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서령]오늘 꽃씨를 받는 뜻은

  • 입력 2005년 11월 1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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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으내 길가에 핀 꽃 한 그루를 눈여겨봐 왔다. 풀꽃이지만 그루라고 불러야 할 만큼 기세가 장했다. 심고 가꾼 이가 따로 있는 것 같지도 않은 꽃은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멈추지 않고 피었다. 어스름 길을 걷는 내 눈앞에 화로에 콩이 튀듯 타다닥거리며 날마다 수십 송이씩 피어났다. 한 뿌리에 빨강과 노랑과 얼룩무늬가 함께 있었고 함부로 뿌리내린 처지임에도 코를 대면 난향보다 황홀한 향이 풍겼다.

그 꽃을 보려고 나는 별이 뜬 밤에 여러 번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내심 꽃이 지기를 기다렸다. 씨앗을 받을 욕심이었다. 꽃이 지고 난 후 사흘이면 꽃 밑에서 파란 콩이 도드라지는데 처음엔 파랗지만 차차 검은 줄무늬가 일고 나중엔 칠흑의 검은콩이 돼 만지면 손끝을 간지럽게 하는 얽은 콩이 되는 줄 진작 알고 있었다. 이 검은 열매를 햇볕에 말렸다가 다음 날 겉껍질을 벗기면 고형의 자그만 분 덩어리가 들어 있다는 것도 나는 알았다. 그래서 이름도 분꽃이었다. 아니 이름은 꽃에서 분 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건지도 모른다.

어린 날 나는 저 동그란 검은 열매를 성냥갑에 가득히 모았다. 내가 바르기엔 부끄럽고 시집갈 날을 받아놓은 친척 ‘아지매’에게 선물할 요량이었다. 오랫동안 못 보았던 그 꽃이 마침 지나다니는 길가에 피어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 앞에 한참씩 쭈그려 앉아 있곤 했다. 좋고도 좀 섧고 뿌듯하면서도 좀 막막했다. 가까이 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견(見)’이라 하고 멀리 있는 것을 큰 눈으로 살피는 것을 ‘관(觀)’이라 한다 했다. 관과 견을 적절히 아우르는 세상의 원근법에 나는 늘 서툴렀다.

올가을 우연히 핀 분꽃은 길가는 나를 제 곁에 강제로 잡아 앉혔다. 그러면서 언뜻 견과 관을 동시에 보여 줬다. 그새 놓쳐 버린 아득한 시간들과 대기가 칼칼해지면서 아연 깊어진 가을과 여전히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한편 씨앗을 맺으면서 한편 피어나는 제 안의 못 견딜 생명력과 거기 비친 내 얼굴을 한꺼번에 보여줬다. 철칙대로 꽃은 졌고 꽃이 진 자리엔 씨앗이 맺혔다. 건드리자 떼굴떼굴 영롱하게 굴러가는 씨앗. 엄지와 검지를 조심스레 뻗어 나는 예전과 똑같이 분꽃씨앗을 받았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볕도 공기도 하늘도 그대로였다. 다만 종이 성냥갑이 아니라 플라스틱 크림통인 게 달랐고 내가 열 살이 아니라 마흔을 훌쩍 넘긴 것만이 달랐다. 그러고 보니 달라진 건 또 있었다. 나는 이 씨앗을 얼굴에 바를 용도로 받지 않았다. 이미 분 바르는 짓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기본예절이라고 여기게 됐지만 내 살림엔 분통도 여러 개니 이 콩은 갈무리했다 내년 봄에 땅에 묻을 것이다. 싹트기를 기다리며 물을 줄 것이다. 떡잎과 꽃빛깔과 향기를 모조리 담고 있는 동그란 얽은 콩 하나. 나는 그새 이 조그만 콩에서 새잎을 틔워 꽃을 보고 꽃이 다시 열매로 맺히는 걸 지켜보는 일만치 소중한 건 없다고 여기는 사람으로 변했다.

세상 모든 가치는 결국 땅에다 씨앗을 심고 거기서 새싹이 터오는 데서 시작됨을 믿는다. 우리의 오랜 속담들도 대개 거기서 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수백 년 콩을 심어 보고 팥을 심어 본 이들이 깨달은 사무치는 진리다. 간결하고 명백한 진리다. 콩을 직접 땅에 묻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세상의 질서, 인과응보의 엄연함이 조금씩 헝클어진 건 아닌지 의심한다.

콩 심을 땅이 없거든 화분에다 그냥 분꽃씨앗 몇 알만 굴려 넣자. 도로변의 나라 땅에도, 씨앗도 맺지 않게 육종한 외래종 꽃 말고 싹 틔워서 꽃피는 우리 토종이나 토착 꽃들을 심었으면 좋겠다. 몇 달 동안 별같이 피는 꽃말고도 지나는 사람들이 혹 세상 보는 먼눈과 가까운 눈을 건져 올릴 수도 있을 테니. ‘내가 이 세상을/사랑한 바 없이/사랑을 받듯 전혀/심은 바 없는데 분꽃은/저녁을 밝히고/나에게 이 저녁을 이해시키고…’(장석남·‘분꽃이 피었다’)

나와 비슷한 시인이 어딘가 살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도 분꽃이다. 꽃씨를 갈무리해 놓고 맞는 겨울은 훈훈하다. 삶의 질은 이럴 때 따지는 건지도 모른다. 굳이 분꽃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아직 씨앗 받기 늦지 않았다.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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