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배민도 쿠팡처럼 ‘탈퇴 지옥’… 해지하려면 7단계 거쳐야

  • 동아일보

가입은 쉽게, 해지-환불은 미로
‘다크 패턴’ 장치로 탈퇴 어렵게
즉시 탈퇴 안 되고 예약만 받기도
사용자 60% “해지 어려움 겪어”

“몇 번 멤버십을 탈퇴하려고 시도해 보니 몇 단계를 거쳐도 최종 탈퇴가 이뤄지지 않더라고요. ‘탈퇴 지옥’에 빠진 것만 같았어요.”

배달앱을 자주 이용하는 김세빈 씨(21)는 배달앱 구독 서비스(멤버십)를 탈퇴하려다 큰 불편을 겪었다. ‘해지하기’ 버튼을 찾았지만 여러 단계를 거치는 동안 ‘계속 이용하기’ 버튼만 눈에 띄었다. ‘해지하기’ 버튼이 작고 흐린 글씨체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즉시 해지도 할 수 없었다. 다음 결제일에 맞춘 ‘해지 예약’만 가능했다.

최근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많은 이용자가 ‘탈팡(탈쿠팡)’을 선택했지만, 복잡한 탈퇴 절차가 발목을 잡으면서 정부가 쿠팡에 탈퇴 절차 개선을 요구한 가운데, 동아일보가 다른 주요 유통 서비스들의 탈퇴 절차를 점검해본 결과 비슷한 어려움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이용자가 탈퇴를 어렵게 느끼도록 설계된 구조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해지하는 데 7단계… 즉시 해지도 안 돼

11일 동아일보가 직접 확인한 결과, 복잡한 탈퇴 구조는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용자의 의사결정을 교란하거나 해지를 어렵게 만드는 기만적 설계가 국내 다른 대형 플랫폼에서도 흔히 나타났다. 이른바 ‘다크 패턴(dark pattern)’이라 불리는 장치였다.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의 경우 이용권 구매는 두 번의 클릭이면 가능했지만, 해지를 하려면 ‘설정→내 정보→이용권/쿠폰/캐시→변경/해지→해지 신청→혜택 홍보→해지’ 등 총 7단계를 거쳐야 했다. 특히 앱의 ‘설정’ ‘내 정보’ 메뉴 어디에도 해지 관련 안내가 명확히 표시되지 않아 이용자가 스스로 해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배달앱 요기요 역시 해지까지 5단계를 거쳐야 했고, 과정 중 홍보 팝업이 두 차례 노출돼 해지 흐름을 끊었다. 국내 최대 배달앱 ‘배달의민족’의 멤버십 ‘배민클럽’도 해지까지 7단계를 거쳐야 했고, 다음 결제일에 맞춰 해지 예약만 가능했다.

앞서 개인정보 유출로 논란이 된 쿠팡 역시 탈퇴까지 7단계를 거쳐야 해 비난을 샀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10일 쿠팡에 탈퇴 절차 간소화와 안내 명확화 등 시정조치를 요청했다.

그러나 국내 플랫폼 다수에서 해지 어려움이 확인됐다. 구독 서비스 탈퇴에 따른 환불 과정도 이용자 친화적이지 않았다. 멜론 등 일부 플랫폼은 이용권 구매 후 7일 내 환불 요청 시 고객센터나 일대일 문의를 거쳐야 했다.

● 10명 중 6명 “해지 어렵다”

소비자의 불편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서울시가 올해 4월 발표한 ‘구독 서비스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4%가 “서비스 해지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해지 메뉴를 찾기 어렵다는 응답이 52.4%로 가장 많았고, 복잡한 절차(26.5%), 가입·해지 방법의 차이(17.1%) 순이었다.

취소와 탈퇴를 방해하는 다크 패턴도 실제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OTT, 배달 등 5개 분야 13개 구독 서비스를 조사한 결과, 13개 중 11곳(84.6%)에서 해지·탈퇴를 방해하는 유형의 다크 패턴이 발견됐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는 10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해 가입보다 해지 절차를 더 복잡하게 설계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해지 단계 수를 최소화하고 접근성을 높이도록 전자상거래 사업자에게 의무도 부과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다크 패턴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어 제도 개선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다크 패턴은 소비자가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게 만드는 등 직접적인 손해를 유발한다”며 “앱 설계 단계부터 다크 패턴을 금지하고, 소비자가 문제 기업을 쉽게 신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멤버십 탈퇴#다크 패턴#해지 절차#환불 정책#구독 서비스#전자상거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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