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칼럼]장세돈/원조로 얻을 수 없는 평화

  • 입력 1998년 8월 9일 20시 27분


최근 CNN과 BBC 등 주요 국제 언론은 인간이 기아와 질병의 한계상황에 이르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보도를 통해 수단의 기아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대두했으며 같은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외국인 거주자들도 상상을 초월하는 비참한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수단의 기아문제는 기아 질병 이산(離散) 한발 내전의 5중주로 빚어진 비극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유엔의 통계를 인용하면 남부수단의 이재민은 2백60만명에 이르며 이중 1백20만명이 기아선상에 놓여있다고 한다. 93년 인구센서스에 의한 총인구가 2천6백70만명이었으니 그 중 10분의1이 내전의 포화속에 고통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말처럼 수단정부가 수도 하르툼 근처의 4개 캠프에만 2백20만명의 국내 난민을 거느리고 있는 데다 모든 재원을 내전에 쏟아 붓고 있어 남부주민을 구호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보여 국제기구의 구호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89년 남부 한발로 인한 기아문제가 발생(25만명 사망 추정)하자 유엔은 ‘수단 생명선 작전(Operation Lifeline Sudan)’을 시작했는데 현재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선진 13개국,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식량계획(WFP) 등 6개 유엔기구와 50개 비정부간 기구(NGO)가 참가해 구호작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명칭 그대로 이재민 1백20만명의 생명이 이 작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필요한 구호사업예산은 1억8천만달러 정도인데 이것도 이재민 1인당 연간 겨우 1백50달러를 구호비로 쓰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적극적 원조제공은 시급하고 필수적이다.

남부지역의 열악한 도로 철도 통신사정으로 인해 기근이 가장 심각한 바르알가잘주에서는 케냐등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식량과 의약품 등을 공중투하하고 있으며 9월까지 월4천∼6천5백t을 수송할 예정이다. 수단정부는 공중투하되는 식량의 65%를 반군인 수단인민해방군(SPLA)측이 약탈해가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 면적의 10배가 되는 지역을 정부가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수단 기아의 1차적 변수는 평화 문제다. 수단에서 내전을 종식하고 평화를 달성하지 않는 한 기아문제는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뭄은 불가항력이라 하더라도 내전 문제는 당사자들이 성의를 갖고 양보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83년부터 15년간 1백50만명의 사상자를 낸 내전기간중 정부와 반군은 연 1,2회 정도 협상을 개최해왔으나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 이유는 정교(政敎)분리와 남부지역의 자치권 문제에 대해 서로 팽팽한 입장 대립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양측은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평화회담을 하고 있는데 협상대표들은 한가지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즉 식량은 공중투하할 수 있으나 평화는 공중투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석유가 많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남부 수단. 평화가 달성된 후 풍부한 지하자원 개발로 부강한 나라의 토대가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장세돈<주수단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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