 로봇의 팀워크는 예측 가능하고 통제된 환경에서만 작동한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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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G8 진입 꿈꿨건만, G7과 격차 더 벌어진 韓

    “한국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뒤지는 게 뭐냐.” 올해 5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이 옵서버 국가로 초청받았을 때 고위 외교당국자들은 공공연히 이런 자신감을 내비쳤다. 친서방 선진국들의 클럽에 한국이 8번째 회원국이 되는 ‘G8 편입’ 가능성이 거론되던 시점이었다. 경제력과 군사력 외에 혁신능력, 영향력 등이 세계 6∼8위권에 든다는 내용의 경제단체 보고서도 나왔다. ▷최근 한국의 경제 성적표는 불과 5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껏 부풀어올랐던 기대감을 무색하게 한다. G7 국가들과의 1인당 국민소득(GNI)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목 GNI는 3만5900달러. 1위 국가인 미국과는 차이가 두 배를 넘어섰고,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다른 G7 국가들과도 차이가 더 벌어졌다. 2020년 우리가 앞질렀던 G7의 꼴찌 국가 이탈리아에도 2년 연속 추월당했다. ▷달러로 표시되는 GNI는 환율과 물가 변수가 반영되기 때문에 국가 간 순위에서 착시 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국이 GNI 순위에서 밀려난 것은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유로보다 많이 떨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계산시 변수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듯한 조짐이다. OECD가 추정한 한국의 올해와 내년 잠재성장률은 처음으로 1%대로 추락한 상태다. 전례 없는 저출산 위기로 인구 규모에서도 점차 순위가 밀려나고 있다. G7 국가들의 대체적 공통점인 ‘30-50 클럽’(GNI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기준에서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한국에 한때 추월당했던 이탈리아는 빠른 속도로 G7 회원국의 체급을 회복해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가 반등하면서 지난해 1인당 GNI가 한국보다 1710달러 이상 많은 3만7700달러까지 올라왔다. ‘인더스트리 4.0’이라고 불리는 경제 구조 개혁과 기업 투자가 일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던 이탈리아의 변화에 고무된 현지 경제 전문가들은 “개혁은 계속될 것”이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국제사회의 규범과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선진국들의 영향력은 경제 규모에 바탕을 둔 강한 국력이 뒷받침한다. 한국 경제의 활력이 이대로 떨어져 버린다면 G8 편입의 기본 조건인 경제력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격 미달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엮여 있는 국제 이슈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막상 목소리를 내야 할 국제무대에서는 점점 밀려나게 될 것이다. “꿈 깨”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지지부진한 ‘3대 개혁’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여전히 높은 중국 의존도와 낮은 생산성 등의 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해법 찾기에 나서야 한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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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빈대 ‘40년 만의 습격’… 佛·英 이어 한국도

    매캐한 흰색 연기를 내뿜는 방역차가 골목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벼룩, 머릿니와 함께 최악의 3대 실내 해충으로 꼽히는 빈대를 퇴치하기 위해 1960년대에 전국 곳곳에 DDT 살충제가 살포됐다. 그 유해성이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때, 어린이들은 신기한 듯 ‘방구차’를 따라다녔다. 매번 손으로 눌러 잡아도 수시로 빈대가 출몰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등 관련 속담이 10여 개에 이를 정도로 흔했던 게 빈대였다. ▷독한 살충제와 위생환경 개선 등으로 이후 40여 년간 사라지다시피 했던 빈대가 다시 국내에 나타났다. 학교 기숙사와 찜질방, 고시원 등지에서 빈대가 나왔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이 사용했거나 외국인이 자주 이용하는 장소라는 점으로 볼 때 빈대가 외부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해외 관광객의 유입 증가, 일부 숙박업소의 위생 문제, 살충제에 대한 빈대의 내성 강화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사람이나 동물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빈대는 매트리스나 소파 같은 곳에 숨어 있다가 주로 밤에 나와 활동하는 특성상 영어로는 ‘베드버그(bedbug)’로 불린다. 흡혈량이 모기의 7∼10배에 이른다는 빈대는 물렸을 경우 새빨간 피부 발진과 가려움증, 심해질 경우 고열을 유발한다. ‘잠든 사이 언제 내 몸 위로 올라와서 피를 빨아먹을지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과 혐오감은 더 문제다. 빈대가 ‘국가적 정신병’을 유발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공중보건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 빈대의 습격이 거세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영화관과 기차 같은 대중시설은 물론 학교 도서관 등에서 잇따라 빈대가 발견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영국에서도 지하철 좌석 틈새에서 꿈틀대는 빈대 동영상이 퍼지면서 시민들이 질겁했다. 