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김광현]‘근로자 추정’, 시한보다 사회적 합의가 먼저다

  • 동아일보

정부, ‘권리 밖 노동자’ 보호 패키지 입법 추진
근로자성 판단 기준-노동 선호의 충돌 등 우려
보호 확대, 일자리 축소 낳는 역설 경계해야
노사정, ‘한국형 유연안정성’ 방향 모색 필요

김광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
김광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
정부가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권리 밖 노동자 보호를 위한 패키지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배달 라이더와 대리기사 같은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종사자가 임금·퇴직금 관련 소송이나 부당해고 무효 소송 등 민사 분쟁에서 노무 제공 사실만 입증하면 일단 근로자로 추정하고, 사용자가 이를 부정하려면 ‘근로자가 아님’을 입증하도록 하는 ‘근로자성 추정제’다. 다른 하나는 계약 형식과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제정이다.

정책의 취지는 명확하다.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 경제의 확산으로 고용관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법적 보호 밖에 놓인 ‘회색지대’ 노동이 급증했다. 최대 87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이 ‘무늬만 프리랜서’라는 굴레 아래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입법의 속도와 방향이다. 근로자성 추정제는 경계가 모호한 노동 형태에 대해 일단 근로자로 추정한다. 이는 단순한 보호 확대를 넘어 근로자성 판단 기준의 불확실성, 비용 부담의 이동, 노동 선호의 충돌이라는 적잖은 파장을 예고한다.

첫째, 플랫폼 노동의 다면적 특성을 전통적인 ‘근로자성’ 기준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노사관계는 지휘·감독에 따른 종속성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업무를 배분하는 플랫폼 경제에서는 복수 플랫폼을 이용하는 ‘멀티호밍’과 자율적 업무 선택이 일반적이다. 특히 실시간 통제가 강한 ‘위계형 플랫폼’과 달리 수요자와 공급자 간 연결을 제공하는 ‘시장형 플랫폼’ 종사자는 자영업적 성격이 짙다. 이처럼 복잡한 현실을 ‘추정’ 규정 하나로 단순화하면, 현장은 실질적인 보호보다 ‘누가 사용자이고 근로자인가’를 다투는 소모적인 분쟁의 장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둘째, 보호 확대가 일자리 축소로 이어지는 역설을 경계해야 한다. 근로자성 인정은 최저임금, 퇴직금, 4대 보험 등 비용 부담 증가를 동반한다. 그 부담은 소비자 가격이나 플랫폼 수수료로 전가될 수 있고, 결국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지불 여력이 낮은 영세 업체나 스타트업은 고용을 줄이거나 사업을 축소할 유인이 커진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법이 오히려 취약한 일자리부터 흔들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셋째, 노동자 내부의 다양한 선호를 존중해야 한다. 모든 종사자가 근로자 지위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유연한 시간 운용을 선호하는 부업 종사자나 학생, 자율성을 기반으로 고수익을 올리는 전업 종사자에게 획일적인 근로자 지위는 오히려 제약이 될 수 있다. 근로시간 규율이 강화되거나 겸업 제한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운영된다면 이들은 보호를 받는 대신 선택권을 잃었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가 이번 입법에 비판적인 이유에도 주목해야 한다. 양대 노총은 이번 입법 추진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정의를 근본적으로 손대지 않은 채, 분쟁 단계의 제한적 추정에 머문다면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경영계는 ‘근로자가 아님’의 입증 책임 이동이 근로자성 분쟁을 늘리고, 법적 리스크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비판의 방향은 다르지만, 준비 없는 속도전이 혼란을 키울 것이라는 경고만큼은 일치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단기적으로는 지위와 무관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보호’를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안전과 건강권, 공정한 계약 조건과 절차, 보수 지급의 투명성 등은 노동자든 자영업자든 ‘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시대 변화에 발맞춘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강조하는 보편적 권리 보장과 지위 중립적 보호의 흐름을 따르되, 한국의 특수성과 종사자들의 다양한 선호, 영세 사업장의 수용성을 아우르는 균형 잡힌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인공지능(AI) 대전환과 저출산·고령화라는 구조적 도전 앞에 서 있다. 과거의 경직된 고용 안정 모델만 고집해서는 기업의 혁신과 노동 전환, 재도약 모두에 제약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노동의 유연성과 사회적 안정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는 ‘한국형 유연안정성’의 방향을 놓고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노동법의 사각지대 해소라는 명분은 옳다. 그러나 그 해법은 노동절이라는 상징적 날짜에 쫓긴 입법이 아니라, 충분한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거친 제도 개선이어야 한다. 서두른 입법이 정작 보호하려던 이들에게 또 다른 소외와 부담으로 되돌아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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