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 ‘먹사니즘’ 이어 ‘잘사니즘’… 헷갈리는 우클릭 비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0일 23시 27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아래 왼쪽에서 세 번째)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마치고 민주당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 대표는 연설에서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한 3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제안하고 ‘주 4일제’ 도입 필요성 등을 언급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경제를 살리는 데 이념이 무슨 소용이며, 민생을 살리는 데 색깔이 무슨 의미인가”라고 했다.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념·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고 한 실용주의 선언의 연장선이다. 42분간 ‘성장’을 29번이나 언급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먹사니즘’을 넘어 모두가 함께 잘사는 ‘잘사니즘’을 새 비전으로 제시했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대내외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를 옥죄는 상황에서 성장 엔진을 재점화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그러자면 이 대표가 강조한 대로 낡은 이념이나 진영논리에서도 하루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재명식 실용주의’가 일관성이 부족하고 내용마저 모호하다는 데 있다. 반도체 분야 ‘주 52시간 예외’에 대해 이 대표는 “불가피하게 특정 영역의 노동시간을 유연화해도 그것이 총노동시간 연장이나 노동대가 회피 수단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 3일 정책토론회에서 “‘좀 몰아서 일할 수 있게 해주자, 이걸 왜 안 해주냐’라고 하니 할 말이 없더라”고 한 것과는 뉘앙스가 달라졌다.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제’로 나아가야 한다고도 했다.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유연화도 하겠다는 건데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대표는 “초과학기술 신문명이 불러올 사회적 위기를 보편적 기본사회로 대비해야 한다”며 한동안 언급하지 않던 ‘기본사회’ 화두를 다시 던졌다.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선 “지금은 나누는 문제보다 만들어가는 문제가 더 중요한 상황”이라며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했었다. 추가경정예산 통과를 위해서라면 민생회복지원금을 포기할 것이라고 하더니 3일 최소 30조 원 규모의 추경을 제안하면서는 민생지원금과 지역화폐를 다시 언급했다.

최근 이 대표는 중도층을 겨냥해 성장과 친기업의 우클릭 메시지를 냈다가 지지층이 반발하면 별다른 설명 없이 메시지를 거둬들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반도체특별법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먹사니즘’이든 ‘잘사니즘’이든 중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명확하고 구체적인 비전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수시로 말이 바뀐다면 실용주의로 평가받기 어렵다.


#잘사니즘#경제 성장#더불어민주당#이재명#중도층 겨냥#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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