후진국형 해충으로 알려진 빈대가 파리나 런던 등 화려한 도시에서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은 선진국에는 적잖은 굴욕이다. 도시 당국들은 방역 활동을 강화하고 탐지견까지 투입하며 ‘빈대와의 전쟁’에 나선 상태다. ▷100개에서 250개의 알을 낳는다는 빈대는 1억 년 넘게 지구에 존재해온 끈질긴 생존력을 갖고 있다. 완전히 없애기가 쉽지 않아 한 번 옮겨져 번식하기 시작하면 사람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퍼져나간다. 빈대 확산을 해외 이민자들 탓으로 돌리는 일각의 인종주의적 시각은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2010년대에는 미국 뉴욕 등지의 고급호텔에서 빈대에게 물렸다는 투숙객들이 1000만 달러대 소송을 내기도 했다. “빈대 습격의 원인은 세계화”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게 돌아온 빈대는 더 강해지고 집요해졌다. 박멸이 시급하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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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김치플레이션 빵플레이션 우유플레이션 설탕플레이션…

    김치플레이션, 라면플레이션, 빵플레이션…. 생활물가가 치솟으면서 장바구니 품목에 ‘∼플레이션’을 붙인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다. 가격이 급등하는 제품군에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붙인 표현들이다. 설탕과 우유, 소금 가격이 오른 것을 놓고는 영어 단어를 조합한 슈거플레이션, 밀크플레이션, 솔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월급 빼고는 다 오른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니 무슨 품목으로 유사 신조어를 만들어도 어색하지 않다. 김치플레이션만 해도 올해는 유난하다. 배추 한 포기 값이 6600원으로 평년보다 13% 올랐고 고춧가루와 열무, 마늘 같은 원·부재료 값도 모두 올랐다. 생강의 가격 상승률은 68%가 넘는다. 국수 같은 면류나 햄버거로 부담 없이 한 끼를 때울 수 있었던 것도 옛말이다. 누들플레이션, 버거플레이션 등으로 직장인들의 지갑은 더 얇아진다. “점심 먹으러 나가기가 무섭다”는 하소연은 ‘런치플레이션’이라는 또 다른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노량진 고시생들은 ‘컵밥플레이션’에 울상이다. ▷가격은 오르지 않았는데 더 비싸진 것들도 적잖다. 식품업체들이 재료 함량이나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혹은 ‘스킴프플레이션’의 결과다. ‘줄어든다(shrink)’ ‘지나치게 아낀다(skimp)’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조어로, 소비자들이 느끼지 못하게 슬쩍 값을 올리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교묘하다. 일부 참치캔과 분유통 용량, 만두 같은 가공식품 중량은 이미 10∼20g씩 줄어들었고 주스 과즙 함량도 낮아졌다. 해외 상황도 다르지 않아 프랑스 카르푸 매장에는 이런 제품들이 30종류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 기간 각국의 경기부양책과 이로 인한 과잉 유동성, 가뭄 등 이상기후 여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커진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까지 벌어지면서 국제 유가마저 더 오를 조짐이다. ‘이란 참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유가가 배럴당 최대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충격적 전망도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내놓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재점화 가능성’ 경고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폭발적인 물가 상승으로 국내 실질임금은 5개월 연속 하락세다. 실제로 손에 쥐는 월급은 계속 줄어드는데 물가상승률은 4%대에 재진입할 태세다. ‘소리 없는 도둑’이자 지갑을 갉아먹는 좀벌레라는 인플레이션이 심지어 끈적끈적해지고 있는 것이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경기에 쌓여가는 가계 부채, 고금리 부담까지 겹치면서 삶은 점점 팍팍해지는 중이다. 더 공격적으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서민들의 허리는 휘다 못해 부러져 버릴지도 모른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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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우울증 환자 100만 명… 젊은층까지 파고든 ‘마음의 감기’

    ‘벌레가 사과 속을 파고들 듯 우리 영혼 속을 파고들어 자아정체감을 좀먹고 살아갈 이유를 빼앗아가는 병.’ 20년 넘게 우울증과 싸워온 영국의 정신과 의사 린다 개스크는 우울증을 이렇게 설명한다. 의학 전문가답게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했는데도 고립감, 불안감, 절망감, 생기 고갈, 자기 비하 같은 부정적 감정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밤마다 베개를 땀과 눈물로 적시며 잠드는 날이 계속됐다”고 했다. ▷‘마음의 감기.’ 우울증은 누구나 감기처럼 겪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 증세까지 감기처럼 가볍게 봐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증으로 만성화하면 뇌의 구조까지 변형시키고 극단적 자해나 자살로 치닫게 되는 게 우울증이라는 것이다. ‘정신운동지연’이라 불리는 극도의 무기력증이 육체마저 약화시킨다. 