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우종천/대학원 미달사태 변화 기회로

  • 입력 2000년 11월 26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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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마감된 서울대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 경쟁률이 크게 떨어지고 일부 전공분야에서는 미달상황까지 발생한 데 대해서 고학력자의 취업난과 학문의 위기, 특히 기초학문 분야의 위기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서울대 박사과정의 경우 1997년부터 2000년까지 평균 1.34대 1의 경쟁률을 보여왔으나 2001학년도에는 1.05대 1로 떨어졌다. 특히 인문 사회분야의 경우 미달 상황이 훨씬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상적으로 드러난 수치만 보면 연구 기능의 중추를 맡아나갈 학문 후속 세대 양성의 위기로 볼 수도 있다. 특히 기초학문 분야의 박사과정을 마친 고급인력이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연구환경의 부재가 대학원의 정원미달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하지만 세계화와 정보화의 확산, 무한경쟁시대의 지식기반사회의 돌입 과정에서 대학, 특히 대학원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원율이 감소하는 현상을 우려하기만 할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력 인플레가 초래한 대학원의 거품을 빼는 측면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벤처열풍으로 대학원보다는 사회진출을 선호하는 경향도 한 요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경제적, 기술적으로 세계는 하나의 경쟁무대로 재편되고 있기에 대학도 큰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미국 주립대학협의회는 3월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사회에 대한 대학의 기능과 역할도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발표한 켈로그보고서에서 대학은 연구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의 창조와 발견을, 사회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로 역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대학이 상아탑으로 남아 있기보다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해 새로운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우리 대학과 사회가 맺어야 할 새로운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과연 우리의 대학과 대학원의 현실은 어떤가.

박사 논문은 그 학문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의미한다. 이 보고서는 이런 연구 결과가 사회에서 활용될 수 있는 정도, 즉 연구의 효율성을 강조한다. 지식기반사회에서 대학의 역할, 특히 대학원의 역할은 지식을 생산하는 공장이라는 견해도 있다.

외국박사에 밀려 국내박사는 취업이 어렵다고 한탄한다. 한국과 관련된 학문 분야에서조차 국내박사가 외국박사에게 밀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국제적인 안목과 경쟁력을 가진 학자를 배출한다면, 적어도 한국 및 동양 관련 분야에서는 외국대학 교수의 상당수를 국내박사로 채울 수도 있다. 사실 이미 상당수의 이공계 분야에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외국에 취업하는 경우가 있다. 국내에서 취업이 어려우면 외국에서 취업할 수 있는 고급 두뇌를 생산하는 것이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수준이다.

현재 기초학문 분야에서는 많은 고급인력이 박사학위를 받고 안정된 직업을 찾기까지 시간강사로 전전하며 귀중한 젊음과 지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초학문은 학문의 인프라이고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학문의 인프라가 취약해서 오는 현상이다.

산업의 인프라 구축이 국가의 책임이듯이 학문의 인프라 구축도 국가의 책임이다. 지식산업의 원료인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이 기초학문이다. 기초학문의 뒷받침 없이 지식사업사회에서 경쟁력은 생각할 수 없다. 고급인력의 취업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 차원에서 학문의 인프라 구축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위기는 항상 변화 속에서 닥치고 변화는 기회를 가져다 준다. 이번 대학원 미달 사태가 정부는 정부대로 고급인력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기초학문의 정착을 위해 지원해 주고, 대학도 이들 고급인력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연구 능력을 확보하도록 노력하는 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종천(서울대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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