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가꾼다는 건 나를 가꾸는 일… 추억, 취향, 습관 담아내는 과정[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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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집’ 꿈꿔도 시작부터 막막
화분, 커튼 등 쉽고 뻔한 것부터… 추억과 감성 더하면 ‘내 것’ 완성
물건의 제자리 찾아주기 중요해
각 공간 활동 고려해 ‘집중 수납’… 물건 대하는 자세가 분위기 형성
집을 가꾸는 것은 나의 취향과 각 공간에서의 활동 특성을 알아가는 것이다. 사진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 공유주택 ‘풍년빌라’ 내 음악 듣기가 취미인 거주인을 위해 CD장을 벽면에 가득 채운 거실. 김동규 작가 제공
《집을 가꾸려 할 때 생각할 것
‘거주’는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거(居)에 촛불 곁에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주(住)를 쓴다. 힘들게 바깥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불을 밝히고 의자에 앉아 쉬는 안식의 모습이 거주의 원형인 것이다. 텅 빈 집은 아직 살기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다. 집이 집다워지려면 의자나 촛대처럼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가구가 필요하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가구’는 집 가(家)에 갖출 구(具)를 쓴다. 풀어 보면 집의 생활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목욕을 하려면 최소한 물과 욕조가 있어야 하고, 음식을 만들려면 불을 피울 수 있는 아궁이라도 갖춰야 한다. 영어 단어 ‘퍼니처(furniture)’의 어근 ‘furni’가 ‘설비’를 뜻한다는 점을 보면, 욕조나 아궁이가 바로 퍼니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집의 생활을 구체화하는 것이 가구라면 커튼도 액자도 조명도 모두 가구의 일부다. 가구는 집이란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가능하게 하고 돕는 모든 사물을 의미한다.
요즘 멋지게 꾸민 집을 소개하는 매체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매체를 접할 때마다 ‘나도 저런 멋진 집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집을 가꾸려고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팁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쉽고 뻔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뻔한 것에 무슨 매력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뻔함은 생각보다 강한 힘이 있다. 한국 드라마의 전매특허였던 ‘출생의 비밀’을 떠올려 보자. 뻔하지만 그 익숙함이 시대를 걸쳐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마력이었다. 뻔한 것은 이해의 문턱이 낮기 때문에 좀 더 미묘한 감정이나 디테일을 즐길 여유가 생긴다.
집도 마찬가지다. 화분 하나 들이는 일, 창가에 리넨 커튼을 다는 일, 책상 위에 스탠드 조명을 올려두는 일처럼 ‘쉬운 것’에는 부담이 없다. 여기에 자신의 추억과 감성을 한 스푼 더하면 금세 ‘나만의 것’으로 변모한다. 흔히 진부한 표현을 뜻하는 ‘클리셰’는 인쇄 작업에서 편의를 위해 연판을 뜨던 기술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래서 ‘판에 박힌 듯 생명력 없다’는 뉘앙스를 갖게 됐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본받다’는 말과도 통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내 삶에 적용해 나만의 스타일로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다.
두 번째는 수납이다. 찾고 싶은 물건이 정확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집은 그 자체로 더 빛난다. 그렇다면 ‘물건의 제자리’는 어디일까. 각 공간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 주변이 물건의 자리가 된다. 현관, 거실, 주방, 침실 등 공간에서 자신이나 가족의 행동을 떠올린 뒤 그 활동 주변에 물건을 분산해 수납하면 집 정리도 쉬워지고 생활도 한층 편리해진다. 특히 거실과 주방에는 카트형 이동 가구를 두면 매우 유용하다.
거실과 연결돼 사랑방처럼 쓰이는 주방. 김동규 작가 제공
살다 보면 물건은 늘어나고 수납공간은 늘 부족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집중 수납’이다. 한 공간을 정해 관련 물건을 한꺼번에 모아두면 많은 물건을 보관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옷방이다. 옷을 한눈에 분류해 둘 수 있어 수납 효율이 높고 코디네이션에도 도움이 된다. 집에서도 주방 도구, 서재의 책 등 성격이 분명한 물건들은 집중 수납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세 번째는 분위기다. 단기간에 만들어진 분위기는 쉽게 사라진다. 예쁜 의자나 카펫 등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도 시간이 지나면 이전에 살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의 분위기는 외모뿐 아니라 말투, 자세, 타인을 대하는 태도 등 오랜 시간 축적된 자신의 모습에서 나온다. 집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자면 좋을까?’를 고민하면서 두툼한 암막 커튼을 고르고, ‘침대 시트의 촉감은 어떤 느낌이 맞을까?’를 생각하며 부드럽고 촘촘한 소재를 찾는 과정 등을 통해 집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면, 방을 가꾸는 시간은 그중에서도 가장 깊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결국 자신을 알아가는 일과 자신의 집을 가꾸는 일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네 번째, 집을 잘 가꾸는 방법은 물건을 사랑하는 것이다. 물건을 사랑한다는 말은 곧 물건을 신중하게 골라 구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물건의 역사와 제작 과정을 알고 나면 그 물건이 달리 보인다. 물건의 효과와 사용법을 정확히 이해하면 내 생활에 맞는 물건을 선택할 수 있고, 그만큼 더 잘 쓰게 된다. 사용한 뒤 깨끗이 손질해 제자리에 두는 습관도 중요하다. 이런 태도가 쌓이면 물건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또 오랜 세월 손에 익은 물건은 어느 순간 또 다른 내가 된다. 이 과정이 물건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오래 사용한 물건들이 모여 집의 분위기와 취향을 만든다.
개인적으로 ‘집을 꾸민다’보다 ‘집을 가꾼다’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가꾼다’에는 집을 하나의 생명체처럼 대하는 태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집을 가꾸는 것은 결국 나를 가꾸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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