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종로서적 50여년 운영 장하구-하린 형제

  • 입력 2000년 3월 31일 21시 17분


서울의 종로서적. 올해로 창립 93년이니, 종로서적의 역사는 한국 서점과 출판문화의 역사 그대로다.

그 종로서적을 일궈온 두 주인공인 장하구 고문(82)과 장하린회장(79) 형제.

이들 형제가 종로서적을 이끌기 시작한 것은 1948년경. 그러나 종로서적의 효시는 19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위치의 기와집에 기독교 전문 서점 ‘예수교서회’가 들어선 것이 종로서적의 출발이다. 이 서점은 이후 1931년 교문서관으로, 1948년 종로서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때 동생인 장회장이 경영에 참여했고 종교서적에서 벗어나 일반 서적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숭실대 교수를 그만 두고 출판사를 운영하던 형 장고문이 1963년 경영에 가세하면서 이름을 종로서적센터로 바꾸고 현대식 서점으로 변신했다. 당시 종로서적센터는 장안의 화제였다.

“네온사인 간판, 바닥 장식, 천장의 샹들리에가 서점으로는 처음인데다 유니폼 입은 여성 직원이 등장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장 고문)

“센터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도 거의 처음이었을 걸요. 50년대까지는 지방의 경우, 책을 팔러 다니는 보따리 장사가 있을 정도였으니….”(장 회장)

서울 안국동과 충무로 등지의 서점은 모두 좁은 공간이었고 책더미 위에 주인이 올라가 주변을 감시하곤 했던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장회장은 “광복 이전엔 이광수 등의 소설이 최고 인기였고 광복 직후부터 6·25까지는 좌익서적이 불티나게 팔렸죠. 60년대엔 문학이 강세였고 70년대 들어선 외국어 경제서도 많이 나갔습니다. 특히 80년대에 젊은 어머니들이 아이 손을 잡고 서점을 찾기 시작했지요.”

종로서적은 78년 첫 통신판매, 97년 첫 인터넷 서점 등 출판과 독서 문화를 앞장서 이끌어왔다.

서울 시내에 대형서점이 생겨난 것도 실은 종로서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 없이 좋은 책을 소개하려고 노력해 온 종로서적과 이들 형제.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서점의 역사는 점점 깊어지고 저희는 점점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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