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비서관 경질배경]권력형 비리 확산 차단 긴급조치

  • 입력 1999년 11월 26일 19시 46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6일 박주선(朴柱宣)대통령법무비서관을 전격 경질한 것은 잇따라 터져나온 ‘옷로비의혹사건’의 ‘의혹’에 대한 강한 진상규명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김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신임했던 박비서관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한 것은 24일부터였던 것 같다.

김대통령은 박비서관이 문제의 ‘최초보고서’를 김태정(金泰政)전검찰총장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실제로 검찰수사와 특검수사 결과에 큰 편차가 나타나자 의구심을 갖게 됐다는 것.

이에 따라 이날 저녁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검찰수사와 보고라인의 문제점을 적시했고 26일 최종보고서를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자 곧바로 박비서관을 경질했다.

이같은 김대통령의 신속한 조치는 김대통령이 최초보고서의 전달경위에 대해서도 강한 의혹을 갖고 있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실제로 최초보고서도 박비서관이 전달했을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청와대 인사들은 별로 없다.

김대통령은 잘못이 있다면 특검조사 등을 통해 하루빨리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후속조치를 마무리하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해법이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다고 참모들은 전한다. 박비서관의 전격 경질은 이런 과정을 촉진해 사태를 조기진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고민은 이번 파장이 쉽사리 가라앉기 힘들다는데 있다. 박비서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최종보고서를 사적(私的)인 라인을 통해 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축소 은폐를 방조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그것도 전달사실을 숨기다 언론보도 후 뒤늦게 시인한 것은 이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특히 보고서 유출에 박시언(朴時彦)씨라는 로비스트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상황은 더욱 꼬여들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권력형 비리’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만일 최초보고서까지 박비서관이 전달한 것으로 밝혀지면 현 정권의 도덕성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또 현 정권이 사활을 걸고 있는 내년 총선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최영묵기자〉y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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