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장 환호 클수록 포모 심리 교차 경계
하락 대비 특정 섹터 쏠림보단 재정비 필요
기업 내면 살펴 장기적 이익 수렴 기대해야
조건형 한국투자증권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 그룹장
대한민국 증시가 전인미답의 코스피 5,000 고지를 넘어섰다. 1980년 지수 100으로 출발한 우리 자본시장이 반세기 만에 50배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이는 단순한 숫자상의 기록 경신을 넘어 한국 경제를 오랫동안 짓눌러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벗어나 명실상부한 글로벌 선진 시장의 반열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시장의 환호성이 클수록 투자자들에게는 불안감이 스며든다. 지수가 높아지면 ‘지금이 고점은 아닐까’ 하는 우려와 나만 상승장에서 소외될지 모른다는 ‘포모(FOMO)’ 심리가 교차하기 때문이다.
지금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숫자에 대한 맹신도 막연한 비관도 아닌, 객관적 지표에 근거한 냉철한 현실 인식이다. 주가지수가 5,000을 넘었다는 사실만으로 하락의 전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주가의 고점 여부를 가늠하는 대표적 잣대인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수익비율(PER)을 살펴보자. 현재 코스피의 PER은 약 10∼11배이고, PBR은 1.6배 안팎이다. 한국 증시가 과거 PBR 1.0배 미만의 극심한 저평가 국면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지표상 가치가 상승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과 대조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 증시의 PER은 20∼25배, PBR은 4.0배를 훌쩍 넘는다. 5,000 선의 한국 증시는 여전히 상대적 저평가 매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수를 지탱하고 있는 기업 이익의 질이다. 현재의 5,000 선은 과거의 유동성 파티와는 성격이 다르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반도체 기업들의 연간 영업이익이 100조 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는 등 기업의 기초 체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됐다. 지금의 주가는 단순히 돈이 밀어 올린 거품이 아니라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과 보유한 자산 가치가 재평가되는 과정의 산물이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증시는 ‘만년 우등생 후보’에서 ‘우등생’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단계에 가깝다.
그러나 장기적 낙관이 단기적 무모함을 보상하지는 않는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격언은 자본시장의 영원한 진리다. 단기간 급등한 시장은 언제든 차익 실현 욕구를 자극한다. 예상치 못한 대외 변수나 거시경제의 균열은 시장의 변동성을 키운다. 특히 금리 정책 변화나 지정학적 리스크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런 국면에서는 공격적 수익 추구보다 리스크 관리가 우선돼야 한다. 투자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버느냐보다, 위기가 찾아왔을 때 얼마나 덜 잃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투자자에게 전하고 싶은 첫 번째 원칙은 포트폴리오의 재정비다. 특정 섹터에 쏠린 자산 배분은 상승장에서는 달콤하지만, 하락장에서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두 번째는 투자의 시간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투자자들이 고점에서 무너지는 이유는 단기 시세 차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코스피 5,000 시대의 주역은 단타 매매자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믿고 기업과 함께 버텨온 장기 투자자들이다. 주가는 단기적으로는 심리에 좌우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이익에 수렴한다. 자신이 보유한 기업이 여전히 시장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지수 전광판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생산적이다. 기업의 본질 가치에 변화가 없다면 일시적 조정은 오히려 우량주를 싸게 담을 기회다.
마지막으로 현금 자산의 가치를 재인식해야 한다. 상승장에서는 현금 보유를 기회비용의 상실로 여긴다. 그러나 현금은 시장의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나를 지켜주고, 결단의 순간에 힘을 발휘하는 강력한 옵션이다. 자산의 일정 부분을 현금성 자산으로 유지하는 일은 하락장에서 심리적 안정을 주는 동시에, 남들이 투매에 나설 때 우량 자산을 헐값에 담을 수 있는 여력을 만든다. 진정한 고수는 상승장에서 현금을 비축하고, 하락장에서 주식을 모은다. 모두가 환호할 때 자산 배분을 점검하는 절제력이야말로 고점의 공포를 이겨내는 비결이다.
코스피 5,000 시대는 우리 자본시장이 성숙기로 접어드는 역사적 변곡점이다. 이제 우리는 ‘빨리 벌고 떠나는 시장’이 아니라 ‘건전하게 축적하고 함께 나누는 시장’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개인 투자자가 조급함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투자철학을 세울 때 5,000은 끝이 아닌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시장은 늘 변동하며 우리를 시험하지만, 원칙을 지키는 투자자에게 언제나 보상을 안겨줬다. 숫자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고 기업의 내면을 보라. 당신의 자산이 시간이라는 거름을 먹고 자라도록 인내하라. 그것이 5,000 선이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침몰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항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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