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박형준 부장

동아일보 산업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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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형준 기자입니다. 일본 정치와 사회, 한국 산업과 경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lovesong@donga.com

취재분야

2024-06-13~2024-07-13
칼럼97%
사설/칼럼3%
  • [오늘과 내일/박형준]다시 떠올리는 ‘우향우’ 정신과 김학렬의 각오

    1973년 6월 처음 쇳물을 생산한 뒤 2021년 12월 임무를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용광로)는 별명이 많다. 민족 고로, 경제국보 1호 등인데, ‘아카자와 고로’라는 낯선 별명도 있다. 그 뜻을 알면 가슴 뭉클해진다.아카자와 고로는 신뢰가 만든 결과물 박정희 대통령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1965년경 박태준 대한중석광업 사장에게 종합제철소 건설을 지시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가난했다. 박태준은 미국 등에서 차관을 들여오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허사였다. 해외 인사들은 ‘한국이 짓고자 하는 제철소는 사업성이 없다’고 여겼다. 그는 고민하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돈을 대는 일본이 사전에 자금의 사용처를 농업발전용으로 명시했기에 일본 정부가 제철소 건설자금으로 돌리는 걸 허가해야 했다. 1969년 초 박태준은 곧장 일본을 찾아 지한파 정치인, 제철소 사장 등을 만났다. 일본 내각도 집요하게 설득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일본은 마지막 단계로 1969년 9월 현지 조사단을 한국에 보냈다. 아카자와 쇼이치 경제기획청 국장이 단장이었다. 처음 만난 박태준과 아카자와 국장은 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경주로 갔다. 아카자와 국장이 그때 느낀 감정은 안상기 씨의 저서 ‘우리 친구 박태준’에 잘 나와 있다. “박태준은 제철산업 발전을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가 지휘한다면 제철소 건립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포항 현장은 황무지였기에 우리 조사단은 기가 막혔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했고, 일본 정부가 꼭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나는 매우 긍정적인 보고서를 썼고, 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포항제철 건설이 시작됐다.” 1985년 4월 한일 경제인들이 모인 한 행사에서 포스코 회장이 된 박태준은 민간 경제인으로 참석한 아카자와를 다시 만났다. 박태준은 건배사 때 “우리 포스코는 1고로를 ‘아카자와 고로’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아카자와는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포스코는 조강생산량 기준 세계 7위 철강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요즘 고난을 겪고 있다. 아니, 한국 철강업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부동산 침체로 저가 철강을 한국으로 쏟아내고, 엔화 가치가 급락하며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일본산 제품까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유럽의 환경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 철강업계는 비상경영으로 대응하고 있다. 포스코는 철강 분야에서 연간 1조 원 이상 원가를 줄이기로 했다. 임원 급여도 최대 20% 반납하기로 했다. 동국제강은 지난달부터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야간에만 인천 공장의 전기로를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철강 경기가 언제 반등할지 가늠하기 힘들다. 박태준 “혈세로 짓는 제철소, 실패란 없다” 다시 포스코를 건설하던 때로 되돌아가 보자. 박태준은 건설 과정에서 현장 직원들에게 “우리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죽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박태준만 그런 각오를 다졌던 게 아니다. 1969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임명된 김학렬은 취임 즉시 흑판에 ‘종합제철’이라 써놓고 “이 사업이 완결되거나 내가 그만둘 때까지 지우지 말라”고 엄명했다. 철강기업 임직원들이 우향우 정신으로 일하고, 정부가 김학렬 전 부총리의 각오로 지원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철강 위기는 없을 것이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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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제2, 제3의 현대차-도레이 협력이 중요한 이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나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무게를 줄여야 연료소비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차체 혹은 기체의 강도는 높아야 한다. 땅과 하늘을 아우르는 모빌리티 기업을 추구하는 현대자동차그룹으로서는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철강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 도레이그룹은 글로벌 탄소섬유 시장에서 세계 1위다. 탄소섬유는 ‘꿈의 소재’로 불린다. 기존 철강보다 5배 가볍고 강도는 10배 이상이다. 자동차의 안전성과 연비를 모두 높일 수 있기에 BMW, 람보르기니 등은 성능 개선을 위해 탄소섬유를 사용해왔다.한일 정치가 냉각되면 경제도 휘청 현대차와 도레이는 올해 4월 전략적 협력 계약을 맺었다.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CFRP) 등 신소재를 공동으로 개발한다고 한다. CFRP는 고강도·고탄성의 경량 신소재로 자동차 차체부터 개별 부품에까지 널리 쓰인다. 두 회사가 손잡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운 협력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어날 수 없었다. 한국 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면서 한일 관계가 악화됐던 2019∼2022년 동안 도쿄 특파원으로 지냈다. 당시 한일 기업인들을 만나면 예외 없이 “경제는 정치와 별개”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 대형마트들은 ‘한국 상품 전시회’를 잇달아 취소했다. 이유를 물으면 “행사 계획이 바뀌었다” 등으로 얼버무렸다. 일본 내 한국 상품 판매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식품기업의 한 영업사원은 “월별 매출이 전년보다 20∼30%씩 계속 줄고 있다. 한일 관계가 안 좋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고하면 본사는 ‘언제까지 그 핑계를 댈 거냐’고 말해 곤혹스럽다”고 했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 의류 기업 유니클로는 한국에서 잇달아 매장 문을 닫았고, 일본 자동차 브랜드 닛산과 인피니티는 한국에서 철수했다. 그런 엄혹한 시기에 한일 기업이 어떻게 협력한다고 발표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양국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바뀐 뒤 일어난 변화다. 최근 양국 경제계 만남도 활발하다. 그 자리에선 “경제 협력 관계가 정권 변화에 관계없이 지속되게끔 만들어보자”는 목소리도 예외 없이 나온다. 물론 과거사, 영토 등을 놓고 일본과 협력을 외칠 수는 없다. 역사 교과서에서 침략을 지우려는 움직임,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을 외면한 채 자국에 유리한 일부분만 국제사회에 홍보하는 모습, 사회 지도층의 망언 등에 대해선 분명하게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는 다르다. 한일이 경제 협력을 할수록 그 혜택이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실제 도레이는 지난달 또 하나의 발표를 했다. 2025년까지 경북 구미시에 총 5000억 원을 투자해 생산 역량을 더 늘리겠다고 했다. 현대차와 신소재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한 것도 공장 증설 판단에 기여했을 것이다. 공장을 새로 지으면 국내 고용이 늘고 건설자재 소비도 늘어난다.경제협력 과실 체감하게끔 만들어야 한국과 일본의 상공회의소가 분석했더니 한일이 관세를 전면 폐지하면 양국 모두 실질 국내총생산(GDP)과 소비자의 후생이 증가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이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쉬운 사례로 시작해 양국이 성공사례를 늘려가자”고 제안했다. 공감한다. 국민들이 그런 성공사례의 과실을 체감할수록 양국 정치 상황이 어떻든 경제 협력에 대한 믿음이 커질 것이다. 제2, 제3의 현대차와 도레이의 협력이 그래서 중요하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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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가 만난 사람]“산업 대개조 골든타임 1년 남아… 아차 하면 2, 3류로 전락”

