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 무관’ 이유로 필버 중단 전례 없어… 추미애 노래 부르기도

  • 동아일보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 중단 후폭풍
野 “위험한 선례… 우원식 법적조치”
與 “제도 고쳐야 하는 이유 또 드러나”
‘의제 외 발언’ 규정 구체적 기준 없어… “소수당 권리보호 취지 감안을” 지적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법사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여야는 전날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중단시켰던 것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나 의원이 “의제와 관계없이 어떠한 토론도 했던 게 관행”이라고 하자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나 의원의 필리버스터는 정말 온 국민이 볼 때 창피했다”고 반박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법사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여야는 전날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중단시켰던 것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나 의원이 “의제와 관계없이 어떠한 토론도 했던 게 관행”이라고 하자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나 의원의 필리버스터는 정말 온 국민이 볼 때 창피했다”고 반박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우원식 국회의장이 9일 본회의에서 ‘의제 외 발언’을 이유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중단시킨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의장의 판단’만으로 언제든지 차단할 수 있는 위험한 선례를 만든 것”이라고 비판하며 우 의장에 대한 법적 조치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제도 개선이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이 다시 한번 분명히 드러났다”며 나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방침이다.

61년 만의 국회의장 필리버스터 직권 중단을 두고 야당에선 ‘필리버스터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필리버스터가 소수당의 최후의 권리라는 점을 감안해 관용과 자제를 바탕으로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의제 외 발언’ 이유로 중단 전례 없어

전날 본회의에서 우 의장은 국민의힘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 의원이 단상에 올라온 지 13분 만에 마이크 전원을 끄도록 지시했다. 비쟁점 법안인 가맹사업법 개정안 필리버스터에 나선 나 의원이 민주당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을 비판하자 “의제와 벗어난 발언”이라며 중단시킨 것. 이후에도 나 의원이 계속 발언을 이어가자 우 의장은 마이크를 재차 끄고 정회를 선포했고, 이후 속개된 본회의에서도 한 번 더 마이크 전원을 차단했다. 필리버스터가 세 차례 중단된 것.

이 과정에서 우 의장은 국회사무처가 만든 ‘국회법 해설서’를 들어 보이며 “국회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법 102조에 ‘의제와 관계없거나 허가받은 발언의 성질과 다른 발언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돼 있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또 국회법 해설서에 따르면 ‘의제 외 발언 금지를 위반해 의장이 경고, 제지 조치를 했음에도 응하지 않아 의장이 해당 의원에 대해 발언을 금지하면’ 무제한 토론이 종료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의제 외 발언’을 규정하는 구체적 기준이 없다 보니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여야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나 의원은 가맹사업법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통해 상정된 것을 강조하며 “법제사법위원회 심사·토론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에 입법독재”라면서 “필리버스터에서 5대 사법 파괴법, 3대 입틀막법을 언급하는 것은 직접·간접 관련성을 가진 토론”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민주당은 “민생 법안에 대해서 발언을 하라고 했는데 그걸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문제는 의제와 무관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킨 전례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방송 4법 중 한국교육방송공사(EBS)법 개정안 처리 당시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필리버스터 도중 CM송을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의혹 문제를 제기했지만 지적을 받지 않았다.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의 강기정 의원은 4대강 사업 반대 경험과 기초노령연금법 제정 소회 등을 밝히고 토론 말미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했다. 앞선 필리버스터에선 ‘헌법 전문 읽기’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필리버스터 도입 취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필리버스터 제도 자체가 소수당이 최후의 권리로서 의견을 표명할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野 “반의회적 폭거” vs 與 “악의적 방해”

여야는 이날도 필리버스터 중단 사태를 두고 거친 말을 주고받았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우 의장의 반의회적인 폭거는 야당 활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겠다는, 국민 입틀막 3법 입법 의도와 맞닿아 있다”며 “무제한 토론을 자의적으로, 독단적으로 중단시킨 우 의장의 국회법 위반에 대해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나 의원은) ‘법안에 대한 토론이 반드시 그 내용에 대한 토론이어야 하느냐’라는 희대의 망언을 하며, 필리버스터의 목적이 오직 ‘악의적 의사진행 방해’에 있음을 스스로 자백했다”면서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국회의장#필리버스터#나경원#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국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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