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 세상]'명예'와 '명예욕'사이

  • 입력 2000년 6월 5일 19시 25분


'명예'라는 말이 붙는 칭호에는 존경의 뜻이 담겨있다. 명예시민 명예위원장 명예대사 명예교수 명예회장 명예박사 등등. 명예의 크고 작음을 따질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으뜸을 꼽아보라면 나는 명예박사를 들겠다. 명예박사는 학술과 문화발전, 공공복리증진, 인권신장, 국제평화기여 등에 공적이 탁월한 인사일 터이지만 인격적으로도 사회의 귀감이 되는 인사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명예박사학위 소식을 챙기는 까닭도 그런 판단에서 연유한다 할 것이다.

체육계 인사의 명예박사학위 소식도 심심찮다. 지난주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고, 김운용 대한체육회장은 지난해에만 국내외 대학에서 이학 철학 등 3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도 올해 초 국내 대학에서 명예체육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동중인 민관식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은 여러 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 중 97년 받은 명예체육학박사학위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장도 지난해 한국체대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예박사학위는 말 그대로 명예로운 일이다. 때문에 김수환추기경이나 정진석대주교도 스스럼없이 학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명예' 때문에 사단이 생기기도 한다. '철의 여인' 영국의 대처여사는 모교인 옥스퍼드대에서 주는 명예정치학박사학위를 원했으나 대학측이 '정치적 업적과 학문적 업적은 다르다'며 거부함에 따라 총리시절의 자료를 케임브리지대에 넘겼다는 보도도 있었다. 국내에서도 명예욕 충족을 위해 돈을 매개로 국내외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던가, 대학이 학교발전의 필요성을 들어 유력 인사에게 학위를 수여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런 명예박사학위를 고사(苦辭)할 사람이 있을까. 있다. 김성집 대한체육회부회장이 2년 전 그렇게 했다. 해방 후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포함한 두 개의 올림픽 메달 획득 등의 선수생활, '태릉의 칸트' '(흔들림 없는)바위'로 불리기도 한 선수촌장 생활 등 빈틈없고 성실한 김부회장의 스포츠인생을 보면 그의 학위수여 고사는 수긍이 되는 일이다. 김부회장은 여전히 그 사실조차 알려지길 원치 않아 만만치 않은 사연은 이쯤 해둔다. 다만 '플레이어로 남겠다'는 게 김부회장의 고사 이유였고, 가족들도 '박사라니요. 그냥 챔피언으로 남아야 김성집이지요'라고 말했다는 것만을 소개한다.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것도 명예이고, 학위를 간절히 사양하는 것도 명예이다. 명예는 얻기도 지키기도 쉽지 않은 법이다.

<논설위원·체육학박사> 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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