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가지 인생 살아 후회 없어”… ‘한국의 리즈 테일러’ 떠나다

  • 동아일보

김지미 美서 별세
17세때 길거리 걷다 캐스팅돼 데뷔… 화려한 외모로 韓영화 중흥 이끌어
年 최대 34편 등 370편 넘게 출연… ‘지미필름’ 만들어 직접 제작하기도

《‘한국의 리즈 테일러’ 배우 김지미 별세

‘한국의 리즈 테일러’ ‘원조 팜 파탈’,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은막의 톱스타로 군림했던 배우 김지미 씨가 6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영화 700편에 출연하며 700가지 인생을 살았다”는 고인은 배우로서도, 연애와 결혼으로도 언제나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나 이상의 배우는 없단 자신감으로 살았다”는 그는 당대 ‘자유로운 신여성’으로도 평가받았다.》

가족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다가 향년 85세로 별세한 원로 배우 김지미 씨. 사진은 2019년 10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이다. 부산=뉴스1
가족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다가 향년 85세로 별세한 원로 배우 김지미 씨. 사진은 2019년 10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이다. 부산=뉴스1
“수백 편 출연했지만 완성작은 한 작품도 없어요. 아직도 배울 게 많은, 철 안 든 배우일 뿐입니다.”(2017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1950∼80년대 최고의 여배우로 인기를 누리며 ‘한국의 리즈 테일러’라 불렸던 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 씨가 6일(현지 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10일 “김 배우가 6일 오전 11시 반(한국 시간 7일 오전 4시 반)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고인은 데뷔부터 주연을 맡아 영화 수백 편에 출연하며 당대의 미녀 배우로 오랫동안 전성기를 누렸다. 배우 최무룡(1928∼1999), 가수 나훈아 등과 만나고 헤어지며 자유롭고 주체적인 ‘신여성(新女性)’ 이미지도 강했다.

● “영화계 원조 팜파탈”

1940년 충남 대덕군(현 대전 대덕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7세였던 1957년 고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덕성여고 재학 시절, 명동에 가던 고인을 마주친 김 감독이 광화문 인근 집까지 따라와 섭외했다고 한다.

1964년 ‘남이장군’
1964년 ‘남이장군’
고인은 1950년대 후반부터 독보적인 톱스타였다. ‘별아 내 가슴에’(1958년)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1959년) ‘장희빈’(1961년) 등에 출연하며 상종가를 쳤다. “김지미가 나오면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들이 많아 한 해 34편에 출연한 적도 있다.

1966년 ‘하숙생’
1966년 ‘하숙생’
영화 제작 침체기였던 1970년대에도 ‘잡초’(1973년) ‘토지’(1974년) 등에 출연하며 국내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고인과 영화 13편을 찍은 김수용 감독은 “그토록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 걸 보면, 연기는 그의 큰 특기였던 듯하다”고 했다.

화려한 외모로 유명했던 할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와 비견되던 고인은 삶의 궤적도 무척 닮았다. 보수적인 시대에도 네 차례 결혼과 이혼으로 화제를 모았다.

데뷔 1년 뒤 홍성기 감독과 결혼했다가 4년 만에 파경을 맞았으며, 최고의 스타였던 최무룡 배우와 1963년 결혼했다가 6년 뒤 헤어졌다. 이혼 발표 당시 최 배우는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을 남겨 두고두고 회자됐다. 나훈아 씨와 1976∼1982년 사실혼 관계였고, 1991년 결혼한 이종구 박사와는 2002년 이혼했다. 고인은 훗날 한 인터뷰에서 “나이 많은 남자, 어린 남자, 능력 있는 남자 다 살아봤는데 별거 아니더라. 다 어린애”라고 했다.

● 대표작 ‘길소뜸’ 최고의 연기

1980년대부턴 영화 제작자로도 활약했다. 1985년 본인 이름을 딴 ‘지미필름’을 창립했다. 고인은 후에 “군사 독재 시대에 심의와 검열이 심했다. 여배우는 늘 기생이나 유흥가 여성을 연기해야 했다”며 “혼이 담긴 영화를 하고 싶어 직접 제작을 결심했다”고 했다.

1986년 ‘길소뜸’
1986년 ‘길소뜸’
배우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임권택 감독과 ‘길소뜸’(1986년) ‘티켓’(1986년) 등을 찍으며 연기 폭을 넓혀갔다. 특히 ‘길소뜸’에선 전쟁 이후의 상처와 모성의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마지막 출연작 ‘명자 아끼꼬 쏘냐’(1992년)까지 공식 집계된 출연작만 370여 편. 고인은 “700편 이상 출연했을 것”이라며 “700가지 인생을 살았던 만큼 미련은 없다”고 했다.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맡아 영화계 발전에 힘썼다. 2010년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고인에 대한 추모공간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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