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차별 규제, ‘쿠팡 육성법’ 변질
그 사이 韓 유통기업들 ‘종이호랑이’ 전락
미국에선 월마트가 아마존 대항마 역할
쿠팡 성장과정 보고도 차별 주장할 수 있나
박용 논설위원
지난해 말 국회 쿠팡 청문회에서 벌어진 설전은 ‘우리가 어쩌다가 쿠팡에 이렇게 끌려다니게 됐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했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Stop(그만)”이라며 답변을 가로막은 건 고압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가 “한국 정부에 협력하고 있다”며 함께 언성을 높인 건 3370만 명의 한국인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소명하러 나온 증인의 자세는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 국회를 훈계하려고 작심하고 나온 것처럼 뻣뻣하게 보였다.
만약 한국 기업 대표가 대규모의 미국인 개인정보 유출로 미 의회 청문회 증인석에 선다면 로저스 대표처럼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을까. 그 한국인 대표가 “정보 유출자가 3300만 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저장한 정보는 3000여 개”라고 주장한다면 미 의회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일까. 미국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은 한국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심지어 쿠팡의 일부 미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가 한국 기업을 위해 ‘미국 기업’을 차별 대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국가는 법과 제도에 근거해 행동한다. 국가의 차별적 행위를 문제 삼으려면 당국자 발언이나 조사 강도보다 쿠팡에 차별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오히려 한국엔 원양 오징어 어업부터 드론 산업까지 다른 나라 기업에 반사이익을 안겨준 역차별 규제가 너무 많다. ‘미국 기업’ 쿠팡 역시 자국 대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차별적 규제 덕분에 안정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유통시장은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세계 최고 유통기업인 미국 월마트와 프랑스 최대 유통기업인 까르푸는 채소 과일 육류 등 신선식품에 강점이 있는 한국 대형마트에 밀려 두 손 들고 떠났다. 그런 한국 기업들이 유독 2010년 소셜 커머스로 창업한 신생 기업 쿠팡 앞에서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2012년 도입된 한국의 유통산업발전법에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한국 국회는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대형마트의 영업을 제한하고 한 달에 이틀 의무휴업을 하게 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을 만들었다. 365일 주문과 거래가 일어나는 전자상거래 시장 경쟁에서 대형마트를 배제하는 차별적 규제였다.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투자를 받은 ‘미국 기업’ 쿠팡은 이 틈을 타고 물류센터 등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며 골목상권까지 치고 들어갔다.
이젠 대형마트 3사 매출을 다 합해도 쿠팡 한 곳보다 한참 적다. 마트 업계 2위였던 홈플러스는 파산 위기까지 몰려 있다.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유통산업발전법이 골목상권을 살리기는커녕 ‘쿠팡 육성법’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 덕분에 성장한 쿠팡의 투자자들이 이제 와서 차별을 호소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쿠팡이 질주한 한국과 달리 미국엔 쿠팡의 롤모델인 아마존의 대항마 역할을 하는 월마트가 건재하다. 아마존 매출의 약 5분의 1을 차지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외하면 월마트는 미국 내 유통 사업에서 여전히 아마존을 압도하고 있다. 월마트가 보유한 미 전역의 4600개 이상의 점포는 아마존을 압도하는 신선식품 배송과 가격 경쟁력의 원천이다. 월마트의 전자상거래 매출은 8개 분기 연속 20% 이상 상승했다. 이제 월마트 미국 매출의 약 4분의 1은 전자상거래에서 나온다. 한국과 같은 영업시간 규제가 미국에 있었다면 월마트의 변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정말로 쿠팡에 차별적이었다면 쿠팡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유통산업발전법을 14년간 방치했을 리 없다. 미국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이처럼 강력한 규제 보호막을 쳐주고 자국 기업과 소비자를 ‘을’로 만든 어리석은 정부가 한국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오히려 한국에선 쿠팡이 ‘잡아놓은 물고기’인 한국 시장을 차별한다는 불만이 크다. 대만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에게 제시한 보상책의 경우 금액만 한국과 같고 실질적인 혜택은 더 크다는 것이다.
쿠팡 주가 하락의 근본 원인은 한국과 대만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한 쿠팡의 경영진이다. 그런데도 쿠팡 투자자들은 차별을 호소하며 트럼프 행정부에 한국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사와 무역 보복을 청원했다. 그들은 쿠팡이 ‘미국 기업’이라고 강조하지만, 쿠팡 매출의 대부분을 올려주는 한국 소비자들은 그렇게 차별적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쿠팡이 한미 관계의 틈을 벌리고 한미 교역의 걸림돌이 된다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까”라고 했던 한국인들이 “쿠팡 없어도 된다”고 돌아서는 순간이 그들에게 진짜 위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