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생 눈에 비친 2005년 7월의 법정

  • 입력 2005년 7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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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 법학과 2년 박성희 씨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2년 박성희 씨
《사법개혁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러면 사법은 변했을까? 법정과 판사의 모습은 어떨까. 법조인을 지망하는 한 법대 여학생의 눈에 비친 2005년 7월 법정 모습을 전한다. 》

여름방학을 이용해 대법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법원을 방문해 많은 경험을 했다.

7월 초 가정법원 판사실을 방문했을 때 경험한 담당 판사의 친절과 환대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담당 판사는 “학생이 소송 절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자료를 건네주었다. 소송 절차에 대한 설명도 상세하고 친절했다. 뜻하지 않은 배려와 친절 속에서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법과 법원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또 판사들이 매일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기록을 검토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정한 재판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도 느꼈다.

전체적으로 법원에 대한 좋은 인상이 많았다. 그렇지만 법원을 더 사랑하는 마음에서 아쉬웠거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을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부의 한 법정. 재판을 처음 보는 터라 호기심이 앞섰지만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엄숙함에 압도돼 맨 뒷자리에 앉아 재판을 기다렸다. 판사들은 재판 시작 시간이 10분이나 지났는데도 들어오지 않았다. 원고 대리인이 법정 경위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경위는 “법원에 행사가 있어 조금 늦으신다”고 말했다.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은 예정된 재판 시간보다 20분 늦게 법정에 들어왔다. 재판 시간이 지연된 이유가 무슨 행사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법관에게 재판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의아했던 일은 재판장의 반말과 재판 당사자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피고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피고가 부주의했던 것이 문제였겠지만 이를 나무라는 재판장의 태도는 지나쳤던 것 같다.

“일반인들이 판사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판사들이 하는 일은 당사자의 사건을 판결하는 것이지 당사자들의 사실 관계까지 일일이 파악하는 것이 아니오!”

“당신, 내 이름 알아요? 내가 점쟁이요? 피고 당신 이름이 ○○○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아나?…”

키득거리는 변호사들이 눈에 띄었고 당황한 피고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지켜보던 내가 다 무안해졌다.

법정의 중심은 판사이겠지만 그래도 판사가 재판 당사자들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부 법정.

‘업무상 횡령’ 사건에서 피고인이 확인해야 할 증거서류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채 재판에 들어온 것 같았다. 재판장이 어서 읽어보라고 했고 피고인이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재판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자, 우리도 바쁘고…내용이…이렇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재판 절차를 잘 몰라 재판장의 그런 말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피고가 직접 읽어보고 판단한 뒤에 그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조인을 꿈꾸는 내게 재판 방청은 뜻 깊은 일이었다. 인상적인 점도 많았고 배울 점도 많았다. 그러나 몇몇 법정에서 본 모습은 법원을 나오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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