    《지난달 2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의 경제 기적은 끝났나’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FT는 한국 경제에 대해 “과거 성장 모델의 주축이었던 저렴한 에너지 가격과 값싼 노동력 등이 흔들리고 있다”며 “저출산에 따른 인구 위기로 미래 성장에 대한 우려도 더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1970∼2022년 연평균 성장률은 6.4% 수준이었다. 하지만 생산성이 낮게 유지되면 2020년대에 2.1%로 둔화하고 2030년대에는 0.6%, 2040년대에는 ―0.1%로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이 같은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국내외에서 한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피크 코리아’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높일 돌파구는 없을까. 한국 산업계 원로 경영인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겸 CJ그룹 회장(85)에게 길을 물었다. 그는 “산업 대개조를 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 정도”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무엇보다 ‘기술’에 승부를 걸 것을 조언했다. 국회 여야와 정부의 협력도 당부했다. 손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2일 대면으로 진행됐고, 이달 중순 서면 인터뷰를 추가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반도체는 국가 대항전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산업이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고 있기에 우리가 너무 늦으면 곤란하다.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아차 하면 2류, 3류로 떨어지게 된다. 그럼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도 다 사라진다. 지금 바로 산업 대개조를 해야 한다.” ―산업 대개조를 한다고 하면 어떤 분야에 가장 힘을 쏟아야 하나. “기술이다. 기술력이 있어야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노동력을 무기로 글로벌 경쟁에 나섰지만 지금은 혁신 기술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 ―산업 대개조를 하기까지 골든타임은 어느 정도 남았나. “1년 정도라고 생각된다.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있고, 일부 산업에선 1년 정도 한국의 기술력이 중국을 앞섰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과연 1년 후에도 ‘한국이 중국에 1년 앞섰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약 1년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중국에 추월당할 수 있고, 한국이 더 이상 따라잡기 힘들어질 수 있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이 13일 발표한 ‘2023년 산업기술 수준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기술은 중국보다 불과 0.3년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산업기술은 1년 이상 중국에 앞섰지만 최근 이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혁신 기술 개발 외에 또 무엇이 중요한가. “노동 대개혁을 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국제 기준에 비해 고용 유연성이 부족하다. 대체 근로 허용, 파견 대상 업무 확대, 파업 시 사업장 점거 금지, 성과를 반영하는 임금체계 등이 이뤄져야 한다. 국제적으로 높은 법인세와 상속세를 과감하게 낮추는 것도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규제 개혁도 지속되어야 한다. 정부가 여러 규제 개혁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좀 더 획기적으로 철폐돼 외국 기업들도 ‘한국에서 사업 할 만하다’고 느끼게끔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산업 지원이 해외 경쟁국보다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 미국, 일본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이 많이 조명됐다. 해외의 경우 보조금은 반도체 외 분야에도 지원된다. 제가 아는 한국의 화장품 기업이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 시절 미국 주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10억 원 받았다. 한국 정부도 폭넓은 부문에서 보조금 지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특히 반도체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보조금 지급 방침을 밝힌 적은 없다. 다만 반도체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관련 시설 투자나 연구개발(R&D) 비용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보조금은 외국 기업 투자 유치와도 연결될 것 같다. “맞다. 그리고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해 또 하나 개선돼야 할 게 있다. 최근 ‘외국 기업인이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한국 지사장으로 오고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전과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좀 더 늦춰져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부터 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됐고, 올해 1월부터 50인 미만 기업까지 전면 시행됐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영세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준수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불명확한 의무를 부과한다”며 지난달 1일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여소야대’인 이번 총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여야 모두 (한국 경제 성장을 위한) 변화 필요성에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큰 수준의 산업 개편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정부 예산도 필요하고, 세제 정책도 뒷받침돼야 한다. 국회와 행정부가 서로 잘 손발을 맞춰 나가야 한다. 궁극적인 목표가 비슷하면 협치도 할 수 있다고 본다.” ―특별히 정치권에 주문하고 싶은 게 있나. “지금 노동 관련 이슈가 많은데,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또 외국에서도 한국으로 투자가 밀려오면 노동 이슈는 자연히 줄어든다. 정치권이 그렇게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줬으면 좋겠다. 기업 활력을 높이는 법안은 신속하게 처리하고, 활력을 떨어뜨리는 법안은 늦추거나 유예하길 희망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산업계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조, 제3조 개정안) 재발의다. 근로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인데 원청과 하청 관계에서 원청의 책임을 많이 묻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도 좀 보류해 줬으면 좋겠다. 사고가 나면 중소기업은 당장 사장이 붙잡혀 간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사장 없으면 다 무너진다.” 노란봉투법은 2023년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최종 부결됐다. 하지만 야당은 22대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다시 발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올해 경제 상황을 어떻게 예측하나. “올해 한국 경제는 지난해(1.4%)보다 높은 2% 중후반 성장률을 기록하고, 물가상승률은 2%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덕분에 국민과 기업의 어려움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 고금리 지속 등 불안요인들이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 경제 회복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높다. “트럼프 후보가 과거 대통령 시절 한국에 ‘왜 투자도 많이 안 하면서 혜택만 보느냐’고 불평했다. 하지만 트럼프 후보가 올해 말 당선된다고 해도 더 이상 그 소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한국 기업이 미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누군가가 투자하라고 강제해서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이 사업 하기에 좋은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스스로 미국에 가 투자를 하고 있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한국과 미국이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2022년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앞질렀다. “대만 정부가 일하는 게 굉장히 역동적인 것 같다. 반도체 기업에 파격적으로 지원한다. 그렇게 해도 대만 국민들은 ‘정부가 왜 특정 대기업만 지원하느냐’와 같은 비판을 안 한다. 한국 국민들이 정부의 기업 지원을 비판하면 정부가 일을 할 수가 없다. 한국 국민들도 정책의 온기가 기업을 넘어 어디까지 확산되는지, 그 이면을 봐 줬으면 좋겠다.” ―미중 갈등 이후 한국 기업이 중국 관련 사업을 접고 있다. “중국은 바로 옆에 있는 이웃 나라이고, 또 산업 구조상 협력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약 25% 수출이 중국으로 갔고, 작년에는 19.7%로 줄었다. 앞으로 더 줄어든다 해도 중국은 여전히 큰 나라여서 헤어질 수 없다. 중국 역시 ‘한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올해 3월 경총이 중국의 경제단체와 함께 베이징에서 포럼을 했다. 인리(尹力) 중국공산당 베이징시 위원회 서기 등 고위 인사들이 대거 나와 우리를 환대했다. 중국 참석자들은 ‘요즘 양국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한중 협력에 대한 공감대는 분명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일 기업인들은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협력 관계 구축을 외치고 있다. “매년 한일 최대 민간교류 행사인 ‘한일축제한마당’ 한국 측 실행위원장을 맡아 오면서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에 문화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음식과 음악, 영화 등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일본 진출도 확대해야 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과 이해도가 높아져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손경식 회장(85)―1939년 서울 출생―1961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1968년 삼성전자공업(현 삼성전자) 입사―1973년 삼성화재 이사―1993년 CJ 대표이사 부회장―1995년∼현재 CJ그룹 대표이사 회장―2005∼2013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2018년∼현재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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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AI를 나만의 비서로 만들려면

    푸른 초원 위에 길을 내고 집을 짓는다. 소를 부려 밭을 갈기도 한다. 바람이 불면 풀잎들이 흔들리고 가을이 되면 고운 단풍이 든다. 얼핏 보면 중세 유럽의 한가로운 시골을 묘사한 영화같다. 하지만 이는 영화가 아니라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매너 로드(MANOR LORDS)’에 나오는 장면이다.혼자서 AI 활용해 글로벌 게임 제작 이 게임은 지난달 26일 출시됐다. 게임 플랫폼인 스팀에 따르면 5월 현재 스팀 전체 게임 중 매출 순위 2위를 기록했다. 동시접속자가 약 17만 명. 일본 소니,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산하 액티비전블리자드 등 대기업이 내놓은 대작들을 모두 제쳤다. 놀랍게도 매너 로드는 1인 개발자가 내놓은 작품이다. 통상 대작 게임 하나를 개발하는 데 수백 명의 개발자가 4, 5년을 매달린다. 하지만 매너 로드는 영상 편집 프리랜서였던 폴란드인 그레크 스티첸이 혼자서 7년간 만들었다. 그 비결 중 하나는 인공지능(AI) 활용이었다. 미국 엔비디아의 AI 딥러닝 기술인 DLSS를 매너 로드에 적용했다. DLSS는 게임의 동영상을 더 선명하고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랬기에 매너 로드를 처음 접했을 때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됐던 것 같다. 앞으로는 1인 개발자의 대작은 더 늘어나고, 개발 기간은 수개월로 대폭 짧아질 것이다. 스티첸은 영상 처리만 AI로 했지만, 이제 누구나 AI에 지시해 게임 대본을 쓰고 그림뿐 아니라 동영상까지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할은 아이디어 내기, 제작 지시 그리고 완성품에 대한 판단에 그치고, AI가 인간을 대신해 제작을 맡는 시대가 됐다.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 출현보다 더 폭발력이 클 이 같은 변화는 2022년 11월 오픈AI가 생성형 AI 챗GPT를 내놓으면서 본격화됐다. 생성형 AI는 수천억 단위의 초거대 데이터에서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의 확률 관계를 학습해 하나의 확률 지도를 만들어 다음에 나올 단어를 예측해 보여줬다. 이게 곧 질문을 하면 답하는 것처럼 보였다. 생성형 AI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오픈AI가 13일 내놓은 GPT-4o는 사람처럼 보고 듣고 말하는 AI 시대를 열었다.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GPT-4o를 실행하면, 카메라가 자신의 눈이 돼 음성으로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자세히 묘사해준다. 호출한 택시가 다가오는 것을 인식하고, “지금 손을 들라”고 말해준다. 안내견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5년 후에 모든 면에서 인간 수준에 버금가거나 뛰어넘는 AI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물론 AI는 거짓을 진짜인 것처럼 답하는 등 치명적인 문제점도 있다. 그렇다고 AI 기술에 눈을 감아야 할까. 예정된 미래인 AI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는 동아일보가 최근 시작한 ‘2024 동아 인공지능·혁신(AI & INNOVATION) 아카데미’에서 첫 강의를 맡았던 김대식 KAIST 교수의 코멘트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AI 경험하고 알아야 나만의 비서 돼 “이 강의에 참여한 여러분은 대부분 40, 50대입니다. AI를 몰라도 기존 지식을 가지고 그럭저럭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는 운 좋은 세대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가정에 10대 자녀가 있다면 반드시 오늘 배운 AI 서비스를 함께 실행해 보세요. 10대들이 직업을 구할 때 즈음이면 대부분 지적 노동은 AI가 대신하고 있을 겁니다. AI를 최대한 많이 경험해 봐야 AI에 끌려다니지 않고 AI를 자신의 비서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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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을 대체할 아시아, 그중에서도 ‘뉴7’ [오늘과 내일/박형준]

