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 운영해 현금 흐름 창출
반포 아파트 대신 택한 2층 주택
50代 후반 英 연수 민박문화 호감… 4개 방 꾸미고 서울시 호스트 선정
큰 병원 가까워 외국인 장기 투숙… 정성 담은 아침밥도 공실 없는 비결
공간 개조에 은행 빚 1억7000만 원… 최근에야 빚 갚고 저축 가능해져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단독주택 2층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한 추정림 씨. 추 씨 부부가 1층에 거주하며 손님 응대, 조식 제공 등 게스트하우스 운영과 관리를 직접 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 강남구 일원동 조용한 골목에 자리 잡은 단독주택. 재래식 철문을 열고 들어가 건물 외벽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아늑한 게스트하우스가 나온다. 침실 2개와 거실, 주방, 욕조를 포함한 화장실, 그리고 작은 테라스까지 갖췄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꽃과 식물이 싹터 도심 속 녹색 공간으로 변한다. 성인 세 명이 불편 없이 지낼 크기의 공간이다.
같은 주택 반지하에는 원룸 구조의 독립된 숙박 공간이 있다. 성인 한두 명이 머물기 적합한 아담한 방에 냉장고, 전자레인지, 식기류 등 일상에 필요한 것들이 고루 갖춰져 있다.
이 집 1층에는 추정림(80) 김정욱(82) 씨 부부가 산다. 아들 둘이 장성해 집을 떠나며 비게 된 공간을 숙박시설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2층 1개 실과 반지하 3개 실, 총 4개 호실의 월평균 매출은 800만 원. 평생 ‘OO 엄마’로 살아온 추 씨에게 이 작은 게스트하우스는 단순한 숙박업 공간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과 만나는 창이자 삶의 활력소다.
● 어학연수에서 얻은 아이디어
추 씨 가족이 이 주택으로 이사 온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5층 아파트에 살던 그는 친구와 함께 우연히 들른 이 주택에서 임대 수익의 가능성을 봤다. “2층도 있고 반지하 방도 있으니 1층에 우리가 살고 나머지 방은 세를 놓으면 노후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당시 일원동은 서울 외곽이라 개발이 덜 된 탓에 추 씨의 이사 계획은 가족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대출 부담도 컸고 특히 “혼자 집이 멀어서 비 올 때 같이 우산 쓰고 다닐 친구도 없다”는 사춘기 아들의 투정에 추 씨는 이사를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사하고 7∼8년 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삼성서울병원이 들어서면서 이 단독주택은 알토란 같은 자산이 됐다.
월세를 놓겠다던 생각이 게스트하우스 운영으로 발전한 계기는 추 씨가 50대 후반에 다녀온 영국 어학연수였다. 아들 둘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며 전업주부로 살아온 그에게 아이들이 독립하고 난 뒤 찾아온 빈자리는 견디기 힘든 공허함이었다. 그러던 차에 둘째 아들의 제안으로 떠난 영국 배낭여행이 5년 뒤 6개월 어학연수로 이어졌다. 영화감독인 큰아들이 영국에서 상을 받게 되며 다시 그곳을 찾을 기회가 생겼고 그는 간 김에 영어 공부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연수에서 영국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 문화를 접했다. 그는 “쓰지 않는 방 한 칸 내어주고 아침을 챙겨주며 친구가 되는 문화가 참 좋아 보였다”며 “우리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 경험이 씨앗이 됐다.
● 2층 공간을 중심으로 단계적 확장
2010년 무렵 서울시가 홈스테이 활성화 계획을 내놓았다. 외국인 관광객은 급증하는데 숙소가 부족하니 빈방을 관광객에게 내주고 한국 가정문화도 소개하자는 취지였다. 서울시는 ‘홈스테이 1만 가정’을 목표로 내걸고 관광 인프라 확충에 나섰다. 관광진흥법상 관광이용시설업에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이 추가됐다. 서울시는 한국형 홈스테이 인증 브랜드 ‘코리아스테이’ 호스트를 모집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마침 추 씨 집 2층은 두 아들이 유학 등으로 떠나며 비어 있었고 큰아들 내외가 살 수 있도록 독립된 살림집 구조로 이미 손질해 둔 상태였다. 그는 주저없이 호스트 신청서를 냈다. 서울시의 현장 실사 끝에 추 씨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시 선정 호스트가 됐다.
