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선미]백신 교차 접종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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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인을 공통적으로 곤혹스럽게 하는 존재가 몇 가지 있다면 그중 하나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일 것이다. 백신 접종 초기부터 안전성 논란을 빚더니 일부 특이 혈전과의 연관성도 밝혀졌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자.’ 이달 초 독일을 시작으로 지난 주말 프랑스도 ‘교차 접종’ 카드를 꺼내 들었다. AZ로 1차 접종을 했더라도 2차는 다른 백신을 맞도록 하자는 것이다.

▷교차 접종을 추진하는 국가들은 비활성화된 병원체를 인체에 주입하는 바이러스 벡터 백신과 스파이크 단백질 정보를 담은 RNA를 넣는 mRNA 백신이 결국 같은 표적에 작용하기 때문에 상호 보완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AZ는 바이러스 벡터 백신, 화이자와 모더나는 mRNA 백신이다. 프랑스는 2월 초부터 3월 중순까지 AZ로 1차 접종을 한 55세 미만의 53만 명이 이 교차 접종의 대상이 된다고 본다. 세계보건기구가 교차 접종의 효과에 대해 “아직 적절한 자료가 없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마이 웨이’를 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 보건 당국의 조사 결과 20대는 AZ의 이득이 0.8, 위험이 1.1이라고 보도했다. 20대는 AZ로 잃는 게 얻는 것보다 많다는 뜻으로, 영국은 30세 미만에겐 AZ 외에 다른 백신 접종을 권고했다. 한국 질병관리청도 AZ의 위험 대비 이익이 20대는 0.7배라 위험하다며 접종 중단 5일 만인 오늘부터 재개되는 AZ 접종 대상의 연령을 30세 이상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교차 접종은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대체할 백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6월까지 국내에 들어올 백신 1808만8000회분 중 AZ는 절반 이상인 59%다. 가장 큰 비중이다. 세계적 백신 품귀 현상 속에 모더나, 노바백스, 얀센 등의 백신은 언제 얼마만큼이 들어올지 알 수 없는 깜깜한 상황이다. 미국에서 접종이 시작된 얀센도 혈전증이 보고돼 빨간불이 켜졌다. 쓸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결국 한국이 교차 접종을 하려면 현재 75세 이상에게 접종하는 화이자를 젊은층에게 바꿔 배정하는 등 연령별 접종 계획의 전반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팬데믹에서는 전문가 집단의 활약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한국이 접종 후진국이 된 데는 정부가 뒤늦게 백신 확보에 나선 것이 큰 이유지만 아무도 소신 있게 나서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유럽의약품청의 결정만 목 빠지게 기다리며 그 결과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는 국민들의 백신 불신을 절대로 해소할 수 없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백신#교차#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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