    초음파 영상 진단기기를 만드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장기간 고금리가 이어진 데다 최근 의대 정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으로 회사 매출이 영 시원치 않다. 사장으로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中 대신 아시아 7개국 주목해야 10년 전이라면 ‘중국’에서 답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저렴한 인건비, 거대한 소비시장, 10% 내외의 경제성장률…. 수출을 하든, 현지 공장을 짓든 중국과 연결시키는 게 항상 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10여 년 동안 중국의 평균 노동자 임금은 2배로 올랐다. 2022년 기준 중국의 월 최저임금은 286달러(약 40만 원)로 베트남의 1.7배, 인도네시아의 1.6배다. 중국의 성장률은 5% 내외로 떨어졌다. 거기에 미중 무역갈등이란 큰 변수도 생겼다. 미국이 우방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면서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미국에 팔기 쉽지 않다. 또 중국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틀면서 자체 기술력을 크게 높였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변했다. 중국 수출 붐에 따른 수혜자가 되기보다 지난 10년간 경쟁이 부각됐다”고 말할 정도다. 기회이긴커녕 위험이 되고 있기에 국내외 기업들은 앞다퉈 중국을 떠나고 있다. 그 기업들이 어디로 향할까. 바로 아시아다. 지난해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알타시아(Altasia)’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대안(Alternative)’과 ‘아시아(Asia)’를 합성해 만든 신조어로 중국의 대안이 곧 아시아란 의미다. 동아일보는 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자원(Natural resources) 부국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수출 전진기지(Export hub)인 인도 베트남 싱가포르 △성장하는 세계 시장(World market)인 태국 필리핀 등 7개 국가를 ‘아시아 뉴(NEW) 7’으로 선정했다. 아시아 뉴7이 한국에 주는 기회는 크다. 중국은 14억 인구지만 아시아 7개국은 20억 인구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대중(對中) 수출액은 8.4% 줄었지만 아시아 뉴7 대상 수출액은 15.6% 증가했다. 한국은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에서 180억4000만 달러 적자를 봤지만 아시아 뉴7과는 423억9000만 달러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아시아 뉴7이 중국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 뉴7 국가 15개 도시에 근무하는 KOTRA 무역관장 15명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도 진행했다. 14명은 “한류 열풍이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새롭게 사업을 하기에 유리하다. 무역관장들은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기에 유망한 분야로 ‘의료기기’(8명), ‘친환경에너지’(8명) 등을 꼽았고, 수출하기 좋은 산업은 ‘의료기기’(13명), ‘화장품’(12명) 등을 언급했다.국내 유입되는 투자 유치도 방법 다시 의료기기를 만드는 중소기업 사장으로 돌아와 보자. 아시아 뉴7으로 사업을 확장해 보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만약 부담스럽다면, 국내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중국을 벗어난 글로벌 자금들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가운데, 그 종착지 중 하나는 한국이다. 지난해 국내로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고, 올해도 그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1분기 FDI는 10조 원에 육박하며 1분기 기준 사상 최대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에 대한 투자가 전년 동기보다 99% 늘었고, 유형별로는 인수합병(M&A) 투자가 115% 증가했다.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 지금이 외국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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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혁신 아이콘 애플의 배신

    최근 한 인터넷 카페에 ‘아이폰 쓰는 딸, 갤럭시 쓰는 엄마’라는 제목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엄마는 딸의 중학교 입학을 기념해 아이폰을 사줬다. 중고 제품을 사줬는데도 딸이 너무나 좋아하고 애지중지했단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엄마가 갤럭시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니 앱으로 아이폰을 통제할 수 없었다. 유료 제어 앱도 소용없었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아이패드를 중고로 사(아이폰을 사려 했으나 아이폰은 중고도 너무 비쌌다고 함) 애플 아이디를 만든 뒤에서야 딸의 아이폰 사용을 제어할 수 있었다. 아이폰의 폐쇄성으로 인해 엄마로선 낭비를 해야 했다. 반대로 제조사인 애플은 돈을 더 벌 수 있다. 결국 미국 법무부가 이런 애플의 행태에 철퇴를 내리는 작업에 돌입했다. 최근 애플을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의 브리핑에 애플의 폐쇄적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애플은 갤럭시 등 다른 스마트폰의 앱 기능을 떨어뜨리고, 애플이 아닌 주변기기의 성능 역시 저해했다. 예를 들어 아이폰 이용자가 비(非)아이폰 이용자에게 메시지 앱을 이용해 문자를 보내면 녹색으로 표시된다. 대화가 암호화되지 않고 동영상 화질이 떨어지며 메시지를 수정할 수도 없다. 아이폰 이용자가 다른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친구와 메시지, 동영상 등을 주고받으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아이폰이 아닌 스마트폰은 품질이 안 좋다’란 느낌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아이폰에 있는데도 말이다. 갈런드 장관은 “애플은 우수한 제품으로 경쟁에서 앞선 것이 아니라 반독점법을 위반하며 스마트폰 시장에서 독점을 유지해 왔다”고 일침을 놨다. 브리핑에선 202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콘퍼런스에서 있었던 일화도 소개됐다. 한 참석자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다른 스마트폰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방법을 바꿀 생각은 없느냐.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어머니에게 동영상을 보낼 수 없어서 그렇다”고 질문했다. 그러자 쿡은 “어머니에게 아이폰을 사 드리라”고 답했다. 아마 농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 법무부의 제소 내용을 알고 나서부터 더 이상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쿡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설득으로 1998년 애플에 합류했다. 잡스가 카리스마 넘치는 천재 스타일이라면 쿡은 꼼꼼한 관리자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쿡이 2011년 애플의 CEO가 됐을 때 기대보다 우려의 시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기자는 쿡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2014년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용기 있게 공개한 게 계기였다. 그는 블룸버그에 기고한 글에서 “게이인 까닭에 소수집단에 속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고, 소수자들의 고충도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다양성, 평등, 여성 고용 등을 강조하며 포용력을 보여줬다. 혁신의 이미지를 가진 애플에 따뜻함까지 불어넣어 준 느낌이었다. 그런 애플이 폐쇄적 생태계로 독점적 지위를 유지했다는 사실에 큰 배신감을 느낀다. 유럽연합(EU) 또한 반독점법 위반으로 이달 초 애플에 약 2조70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을 보면 배신감에 대한 공감대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 같다. 잡스가 2007년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은 지 17년 만에 애플이 최대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애플의 성장 동력이었던 폐쇄성이 이제 최대 골칫거리가 된 셈이다. 한국 기업들 역시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만들지 않는지 되돌아볼 때다.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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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등을 풀어줄 수박 한 통 [오늘과 내일/박형준]

    딸이 대학 입시를 끝내고 최근 일본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밤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했기에 마중을 나갔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일본 여행기를 조잘거리더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은 다 좋았는데 딱 한 가지가 아쉬웠다. 배달음식을 못 먹는다는 것이다. 빨리 집에 가서 배달음식 주문해야지.” 그때 시간이 오후 11시 30분이었다. 도쿄 특파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일본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반면 한국에선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배달음식을 먹는다. 배달의민족(배민), 쿠팡이츠,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을 이용하면 따뜻한 음식을 너무나 손쉽게 집에서 맛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2조7000억 원 규모였던 음식 배달 온라인 서비스는 작년 26조4000억 원으로 약 10배 커졌다. 비례해 ‘라이더’라 불리는 배달원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자영업자도 이득을 누렸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면 굳이 유동 인구가 많은 1층에 식당을 낼 필요가 없기에 초기 투자비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이용자 편리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딸이 자정 가까운 시간에 문 연 음식점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게끔 만들어줬다. 그런 배달음식 시장이 요즘 심상치 않다.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의 분노가 배달료로 쏠리는 분위기다. 특히 배달음식 업계 1위이자 올해 들어 정률제 수수료 기반의 ‘배민1플러스’ 상품을 내놓은 배민에 불만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 한 치킨집에서 치킨 한 마리와 음료를 합쳐 2만5000원을 받는다고 치자. 식당에서 팔면 주인은 고스란히 2만5000원을 손에 쥘 수 있다. 배민1플러스를 통해 주문을 받으면 중개이용 수수료(음식값의 6.8%·1700원), 배달비(3200원), 카드 결제수수료(750원), 부가가치세(565원) 등 6215원이 빠져나간다. 주인 몫이 줄어드는 데다 대폭 오른 식자재 비용, 인건비, 상가 임대료 등까지 감안하면 거의 남는 게 없다. 그렇기에 주인은 정액제가 아닌 정률제의 수수료가 부담스럽고, 과거보다 높아진 배달비에 분노한다. 하지만 배민 측도 할 말이 있다. 정률제 수수료 6.8%는 국내 경쟁사뿐 아니라 해외 동종 업계와 비교해도 가장 낮다. 음식점 주인들은 정액제 상품을 고를 수도 있다. 배달비 3200원은 배민에 귀속되는 게 아니라 대부분 라이더에게 돌아간다. 소비자들은 배달 상황을 휴대전화로 파악할 수 있어 배민이 직접 운영하는 배달 시스템을 더 원하는 측면도 있다. 양측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갈등을 줄일 수 있을까. 과거 동아일보 한 선배가 칼럼에 소개했던 층간소음 방지책을 참고로 소개한다. 그 선배는 층간소음에 고통스러우면 수박 한 통을 사서 위층에 전하면서 “소음에 조금만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하라고 조언했다. 위층에 가서 항의하거나, 관리사무실에 전화해 대처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 측면에서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향후 7년간 외식업주 경영 지원 등에 2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최근 발표한 것은 인상 깊다. 영업이익 약 4200억 원인 회사로선 적은 돈이 아니다. 배민이 수박 한 통을 자영업자에게 내민 셈이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를 보면 “정액제 상품에 가입해도 홍보 노출을 많이 해 달라”, “음식점 자체 배달 상품을 더 크게 앱에 노출해 달라” 등 불만 글들이 보인다. 그런 점까지 배려한다면 배민은 양손에 수박을 들고 자영업자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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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아베노믹스 12년이 부린 마법

