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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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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사문화… 예방효과 없어”
“부모에게 태아의 성별을 가르쳐 주는 일과 낙태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태아 성별과 관련된 낙태가 단 한 건밖에 없다 해도 태아 성감별 고지 금지 규정은 필요하다.”
태아 성감별 고지 금지 조항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10일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에서는 금지 조항과 낙태와의 관련성을 둘러싼 공방이 뜨거웠다. 조항 자체의 위헌성은 뒤로 밀린 듯했다.
위헌 청구인 쪽 참고인으로 나온 전종관 서울대 의대 교수는 “1995년 이후 남아와 여아의 성비율은 점차 균형을 이뤄가고 있다”며 “태아의 생명권 유지가 목적이라면 관련 조항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상은 샘안양병원 의료원장은 “낙태가 산모의 생명에 위험을 줄 수 있는 임신 8, 9개월 이후에도 낙태를 시도한다”며 “성별로 인한 낙태가 한 건밖에 없다 해도 관련 조항은 유지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헌법소원 청구인 쪽 박상훈 변호사는 “전 세계 국가 가운데 인도만 딸의 결혼 지참금이라는 문화적인 이유 때문에 성감별 고지를 금지하고 있고 (가까운) 중국도 금지하고 있지 않다”며 “한국에서 금지 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건복지가족부 곽명섭 사무관은 “2005년 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매년 34만 건의 낙태행위 중 2500건이 태아의 성별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일이 합법화된다면 낙태는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반대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재판관 일부는 낙태와 성감별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통계조사의 신뢰성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다.
김희옥 재판관은 ‘성별로 인한 낙태 비율이 높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낙태의 이유를 가장하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고, 민형기 재판관은 “낙태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는 답변을 떳떳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쉬쉬하는 경우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날 변론은 2004년 12월 부인의 출산을 앞둔 정모 씨와 2005년 세 차례에 걸쳐 산모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준 혐의로 면허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한 산부인과 의사가 각각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것이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