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솔로의 배경음악이 깔리고, 위기 상황의 본드가 관객을 향해 총을 겨눈다. 총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실루엣의 향연. 관능적인 여성의 몸매가 그림자로만 표현되면서 성적 긴장감은 더해진다. 개봉마다 화제가 되는 007시리즈의 오프닝. 2∼3분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이 장면은 007이 가진 모든 볼거리를 함축한다. 그리고 제임스 본드의 주제음악은 ‘관능과 긴장’의 007시리즈 정서를 대변한다.
17일 쇼트연기. 김연아는 이 주제음악과 함께 킴 베이싱어부터 할리 베리까지 당대의 섹스심벌들만이 거쳐 갈 수 있었던 ‘관능의 여신’ 본드걸로 재탄생했다. 캐나다 출신의 디자이너 조지 앤의 의상은 블랙 톤으로 본드 걸의 실루엣을 상징하는 듯 했다. 한 쪽 어깨를 과감하게 드러낸 홀터넥 스타일은 적당한 노출로 긴장감을 더 했고, 은은하게 반짝이는 은빛 보석은 관능의 격을 높였다.
18일 프리연기에서는 미국의 작곡가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와 안무의 완벽한 조화가 돋보였다. 김연아의 강점은 긴장없이 부드러운 움직임의 흐름. 배경음악의 리듬과 여신의 움직임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아떨어져 여백을 느낄 수 없었다. 또 파란색 의상은 대중적이면서도 클래식하다는 평가를 듣는 거쉰의 세련된 선율과도 잘 어울렸다.
큰 변수가 없는 한 김연아는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도 같은 의상을 입는다. 1998나가노동계올림픽 타라 리핀스키(미국)를 시작으로 2002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 사라 휴즈(미국), 2006토리노동계올림픽 시즈카 아라카와(일본)까지 금메달리스트들은 모두 프리연기에서 푸른 계열의 옷을 입었다. 코발트 빛 ‘연아블루’는 챔피언의 색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