    일본 닛케이평균주가 35년 치를 뽑아보면 거대한 ‘U’를 볼 수 있다. 주가는 거품 경제 최절정기였던 1989년 3만8915엔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급락했고, 그 이후 오랜 기간 횡보를 보였다가 지난달 22일 다시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 소식을 전한 니혼게이자이신문의 1면 제목이 재밌다. ‘이번엔 거품 후가 아니다.’ 맞는 말이다.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는 거품이 잔뜩 끼었다. 금리가 낮으니 일본인들은 은행 돈을 빌려 부동산과 주식을 샀다. ‘사면 무조건 오른다’는 믿음이 가득했다. 이런 버블 속에 주가는 치솟을 수밖에 없다. 최근 주가 상승은 인공지능(AI) 기대감에 따른 반도체 관련 주들이 이끌었다. 기업의 탄탄한 실적을 보고 외국 투자자들도 밀려들었다. 거품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한번 닛케이평균주가를 보자. 상승 랠리는 2012년부터 시작됐다. 그 이후 부침은 있었지만 주가는 꾸준히 올랐다. 2012년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재취임한 때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대규모 금융 완화, 재정 지출 확대, 성장 전략 등 3가지를 핵심으로 하는 ‘아베노믹스’를 내놨다. 이를 통해 시중에 무한정 돈을 공급했다. 엔화가 넘쳐나니 엔화 가치가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니 일본의 수출품이 싸졌다. 수출 대기업이 아베노믹스의 혜택을 톡톡히 입으면서 그 기업들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놀랍게도 아베노믹스 발표 이후 10년이 더 지났지만 지금도 일본 경제 정책 근저에는 아베노믹스가 흐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파로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전 세계는 2022년 전후부터 기준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일본은 2016년부터 실시한 마이너스 기준금리(―0.1%)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엔화 약세도 여전하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비판도 많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는 아킬레스건이었다. 하지만 일본종합연구소가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 ‘기업 규모별로 본 임금 동향의 특징’을 보면, 2012년부터 10년 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정규직 임금 격차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2012년 대기업 임금은 중소기업보다 32.5% 높았지만 2022년에는 22.6% 높은 수준에 그쳤다. 연구소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가 대기업에 많이 유입됐고, 대기업 취업 빙하기(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입사한 이들이 간부가 되면서 고임금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 등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아베노믹스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됐지만 아이러니하게 다른 경제적 이유로 양극화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대기업만 살찌운다”는 비판이 무서워 일찌감치 정책을 포기했다면 일본 주가의 신기록 달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10년 이상 지속되는 경제 정책이 나올 수 있을까. 여러 이유로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선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분석이 나오면 정책 입안자는 그 정책을 힘 있게 밀어붙이지 못한다. 또 5년마다 새 정권이 들어서기에, 심지어 여당이 재집권을 해도 전임자의 정책은 대체로 부정되기에 특정 정책이 10년 이상 지속되기 힘들다. 설혹 정권을 초월해 경제 정책이 추진된다고 해도 기업들이 그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특정 정권에서 너무 잘나가면 다음 정권에서 구설에 오르고, 나아가 세무조사나 검찰 조사를 받을지도 모른다. 정책 일관성이 일본에서 부린 마법을 한국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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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K배터리, 일본 전철 밟을까 두렵다

    2019년 가을, 일본은 또다시 열광했다. 요시노 아키라 일본 메이조대 교수가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요시노 교수는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화석연료에서 자유로운 사회를 가능하게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일본이 배터리 종주국이기에 일본인들이 더 환호했는지도 모르겠다. 요시노 교수가 근무했던 기업 아사히카세이는 1985년 리튬이온 배터리 특허를 등록했고, 1990년대 소니 등이 그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일본의 배터리 산업은 2015년경 세계 시장 점유율 50%를 넘길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현재 배터리 시장에서 일본의 위상은 크게 떨어졌다.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톱10에 일본 기업으론 파나소닉만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반면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가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글로벌 시장을 이끌고 있다. 물량 기준으로 친다면 CATL, BYD 등 중국 기업들이 세계 1위다. 배터리 종주국 일본은 왜 10년도 안 돼 존재감이 약해졌을까. 전기차로 바뀌는 시류를 읽지 못하면서 배터리에 대한 기술 개발과 투자에 소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만들기 쉽다. 영국 사업가 로버트 앤더슨은 1834년 전기로 움직이는 마차를 만들었다. 내연기관차가 발명되기 30년 전이었다. 배터리만 있으면 차량이 굴러가기에 수많은 기계를 조합해야 하는 내연기관차보다 난도가 낮았다. 다만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해 내연기관차를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1920년대 미국 텍사스에서 대형 유전이 개발돼 연료비까지 떨어지자 전기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0년대 초 짧은 전기차 붐도 있었다. 전기차 구매자에게 약 2000만 원의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했던 때였다. GM 쉐보레 볼트, 닛산 리프, 기아 니로 등이 그때 탄생했다. 하지만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회 충전으로 150㎞도 달리지 못했고, 충전은 느렸으며 충전소 수도 적었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를 외면했고, 덩달아 일본 배터리 기업들도 배터리 개발에 소홀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LG그룹은 고 구본무 회장의 지원 아래 만년 적자였던 배터리 사업을 30년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그 덕분에 중국 이외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나왔다.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 시장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에코프로비엠의 권우석 전 대표는 “수익을 내지 못하고 투자만 해야 했던 10년여의 시간은 지옥과도 같았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유럽연합(EU), 노르웨이 등 주요국들이 탄소 저감을 위해 2025∼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하면서 한국 배터리가 제대로 때를 만났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강제된 미래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일본은 다시 칼을 갈고 있다. 이번엔 정부가 나섰다. 일본 정부는 2022년 축전지 산업 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 배터리 시장 점유율 20%를 목표로 밝혔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약 55조 원의 투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중국 기업은 아예 노골적인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거기에 연구개발(R&D)을 담당할 석박사급 인재가 매년 쏟아져나오면서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점차 줄여 나가고 있다. 한국이 지금의 배터리 경쟁력에 취해 있다면 언제든지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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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흔들면 너무 쉽게 흔들리는 소유분산기업

