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테이프 274개 핵폭풍]검찰 “毒이 든 과일 어찌할까”

  • 입력 2005년 8월 2일 03시 02분


코멘트
공운영씨 병실 찾은 X파일 수사 주임검사X파일 사건의 주임 검사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 김병현 검사(오른쪽)가 1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병실에서 공 씨를 조사한 뒤 주치의인 윤유석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남=전영한 기자
공운영씨 병실 찾은 X파일 수사 주임검사
X파일 사건의 주임 검사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 김병현 검사(오른쪽)가 1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병실에서 공 씨를 조사한 뒤 주치의인 윤유석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남=전영한 기자
독이 가득한 나무에서 딴 열매에도 독이 들었다. 그러면 열매에서 독을 제거할 방법은 없을까?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독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느라 고심 중이다. 테이프 내용은 구체적으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의 이학수 당시 회장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사이에 오고간 불법 자금 제공 논의. 이는 당초 참여연대가 고발한 부분이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며 검찰 수사의 본말(本末)이 뒤바뀌었다고 비난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수사 의지의 부족 때문이 아니고 법률적 장애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률적 장애’란 문제의 대화 내용이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라는 것. 일반적으로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는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른바 독수독과(毒樹毒果·Fruit of poisonous tree)의 법 원칙이다. 불법적인 방법(독수)에서 얻어진 증거(독과)는 증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판례에서 발달한 법 원칙이다. 한국의 형사소송 절차에 이 법 원칙이 똑같이 적용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통신비밀보호법은 불법도청에 관해 이 원칙을 명문(明文)으로 인정하고 있다. “도청으로 확보한 대화 내용은 재판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독수독과의 법 원칙에도 예외가 있다. ‘오염 제거의 예외’다. 예컨대 경찰이 A의 집에 대해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하던 중 다량의 마약을 발견했다. 경찰은 그대로 나온 뒤 ‘A의 집에 마약이 있다’는 내용을 법원에 말하지 않고 다른 내용으로 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은 다시 이 영장을 들고 A의 집을 수색해 마약을 압수했다. 이 같은 경우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오염이 제거됐다’며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또 도청 내용 중 “대통령을 살해하겠다”는 것처럼 긴급한 대처가 필요한 경우에도 ‘오염의 제거’가 인정된다.

검찰은 최근 연일 이 같은 ‘예외의 법칙’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러면 ‘불법 증거’라는 법률적 장애를 뛰어넘어 재벌과 정치, 언론, 검찰 등 핵심 권력 사이의 유착관계를 파헤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오염을 제거해서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 미국에서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된다.

한 검찰 간부는 “도청 대화 내용 수사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법리의 문제”라며 “마치 장애물달리기와 같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테이프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서창희·徐昌熙)는 1일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 씨를 조사했다.

이수형 기자 sooh@donga.com

▼검찰 철통보안 지켜질까▼

검찰이 전 국가안전기획부 비밀도청팀장 공운영 씨 집에서 압수한 불법도청 테이프 274개와 녹취보고서 13권의 내용에 대해 ‘철통 보안’을 거듭 다짐했다. 검찰의 다짐대로 ‘당대(當代)의 비밀’이 영원히 묻힐 수 있을까.

▽“정보를 아는 날부터 보안은 지켜질 수 없다”=검찰 관계자는 “비밀이 새면 검찰 스스로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안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에서 오랜 기간 정보를 수집하고 다룬 경험이 있는 ‘정보맨’들의 전망은 좀 비관적이다.

전 국정원 직원 A 씨는 “정보를 접한 사람이 둘 이상의 복수가 돼 버리면 그 두 사람 이상이 정보를 아는 날부터 보안이 지켜질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평생의 업(業)’=수사 검사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그 순간부터 무덤까지 안고 가야 할 비밀을 갖게 된다. 수십 년이 지나서 누설하거나 공개하더라도 면책될 수 없다.

그러나 수사 검사들이 변호사 개업 등을 계기로 검찰을 떠나면 현직에 있을 때와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또 정치권 등에 몸담게 될 경우 소속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보의 일부가 새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