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수길/‘한국인 유엔총장’ 가능할까

  • 입력 2005년 1월 2일 17시 34분


코멘트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의 임기가 2006년 말 만료됨에 따라 아시아와 동유럽 지역에서 사무총장 후보 이름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선출은 지역윤번제가 관례여서 아시아 그룹은 차기 총장이 아시아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고, 동유럽은 지금까지 한번도 그 지역에서 사무총장이 선출된 바 없으므로 차기는 자기네 몫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홍석현 씨의 주미대사 내정과 관련한 사무총장 진출설을 계기로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필자는 1996∼97년 한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표로서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이 재선에 실패하고 아난 현 총장이 선출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 바 있다. 그 체험을 토대로 한국인 사무총장의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엔 헌장은 “사무총장은 안보리의 추천에 따라 총회가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안보리의 ‘추천권’이 중요하다. 안보리 추천에는 미국 등 5개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적용돼 어느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추천될 수 없기 때문이다.

1945년 유엔 창설 이래 7명의 사무총장은 언제나 지루하고 어려운 협상을 거쳐 타협적인 후보가 선출됐다. 1996년 12월 아난 현 총장의 선출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갈리 총장은 그의 첫 임기 중의 업적과 국제적 지지여론을 배경으로 1996년 초부터 재선운동을 은밀히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는 그가 지나치게 독자적이라고 본 데다 유엔 재정 확충을 위해 국제여행에 과세해야 한다는 그의 제안이 미국 대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갈리 총장은 제3세계와 프랑스 중국 러시아의 지지를 과신해 재선 의지를 굽히지 않고 그해 11월 안보리 투표에서 14개국의 찬성을 확보했으나 미국의 거부권으로 탈락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비공식 투표 끝에 결국 미국이 지지한 아난 총장이 선임됐다.

사무총장 선거의 정치적 성격과 복잡한 과정에 비춰볼 때 한국인의 총장 진출과 관련해서는 다음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미국이 한국인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 필자는 가부의 가능성이 다 있다고 본다. 미국의 지지를 얻어도 다른 상임이사국,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가 중요하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에서 사무총장이 나오는 문제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 전략적 고려가 있기 마련이다. 둘째,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프랑스어와 프랑스어문화권에 익숙한 사무총장을 주장해 왔고, 아직도 언어 문제를 중요한 요건으로 간주한다. 셋째, 세계보건기구(WHO) 총장이 한국인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두 개의 중요한 유엔기구 책임자를 한국인이 차지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 요인이다. 넷째, 총장 진출 계획은 한국의 2007년 안보리 진출 계획에 큰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섯째, 사티라타이 수라키앗 태국 외상이 이미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지지를 얻었다. 이 마당에 한국이 아시아 전체의 지지를 확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고려 요인이 있지만 커져 가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출중한 인적자원에 비춰 언젠가 다가올 사무총장 진출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대 총장들은 본인이나 소속 국가의 계획적 로비의 결과물이었다기보다 특수한 정치상황 속에서 미국 등 5개 상임이사국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박수길 한국유엔협회 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