    지난해 12월 개각을 앞둔 때였다. 언론에서 새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하마평을 쏟아냈다. 당시 특정인의 비리를 고발하는 제보를 몇 차례 받았다. ‘카더라’ 수준의 내용도 있었고, 국정감사 때 언급됐던 내용의 재탕도 있었다. 모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경쟁자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객관적인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고, 제보하는 의도도 너무나 뻔했기에 각종 제보는 참고만 했다. 소유 지분이 잘게 분산돼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소유분산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뽑을 때도 온갖 제보가 밀려든다. 현재 새 사장을 뽑고 있는 KT&G는 그런 제보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사내 깊숙한 자료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필시 특정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자료를 흘리고 있을 것이다. 10년이나 지난 과거의 일, 아직 조사 중이어서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 등까지 기사화되면서 KT&G의 기업 이미지는 추락하고 있다. 소유분산기업은 정부 입김에도 강하게 흔들린다. 2022년 말 금융 당국은 우리금융지주 회장 선거를 앞두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당시 회장의 퇴진을 공공연히 요구했다. KT도 작년 새 사장을 선임하기 전에 9개월 동안 정부와 여당의 노골적인 간섭을 받았다. 새로 선정된 사장이 여당의 집중포화를 맞아 자진 사퇴할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KT는 5개월간 수장 없는 권력 공백기를 보냈다. “흔들기만 하지 말고 차라리 누구를 선임하라고 지시를 줬으면 좋겠다”고 KT 내부 인사가 하소연할 정도로 KT는 혼란스러웠다. 물론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에 문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대표의 장기 집권 문제는 심각하다. 일단 대표로 선임되면 사외이사를 포섭하고 우호 주주를 확보하며 ‘참호’를 판다. 경쟁자를 축출하면서 ‘진지’를 공고히 만든다. 참호와 진지를 만들어 놓으면 수차례 연임을 통해 장기 집권을 할 수 있다. 감시와 견제가 사라지고 보신과 자리 나누기가 횡행해지니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기 일쑤다. 그런 문제점을 바로잡겠다고 새 대표 선임 때마다 소유분산기업을 마구 흔들어선 곤란하다. 그 기업은 내부 총질, 외부 입김을 막느라 온 에너지를 다 소비해야 한다. 얼마나 소모적인가. 흔들리지 않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해법은 기업 내부에 있다. 우선 사내 경영 승계 프로그램을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별 외풍 없이 새 회장을 선출한 KB금융지주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KB금융지주는 부회장 순환 보직 시스템을 정착시켜 그들의 경쟁력을 주기적으로 평가한다. 회장 후보군이 사실상 정해져 있고 지속적으로 평가를 받으니 의외의 인물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여지가 적다. 삼성그룹 CEO들은 자신의 후계자를 정하고 육성하는 게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과거는 CEO 레벨의 업무였지만 지금은 팀장급까지 내려왔다. 또 사외이사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보통 경영진으로 구성되는 사내이사와 달리 사외이사는 회사 업무에 종사하지 않고 주주들을 대신해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경영진의 허수아비가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사외이사를 만들려면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높은 전문성을 가진 이를 선임하며,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 사외이사가 개혁하겠다고 기업을 흔든다면, 그건 흑심을 품은 외부인이 기업을 흔드는 것과는 천지 차이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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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30조짜리 수출 무산되면 누가 책임지나

    오래된 과거 이야기 한 토막부터. 2009년 경기 과천의 정부 부처를 출입할 때였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경쟁국 기업이 입찰에서 뒷돈을 건넨다. 마지막 단계에서 수출을 번번이 놓친다. 카이(KAI·한국항공우주산업)를 민영화하든가 해야지…”라고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시 KAI는 8조 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사실상 공기업이었다. 정부는 KAI가 개발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수출하려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수출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특히 경쟁사들은 번번이 검은돈을 뿌렸다. 설령 KAI가 민영화되더라도 입찰 때 검은돈으로 로비를 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T-50 수출에 대한 당국자의 강한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은돈 말고 합법적으로 지원하는 길도 많다. 그중 하나는 구매국에 돈을 빌려 주는 것이다. 세계 방위산업 시장의 가장 큰손, 미국도 방위장비 수출에서 대출의 중요성을 절감한 때가 있었다. 2000년 전후 헝가리, 체코, 폴란드가 잇달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면서 새 전투기를 구매했다. 미국 기업 등이 입찰에 참가했다. 헝가리는 2001년 9월 미국 대신 스웨덴 기업과 전투기 14기에 대한 구매 계약을 맺었다. 미국 정부는 1억 달러(약 1300억 원) 차관을 약속했지만, 스웨덴은 구매 비용 100%에 대한 금융지원을 해주겠다고 공약했다. 같은 해 12월 체코도 미국 대신 스웨덴 기업과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폴란드 입찰에서 전투기 구매 금액 100% 대출을 약속했다. 결국 미국 기업은 2002년 10월 폴란드로부터 F-16 전투기 48기 계약을 따내게 된다. 미국 정부는 지금도 대규모 금융지원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수출입은행 등을 통해 금융지원을 한다. 폴란드가 2022년 8월 KAI의 FA-50 전투기 등 17조 원어치를 구매하는 1차 계약을 맺었을 때 수은은 6조 원을 폴란드 정부에 빌려줬다. 폴란드 정부는 그 후로도 추가 계약을 통해 30조 원 이상의 한국산 무기를 구매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수은법상 수은은 동일한 대출자에 대해 자기자본(18조 원)의 40%(7조2000억 원) 이상을 대출할 수 없다. 폴란드와의 1차 계약에서 6조 원을 대출해 줬기에 추가 대출을 해 줄 여력이 거의 없는 것이다. 수은의 대출이 막히자 한국 방산 기업들은 작년에 끝냈어야 할 2차 계약을 아직도 제대로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다. 해결책은 있다. 수은법을 개정해 수은의 자본금을 늘리면 된다. 이미 여야는 현재 15조 원인 수은의 자본금을 25조∼35조 원으로 상향하는 법안을 여럿 제출했다. 자본금을 늘려 놓으면 향후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건설 사업,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사업 등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11월 국회 기획재정위 경제재정소위에 개정안이 올라온 뒤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4월 총선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새해 들어 동유럽, 중동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에 승자는 없다지만 방위산업은 예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상반기 세계 주요 방산 기업 15곳의 수주액이 7640억 달러로 2022년 연간 수주액(7776억 달러)과 맞먹는다고 보도했다. 폴란드와 예정된 추가 계약액 약 30조 원은 저출생 극복을 위해 매년 투입하는 재정 혹은 작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과 동일한 규모다. 그 돈을 이대로 날릴 것인가.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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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승객의 협조가 부린 마법

