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53)

  • 입력 1997년 2월 25일 20시 13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8〉 『잘 아는 사람인가요?』 『아니』 『그럼요?』 『간단한데도 막상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 그런 심정의 상대야』 그러자 그녀도 까닭없이 아까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인가 복잡한 심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보는 것보다 보지 않는 것이 나았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할 건 없는 일 같았다. 서서히 산그늘이 깊어가고, 그런 분위기에서 곧이어 쓸쓸한 빛깔로 노을이 밀려들 것이었다. 해는 이미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건 해가 산을 넘는 동안만큼의 짧은 시간의 일일지도 몰랐다. 이미 쓸쓸해지거나 쓸쓸해질 것 같다는 느낌보다 더 깊은 가을의 느낌은 없을 것이다. 『지금 내 기분도 엉망이 돼 가려고 하는 것 알아요?』 『알아』 『알면 이제 그만해요』 『그 자식에 대해서 화를 내는 게 아니야. 그냥 그런 모습을 본 것에 대해 나한테 화가 나는 거야. 그렇다고 어떤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까 오토바이가 멈춰섰을 때 확 집어던지고 싶었어』 『지금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지 알아요?』 『알아.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거고』 『그럼 말을 해봐요, 왜 화가 나는지. 아뇨, 왜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예요』 그는 아무 말 없이 산책로를 앞장 서 걷다가 갈나무 숲을 나와 비스듬하게 쓰러져 있는 나무 앞에 걸음을 멈추고 나무 위에 앉았다. 그녀도 그 옆에 어깨 하나사이를 두고 앉았다. 『그하고 직접적으로 어떤 상관이 있는 건 아니야』 『그럼요』 『전에 내가 군민회 기숙사 얘기를 했지? 우리나라에서 몇째 안 가게 비싼 땅에 우리나라에서 몇째 안 가게 허름하게 지은 건물이라고. 땅을 가진 기업은 공익사업을 내세워서라도 그 땅에 대한 세금을 줄일 방법을 생각해야 했고, 그런 기업가를 둔 고향 사람들로선 자식 교육을 위해 난민 숙소 같은 기숙사라도 감지덕지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거라고』 『들었어요. 그 얘긴 전에』 『그 땅도 건물도 그의 아버지 것이야. 누가 물어와 전하는 건지 모르지만 원래 그런 소문일수록 빠른 거니까 금방 알게 되는 거지』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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