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동우/신경하경장의 바람

  • 입력 2000년 3월 2일 19시 57분


“슬픔이 끝없이 밀려왔습니다. 그것은 분노보다 더 진한 감정이었죠.”

신경하경장(여·35)은 비교적 담담하게 지난해 12월의 ‘그일’을 떠올렸다. 신경장은 그날 12월11일 민주노총이 서울역에서 가진 대규모 민중대회에 투입됐다. 동료 여경들과 교통경찰 정복을 입고 폴리스라인을 잡은 채 평화적인 시위를 유도하고 있었다.

“아마 한총련 계열의 학생들이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 흔들어대던 깃발을 돌려 잡더니 여경들을 무차별로 공격하기 시작했어요.”

순간 그는 땅바닥에 넘어졌고 시위대의 무수한 발길에 온몸이 짓밟혔다.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의식을 잃고 말았다. 늑골이 부러졌고 온몸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경찰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허탈감과 슬픔이 아픔보다 더 그를 죄어왔다.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나”라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그러한 안타까움을 갖는 사람이 어디 신경장뿐이랴마는 그의 말에는 절실한 감정이 묻어 나왔다.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여 경찰이라기보다는 새색씨 같은 신경장은 사실 그저 평범하고 선량한 우리의 이웃이기도 하다.

전남 담양군이 고향인 신경장은 조선대 불문과를 다니다 87년 순경 공채시험을 통해 경찰이 됐다. 현재 서울노원경찰서 정보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96년 동갑인 고향친구와 결혼해 네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남편 역시 일선 파출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찰관(경사). 이들 부부는 아직 독립할 돈을 모으지 못해 시부모의 32평 아파트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매일 할머니와 병문안을 온 아들녀석이 “엄마 많이 아파”라고 물을 때마다 마음이 더 아팠다는 그는 지난 연말에 퇴원했지만 아직도 허리통증이 가시지 않아 물리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

“다시 현장에 투입될 경우요? 솔직히 두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기꺼이 현장으로 달려가겠습니다. 비무장 여성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시위를 이제 여론과 국민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니까요.”

지난해부터 경찰이 표방하고 있는 무탄(無彈)정책이 올해도 계속 지켜질 수가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당장 올해 노동계의 춘투는 노동자들이 IMF 경제위기 이후 감내했던 고통에 대한 보상요구로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치안유지를 책임져야 할 경찰이 ‘어떠한 경우도’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미리 선언하고 이를 ‘무리’하게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어렵고 다소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무탄정책은 수정없이 밀고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듯이 과격한 가두시위를 예방하는 방법도 최루탄보다는 여경의 미소가 더 적절할 수가 있으며 그 길만이 세계언론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던 우리의 부끄러운 시위문화를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여경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시위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는 신경장의 바람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신경장 파이팅.

<정동우기자>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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