시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시작한 사업이지만 게스트하우스 운영 초기에는 자금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2층을 독립된 숙박 공간으로 개조하는 데 들어간 1억 원은 전액 은행 대출로 충당했다. 반지하는 원래 세입자에게 월세를 주고 있었는데 일부 세입자는 집을 험하게 써서 계약 만기 후 여기저기 수리하다 보니 수리비가 그간 받은 월세를 고스란히 삼켜 버렸다. 결국 반지하도 통째로 게스트룸으로 바꾸기로 했다.
다만 한꺼번에 공사를 밀어붙이는 대신 2층을 운영하며 모은 돈으로 세입자와의 임대계약이 끝난 반지하 방을 하나씩 고쳐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각 방마다 벽을 헐고 새로 세우며 단독 부엌과 욕실을 들이고 마루도 새로 깔았다. 2층부터 시작해 4개 호실로 늘리는 데 5년이 걸렸다. 반지하 리모델링에 든 비용은 총 7000만 원 정도였다.
그래도 50년 된 집이라 손볼 곳은 계속 생겨났다. 지난해에는 반지하 현관 도어락을 터치식으로 교체하는 데 100여 만 원, 2층 누수 보수에 120여 만 원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연간 유지관리비가 300만∼400만 원, 월 30만 원꼴로 나간다. 여기에 전기·가스·케이블·인터넷 등 관리비가 월 100만 원, 휴지·생수 등 소모품과 2층 손님 아침 식사 준비에 월 20만 원이 든다. 대출을 갚던 시기에는 세금까지 합쳐 매월 350만∼400만 원이 고정비로 나갔다. 대출 상환이 끝나고 월 매출도 안정 궤도에 오르면서 수익의 상당 부분을 저축하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 공실이 없는 비결
게스트하우스 내 침실 중 1곳.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생애 처음 게스트하우스 일에 발을 들인 추 씨 부부에게 사업이 자리 잡기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된 것은 삼성서울병원이었다. 1994년 개원하면서 이 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가 늘었고 환자를 간병하러 함께 온 가족이나 지인들이 묵을 곳을 찾다가 추 씨의 게스트하우스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이들은 보통 일주일에서 보름, 길게는 한 달씩 머무른다. 덕분에 공실이 거의 없다.
사업 초기에는 서울시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서울시는 코리아스테이 호스트들에게 손님을 연결해 주고 필요하면 침대 등 가구도 대여해 주면서 사업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게스트하우스의 근본적인 경쟁력은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마음을 쏟는 추 씨 부부의 정성에 있다. 먼 나라에서 환자 곁을 지키러 온 가족들은 대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 또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 손님들은 한국의 가정식을 궁금해 하기도 한다. 추 씨는 그런 이들을 위해 아침밥을 차려 내놓는다. 단호박죽, 미역국, 주먹밥. 국적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투숙객이 좋아하는 메뉴들이다.
추정림 씨가 손님과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찍은 사진으로 2층 한 벽면이 빼곡이 채워져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부부 간 역할 분담도 잘 되어 있다. 아내가 손님 맞이와 운영, 식사 준비를 맡는 동안 남편은 객실 청소와 설거지를 담당한다. 공군 비행사 출신인 남편은 청력이 많이 떨어져 손님 응대가 어렵다. 대신 그는 묵묵히 객실을 쓸고 닦는다. 청소하는 데 사람을 쓰려면 월 100만∼150만 원이 들지만 80대 부부가 역할을 나눠 직접 청소하고 관리하며 알뜰하게 운영하고 있다.
80세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추 씨는 오히려 이 일이 삶의 활력소라고 답한다. 그는 “옛날 반포 아파트에 계속 살았던 친구들은 재건축 덕에 수십억 짜리 으리으리한 집에 살게 됐지만 정작 쓸 돈이 없어 자식 눈치를 본다”며 “집값만 비싸고 현금이 안 도는 친구들이 요즘은 저를 제일 부러워한다”며 웃었다.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수입 덕에 두 아들에게 손 벌리기는커녕 오히려 밥값을 내는 추 씨 부부.
규칙적인 일상과 외국인 손님과의 교류 또한 노년기 우울을 막아 주는 약이 된다. 그는 요즘도 외국인 손님들과 소통하기 위해 매일 새벽 EBS ‘왕초보 영어’를 챙겨 본다. “해외에서 여행 온 손님들의 들뜬 표정을 보고 있으면 저도 행복해진다”는 추 씨의 얼굴에는 나이 여든에도 여전히 현역 사업가라는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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