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국가는 이용자 보호를 위해 게임을 심사하고, 일정 기준을 통과한 작품만 유통을 허가합니다. 폭력성이나 선정성, 사행성처럼 이용자에게도 비교적 익숙한 기준들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단순히 ‘잔인하고 선정적이다’는 이유를 넘어, 각 국가의 역사·정치·종교적 맥락 때문에 금지된 사례들도 적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그런 이유로?” 싶을 독특한 사례들도 있는데요.
■ “으윽, 아픈 기억이!” ‘폴아웃 3’ 금지했던 일본
폴아웃3 / 베데스다 홈페이지
먼저 일본의 경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점에 미국으로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차례 원자폭탄 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즉사자와 이후 방사능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를 포함해 약 2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될 만큼 큰 사건이었는데요. 이 때문에 일본은 핵무기와 원폭 표현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죠.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2008년 베데스다가 출시한 ‘폴아웃 3’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 게임은 핵전쟁 이후의 황폐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 RPG인데요. 플레이 도중 ‘메가톤’이라는 마을에 설치된 핵폭탄을 직접 기폭할 수 있는 선택형 사이드 퀘스트가 등장하고, 소형 핵폭탄 발사기인 ‘팻 맨(Fat Man)’이라는 무기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기 팻 맨 / 베데스다 공식 폴아웃3 광고문제는 이 ‘팻 맨’이라는 명칭이었습니다. 실제로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코드명이 ‘팻 맨’이었기 때문이죠. 단순한 가상의 무기 이름이 아니라, 실존했던 원폭의 이름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에 일본 심의기관인 CERO는 문제를 제기하며 심의 거부 판정을 내렸는데요. 이후 베데스다 측은 무기 이름 ‘Fat Man’을 ‘누카 런처(Nuka Launcher)’로 변경하고, 메가톤 핵폭발과 관련된 퀘스트에서 직접적인 기폭 연출과 일부 표현을 삭제·완화하는 등 여러 조치를 취한 뒤에 일본에 게임을 선보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이 곰돌이 푸는 삿된 푸다… 이스터에그 때문에 ‘데보션’ 금지했던 중국
데보션 / 데보션 공식 홈페이지중국에서는 레드 캔들 게임즈의 호러 게임 ‘데보션’의 판매가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이 게임의 한 ‘이스터에그’가 원인이었는데요.
정확하게는 게임 속 배경에 있던 한 부적의 텍스처가 문제가 됐습니다. 부적에는 붉은 글씨로 ‘곰돌이 푸’와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의 이름이 적혀있었는데요. ‘곰돌이 푸’가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지만, 한때 시진핑을 곰돌이 푸와 닮았다는 인터넷 밈이 확산된 적이 있고, 이후 관련 이미지와 표현이 중국 내에서 검열 대상이 된 바 있습니다. 즉, 국가주석을 풍자하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것이죠. 이에 중국 이용자들의 반박이 거세지자 개발사 측은 결국 해당 이미지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중국에서는 판매가 막힌 상황이라고 하네요.
문제가 됐던 이스터에그 / 출처 게이밍 레딧아울러 ‘모여봐요 동물의 숲’ 역시 중국 본토에서 유통이 중단된 바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그래픽의 힐링 생활 시뮬레이션 게임이 돌연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자취를 감추자 많은 이용자가 의문을 품었는데요. 문제는 이용자가 자유롭게 문구와 이미지를 제작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에서 발생했습니다.
몇몇 이용자가 동물의 숲을 통해 온라인 시위를 진행했다 / 시민 운동가 조슈아 웡 X(구 트위터)때는 2020년, 홍콩 시위를 둘러싼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던 상황이었는데요. 일부 이용자들이 게임 내에서 민주화 지지 문구를 제작해 공유했고, 게임을 통해서 시위를 진행하는 흐름이 확산됐습니다. 이를 주시하던 중국 측에서는 주요 온라인 쇼핑몰에서 돌연 해당 타이틀의 판매를 중단해버렸죠.
이외에도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2월, ‘전염병 주식회사’라는 게임이 돌연 중국 앱스토어에서 삭제된 적이 있었는데요. 게임 내 가상의 전염병이 특정 지역에서 시작되는 설정이 현실과 맞물려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 다윗의 별이 떠오른다? ‘포켓몬’ 금지했던 사우디아라비아
포켓몬 카드가 금지됐던 시절이 있었다 / 포켓몬 홈페이지전 세계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IP인 ‘포켓몬’도 금지된 적이 있습니다. 2001년 당시 사우디의 최고 종교 기구인 ‘고등 울라마 위원회’는 포켓몬 TCG에 대해 ‘파트와(이슬람 법령)’를 내려 판매와 소지를 금지했는데요. 카드에 새겨진 일부 문양이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이나 기독교의 십자가를 연상시키고, ‘진화’ 시스템 역시 이슬람의 창조론과 충돌하는 다윈의 진화론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였죠. 이 파트와는 2016년 ‘포켓몬 GO’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사우디가 포켓몬 고 개발사의 게임 부문을 인수했다 / 나이언틱 홈페이지흥미로운 점은 시간이 흐르며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완화돼 포켓몬을 둘러싼 공개적인 금기 분위기도 사실상 사라졌다는 건데요. 이후 사우디국부펀드는 산하 기업 스코플리를 통해 ‘포켓몬 GO’ 개발사 나이언틱의 게임 부문을 35억 달러(당시 약 5조 750억 원)에 인수하기까지 했죠. 과거에는 파트와로 금지했던 콘텐츠를 이제는 직접 품게 된 것이 아이러니하네요.
■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우리나라도 ‘금지’ 게임이 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현실은 여전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영향을 미쳐 왔고, 게임 역시 예외는 아니죠. 이에 몇몇 게임이 국내에서 금지된 바 있는데요.
표지의 한글 간판이 인상적인 머서너리즈: 플레이그라운드 오브 디스트럭션 / 엑스박스 스토어대표적으로 2005년 출시된 머서너리즈: 플레이그라운드 오브 디스트럭션은 북한을 배경으로 한 군사 작전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에 국내에서는 적대적인 지역에서의 전쟁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판매를 금지시켰는데요. 2년 후인 2007년에서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이유로 게임을 국내에서도 선보일 수 있도록 제한을 풀어주었습니다.
2011년 출시된 홈프론트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 작품은 설정상 북한으로 한반도를 비록한 아시아 지역을 통일한 뒤 미국을 침공한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데요. 국내 정서상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지, 결국 심의 거부를 받아 한국에서는 정식 출시되지 못했죠.
이렇게 다양한 국가에서 각자의 문화적 맥락으로 몇몇 게임을 금지해왔는데요. 같은 게임이라도 어떤 나라에서는 단순한 오락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