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의 쓸모[이재국의 우당탕탕]〈71〉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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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요즘 테니스에 푹 빠져 있다. 조카의 추천으로 시작했는데 배울수록 재밌고, 칠수록 즐겁다. 잘 치고 싶어서 동영상도 많이 찾아보고, 생전 안 보던 윔블던 대회도 챙겨보고, 틈만 나면 테니스 생각뿐이었다. 실내 테니스 연습장에서 두 달 동안 레슨을 받고 실외 테니스장으로 나와서 또다시 레슨을 시작했다. 주말이면 테니스 동호회에 게스트로 참여해서 경기를 했고, 더 자주 치고 싶어서 아예 테니스 클럽을 결성했다.

갑자기 안 쓰던 근육을 쓰다 보니 온몸이 아팠다. 처음에는 아킬레스힘줄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다음에는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섣부른 열정으로 덤벼들었다가 결국 아킬레스힘줄을 다치고 말았다. 받을 수 없는 공을 받아보겠다고 갑자기 달려가다가 ‘찌직’ 소리와 함께 넘어졌고, 병원에 가보니 아킬레스힘줄 쪽 근육이 손상됐으니 한 달 정도는 쉬어야 한다고 했다. 손상된 근육에 주사를 맞고 간단하게 깁스를 했다. 그리고 절뚝거리며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

걸을 때마다 통증이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테니스 생각뿐이었다. 하루도 참기 힘든데, 한 달을 어떻게 참지? 하지만 테니스를 계속 치려면 참아야 했다. 쉬는 동안 내가 치는 모습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찾아봤더니 자세도 무너져 있었고, 폼도 엉성하기만 했다. “아, 코치님이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쉬는 동안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운동 전후에 반드시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는 개념도 장착하게 됐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다시 코트에 나와 테니스를 쳤다. 그런데 전보다 공도 잘 맞았고, 자세도 좋아졌다. 내가 근육 손상 때문에 한 달 동안 쉬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어디 전지훈련이라도 다녀왔어? 왜 이렇게 좋아졌어?”라며 칭찬을 했다. 아, 무슨 일이든 급하게 달려든다고 잘하는 게 아니구나.

문득, 연극하던 시절 일화가 생각났다. 우리 극단은 공연을 하는 중간에 다음 작품을 연습할 정도로 쉴 새 없이 공연을 하는 극단이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공연만 하다 보니 타성에 젖어 연기가 늘지 않았고 연기가 재밌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느 날 나와 합을 맞추던 선배가 무대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다쳤고 한 달 동안 깁스를 하는 바람에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됐다. 그 선배는 매일 객석에서 공연을 봤는데 며칠 후 “객석에서 보니까 완전히 다르네. 우리 같이 싸우는 장면에서 몸을 객석 쪽으로 더 틀어서 연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다시 무대에 섰을 때 그 선배는 평소보다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나는 물어봤다. “형, 쉬었다가 왔는데 왜 더 잘해요?” “쉬는 동안 객석에서 봤더니 다른 게 보이더라고. 그동안 내 입장만 생각하고 연기를 했다면 이제는 관객 입장도 생각하게 됐어.” 그 선배는 휴식기 이후에 한 단계 성장한 연기를 보여줬고, 이후에 더 큰 배역을 소화하는 좋은 배우가 됐다. 그 휴식기 덕분에 좋은 배우가 됐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잠시 멈춘 덕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고, 자기가 갈 방향도 정하지 않았을까?

쉴 새 없이 도끼질을 하는 것도 좋지만, 쉬는 동안 도끼날을 가는 것도 중요하다. 무슨 일이든 오랫동안 하고 싶고, 끝까지 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다면 쉬는 시간도 기꺼이 즐겨야 한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쉬는 시간#쓸모#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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