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나라에서 만든 스웨터를 샀다 주문하자마자 벨이 울려 나가보니 삐쩍 곯은 염소 한 마리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 털이 다 깎이고 군데군데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전화로 항의했지만 연신 사과만 할 뿐 해외 직배송이라 다시 보내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문밖의 염소는 억울한 표정으로 문짝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선 집에 들여 마시멜로를 띄운 핫초코를 마시게 한다 가만히 내 눈치를 보더니 식탁에 앉은 채로 존다 내 스웨터는 남쪽 섬에서 짜이는 중이다 염소 털에 파묻힌 직공들은 땀이 흐르는 한여름 속에 있다 나는 애인도 없고 새 옷을 사서 따듯한 겨울을 보내려던 것뿐인데 히말라야에서 온 난민과 방을 같이 써야 한다 냄새나고 코를 고는 염소 한 마리와
―차성환(1978∼ )
“나는 애인도 없고 새 옷을 사서 따듯한 겨울을 보내려던 것뿐인데”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가 무심함으로 무장한 사이에 누군가는 “털이 다 깎이고 군데군데 찢어진 상처”를 입는다. 우리가 100% 캐시미어로 만든 가볍고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겨울을 보내는 사이에 누군가는 “땀이 흐르는 한여름 속”에서 노동을 한다.
시인은 ‘캐시미어 100’이 “히말라야에서 온 난민”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그저 보여준다. 그의 집으로 찾아온(배달된) 염소는 “삐쩍 곯은 염소”에서 핫초코를 마시며 식탁에서 조는 생명체가 된다. 화자가 염소에게 자기 공간을 내주는 순간 그는 사람과 동등해진다. 왜 아니겠는가. 내가 가진 캐시미어 100% 스웨터가 몸을 가진 염소의 모습으로 옷장 문을 열고 나오는 장면을 상상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문제는 지금도 우리들의 스웨터가 “남쪽 섬에서 짜이는 중”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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