장기간 이 질병과 싸워온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나는 평생 ‘검은 개(black dog)’ 한 마리를 데리고 살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국내 우울증 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한시적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수준을 넘어 병의원에서 상병코드가 F32, F33인 우울증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가 확연하다. 연령별로 20대(18.6%)와 30대(16%)가 가장 많은데,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불안의 강도가 그만큼 세다는 의미일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코로나 블루’ 환자도 크게 늘었다. 젊은이들이 정신과 진료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비교적 적극적으로 진단과 치료에 응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우울증 환자는 여성이 67만여 명으로 남성보다 2배 이상 많다. 특히 20대 여성의 증가세가 가팔라서 지난해에만 12만 명 넘게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과거 갱년기 우울증 등의 이유로 중장년 여성 환자가 많던 것과는 달라진 흐름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인생 단계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취업의 벽은 높고 기업 문화는 여전히 불리한 게 현실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키는 SNS 활동, 외부 자극이나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여성호르몬 등 다양한 이유들이 거론된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뉴스는 기성세대엔 낯설다. 고령화시대에 정작 관심을 쏟아야 하는 문제는 노년기 우울증 아니냐는 항변도 나온다. 그러나 나이 외에도 유전, 주변 환경과 경험, 가족력 등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는 게 우울증이다. “의지로 이겨내라”는 식의 어설픈 조언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과도한 경쟁과 비교 문화 등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우리 사회의 스트레스 요인들을 해소하는,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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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가장 혐오스러운 세금”… 英 상속세 폐지하나

    영국에서 지난해 납부된 상속세는 71억 파운드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영국인들이 보유한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커지면서 상속세 부과 대상자가 늘어난 결과였다. “세금 당국이 중산층을 착취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큰 부자들만 겨냥한 것으로 여겨졌던 상속세 부담의 범위가 중산층으로 점차 넓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상속세가 ‘영국인이 가장 혐오하는 세금’ 1위에 올랐다. ▷영국 정부가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더타임스가 보도했다. 리시 수낵 정부가 다음 달 보수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지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이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권이 ‘부자 감세’ 반대 여론을 의식해온 것과 방향은 다르지만 또 다른 정치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영국의 상속세 부과 기준은 32만5000파운드(약 5억3500만 원). 이를 넘는 유산에 적용되는 40%의 단일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일본, 한국, 프랑스 다음으로 높다. ▷내각 인사들은 과도한 상속세율의 문제점을 공개 직격하고 있다. 최근 부친상을 치르고 상속세 고지서를 받아든 그랜트 섑스 국방장관은 “사람들이 왜 이걸 징벌적으로 여기는지 이해하게 됐다”며 “매우 불공정하다”고 했다. “평생 열심히 일한 이들이 자녀에게 유산을 남겨주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이라는 레이철 매클레인 주택장관 발언도 나왔다. 보수당 소속 의원 50여 명은 “자본의 재할당을 막아 경제를 훼손한다”, “이미 각종 세금을 낸 자산에 이중과세하는 것”이라는 등의 비판과 함께 폐지 논의에 힘을 실었다. ▷유럽에서는 2000년대 들어 이미 스웨덴과 체코,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등이 상속세를 폐지했다. 스웨덴의 경우 70%에 이르는 상속세율의 부담으로 대표 기업인 이케아가 모국을 떠나고,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의 전신 기업이 상속 과정에서 결국 경영권까지 해외에 넘긴 이후의 만시지탄이었다. 상속세를 유지하고 있는 OECD 국가 중 상속세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인데, 가업 상속 시 각종 면제와 혜택을 따져보면 실효세율은 11% 정도로 내려간다. 미국은 1200만 달러(약 160억 원) 선까지는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사망률은 2026∼2030년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이 피땀 흘려 축적해 놓은 부가 자녀 세대로 흘러내리는 과정에서 상속세가 가져올 경제적, 사회적 논란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반발을 감수하고 상속 세제 개편에 나서고 있는 나라들은 그 득보다 실이 더 커지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속세율이 50%,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합치면 최대 60%에 이르는 한국이 마냥 손놓고 있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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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미국판 전랑외교? 백악관 경고 받은 주일대사

