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DJP 2人劇이 남긴 것

입력 1999-07-23 19:05수정 2009-09-2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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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극의 막은 내렸다.

관객들은 별 반응이 없다. 말도 없다. 표정도 덤덤하다.

내각제개헌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지킬 것이라는 얘기를 TV토론때마다 반복했으나 결국은 약속을 파기한다는 줄거리가 너무 뻔한 데다 노(老)배우 2인의 연기도 30여년이나 봐온 말투와 몸짓이라 어떤 감흥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관객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어디선가 외마디소리가 터져나왔다.

“사기극이다.”

◆「다 그런거지 뭘」◆

이렇게 외친 사람이 누군가 살펴보니 주연 배우 중 한명과 같은 정당인 자민련소속 국회의원이다. 이 소리를 듣고도 관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왜 사기극이라는 거야. 누가 뭘 속였느냐구. 다 그런거지 뭐. 애시당초 지키지 못할 공약(空約)이라는 걸 알면서도 ‘표’ 때문에 해본 소릴텐데 그걸 지키지 않는다고 약속위반이니, 정치인의 신의가 어떠니하는 사람처럼 순진한 사람이 어디 있나. 생각해보라구. 4수(修) 끝에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2년만 하고 내각제로 바꾼다고? 어림없는 얘기지. 그래도 그렇지. 누구처럼 대통령 후보경선쯤에서야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해놓고도 경선에서 지니까 다시 뛰쳐나와 출마해도 그럴 수 있겠지. 그러나 이건 예선이 아니라 본선에서 한 약속아닌가. 나이도 겨우 쉰살난 사람의 철없는 행동하고 칠순이 넘은 어른들의 천금같은 약조를 같이 비교할 수야 없지.

99년말까지 내각제개헌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집권했으면 이것을 못지킬 때는 못지키더라도 지키려는 시늉은 해야 할 것 아닌가. 최소한의 성의표시는 있었어야지.

그분들(DJP) 지금 떨고 있을까. 떨긴 왜 떨어. 국민한테 한 큰 약속을 어기게 됐으니 죄책감 때문에 떨지 않겠어?

어느 초선 국회의원은 한 후원자로부터 순수한 후원금 1000만원을 받고 액수가 너무 많아 밤새 고민하다가 이튿날 돌려주고는 ‘나는 떨고 있다. 고로 새로운 정치는 존재한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했다고 자신의 수필집에서 털어놨던데. 초선이니까 떨지. 다선이면 30억원을 받고도 오히려 큰소리치는데.

그분들(DJP)은 웬만한 거짓말을 하고서는 떨 사람들이 아니지. 그분들이 떨고 있었다면 국민에게 벌써 정중하게 고개숙여 사죄했을 텐데. 뒤늦게 김대중대통령이 ‘유감’을 표하면서 경제사정과 남북관계 때문에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했는데, 그 두가지 이유는 박정희전대통령이 3선개헌과 10월유신을 선포할 때도 내걸었던 메뉴야. 김대통령이 내건 두가지가 ‘사정변경’의 충분한 사유가 되기는 되는 건가. 이미 물 건너간 얘기갖고 왜 꼬치꼬치 따지고 드나.

여하튼 내각제 짐을 벗었으니 두분은 아주 홀가분하겠군. 그러나 더 큰 짐을 지게 됐잖은가. 불신의 짐이지. 최고의 정치지도자가 신뢰를 잃는 것, 도덕적 기반에 큰 흠을 남기게 된 것처럼큰짐이 어디 있겠나.

◆막오른 새피 수혈극◆

내각제 2인극이 막을 내리자 국민회의는 신당창당이니, 정계개편이니 하면서 ‘새 피 수혈극’의 막을 올리고 손님들을 끌고 있는데. 데려올 사람을 고르는 무슨 원칙이 있는지 모르겠고, 거론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그렇고 그렇더군. ‘철새들’도 많고. 결국 자민련까지 흡수하려 하겠지만 신뢰의 기반이 붕괴된 상황에서 잘 되겠나.

우리 국민이 말은 안해도 표로 심판하는 것은 무섭지. 90년 3당합당때 합당전 민정 민주 공화 3당의 국회의석은 3분의 2 가까이 됐지만 ‘대의정치에 대한 쿠데타’라는 소리를 들으며 합당한 후 총선에서는 과반수도 못얻었거든.

아무튼 ‘씨의 소리’ 발행인 이문영(李文永)씨가 이 잡지 최근호에 이런 글을 썼어. ‘함석헌(咸錫憲)선생이 오늘의 시점에서 김대중에게 주는 소리’는 세가지 일 것인데 그 첫째는 ‘지금하고 있는 정치는 권모술수의 정치, 영어로 말해 power politics일지는 몰라도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했어. 고려대석좌교수인 이씨는 76년 3월1일 유신의 암흑기에 유신철폐를 요구하는 3·1민주구국선언문에 서명, 김대중대통령과 함께 구속됐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 글의 결론을 이렇게 맺었어. 3·1사건의 법정에 함께 섰던 함석헌선생은 오늘 이렇게 말할 것이다. ‘김대중씨여, 부디 3·1사건의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이렇게 쓴 소리를 한 이교수는 지금 아태평화재단이사장이라구. 그래?

어경택〈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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