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유권자가 주인인 英선거

  • 입력 1997년 5월 10일 20시 16분


영국총선이 있은지 일주일가량이 지난 9일 오전. 런던 남부 윔블던선거구에서 노동당후보로 당선된 로저 케세일의원의 선거운동관리인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 돈 안드는 정치 ▼ 이번 선거에서 쓴 돈이 얼마정도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들도 돈문제 만큼은 민감한지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는 않았다. 사무실관계자는 지금 모든 지출명세를 취합중에 있고 조만간 이를 내무부의 선거관리위원회에 보내 심사를 거친 뒤 두달내로 공개토록 돼있기 때문에 그때가서 보라고 일러줬다. 아울러 영국의 선거법은 워낙 엄격해 법정선거비용을 한 푼이라도 초과하면 당선무효에다 구속까지 된다면서 법정선거비용 한도내에서 돈을 썼다고 단언했다. 윔블던선거구에서 각 후보들이 쓸 수 있는 법정선거비용은 7천1백41파운드. 우리돈으로 1천만원을 조금 넘는다. 이는 선거구에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정해진 4천6백42파운드(약 7백만원)에다 선거구의 유권자수에 따라 지출할 수 있는 비용을 합친 것이다. 윔블던선거구의 유권자수는 6만4천70명. 도시지역에서는 유권자 한 명당 3.9펜스(약 60원), 지방은 5.2펜스(약 75원)씩을 지출할 수 있기 때문에 고정선거비 외에 2천4백99파운드(약 3백75만원)를 더 쓸 수가 있는 것이다. 영국의 선거는 구조적으로 많은 돈이 들지 않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처럼 요란하게 길거리마다 현수막을 내걸거나 선거포스터를 부착하지도 않는다. 또 합동연설회같은 것도 없어 청중을 동원하기 위해 후보가 돈을 뿌릴 필요도 없다. 동창회나 종친회 계모임 등으로 위장해 유권자들에게 밥을 사거나 선물을 돌리는 일들은 더구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우리처럼 야유회나 동창회를 빙자해 후보측에 손을 벌리는 유권자들도 없다. 그저 후보자의 간단한 신상명세와 소속정당의 공약이 담긴 팜플렛과 소책자를 만들어 가정마다 우송하거나 돌리고, 길거리를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 표를 부탁하는 것이 고작이다. TV를 켜거나 신문을 보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도대체 총선을 하는지조차 잘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선거운동에 들어가는 돈도 후보자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구당에서 평소 당원들로부터 틈틈이 모금한 돈으로 일체를 충당한다. 공천과정도 우리완 판이하다. 당총재나 중앙당에서 낙점해 내려보내는 하향식이 아니다. 지구당위원회가 여러명의 후보자중에서 투표를 통해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선출해 중앙당으로 올려보내면 거의 예외없이 공천을 받는 철저한 상향식이다. 공천에서부터 선거운동까지 후보자는 돈부담이 거의 없다. 능력만 있으면 무일푼이라도 얼마든지 공천을 받고 출마할 수가 있는 것이다. ▼ 국민들이 앞장서야 ▼ 개별선거구와는 달리 중앙당 차원의 선거운동은 활발한 편이다. 전국을 누비는 당수의 유세, 시민과의 대화, 언론매체를 통한 광고 등으로 소속당의 공약을 널리 선전한다. 노동당압승으로 총리가 된 토니 블레어는 지난 7일 4백18명의 노동당소속 당선의원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이 주인(master)이고 우리 모두는 그 주인의 머슴(servant)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라』 왜 우리는 「주인」이 「머슴」을 뽑는데 그 많은 돈을 써야 하고 뽑고 난 뒤에도 그 돈 때문에 청문회니 대선자금의혹이니 하면서 난리를 떨어야 하는가. 돈 안들고 깨끗한 선거풍토조성을 위해서는 누가 가장 앞장을 서야 할까. 「정치인? 아니야, 유권자」라고 자문자답해 봤다. 이진녕 <런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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