    일본 도쿄로 여행 가면 ‘7분간의 신칸센 극장’을 볼 수 있다. 고속철 신칸센이 도쿄역으로 들어오면 12분간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한다. 청소 용역업체는 승객들의 승하차 시간 5분을 뺀 7분 동안 청소를 한다. 그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보여 신칸센 극장이란 별명이 붙었다. 1개 팀이 22명으로 이뤄져 있는데, 한 사람이 약 100석의 열차 한 칸을 맡는다. 좌석과 앞주머니의 쓰레기를 바닥에 떨어뜨려 쓸고, 좌석을 출발 방향으로 돌리며 등받이 테이블을 펴 헝겊으로 닦는다. 창틀 오물도 제거하고 승객 분실물까지 체크하며 더러워진 좌석 커버도 교체한다. 작업량이 꽤 많은데, 어떻게 7분 만에 끝낼 수 있을까. 도쿄 특파원 시절 신칸센을 탈 때마다 꼼꼼하게 지켜봤더니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대부분 승객들이 자리에 쓰레기를 남기지 않았다. 하차하러 일어서면 의자 등받이를 예외 없이 제자리로 맞췄다. 청소부들이 마법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승객’이란 훌륭한 조연 덕분에 가능했다. 2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일어난 여객기 사고를 보면서 신칸센 극장이 떠올랐다. 사고기에 탔던 승객이 찍은 영상에 긴박했던 당시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일본항공(JAL) 여객기가 착륙 도중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충돌한 후 3분 정도 지나 멈춰 섰다. 기내 연기가 가득 찼고, 여기저기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승무원은 “코와 입을 막고 몸을 낮추세요”, “괜찮아. 침착해 주세요”라고 고함치듯 말했다. 그때 승객들도 절규하듯 고함을 질렀다. “빨리 나가게 해 주세요”, “문을 열면 되잖아요”…. “뭐하는 거야”라며 화를 내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승객들은 기본적으로 승무원의 지시에 따랐다. 실제로 입과 코를 막고 몸을 숙였다. 간혹 일어서서 바깥 동정을 살피는 사람도 보였지만 극소수였다. 그 덕분에 생사 갈림길에서 생(生)으로 가는 길인 ‘통로’가 뚫려 있었다. 먼저 살겠다고 일어나 통로로 몰렸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충돌 후 8분이 지난 시점에 승객들의 탈출이 시작했다.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오는 승객을 살펴봤더니 대부분 빈손이었다. 가방을 든 사람은 1명이었다. “(선반에서) 짐을 내리지 말아 달라”라는 승무원의 지시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너도나도 짐을 챙기다간 역시 통로가 막혔거나 슬라이드를 내려올 때 방해가 돼 탈출이 지연된다. 여객기가 전소하는 대형 사고 속에서 탑승자 379명 전원이 무사했던 기적은 승객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비자들 역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부정확한 사실 혹은 악의적 잣대로 기업을 공격하는 내용을 인터넷 댓글로 달면 기업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 35조3480억 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대로 소비자가 기업의 선한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다. 2020년 11월 전남 영광 중앙초등학교 6학년 2반 학생들은 우유 제품에 붙어 있던 200개 빨대를 뜯어내 손 편지 29통과 함께 매일유업으로 보냈다. 편지 내용은 ‘빨대가 바다 생물들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매일유업은 곧바로 자사 우유 제품 포장지에 붙인 빨대를 퇴출시켰다.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이고 있다. 지난해 말 컵커피 제품의 플라스틱 뚜껑과 빨대도 없앴다. 초등학생들의 행동은 기업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게끔 만드는 마법의 단초가 된 셈이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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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조5600억 원 vs 8960억 원 [오늘과 내일/박형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수조 원짜리 공장을 지을 장소를 찾는다고 치자. 대형 고객이 가까운 곳, 원자재를 구하기 쉬운 곳, 인건비가 싼 곳, 투자비를 줄일 수 있는 곳….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다. 만약 투자비를 줄이는 데 방점을 찍는다면 ‘일본’만 한 곳이 없다. 대만 TSMC는 현재 일본 구마모토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공장을 짓고 있는데 총투자비용 11조2000억 원 중 4조5600억 원을 일본 정부로부터 보조받았다. 만약 한국에 공장을 짓는다면 혜택은 어느 정도일까. 작년 3월 온갖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 지원책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에 기초한 혜택을 뽑아 봤다. 그 효과를 반감시키는 최저한세 영향은 제외했다. 작년에 공장을 지었다면 혜택을 100% 누려 2조8000억 원을 세액공제로 돌려받을 수 있다. 올해 짓는다면 투자증가분 추가세액공제 10%가 사라져 혜택은 1조6800억 원으로 줄어든다. 만약 내년에 지으면 K칩스법 일몰로 8960억 원 세액공제밖에 없다. 4조5600억 원과 8960억 원. 너무나 큰 차이다. 미국, 대만, 유럽 주요국 등도 자국으로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일본만큼 강력하진 않다. 한국과 일본에 똑같은 파운드리 공장을 지어 10년간 운영할 경우 일본에서 만든 제품이 한국보다 원가경쟁력을 10% 이상 가진다는 게 반도체 업계의 분석이다. 일본산 제품이 그만큼 싸지는 셈이다. 보조금이 부린 마법이다. 일본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2021년 3월 도쿄에서 열린 제1회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 검토회의를 눈여겨봐야 한다. 경제산업성 홈페이지에 게재된 회의 요약본 첫 부분은 이렇다. “일본 반도체 산업의 재부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반도체 산업에 대한 큰 위기감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다. 기회는 있지만, 지금부터 힘을 쏟지 않으면 힘들다.” 전체 자료를 읽어 보면 마치 반성문을 보는 것 같다. 1980년대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 반도체 산업이 지금은 존재감 없이 무너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자료에 적힌 ‘일본의 나락’이란 소제목도 꽤 자극적이다. 일본 국회는 크게 각성한 정부를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2021년 5월 일본의 집권 자민당 의원 100명이 모여 만든 ‘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이 핵심 축이다. 의원연맹은 “반도체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면서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같은 해 6월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발표했다. 거기엔 3단계 전략이 나온다. ①일본 내 첨단 반도체 생산 기반 확보 ②차세대 반도체 기술 확보 ③반도체를 활용한 미래 산업 주도 순이다. 발표 후 3년도 안 돼 일본은 파운드리(TSMC, PSMC), D램(마이크론), 후공정(TSMC, 인텔) 분야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공장을 유치했다. 낸드플래시(키옥시아), 자동차용 반도체(르네사스), 이미지 센서(소니) 분야에선 일본 토종 기업이 힘을 쓰고 있으니 일본은 사실상 모든 종류의 반도체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앞으로 ②, ③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한국은 ‘메모리 강국’이란 현 위치에 도취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일본이 한국 기업에도 공장 유치 제안을 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 이윤을 따라 기업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기에 애국심만으로 붙잡기에는 한계가 있다. 10년쯤 지나면 일본이 썼던 반도체 반성문을 한국이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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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아직은 챗GPT가 미덥지 않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매년 과학계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연구자 10인을 선정한다. 올해 ‘네이처 10’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챗봇 ‘챗GPT’도 이름을 올렸다. 사람이 아닌 기술이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챗GPT는 올 한 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올해 봄 동아일보 주최 아카데미에서 ‘질문하는 인간, 답하는 AI’ 수업을 들으면서 챗GPT를 경험한 적이 있다. 강사가 ‘밤까지 공부하는 수강생들을 위한 격려사를 써 줘’라고 입력창에 적었다. “저녁이 깊어지는 시간, 여러분이 밤에도 열정적으로 공부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동적입니다….” 원고지 3장 분량의 격려사가 1초 만에 뚝딱 만들어졌다. 주최 측이 그 원고를 수정 없이 사용해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강사는 “명령어를 자세히 넣을수록 완성도가 더 높아진다”고 했다. 예를 들어 챗GPT에 대표이사의 신년사 2년 치를 입력한 뒤 “참고해 내년 신년사를 써달라”고 하면 대표이사의 생각까지 반영한 글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 수업에서 그림도 만들어봤다. 명령어만 입력하면 되기에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만든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가족이 식사하는 그림을 만들었는데, 배경을 미국 그랜드캐니언이나 프랑스 에펠탑 등으로 손쉽게 바꿀 수 있었다. “피카소 화풍으로 바꿔 달라”고 했더니 그림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챗GPT의 영향력은 각종 포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은행의 변화상을 짚은 베스트셀러 ‘뱅크 4.0’의 저자 브렛 킹은 5월 말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앞으로 은행은 챗GPT를 활용하는 곳과 활용하지 않는 곳으로 나뉠 것이다. 활용하지 않으면 그만큼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달 초 열린 동아비즈니스포럼에 참가한 아제이 아그라왈 토론토대 로트먼경영대학원 석좌교수도 “AI 선발주자에게 모든 기회가 집중될 것이기에 선발주자를 관망하는 후발주자는 영구적으로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만능처럼 보이는 챗GPT가 기자를 대신할 수도 있을까.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 부진이 핀란드 경제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칼럼을 써 줘’라고 챗GPT에 입력해 봤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일부 팩트는 틀렸고, 휴대전화 사업 부진 이유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으며, 결론도 ‘다양한 신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수준에 그쳤다. 챗GPT 역할을 도우미 정도로 낮춰 봤다.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을 2000년부터 올해까지 뽑아줄 것을 지시하자 이번에는 깔끔하게 데이터가 제시됐다. 교차검증을 위해 또 다른 생성형 AI 플랫폼 ‘뤼튼’에도 똑같이 명령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서로 달랐다. 챗GPT와 뤼튼에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기준으로 실질경제성장률을 뽑아 달라’고 더 구체적으로 입력했지만 여전히 양측 숫자는 달랐다. 챗GPT에 대한 매력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11월 30일로 챗GPT가 출시된 지 1년이 됐다. 챗GPT는 산업계의 일하는 방식을 바꿔 놓고 있고, 음악 미술 출판 등 창작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척수병과 관련된 진단에서 겨우 4% 정확도(일본 도쿄의과치과대 연구진 연구 결과)를 보일 정도로 허술하기도 하다. 핀란드 경제성장률 사례처럼 진짜인지 허위인지 모를 정보를 버젓이 내놓기도 한다. 챗GPT를 혹시라도 요술방망이로 인식하면 곤란하다. 개인이나 기업이 챗GPT를 이용한다면, 챗GPT를 통해 처리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작업부터 하길 조언한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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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눈에 보이지 않는 모래주머니의 무게

