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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6월 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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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기회를 자주 주는 것이 가장 중요
쓰기가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임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엄격히 말하면 쓰기에 투자한 시간만 논술공부를 한 시간으로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논술 공부는 수영 배우기와 흡사합니다. 수영을 배울 때 큰 서점에 가서 좋은 수영 교본을 사온 다음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통째로 외운다면 진짜 수영을 할 수 있을까요? 다 외운 다음 수영장에 간 여러분은 아마 수영 교본을 외우면서 물에 가라앉을 것입니다. 수영을 배우려면 물에 몸을 담그고 첨벙거리면서 동작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글쓰기도 직접 쓰면서 체득해 나가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선 ‘쓰기를 할 기회를 자주 주라’는 것이 논술 쓰기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입니다.
제가 아는 한 고등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매주 한 편씩 글을 쓰게 합니다. 집에 가서 써오도록 하면 안 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주일에 하루 한 시간을 정해 두고 600∼800자 정도의 글을 쓰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1년에 거의 40편 정도를 쓰게 됩니다. 이렇게 1년 동안 글을 써 본 학생과 한 번도 안 써 본 학생은 아마도 상당한 차이가 날 것입니다.
글쓰기는 ‘자가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언어능력에 문제가 없는 이상 집중해서 글 쓸 기회만 자주 제공해 준다면 글쓰기 실력은 스스로 향상됩니다. 그래서 쓰기 지도를 할 때는 글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지도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집중해서 글 쓸 기회를 체계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까’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이 첫 번째 과제만 해결되어도 공교육 논술 지도의 기초는 다지게 될 것입니다.
○ 쓰기 훈련의 세 단계
기왕이면 논술과 유사한 특성이 있는 글을 써 보면 더 도움이 될 것은 당연합니다. 예를 들어 연애편지를 많이 써 보는 것도 논술에 도움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논술은 한 마디로 논증하는 글입니다. 결론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들어 상대방을 설득하는 글입니다. 그런데 연애편지도 한편으로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을 유혹하고 설득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근본적 차이가 있긴 합니다. 논술은 논리적, 합리적 근거만 들어야 하지만 연애편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 설득을 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논리적 설득만이 아닌 정서적 설득도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설득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논술에 도움이 됩니다.
이처럼 어떤 글이건 논술과 공통점이 있는 글을 틈날 때마다 자주 써 보면 분명히 논술 학습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좀 더 체계적으로 쓰기 훈련을 하려면 크게 세 단계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1단계는 한 문단 쓰기 훈련입니다. 한 문단을 견고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이 논술의 기초 실력입니다. 한 문단을 논리적으로 밀도 있게 구성하지 못하면 절대로 좋은 논술 답안을 제출할 수 없습니다. 문단과 문단이 내용상 아무리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문단 하나하나가 논리적으로 빈틈없이 구성되지 않고서는 글의 완성도가 보장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결론(중심 문장), 한두 개의 근거(뒷받침 문장), 필요한 만큼의 부연 설명으로 이루어진 한 문단을 밀도 있게 구성하는 훈련이 먼저 필요합니다.
학생들의 답안을 보면 대개 전체 구성은 논리적입니다. 내용이나 문단과 문단의 연결은 무리 없이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껏 전체 구조는 잘 짜 놓고 각 문단은 막 써버린 답안들이 많습니다. 결국 각 문단은 마치 수필 같은 느낌을 주어 수필들이 모여서 논술을 이루는 오묘한 글이 탄생하게 됩니다.
2단계는 여러 개의 문단을 연결하여 완결된 한 편의 긴 글을 구성하는 훈련입니다. 통합 교과형 논술에서는 완결된 한 편의 글을 쓰는 빈도가 줄어들고 여러 개의 짧은 답안을 쓰는 경우가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긴 글을 쓰는 훈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대여섯 혹은 예닐곱 문단으로 이루어진 완결된 한 편의 글을 쓰는 훈련을 통해서만 입체적인 구성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이때 다양한 구성 방식을 훈련시켜 판에 박힌 구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학생이 한 편의 긴 글을 쓰라고 하면 ‘짧은 서론-긴 본론-짧은 결론’으로 이뤄진 판에 박힌 구성에 매달립니다. 두괄식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여 내용에 맞는 구성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3단계는 각 대학의 실전 문제에 적응하는 과정입니다. 작성 시간을 정해 놓고 기출 문제에 대한 답을 작성해 보면서 실전에 적응하는 훈련은 맨 나중에 해야 할 작업입니다. 고3 학생 중 논술 준비를 많이 해 두지 못한 학생은 시간의 여유가 없더라도 이 세 단계 훈련을 밀도 있게 축약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 ‘박정하 교수의 논술 비타민’을 이번 주부터 격주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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