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기 원구성 협상이 한발짝도 진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여야 어느 쪽도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같은 ‘힘의 균형’상태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현재 각 정당별 국회의석분포는 한나라당 1백47석, 국민회의 86석, 자민련 48석, 국민신당 8석, 무소속 3석. 한나라당이 재적의원(2백92석)의 과반선보다 1석 더 많은 극히 불안정한 ‘야대’상태다.
그렇지만 와병중인 최형우(崔炯佑)의원과 외국에 장기체류중인 노승우(盧承禹)의원이 국회에 출석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한나라당의 과반선은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가까운 시일내에 독자적으로 과반선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동안 활발한 듯했던 의원영입작업도 더 이상 큰 진척이 없다.
7개 지역에서 치러지는 ‘7·21’재보궐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3석만 건지면 원내 과반선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현재로서는 이같은 ‘여소야소(與小野小)’상태가 상당기간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동안 여든 야든 상대편의 협조를 얻지 못하고는 국회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여야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지 않고는 법안통과나 예산안처리는 물론 주요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 및 임명동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해임건의, 국정조사권발동 등 국회가 갖고 있는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처럼 여도 야도 안정적 다수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13대 국회와 15대 국회 초반에 ‘여소야대’구도가 이뤄졌으나 지금과는 상황이 판이하다.
13대 국회에서는 3당합당 전까지는 야 3당간의 긴밀한 공조로 ‘야대’가 위력을 발휘했고 15대 국회에서는 여당이 무소속의원을 대거 영입, 원구성이 이뤄지기 전에 과반수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었다.
이번 후반기 국회 원구성의 최우선과제인 국회의장 선출문제부터 여야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것도 지금의 국회 의석구도와 무관치 않다.
역대 국회에서는 여당이 다수당의 위치까지 확보, 자연스럽게 국회의장을 맡았고 여기에 야당도 전혀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여당이 맡아야 한다’는 국민회의측 주장과 ‘원내 1당이 맡아야 한다’는 한나라당측 주장이 맞서 협상의 고리를 쉽게 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어차피 이번부터는 국회의장이 당적을 버리게 될 것인 만큼 여야가 협상을 벌일 필요없이 자유투표를 하자는 주장이 조금씩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도 지금의 국회상황을 감안한 해법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