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청와대 만찬]盧대통령 “정치는 선택…그건 내가 세계최고”

  • 입력 2005년 8월 31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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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열린 열린우리당 의원 청와대 초청 만찬에서 발언하는 노무현 대통령.
30일 열린 열린우리당 의원 청와대 초청 만찬에서 발언하는 노무현 대통령.
30일 청와대 만찬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대연정(大聯政) 문제로 충돌했다. 15개월 만에 청와대 영빈관에서다시 만났지만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노 대통령의 ‘임기 단축 불사’ 발언까지 나와 의원들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지난해 5월 29일 노 대통령이 총선 당선자 152명을 청와대에 초청했을 때는 국회 과반 의석 확보를 자축하는 전승 축하연 같았다. 참석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했고노 대통령도 ‘부산 갈매기’를 부른뒤 “너무 좋다. 100년 가는 정당을하자”며 흥겨워했다.

그러나 이날은 대연정 문제로 3시간여 동안 심각한 토론이 이어졌고 분위기는 시종 무거웠다. 만찬에는 열린우리당 의원 145명 중 131명이 참석했다.

만찬 후 일부 의원들은 “가슴이 답답한 시간이었다. 대통령과의 거리를 확실히 확인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의원들이 시종 무거운 표정으로 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민병두 임종인 김성곤 송영길 이근식 오영식 의원.석동률 기자

한 의원은 “임기 단축 발언은 대통령이 언제든지 결단만 내리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야당에 권력을 줄 수 있다’는 이전의 발언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라며 “참석자 상당수 가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 대통령은 만찬 인사말에서 “나의 새로운 제안은 내 전(全) 정치 인생을 최종적으로 마감하고 총정리하는 단계에 들어서서 마지막 봉사

를 하려는 것이다. 기득권의 포기, 희생의 결단이 필요하다면 그렇게할 것이다”라고 ‘임기단축 검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6명의 의원이 차례로 발언했다. 광주 출신인 김동철(金東喆)의원은 “지지도가 낮은 부분은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 대통령 말씀이 분란을 일으키기보다는 갈등을 종결시키기를 국민은 기대한다”고말했다.

송영길(宋永吉) 의원은 “굳이 연정론을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별 차이가 없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지역 문제보다 더 큰 차원에서 동북아 문제나 남북문제를 다뤘으면 좋겠다”고 연정반대를 언급했다.

장영달(張永達) 의원도 “의원들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게 되면 우리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것은 아닌지, 과연 지역구도 타파가 가능한지 의

문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초 발언자로 지정돼 있지 않던임종인(林鍾仁) 의원이 손을 들고“어떻게 5·18 광주학살의 주체와 손을 잡을 수 있느냐. 한나라당은기득권 수구 세력, 친일 분단 반민주 세력의 후예다”라고 말했다.

연정 반대 의견이 잇따르자 이번에는 친노(親盧) 직계인 부산 출신 조경태(趙慶泰) 의원이 나서 “발언자 선정에 문제가 있다. 연정에 찬성하는 의원들도 많은데 회의적인 의원만 발언을 시킨 것 아닌가. 이 또한 당내의 또 다른 지역주의다”라고 했다.

의원들의 발언이 끝나자 노 대통령 은 미리 준비한 A4 용지 메모를 꺼내1시간가량 마무리 발언을 했다.

지역구도 타파는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중차대한 사업이고,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한다. 지금도 ‘대통령 할래, 지역구도 해소 할래’라고 묻 는다면 나는 ‘지역구도 해소를 하겠다’고 답하겠다. 만약 대통령후보 때 지역구도 타파를 할 테니 당신이 후보를 포기하라고 했다면 나는 기꺼이 후보를 포기했을 거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자신에게 극도로 반대했던 사람에게 장관 자리를 줬다. 나도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왔던 당 지도자들을 입각시키지 않았느냐. 더 나아가 한나라당에도 그럴 수 있다. 한나라당인사를 총리로 임명한다면 그것만한 포용의 정치가 있을 수 있겠나.‘코드 정치’라고 하는데 역설적으로 코드 정치를 극복하자는 것이 연정이다.

한나라당이 과거에 고문하고 독재하고 인권 유린하고 부정부패하고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대통령 직선제를 네 번째 해오면서 일정한 지지를 받으며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정통성을 부정만 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 이전에 신채호 선생의 ‘역사란 아와 피아의 투쟁’이라는 말에 감동받은 적도 있으나 지금은 세계와 역사가 투쟁만으로 되는것은 아니다. 개혁의 속도 차이 또는 상대적 차이이지 근본적인 차이는 아니다.

정치는 선택의 예술이다. 나는 선택을 해 왔다. 선택의 경력으로치자면 세계 최고의 원로적 경지에있을 것이다. 우리도 선택의 기로에서 있다. 새로운 정치문화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고 전제된다면 2선 후퇴나 임기 단축을 통해서라도 노무현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지와 결단도 생각해봤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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