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CEO 후보 또 낙마… ‘사기업 KT’ 인사를 누가 이리 흔들어대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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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의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됐던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 사장이 자진 사퇴했다. 연임에 도전해 차기 CEO로 사실상 확정됐던 구현모 현 KT 대표가 국민연금 등을 통한 정부 압박을 못 이겨 낙마한 후 두 번째다. 이달 말 주총에서 새 대표를 선임하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경영 공백이 현실화하면서 2만 명의 KT 임직원과 수백 개의 협력업체들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윤 사장은 최근 이사회와 만나 “내가 버티면 KT가 더 망가질 것 같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 결정에는 정부와 여당의 전방위 압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달 초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 7명은 기자회견을 열어 “구 대표가 자신의 아바타로 윤 사장을 세웠다는 소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보름 전 윤 사장이 최종 후보로 선정된 뒤에는 그와 구 대표를 향한 검찰의 수사까지 시작됐다. 구 대표 형이 세운 벤처기업을 재작년 현대차가 인수하는 과정에 당시 현대차 부사장으로 있던 윤 사장이 관여했고, 그 대가로 KT 임원이 됐다는 의혹을 한 시민단체가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게다가 국민 노후자산 관리를 위해 KT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은 주총에서 윤 사장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는 뜻을 공공연히 밝혀 왔다.

반면 43%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주주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적 의결권 자문사들은 잇따라 윤 사장 선임에 찬성을 권고했다. 개미 투자자들은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에 반발해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도 윤 사장이 물러난 건 정부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통신업의 특성상 CEO가 되더라도 정상적인 경영이 힘들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2002년 KT 민영화 이후 5명의 수장 가운데 연임에 성공해 임기까지 채운 건 황창규 전 회장 한 명뿐이다. 나머지 CEO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의 퇴진 요구와 뒤이은 검찰 수사라는 외풍에 시달렸다. 기업 친화를 표방한 현 정부에서도 ‘KT 잔혹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 지분 1%도 없는 KT의 차기 CEO 자리를 결국 친정부 낙하산 인사가 차지할 것이란 전망도 무성하다. 사기업 KT의 대표 선임을 둘러싼 정치 외압 논란, 대체 언제까지 봐야 하나.
#ceo 후보#사기업 kt#외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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