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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반지하의 추억[이재국의 우당탕탕]〈70〉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입력 2022-08-19 03:00업데이트 2022-08-19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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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대학을 졸업하고 극단에서 연극하던 시절, 나는 친구네 집에 얹혀살았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눈칫밥을 먹으며 생활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됐고, 나는 그 집에서 나와야 했다. 가진 돈은 없고 연극은 해야 하고, 결국 큰 가방에 이불이랑 옷가지를 챙겨 극단 연습실에서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께 들키고 말았다.

“서울에 지낼 곳이 없어서 고향에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연극을 포기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카드를 주시면서 “은행에 가서 200만 원만 찾아와” 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은행에서 돈을 찾아왔다. “그 돈으로 있을 곳 구해 봐.” 선생님은 내 앞에 두 뭉치의 현금을 건네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하지만 돈을 다 받기 죄송스러워서 절반은 돌려드리고, 100만 원으로 지낼 곳을 구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다음 날부터 생활정보지를 뒤지고 다녔고 결국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짜리 반지하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지방 출신이라 그때까지 반지하가 뭔지 몰랐다.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연립주택의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자 반지하가 눈에 들어왔다. 정사각형 모양의 방에 쇠창살처럼 생긴 창문이 도로와 맞닿아 있었고 들어서는 순간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좋았다. 서울 하늘 아래 오로지 내 책을 쌓아두고 내 이불을 덮고, 나 혼자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내가 집을 구했다고 하자 극단 선배들이 냄비도 사주고, 참치캔도 사주고, 쓰레기통도 사주고, 집에 안 쓰는 텔레비전이 있다며 그냥 준 선배도 있었다.

그렇게 “내 집이 생겼다”는 환상에 취해 일주일 정도 지냈는데 어느 날 밤,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왠지 방 안에 누군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내 주변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움직임. 나는 벌떡 일어나 방에 불을 켰다.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는 잠자리에 눕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잠시 기다렸다가 불을 켰는데 세상에나, 방 안에 바퀴벌레들이 기어 다니다가 재빨리 책이나 장판 사이로 숨는 게 보였다. 맨정신에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강소주를 마시고 잠들었다.

또 하루는 극단에서 MT를 간 날, 오랜만에 삼겹살을 먹는다는 기쁨에 들떠 있는데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학생 빨리 와봐야겠어. 지하에 도둑이 들었어!” 아!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아직 삼겹살 한 점도 못 먹었는데. “저 도둑 들어도 가져갈 게 없어요. 지금 양평에 와 있는데 내일 갈게요.” “안 돼요. 경찰까지 와 있어서 빨리 와보는 게 좋겠어요.”

어쩔 수 없이 나의 반지하로 달려갔다. 그런데 역시나 없어진 게 하나도 없었다. 도둑이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훔쳐갈 걸 하나도 못 찾았는지 방만 어질러 놓고 그대로 도망을 친 것 같았다. 초라한 내 재산 때문에 내 청춘이 더 초라해 보였고, 그날 밤에도 나는 강소주를 마시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반지하 생활 2년 만에 나는 옥탑방으로 이사를 했고, 눅눅했던 시절과도 작별을 했다. 가끔씩 반지하 시절이 생각나긴 하지만 그립지는 않다. 생존하려고 거기서 버텼던 거니까.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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