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빵집[이재국의 우당탕탕]〈72〉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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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동네에 자주 가는 빵집이 있다. 가게 문을 오전 11시 정각에 여는데, 손님들은 10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큰 비닐봉지에 빵을 가득 담아서 사가기 시작하고 빵집은 오후 2시 정도에 문을 닫는다. 나도 몇 번 줄을 서서 빵을 사 먹었고 오후 2시 정도에 갔다가 빵이 없어서 허탕을 치고 온 적도 여러 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빵집 사장님이 나와 같은 빌라에 살고 계신 걸 알게 됐다. 나는 혹시 아는 사이가 되면 빵이라도 하나 더 주실까 하는 마음에 그 사장님을 볼 때마다 열심히 인사를 했다. 사장님도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셨고, 어느 날 오후 2시쯤 빵집에 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크랜베리 바게트 빵이 딱 하나 남아 있었다. 그 빵을 사들고 나오려는데 사장님께서 “안녕하세요. 3층에 사시는 분 맞죠?” 하더니 갑자기 올리브오일 한 병을 건네주셨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올리브오일인데 맛이 참 좋더라고요. 한번 드셔보세요.” 나는 공짜 선물에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매너를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럼 한 병 더 주세요. 사장님께서 주신 건 저희 먹고, 나머지는 친구네 선물할게요.” “아닙니다. 그럼 제가 부담을 드리는 거고요. 한 병 드셔 보시고 맛이 괜찮으면 그때 사셔도 됩니다.” 사장님께서 극구 사양하셔서 나는 사장님의 선물만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난 그 집 빵을 더 좋아하게 됐고, 사장님과 친해져서 더더욱 좋았는데 문제는 빵을 사먹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오전에는 줄이 너무 길어서 빵을 사기 힘들었고 내가 여유가 되는 오후 2시 정도에 가면 빵이 다 팔려서 살 빵이 없고, 아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사장님께 용기를 내서 말씀드렸다. “사장님, 빵을 조금만 더 많이 만드시면 어떨까요? 정말 먹고 싶은데 사먹기가 너무 힘들어요.” 사장님은 웃는 얼굴로 대답하셨다. “저희도 그러고 싶은데 이 공간에서 만들 수 있는 양이 그게 전부입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사실 약간 오해를 했다. 사장님께서 조금만 더 부지런하시면 나를 포함한 더 많은 사람이 맛있는 빵을 먹으며 행복할 텐데…. 그런데 얼마 전 아침 촬영이 있어서 오전 4시 30분에 집을 나설 일이 있었는데 빵집 앞을 지나다 보니 빵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뭐지? 이 시간부터 준비를 하시는 건가? 나중에 사장님께 물어보니 보통 오전 4시부터 준비하신다고 했다. “전날 반죽을 숙성시켜 놓고, 새벽 4시부터 나와서 준비하고 굽고 해야 오전 11시에 빵이 나옵니다. 공간이 좁아서 더 만들 수도 없고요.” 순간, 내 기준으로 생각하고 내 기준으로 판단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이 이야기를 자주 가는 커피숍 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저도 커피 공부 때문에 원형탈모가 와서 머리를 밀고 다니는 겁니다”라고 했다. “커피 공부요?” “커피 대회 준비하려면 공식대로 계산하고 추출하고 0.1초, 0.1g이라도 달라지면 맛이 안 나거든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해요. 그래서 저희 업계에서는 커피숍 하면서 원형탈모 없으면 ‘저 사람 요즘 커피 공부 안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 역시 직접 해보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감히 판단할 수가 없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빵집#동네빵집#커피숍#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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