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운전은 예술이다’[이재국의 우당탕탕]〈69〉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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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요즘 택시 잡기가 참 어렵다. 특히 퇴근시간이나 술자리가 파하는 오후 10시 전후, 또는 밤 12시 전후에는 그야말로 택시잡기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날도 술 한잔 하고 밤 12시가 넘어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고 있는데 역시나 택시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운 좋게 내 앞에서 손님을 내려준 택시가 있었고 난 잽싸게 택시에 올라탔다. “이태원요.” 목적지를 말하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그때 내 전화벨이 울렸고, 나는 연예인 섭외에 관한 통화를 짧게 끝냈다. 그 얘기를 들으신 기사님이 말을 건넸다.

“손님, 혹시 무슨 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방송 작가입니다.” “작가님이시구나. 혹시 명함 있으면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가방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기사님께 드렸다. “제가 책을 한 권 썼는데 보내드리고 싶어서요.” “아! 무슨 책인가요?” “제가 1973년에 군대 제대하고 처음 택시 운전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50년 동안 택시 운전을 했거든요. 운전하면서 느낀 점이나 잊지 못할 손님들에 대해서 썼습니다.” “그럼 자서전이네요. 제목 알려주세요. 제가 한 권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요. 그냥 기념으로 남기고 싶어서 제 돈 내고 출간한 거라 판매하는 곳은 없습니다.”

난 누구나 자서전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젊어서 깨달은 게 있는 사람은 젊어서 자서전을 쓰고, 나이 들어서 깨달은 게 있는 사람은 늙어서 자서전을 써도 상관없다.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개똥철학이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어떤 말이라도 상관없다. 자서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두려워하지 말고 일기 쓰듯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사님은 50년 동안 택시 운전을 하면서 자신이 태웠던 가장 잊을 수 없는 손님 베스트5, 가장 얄미운 손님 베스트5, 가장 잊을 수 없는 길 베스트5, 이런 식으로 손님에 대한 기억부터 택시 운전을 하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까지 모두 기록한 책이라고 자랑을 하셨다.

“책 제목을 뭐로 할까 고민했는데 무슨 일이든 최고의 경지에 올랐을 때, 와! 예술이다!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도 와! 예술이다! 축구에서 멋진 골을 봤을 때도 와! 예술이다! 그래서 제 택시기사 인생 돌아보니까 와! 택시 운전은 예술이다! 이런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책 제목이 ‘택시 운전은 예술이다’입니다.”

나는 택시 기사님께 명함을 한 장 드렸고, 그날 일을 잊고 있었는데 일주일 후 회사로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다. 뭐지? 하고 우편물을 뜯어보니 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 책 표지는 모범택시 앞에서 환하게 웃는 기사님 사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날 밤 술 취한 손님과의 약속을 기어코 지키는 기사님의 성실한 마음과 50년 동안 자기 직업을 지켜온 명인의 기품이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책을 펼치고 한번에 끝까지 다 읽었다. 기사님! 택시 운전도 예술이지만 기사님 멋진 인생이 더 예술이시네요!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택시 운전#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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