    정치인 출신인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의 별명은 람보(Rhambo)다. 영화 ‘람보’ 시리즈의 주인공과 그의 이름을 합친 것으로, 워싱턴 정가를 휘어잡던 그의 거침없는 입담과 기질을 보여 준다.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늦게 전달한 조사 담당자에게 죽은 생선이 담긴 상자를 보내 경고한 일화는 지금도 종종 회자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첫 비서실장이었던 그를 ‘무서운 악동(enfant terrible)’이라고 불렀다. ▷이매뉴얼 대사가 최근 백악관에서 소셜미디어(SNS) 활동을 자제해 달라는 경고를 받았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그가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의 신변이상설 등 중국 관련 내용을 잇달아 올리는 것이 미중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매뉴얼 대사는 친강 중국 외교부장에 이어 리 부장까지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사실을 언급하면서 “시(진핑) 주석의 내각이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비슷해졌다”고 썼다. 주인공들이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살인 미스터리에 빗댄 것이다. ▷‘미국판 전랑(wolf warrior) 외교’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매뉴얼 대사의 호전적 언사는 원조인 중국의 외교관들만큼이나 거칠다. 중국 청년들의 실업 등 내부 문제를 거론한 글들에는 조롱하는 뉘앙스가 섞여 있다. 그는 시 주석을 언급하며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인간의 비극을 이용한다” 등의 비판도 서슴지 않고 내놓는다. 외국 정상을 직접 겨냥하는, 외교관으로서는 금기시되는 언사다. 미국 언론들이 ‘전랑외교’의 상징이었던 친강 등을 향해 “무례하다”고 비판하던 언행을 그대로 중국에 돌려주는 듯한 모양새다. ▷이매뉴얼 대사의 ‘비외교적’ 행보는 특유의 싸움닭 스타일에 더해 미국 민주당 유력 인사로서의 자신감이 뒷받침된 결과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견제라는 공동의 목표 앞에서 급속히 밀착하는 미일 관계를 보여 주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그는 주재국인 일본에서는 횟집을 찾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을 지지하고 지하철 출퇴근, 후지산 등산 등을 통해 일본인들과의 스킨십도 늘려 가고 있다. ▷대사의 역할은 본국과 주재국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양국 관계를 관리하고 소통, 우호를 증진하는 것이다. 이를 흔들 수 있는 과도한 공격이나 비판, 개입은 불필요한 논란을 키우고 외교적 갈등을 부를 우려가 있다. 이매뉴얼 대사의 경우 제3국인 중국을 향한 것이라지만 미중 정상회담을 통한 관계 관리를 추진하는 미국 행정부로서는 적잖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국내에서도 싱하이밍 중국대사가 이른바 ‘베팅 발언’으로 거센 질타를 당한 사례가 있다. 지나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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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푸틴-김정은 ‘위험한 거래’ 막을 中 지렛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년 전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에 처음 참석했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그와 함께 팬케이크를 구웠다. 고급 캐비아와 보드카가 곁들여진 양국 정상의 친교 행사였다. 같은 감청색 색깔의 앞치마를 두른 두 정상은 언뜻 보기에 이란성 쌍둥이 같았다. 옥죄어 오는 서방의 압박과 제재라는 공통점을 놓고 상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두 권위주의 대국 정상의 ‘브로맨스’는 일견 단단해 보인다. 시 주석이 2013년 정상 자리에 오른 이후 가장 먼저 방문한 국가가 러시아다. 같은 해 다자회의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난 푸틴 대통령에게 시 주석은 생일 케이크를 내밀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후 한 인터뷰에서 “(상호 ‘케미’가 작동한 게)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두 정상은 40차례 넘는 만남을 이어오며 함께 크루즈선에 오르고, 술잔을 기울였다. 정상 간 친분으로 끌고 온 양국 관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묘하게 바뀌는 흐름이 감지된다. 지난해 봄만 해도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을 두둔하던 중국은 이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협과 우크라이나 영토 점령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주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은 결정적으로 중국의 경계심을 높이는 한 방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방 보란 듯이 과시한 김정은과 푸틴의 밀착은 중국엔 대북 영향력 약화를 암시하는 경고등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신냉전 구도 속에서 이뤄지는 북-러 간 결속에 중국이 가세하면서 ‘북-중-러’의 3국 연대가 강화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 무기거래가 엮여 있는 위험한 관계에 중국은 굳이 끌려들어 갈 생각이 없다고 외교가 인사들은 전한다. 