    일본에 기업 주재원으로 파견 가면 일본 도착 첫날에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개통한다. 그래야 집을 구할 수 있고, 은행 통장을 만들 수 있다. 휴대전화가 제2의 신분증인 셈이다. 가족 3명이 휴대전화를 개통하면 한 달 통신요금은 10만 원을 훌쩍 넘는다. 부담스럽다. 그렇기에 정부는 공공연히 이동통신사에 통신비를 낮추도록 압박했다. 일본 이동통신 시장은 NTT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 등 3개 회사가 삼등분하고 있는데, 정부가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지속적으로 유도했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상황이 똑같다. 하지만 2019년 일본 인터넷 전자상거래 업체인 ‘라쿠텐’이 이동통신 시장에 뛰어들면서 한국과 상황이 달라졌다. 알뜰폰 사업을 하던 라쿠텐이 자체 통신망을 구축해 명실상부한 제4 이동통신사가 된 것이다. 2005년 소프트뱅크에 이어 14년 만에 새 사업자가 생겨났다. 사실 이동통신 시장에서 신규 사업자가 탄생하기는 매우 어렵다.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유지·보수를 위한 비용도 꾸준히 들어간다. 하지만 라쿠텐은 “2025년까지 6000억 엔(약 5조3000억 원)을 투자해 기지국 등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하며 과감하게 도전장을 냈다. 4년이 지난 현재 라쿠텐은 어떤 상태일까. 꾸준히 흑자를 내며 성장하던 라쿠텐은 모바일 사업 진출 이듬해인 2020년에 곧바로 적자로 돌아섰다. 그 이후 매년 적자 폭이 커지면서 지난해에는 3716억 엔 영업적자를 보였다. 특히 4615억 엔이란 막대한 영업적자를 낸 모바일 부문이 전자상거래, 금융 등 다른 부문의 영업이익을 깎아먹었다. 그만큼 이동통신 신규 사업자가 짊어져야 할 짐은 무겁다. 다만 새 사업자가 생기면 소비자는 즐겁다. 라쿠텐이 1GB까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0엔 플랜’ 등 파격 상품을 잇달아 내놨기에 소비자들은 통신비를 줄일 수 있었다. 경쟁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유사한 상품을 내놨다. 라쿠텐 출현 이후 1위 사업자인 NTT도코모의 시장 점유율이 줄었고 전체 경쟁은 촉진됐다. 한국 정부도 분명 이 같은 효과를 기대하며 최근 제4 이통사 모집에 나섰을 것이다. 정부는 2010년부터 7차례에 걸쳐 제4 이통사 도입을 추진했지만 예외 없이 실패했기에 이번에는 혜택을 대폭 늘렸다. 주파수 가격을 낮췄고, 금융 및 세제 혜택도 제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위 당국자는 사석에서 “특혜 시비가 불거지더라도 과감하게 혜택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사업자 모집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부가 재무적 부담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모래주머니를 없애주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 사업자가 초창기 막대한 출혈을 감내한 이후 통신업 특유의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치자. 그때부터 소위 ‘횡재세’ 걱정을 해야 할지 모른다. 현 야당이 은행 등에 횡재세를 매기겠다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향후 정권이 바뀌면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도 있다.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할 당시 엄청난 지출을 감수했다는 사실은 어느새 잊혀지고, 당장 현 시점에서 손쉽게 이익을 내고 있다는 점만 눈에 보일 수 있다. 일이 되게끔 만들기 위해 특혜를 언급한 고위 공무원까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이런 모래주머니까지 달고 달려야 하는데 한국에서 누가 이동통신 사업을 하겠다고 손을 들겠는가.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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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더 이상 통하지 않는 반도체 ‘리스크 테이킹’ 효과

    “혁신을 주도하면 리더가 되고, 혁신을 받아들이면 생존자가 되지만, 혁신을 거부하면 죽음을 맞는다. 많은 자리에서 저는 혁신이야말로 위기를 돌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오늘은 혁신을 ‘리스크 테이킹’이란 단어로 바꾸겠다.” ‘미스터 반도체’라 불리며 삼성전자를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기업으로 도약시킨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해 가을학기 연세대 강의에서 이처럼 말했다. 7주 강의를 관통하는 주제는 혁신이었는데, 그는 첫 강의에서 ‘리스크 테이킹’을 혁신만큼이나 중요하게 강조했다. 학생들에게 “리스크 테이킹을 하지 않는 화석은 되지 말라”고도 조언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 된 것은 그의 말처럼 리스크 테이킹이란 모험을 감행했고 경쟁사를 압도하는 좋은 결과를 얻었던 영향이 크다.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삼성전자는 이듬해 세계 3번째로 64Kb(킬로비트) D램 개발에 성공했다. 당시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기업들은 견제에 나섰다. ‘후발주자 시장 진입→선행주자의 단가 인하→자금 압박으로 후발주자 퇴출→선행주자의 가격 원위치’ 형태의 치킨게임을 벌인 것이다. 1980년대 중반 D램 가격은 연일 하락했다. 1985년 64Kb D램의 생산원가는 1.7달러인데, 판매 가격은 1.3달러까지 떨어졌다. 팔수록 손해였기에 미국 인텔은 1985년 D램 사업을 포기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는 대규모 해고를 진행했다. 삼성전자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오히려 차세대 제품인 256Kb D램의 공급량을 늘렸고, 그다음 세대(1Mb D램)의 선행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역공법을 취했다. 이 전략은 1987년 들어 반도체 사이클이 다시 호황으로 접어들고 1Mb D램이 주력이 됐을 때 삼성전자를 기사회생시킨,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됐다. 만약 반도체 사이클이 몇 년 늦게 호황기로 바뀌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삼성전자란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위험을 감수한 결과는 달콤하기도 하지만 때론 치명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리스크 테이킹을 해도 위험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적어도 반도체 산업에선 그렇다. 지난해 3분기부터 다시 반도체 침체기가 시작돼 D램 범용제품(PC용 8Gb 2133MHz)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올 8월 1.3달러까지 내려갔다. 자금력이 약한 일부 반도체 기업은 쓰러질 법하다. 하지만 이번 반도체 불황기 때 쓰러진 반도체 기업은 적어도 메이저 업체 중에는 없다. 각국 정부가 반도체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보며 전력으로 후방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국회도 올해 3월 소위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을 국회 통과시키며 반도체 산업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 일본, 대만 등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본보가 한국과 대만에 각각 5000억 원씩 첨단 반도체 설비 투자를 했다고 가정하고 세금을 계산했더니 한국에선 대만보다 한 해 850억 원을 더 내야 했다. 게다가 K칩스법엔 올해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조항이 많다. 내년이면 대만보다 기업 여건이 더 안 좋아지는 것이다. 10월 D램 범용제품 평균가격이 전달 대비 15% 이상 오르면서 반도체 불황의 끝이 보이고 있다. 불황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단행한 의사결정의 성적표도 곧 나올 것이다. 기업이 홀로 분투해 얻은 성적표와 정부와 기업이 2인 3각으로 달려 이룩한 성적표의 점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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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中 리오프닝만 바라보면 안 되는 이유

