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위안부할머니 고아장학금으로 5천만원 기탁

  • 입력 2000년 8월 30일 18시 35분


“얼마 되지 않는 이 돈을 부모가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고아들에게 유산으로 남깁니다. 이것이 나의 유언입니다.”

세상은 그에게서 빼앗아가기만 했지만 그는 자신의 전부를 세상에 베풀었다.

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삶터인 나눔의 집(경기 광주군 소재·원장 혜진·惠眞스님)에서 생활중인 김군자(金君子·74)할머니가 아름다운 재단(이사장 박상증·朴相增)에 고아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평생 모은 재산 5000만원을 기탁했다.

김할머니는 30일 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기증식에서 “이 나이에 겨우 이것밖에 못 내놓는게 부끄럽다”며 “자꾸 몸이 아프고 갈길이 바쁜 것같아 정리하는 마음으로 평소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고 말했다.

김할머니는 다른 군위안부 할머니들처럼 경제적 곤란과 질병, 정신적 고통 등 이승의 고통이란 고통은 모두 짊어지고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는 평소 관절염 등으로 약을 달고 살며 지팡이에 의지해야 거동할 수 있는 처지.

강원 평창군 출생으로 13세때 부모를 여읜 김할머니는 17세 되던 해 일본군에게 끌려가 20세 해방되던 해까지 중국 훈춘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귀국한 뒤에도 이집저집 떠돌며 가정부나 술집 생활을 하는 등 그의 삶은 고달프기만 했다.

1996년 매스컴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한 끝에 98년 3월 나눔의 집에 입주했다.

평생의 가장 큰 고통이 ‘외로움’이었다는 김할머니는 “고아로 자라면서 13세 때 야학교를 8개월 다닌 게 평생 배움의 전부”라며 “부모없이 자라는 고아들이 잘되는데 보탬이 된다면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김할머니의 기부금을 받아든 박상증 이사장은 “할머니의 5000만원은 5000억원에 필적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돈’”이라며 “이 돈을 고아들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별도관리하되 김할머니의 뜻에 함께 하는 이들을 모아 기금을 확대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김할머니 외에도 1월 타계한 김옥주(金玉珠)할머니는 전재산 2000만원을 ‘베트남 라이따이한 자녀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문명금(文明今·84)할머니는 정부배상금으로 받았던 4300만원을 전액 ‘베트남 민간인 학살진실위원회’에 내놓았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아픈 기억을 딛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을 계속 해왔다.

김할머니의 5000만원은 지난해 5월 받은 정부배상금 3150만원에 매달 정부와 광주군에서 지원받는 돈을 푼푼이 모은 것.

요즘도 약값으로 매달 50만원이 든다는 김할머니가 전재산을 다 내놓으면 약값은 어떻게 할까. “괜찮아, 난 매달 50만원씩 정부에서 나오니까….”

<서영아기자>sy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