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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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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31〉

    말[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31〉

    말아, 다락같은 말아,너는 점잔도 하다마는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말아, 사람 편인 말아.검정콩 푸렁콩을 주마.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정지용(1902∼1950)사모하는 스승이 전북 군산의 작은 서점에서 정지용 시를 톺아보는 강의를 한다는 소식에 참…

    • 20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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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은 말이 없고[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30〉

    내일은 말이 없고[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30〉

    당신은 내일에 가보셨나요내일의 주소는 몇 번지지요어떻게 하면 내일에 가볼 수 있죠밤을 지새우고 나가보니 문 앞에 내일이 없네요내일이 달아났나요나는 내일에 대한 비전문가입니다나는 기다림의 불구자,기쁨이 오면 낯설고 맞이하는 데 서툴러요행복을 만나면 어색하고 부끄러워소리 내어 웃지도 못합…

    • 202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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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시미어 100[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9〉

    캐시미어 100[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9〉

    따듯한 나라에서 만든 스웨터를 샀다 주문하자마자 벨이 울려 나가보니 삐쩍 곯은 염소 한 마리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 털이 다 깎이고 군데군데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전화로 항의했지만 연신 사과만 할 뿐 해외 직배송이라 다시 보내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문밖…

    • 20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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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지[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8〉

    편지[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8〉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그걸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내일을 믿다가이십 년!배부른 내가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나는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천상병(1930∼1993)배부른 내가…

    • 20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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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를 세우고[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7〉

    차를 세우고[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7〉

    어디에 차를 세울까어제도 집 앞에 세우고 그제도 집 앞에 세우고 일주일 전에도 한 달 전에도 계속 계속 집 앞에 세우고 어김없이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세우지 못했다. 집 앞에서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집 주위를 빙빙 돌았는데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

    • 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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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카메라[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6〉

    나의 카메라[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6〉

    눈그것은 렌즈눈 깜박임그것은 나의 셔터머리카락으로 둘러싸인작디작은 암실도 있는그러니까 난카메라 따윈 매달고 다니지 않아요알고 있나요? 내 안에당신의 필름이 하나 가득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아래에서 웃고 있는 당신파도를 가르는 구릿빛 색깔의 눈부신 육체담배에 …

    •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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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아라리[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5〉

    작은 아라리[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5〉

    깜박했는데감자 삶았어네가 잘 때성한 놈들 골라껍질 깎고 소금 뿌렸지벼랑 밭으로나 보러 오기 전에친정 엄마 생각에또 울기 전에볼가심하렴―전윤호(1964∼)이 시는 작고 따뜻한 전갈 같다. 힘들 때 골방에 들어가 몰래 읽고 싶은 편지 같은 시다. 여기에 큰 이야기는 없다. 대단한 미사여구…

    • 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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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야, 무우야[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4〉

    무야, 무우야[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4〉

    무야, 무우야이 짧고 맑은 가을볕 아래네 희고 둥근 엉덩이로 흙을 조금씩 밀어내고그 속에 집 짓는 너를 생각하면나는 사뭇 진지해야 되는데무야, 무우야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는데무얼 잡고 힘을 쓰는지네 희고 둥근 엉덩이로 조금씩 흙을 밀어내고그 안에 들어가 사는 너를 생각하면나는 왜 이렇…

    • 20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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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3〉

    불행[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3〉

    그해 겨울 나는 불행의 셋째 딸이 되었어요. 언니들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되었지요. 나는 맨발로 눈이 쏟아지는 벌판을 달려요. 총총한 별들과 검은 돌멩이 같은 염소들 파랗게 울고 있는 벌판에서 나는 갓 태어난 늙은 아버지에게 흰 젖을 먹이고, 밤의 긴 머리카락으로 그의 얼굴을 …

    • 202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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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라로이드[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2〉

    폴라로이드[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2〉

    나는 달린다. 천천히 달려간다. 바라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골목은 못생겼다. 아무렇게나 생긴 곳에서 살아왔다. 거기에는 우산을 쓴 남자가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행상이 구름 모양의 콘을 내밀고 있다. 나는 달려간다. 죽지 않고 살아왔다.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 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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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과 비빔밥[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1〉

    여성과 비빔밥[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1〉

    이것은 실화이자 로망. 새벽에는 참 좋다.무엇이든지 목넘김이 즐겁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한낮보다 개키지 못한 이불은 성마르게 습기를 머금는다.어떤 것도 하지 못할 목마름. 나는 나물이 먹고 싶다. 그보다는나물같이 후루룩 마셔버리는 게 낫겠다 싶은 거다.기억비빔의 효용성우리는 정교한 …

    •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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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타리 밖[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0〉

    울타리 밖[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0〉

    머리가 마늘쪽같이 생긴 고향의 소녀와한여름을 알몸으로 사는 고향의 소년과같이 낯이 설어도 사랑스러운 들길이있다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제비가 날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그렇게천연히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마을이 있다오래오래 잔광이 부신 마을이 있다밤이면 더 많이 별…

    •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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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지 못했다[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9〉

    쓰지 못했다[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9〉

    그동안 끔찍한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는데그날 밤 얼굴 위에 수천 장 분량의 별빛이 쏟아졌는데눈동자가 오리온좌의 모서리를 스칠 때마다 몹시 시렸는데크게 운 다음에는 꼭 따뜻한 차를 마셨는데내가 끝내 돌아갈 곳은……한사코 확신을 거부했는데국경보다 공원이능선보다 강변이 더 좋았는데걷고 걸…

    • 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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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8〉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8〉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다는노래가 있었다이제 나이가 들고노력해도 안 되는 것,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인정할 때가 왔다가사가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젊은 친구들에겐 그런 믿음도 도움이 되리라하지만 그건 거짓말이 맞았다내가 내…

    • 20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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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움[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7〉

    싸움[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7〉

    감량 중인 복서는 말린 표고를 물고 하루를 겨우 버틴다 한다 저녁이 되면 접시에 버섯을 뱉는데 몽실몽실한 것들이 접시에 구른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을 버티고 나면 침이 말라 표고도 부풀지 않는데 스테인리스 그릇에 표고를 뱉으면 깡깡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바로 그때 복서는 새처럼 가볍다 귀…

    • 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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