    중견기업 A사는 각종 소비재에 사용되는 첨단소재를 만들고 있다. 설립한 지 50년 이상 됐고, 꾸준히 흑자를 내는 알짜 기업이다. 하지만 10년 남짓 실적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 올해도 흑자 규모가 작년보다 줄어 연초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최근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실적 하락 원인을 분석했다. 답은 ‘저출산’과 ‘중국 경제 위축’으로 모아졌다. 두 가지 이유로 최종 소비재 판매가 줄어드니, 그 원재료인 A사의 첨단소재도 덜 팔리는 것이다. A사 임원은 “저출산은 단번에 해결하기 힘들지만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본격화는 시간문제다. 조만간 회사 실적은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기자는 A사 임원이 바라는 것처럼 상황이 흘러가지 않으리라고 본다. 중국이 과거의 중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 성장은 분명 한국에 축복이었다. 1978년 덩샤오핑이 실권을 잡은 후 중국은 개혁개방을 추진했고 해외 자본을 받아들였다. 1990년대 이후 10% 내외 경제성장률을 보였고, 그런 초고속 성장은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그 덕분에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중간재 수출을 꾸준히 늘렸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입·수출(무역의존도) 비율은 80∼110%에 이른다. 지난해 수입을 제외한 수출만 놓고 봐도 GDP 대비 44% 수준이니 폭발하는 대중 수출이 얼마나 한국의 성장률을 끌어올렸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은 한국 경제에 큰 그림자도 드리웠다. 1차 충격은 한중 국교를 수교했고, 한국 정부가 해외투자 승인 절차를 대폭 완화한 1992년 무렵에 왔다. 한국 기업들이 저임금의 중국으로 공장을 잇달아 옮겼다. 어느새 노동집약적인 섬유, 신발, 가죽 공장이 한국에서 사라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계기가 된 2차 충격은 현 한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중국 역시 해외 의존도가 높았기에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세계 경제 변화에 취약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은 자원 및 노동력 투입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첨단산업 등 혁신주도형 경제로 전환을 시도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중국은 이를 ‘신창타이(新常態·New Normal)’라 부른다. 신창타이를 통해 부품소재 경쟁력을 강화했고, 첨단 제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렸으며 중간재를 국산화했다. 지난해 중국은 자연과학 연구 영향력에서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로 올라섰다. 그런 과학기술 역량이 점차 산업계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오랜 기간을 들여 기술을 습득했지만, 중국은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기술을 쌓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리오프닝이 본격화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대중 수출 활황은 쉽지 않다. 그럼 A사는 앞으로 쓰러질 일만 남은 것일까. 그건 아니다. 대만 전자제품 회사인 에이서의 설립자 스탠 스가 ①생산 전 서비스 ②생산 ③생산 후 서비스로 나눠 그 부가가치를 따져봤더니, ②가 가장 낮고 ①과 ③이 높았다. 이 현상은 갈수록 강해졌다. ①∼③을 선으로 연결하면 웃는 모양의 곡선이 그려진다. 소위 ‘스마일 커브’다. A사는 이제 생산에 주력할 게 아니라 생산 전 서비스인 R&D, 디자인, 서비스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 혹은 생산 후 서비스에 해당하는 유통, 물류, 마케팅 등에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세계의 공장’ 중국에 기댈 게 아니라 이별해야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3-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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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괴짜 기초과학 연구도 지원해야 하는 이유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는 ‘오스미 기초과학창성재단’이란 공익재단이 있다. 홈페이지에 밝힌 연구비 지원 기준은 3가지. 선견지명과 독창성이 있는 기초과학, 국가 지원을 받기 힘든 기초과학, 정년 등으로 인해 계속 연구하기 힘든 기초과학이다. 즉, 돈 안 되는 괴짜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 재단을 2018년에 설립한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를 지난해 1월 인터뷰하며 이유를 물었다. “재미있는 연구를 하지만 연구비가 부족한 사람을 돕는다. 도전하는 이를 지원하자는 취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부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유망 분야를 선택해 지원한다. 하지만 과학은 1000만 엔을 투입했다고 반드시 1000만 엔의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정부 지원책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오스미 교수는 효모 세포를 이용한 ‘오토퍼지(Autophagy·자가 포식)’ 연구로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단독 수상한 일본 생물학의 권위자다. 도쿄특파원 시절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 3명을 인터뷰했는데, 그들의 주장이 묘하게 일맥상통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과가 나올 것 같으니 연구비를 지원하자’는 식으로 과학을 육성할 수 없다. 과학에선 실패의 경험도 쌓이면 지식이 된다. 결코 낭비가 아니다. 노벨상 수상 연구도 의외로 ‘우연한 발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곧바로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등 인류의 기초 지식을 풍부하게 해준다. 한 국가가 가진 역량의 종합판이 기초과학이다. 실용화까지 100년이 걸릴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셋째, 일본이 노벨상 강국이 된 것은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폐허에서 일어서려면 과학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덕분이다. 당시 시작한 연구가 지금의 노벨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을 보면서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과 진행했던 과거 인터뷰를 떠올렸다. 정부는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16.6% 줄였다. 기초연구 예산의 경우 6.2% 삭감했다. 과학계 연구비 카르텔을 깨부수고 핵심 전략기술을 중점 육성하겠다는 정부 설명에 동의한다. 하지만 예산 절감이라는 이익보다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악영향이 더 크다고 본다. 오스미 교수는 1970년대부터 효모 연구를 파고들었다. 당시 다른 과학자들은 효모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오토퍼지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암, 알츠하이머병 같은 노인성 질환을 해결해 줄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을 약 50년 연구했더니 이제 실용적인 성과를 기대할 만한 단계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와 인터뷰하며 “정부가 집중 투자하는 유망 과학 분야와 오스미 기초과학창성재단이 지원하는 새로운 과학 분야 중 어느 측이 노벨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높으냐”며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당시 신문에 소개하지 않았던 답을 그대로 옮긴다. “매우 어려운 문제다. 내 사례를 보면 오토퍼지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데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새 연구를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효과가 있을 것 같으니 지원한다’고 하면 과학은 육성되지 않는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기초연구까지 지원하는 게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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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한국에서 제2 ASML이 탄생하려면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은 미세공정에서 판가름 난다. 삼성전자는 현재 3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으로 반도체를 양산해 내고 있다. 나노미터는 반도체 회로의 선폭을 뜻하는데, 선폭이 좁을수록 같은 크기의 웨이퍼에서 더 많은 칩을 생산할 수 있다. 초미세공정을 위해선 거기에 맞는 장비도 갖춰야 한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제조기업인 ASML은 1984년에 설립됐다. 당시 반도체 공정은 400∼800나노 수준이었다. 기업들은 더 미세하게 가공하기 위해 전자선, 극자외선(EUV) 등을 연구했다. ASML은 여러 기술 중 EUV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보고, 1997년 EUV 장비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미 1980년대 중반 일본 통신기업 NTT의 연구원이었던 기노시타 히로오(木下博雄·현 효고현립대 명예교수)가 EUV 기술을 처음 실현해 낸 것을 감안하면 ASML은 후발주자였다.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각종 기술적 난제로 10년이 지나도록 성과를 내지 못했다. “EUV 장비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개발을 포기해야 한다” 등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ASML은 2010년 결국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180t 규모에 10만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간 EUV 노광(露光) 장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시제품은 고객사인 삼성전자로 보내졌다. 단점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데 9년이 더 걸렸다. 삼성전자는 2019년에서야 EUV 기반 7나노 반도체 제품을 처음 양산했다. ASML이 첫 연구를 시작한 지 22년 만이었다. 현재 ASML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노광 장비를 만들고 있다. 초미세 반도체 가공을 위해선 EUV 노광 장비를 사용해야 하기에 전 세계에서 주문이 몰리고 있다. 한 해 40∼60개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항상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 ASML은 장비를 만들어 파는 소위 ‘을’이지만, 실제로는 ‘슈퍼 갑’인 셈이다. ASML은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을까. ASML 홈페이지에 있는 EUV 개발 역사 자료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강조했다. 예를 들면 독일 광학기업 자이스. EUV 노광 장비 내부엔 EUV를 지그재그로 반사시키는 여러 특수 거울이 있다. 자이스는 ASML의 요구 수준에 맞춰 반사거울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우주를 관찰하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에 사용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정밀도를 갖췄다. ASML과 자이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20년 이상 프로젝트를 같이 했고, 특허를 공동 출원하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의 갑을 관계 기업 문화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저서 ‘반도체 삼국지’에서 네덜란드의 산학연 클러스트를 주목했다. ASML도 연구중심대학으로부터 긴밀한 도움을 받았다. 기초 단계부터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에서 산학연이 유기적으로 협업했다. 이는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국토와 3분의 1 수준 인구를 가진 네덜란드가 제조업 강국이 된 비결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페터르 베닝크 ASML 회장(CEO)을 만나 한국 투자 확대를 당부했다.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감안한다면 한국도 초고성능 반도체 장비 제조 역량을 보유하는 게 더 낫다. 20년 이상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기업 환경, 믿고 협업할 수 있는 파트너, 탄탄한 산학연 협력 등 ASML 사례가 보여준 것들을 갖출 수 있느냐에 달렸다.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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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형준]또다시 시작된 ‘슈퍼 엔저’의 공습

    퀴즈 하나.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2.3%를 기록했던 1987년, 수출 증가율이 30.3%였던 1995년, 제조업 성장률이 7.3%를 보였던 2011년 등 한국 경제가 잘나갔던 3개 연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엔화 강세’다. 198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호황을 보일 때는 대체로 엔화 강세라는 훈풍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산업구조가 비슷해 국제 시장에서 경쟁하는 제품이 많은데, 엔화 강세는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렸다. 한국 수출 기업으로선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엔화 강세가 끝나면 험난한 고생길이 펼쳐졌다. 1996년 엔화 약세가 시작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수출이 가파르게 줄었다. 그해 경상수지 적자는 사상 최고 수준인 230억 달러에 이르렀다. 경제가 빠르게 식었고, 기업들의 부채 부담은 커지면서 한보철강과 같은 대기업이 하나둘 쓰러졌다. 당시 엔화 약세는 결국 외환위기를 초래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최근 엔화 약세가 다시 시작됐기 때문이다. 올해 초 100엔의 가치는 940∼1000원 정도였는데, 지난달 900원대 초반으로 급락하더니 이달 초 800원대까지 떨어지는 ‘슈퍼 엔저’ 현상을 보였다. 산업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5% 하락하면 그해 한국의 수출액은 1.1∼3.0% 감소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다만 현재 한국 기업의 비명 소리가 그리 크게 들리진 않는다. “과거보다 일본과 경합하는 정도가 줄었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 가격은 오히려 싸졌다” 등 별 영향 없다는 반응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반도체 기업. 1980년대 반도체 왕국을 이뤘던 일본은 그 후 투자에 소홀했고 지금은 반도체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이 사라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D램을 수출할 때 일본 제품과 맞붙지 않으니 엔화 가치에 영향을 받을 이유가 없다. 과거 엔저의 직격탄을 맞았던 자동차 업종도 여유 있는 모습이다. 한일 자동차 기업들이 직접적으로 경합하는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기아는 올해 상반기 전년 대비 17% 증가하는 판매 실적을 올렸지만 같은 기간 도요타는 0.7% 감소했다. 한국차의 상품성과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고, 전기차 분야에서 한국이 월등히 앞섰기에 나올 수 있는 결과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엔저 영향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기업인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엔저가 초래할 불확실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환 위험 대비 능력이 떨어지는 수출 중소기업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일본에 수출해 엔화로 대금을 받는 중소기업이라면 이익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철강, 화학, 전자, 부품 등 일본과의 경쟁이 심한 분야는 엔저가 장기화될수록 가격경쟁력에 밀리게 된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지난달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끈기 있게 금융 완화를 지속하겠다”고 말한 것을 볼 때 엔저 현상이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예상치 못한 충격이 2, 3년 후에 올 가능성도 있다. 전례를 보면 일본 기업들은 엔저 때 수출 물량을 늘려 시장점유율을 키우기보다 이익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쌓인 현금으로 연구개발(R&D)과 제품 혁신에 투자했다. 엔저를 활용해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다. 2, 3년 후 그 성과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야말로 한국 기업에 진정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 20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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