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풀어줄 수박 한 통 [오늘과 내일/박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7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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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배달 관련 비용에 분노하는 외식업주
플랫폼 기업은 해명보다 상생안 마련할 때

박형준 산업1부장
박형준 산업1부장
딸이 대학 입시를 끝내고 최근 일본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밤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했기에 마중을 나갔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일본 여행기를 조잘거리더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은 다 좋았는데 딱 한 가지가 아쉬웠다. 배달음식을 못 먹는다는 것이다. 빨리 집에 가서 배달음식 주문해야지.” 그때 시간이 오후 11시 30분이었다.

도쿄 특파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일본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반면 한국에선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배달음식을 먹는다. 배달의민족(배민), 쿠팡이츠,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을 이용하면 따뜻한 음식을 너무나 손쉽게 집에서 맛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2조7000억 원 규모였던 음식 배달 온라인 서비스는 작년 26조4000억 원으로 약 10배 커졌다. 비례해 ‘라이더’라 불리는 배달원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자영업자도 이득을 누렸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면 굳이 유동 인구가 많은 1층에 식당을 낼 필요가 없기에 초기 투자비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이용자 편리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딸이 자정 가까운 시간에 문 연 음식점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게끔 만들어줬다.

그런 배달음식 시장이 요즘 심상치 않다.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의 분노가 배달료로 쏠리는 분위기다. 특히 배달음식 업계 1위이자 올해 들어 정률제 수수료 기반의 ‘배민1플러스’ 상품을 내놓은 배민에 불만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 한 치킨집에서 치킨 한 마리와 음료를 합쳐 2만5000원을 받는다고 치자. 식당에서 팔면 주인은 고스란히 2만5000원을 손에 쥘 수 있다. 배민1플러스를 통해 주문을 받으면 중개이용 수수료(음식값의 6.8%·1700원), 배달비(3200원), 카드 결제수수료(750원), 부가가치세(565원) 등 6215원이 빠져나간다. 주인 몫이 줄어드는 데다 대폭 오른 식자재 비용, 인건비, 상가 임대료 등까지 감안하면 거의 남는 게 없다. 그렇기에 주인은 정액제가 아닌 정률제의 수수료가 부담스럽고, 과거보다 높아진 배달비에 분노한다.

하지만 배민 측도 할 말이 있다. 정률제 수수료 6.8%는 국내 경쟁사뿐 아니라 해외 동종 업계와 비교해도 가장 낮다. 음식점 주인들은 정액제 상품을 고를 수도 있다. 배달비 3200원은 배민에 귀속되는 게 아니라 대부분 라이더에게 돌아간다. 소비자들은 배달 상황을 휴대전화로 파악할 수 있어 배민이 직접 운영하는 배달 시스템을 더 원하는 측면도 있다.

양측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갈등을 줄일 수 있을까. 과거 동아일보 한 선배가 칼럼에 소개했던 층간소음 방지책을 참고로 소개한다. 그 선배는 층간소음에 고통스러우면 수박 한 통을 사서 위층에 전하면서 “소음에 조금만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하라고 조언했다. 위층에 가서 항의하거나, 관리사무실에 전화해 대처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 측면에서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향후 7년간 외식업주 경영 지원 등에 2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최근 발표한 것은 인상 깊다. 영업이익 약 4200억 원인 회사로선 적은 돈이 아니다. 배민이 수박 한 통을 자영업자에게 내민 셈이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를 보면 “정액제 상품에 가입해도 홍보 노출을 많이 해 달라”, “음식점 자체 배달 상품을 더 크게 앱에 노출해 달라” 등 불만 글들이 보인다. 그런 점까지 배려한다면 배민은 양손에 수박을 들고 자영업자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배달#외식업주#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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