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소환이 시작되면서 한보비리수사는 뿌리캐기단계로 접어들었다. 본란이 누차 강조해왔듯 한보의혹 수사의 핵심은 외압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밝혀내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수사의 목적이자 초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사에 절대로 성역(聖域)이 없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검찰은 이번에야말로 철저한 진실규명으로 성역없는 수사가 빈 말이 아님을 국민앞에 증명해 보여야 한다. 대통령이 성역없는 수사를 강력히 지시하고 검찰 또한 같은 다짐을 되풀이 해오지만 국민들은 액면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과거의 경험이 그래 왔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에도 검찰이 적당히 파헤치다 덮어버린다면 그로인한 후유증과 국가적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권의 비리와 도덕성만 도마위에 오른 게 아니다. 검찰권의 독립성 여부 또한 국민적 심판대에 올라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검찰은 한보의혹의 연루자로 드러나는 인사는 그가 누구든 수사에 예외를 두어서는 안된다. 수사기법상 필요에 따른 것이라면 몰라도 정략적인 선별수사는 있을 수 없다. 벌써부터 5,6명만 사법처리하고 말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제한없이 불러 엄중하게 수사해 한보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 가차없이 사법처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1차로 소환된 洪仁吉(홍인길) 鄭在哲(정재철)의원이 비록 대통령의 최측근이거나 여권핵심인물이지만 결코 수사의 성역일 수는 없다. 국민회의 金大中(김대중)총재의 분신이라는 權魯甲(권노갑)의원도 마찬가지다. 새롭게 거액수수설이 제기된 여권의 민주계 핵심실세 3,4명도 본인들은 모두 부인하고 있으나 의혹이 불거진 이상 이들 역시 성역없는 수사대상임은 물론이다. 특히 대선주자들의 경우 차기 국정책임을 맡겠다고 나선 사람들인 만큼 더욱 철저하게 파헤쳐 진상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정부의 위기, 국가의 위기, 대외공신력의 위기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항간의 유언비어를 보아도 한보사태를 둘러싼 국민의 의혹은 너무 크다. 이 총체적 불신과 위기는 1차적으로 여권의 책임이지만 야당의 몫도 있다. 몇몇을 희생양으로 구속하는 선에서 국민을 납득시키기는 어렵다. 홍, 정의원 정도가 최종 배후일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위야 어떻든 한보사태는 결국 정부의 책임이자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런만큼 의혹의 진상과 외압의 배후도 현정권이 책임을 지고 밝혀야 한다. 천문학적 대출을 가능케한 외압의 실체가 누구인지 낱낱이 파헤쳐 국민앞에 정직하게 공개할 때라야 비로소 의혹을 잠재울 수 있다. 또 그러는 것이 김대통령으로서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