북한, 러시아에 벨라루스, 이란이 연결되는 신(新) ‘악의 축’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섣부른 동참은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중국의 평판을 훼손할 게 뻔하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북-러) 양국 간의 일”이라며 거리 두기에 나선 배경에는 베이징의 이런 복잡한 속내가 담겨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이 포탄과 미사일 제공 대가로 러시아의 정찰위성, 핵잠수함 기술을 지원받는 거래가 실제 이뤄진다면 이는 한반도 안보 지형을 뒤흔드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서방으로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장기 소모전으로 비화하는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떻게든 막아야 할 일이다. 수사적 압박을 넘어 실질적 대북, 대러시아 영향력을 행사할 대응 방안이 절실하다. 중국이 그 키를 쥔 핵심 플레이어 중 하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과 주변국들의 행보는 이미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번 주 유엔총회에서는 북-러 군사협력이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그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12시간 동안 회담했다. 이 회동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 부장은 모스크바를 찾아 러시아 외교장관과 만난다. 상황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중국의 지렛대가 어느 방향을 향해 움직일지는 알 수 없다. 아직까진 느슨한 ‘북-중-러’ 연대에서 중국은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다. 중국이 북-러 간 ‘왕따 연대’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도록 설득하는 데 외교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올해 추진 중인 한중일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논의를 넓혀 볼 수 있을 것이다. 가깝게는 23일 개막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도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어떤 대중 외교 역량을 발휘하는지는 중국의 움직임만큼이나 주목할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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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美中日보다 韓서 더 비싼 아이폰… 또 불거진 ‘호구’ 논란

    한국에서는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애플 아이폰15의 국내 판매가를 놓고 벌써부터 ‘가격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애플이 최근 신제품 발표 행사에서 선보인 아이폰15 기본형의 미국 내 가격은 799달러, 한국에서 책정된 가격은 125만 원이다. 현재 환율로 계산하고(106만 원), 여기에 10%의 부가가치세를 붙여도 한국이 더 비싸다. 중국(109만 원), 일본(112만 원)과 비교해도 차이가 난다. “우리를 호구로 보냐”는 국내 소비자들이 불만이 터져 나온다. ▷‘한국만 더 비싼 아이폰’은 앞서 여러 차례 지적돼 온 문제다. 2017년 아이폰X 때부터 지난해 아이폰14까지 신형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가격 논란이 반복됐지만 애플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의 충성도가 높아 가격을 비싸게 책정해도 구매층이 이탈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비싸야 잘 팔린다”는 인식도 작용하고 있다는 게 시장 분석가들의 설명이다. 테슬라와 다이슨, 샤넬 등의 프리미엄급 브랜드 제품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각 기업 본사가 결정하는 해외 판매가는 각 나라의 시장 규모와 소비자 특성, 구매력, 환율, 세금 등을 고려해 결정되는 가격이다. 한국의 경우 가격과 상관없이 신형 제품이 나올 때면 ‘오픈런’ 행렬이 이어지는 현상 등까지 가격 책정의 변수로 반영했을 것이다. 아이폰만 해도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여긴다’는 비판이 구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아이폰을 ‘젊고 폼나는’ 제품으로 여기는 젊은 세대에서는 인기가 식지 않는다. 10, 20대의 60% 이상이 아이폰을 사용해 갤럭시의 두 배 수준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가격 갑질’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애플의 자신감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화웨이가 7나노 칩을 탑재한 신형 휴대폰을 내놓으면서 애플은 해외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 내 입지가 흔들릴 처지다. 중국은 보안을 이유로 자국 공무원들의 아이폰 사용도 금지했다.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에 맞서 다분히 보복성으로 보이는 이 조치까지 더해지면서 애플의 시가총액은 이틀 만에 250조 원이 증발했다.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가열되면서 이런 유탄은 더 많아지고 세질 가능성이 크다. ▷애플은 막상 미국 현지에서는 신제품의 가격을 이전 모델 때와 똑같이 동결했다. 가격 매력도를 높여 중국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승부수라는데, 그만큼 높아져 있는 회사 내부의 위기감이 반영된 결정이기도 할 것이다. 이럴 때 우군이 되어줄 충성 고객을 소홀히 여기는 게 위기돌파 전략이 될 수 없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시장 규모가 작다고 해서 한국 소비자들의 목소리까지 작은 게 아니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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