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통계로 세상읽기]스프링복과 오유지족

  • 입력 2008년 6월 2일 02시 57분


《아프리카에는 ‘스프링복’이라는 산양이 살고 있다. 이 양들은 본래 평화롭게 풀을 뜯으며 생활한다. 그러나 앞의 양들이 풀을 다 뜯어 먹어 버렸을 경우, 뒤따르는 양들 사이에는 풀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벌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모든 양 떼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풀을 찾기 위해서다. 때로는 이렇게 달리다 낭떠러지를 만나 양 떼가 모두 떨어져 죽을 때도 있다. 조금만 달리다 멈춰도 새로 뜯어 먹을 풀이 있었을 텐데, 멈추지 않고 무작정 달린 탓이다.》

사람들도 스프링복처럼 남들이 하는 대로 무작정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스프링복이 낭떠러지를 만나 떨어져 죽듯이, 대중이 큰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투기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광적인 투기 열풍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다. 투기 대상은 튤립이었다. 1634년경 네덜란드 사람들은 너도나도 튤립 알뿌리 투기에 뛰어들었다. 마치 스프링복이 앞 다투어 달리는 것처럼. 투기의 규모는 점점 커져 갔다. 가격도 끝없이 올라가 1636년이 되자 튤립 알뿌리 1개가 마차 1대, 말 2필, 마구 일체와 맞먹는 가격까지 치솟았다. 튤립 알뿌리 하나가 그렇게 비쌌다니 지금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투기의 결과 어떤 물건의 가격이 실제 가치 이상으로 부풀려진 것을 경제학에서는 ‘거품(bubble)’이라고 한다. 거품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물건의 가격에 낀 거품도 마찬가지다. 1637년 2월 4일, 이유도 없이 튤립 알뿌리 가격이 폭락했다. 잔뜩 부풀려졌던 거품이 꺼져 버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 재산을 날리고 파산했다. 마치 스프링복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음을 당하듯이 말이다.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유명한 투기 열풍이 일어났다. 1719년 프랑스에서는 ‘미시시피’라는 회사의 주식 가격이 1년도 안 되어 36배로 치솟았다. 이 회사 주식 가격의 거품은 1년 만인 1720년에 꺼져 버렸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날렸다.

1720년 영국에서는 ‘남해회사’ 주식에 대한 투기가 일어났다. 1월에 128포인트였던 주가가 여름이 되자 1000포인트에 육박했다. 그러나 이 역시 1년도 안 돼 거품이 꺼져 버렸다. 또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날렸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투기 열풍은 여전했다. 1924∼1925년 미국 플로리다에는 땅 투기 열풍이 불었다. 땅값은 2주 사이에 2배로 뛰었다. 그러나 1926년 들어 거품은 꺼지고 말았다. 1928년 봄부터는 미국에서 주식 투기 열풍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듬해 가을에는 여지없이 주가가 대폭락했다.

1986∼1989년 일본에서는 땅과 주식 투기 열풍이 불어 땅값과 주가가 3배나 뛰었다. 이 거품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에 들어서자 거품이 붕괴해 버린 것이다.

투기 열풍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9년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펴자, 벤처기업 주식 투기 열풍이 일어났다. 당시 대표적 벤처기업이었던 ‘새롬기술’이라는 회사의 주가는 1999년 8월 13일에 2575원으로 거래를 시작한 후 폭등에 폭등을 거듭해 2000년 2월 18일에는 30만8000원까지 상승했다. 약 120배나 치솟은 셈이다. 그러나 이 거품 역시 꺼지기 시작했다. 2000년 3월 말에는 5만6400원으로 떨어졌고, 12월 말에는 5500원까지 하락하였으며, 3년 후인 2003년 3월에는 2460원이 되었다. 당시 주식 투기 열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큰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스프링복의 비극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탐욕’이고, 둘째는 ‘군중 추종 심리’다. 인간이 투기 열풍에 휩쓸려 개인적·사회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는 것 역시 이 두 가지 원인 때문이다. 만약 스프링복이 욕심을 누르고 조금만 달리다 멈춘다면 많은 풀을 뜯어 먹을 테고 죽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욕심을 자제하여 자신을 성찰한다면 투기 열풍에 휩쓸리지 않을 테고, 재산상의 손실과 그에 따른 정신적 고통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석가모니의 마지막 설법이 수록된 ‘유교경’을 보면 불교 수행자가 성취해야 할 8가지 덕목인 ‘팔대인각’이 나온다. 첫째는 ‘소욕(小欲·탐내지 않는 것)’이고, 마지막은 ‘지족(知足·만족함을 아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스스로 만족함을 알아 탐내지 않는다면 투기 열풍과 같은 부질없는 일에 휩쓸려 고통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교경의 ‘지족’에 근거하여 불교에서는 ‘오유지족(吾唯知足·나는 만족함을 안다)’이라는 말을 쓴다. 우리도 ‘오유지족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자.

안병근 공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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