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김선미 동아일보 산업1부 김선미 기자 공유하기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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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인프라-인재-창업정신 충만… 세계 스타트업 투자가들에 매력적”“이곳에 다시 라면 냄새가 날 것을 상상하니 기쁩니다. 저희 공간에 입주하는 스타트업 직원들은 밤늦게까지 라면을 끓여 먹으며 일할 때가 많거든요. 한국은 인프라, 인재, 창업정신이 그 어느 나라보다 충만한 곳입니다. 투자 경기가 얼어붙고 있다고 해도 한국의 스타트업은 세계의 투자가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29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오토웨이타워 지하 2층에 구글스타트업캠퍼스(약 2000m²)가 다시 문을 열었다. 코로나19로 문 닫은 지 2년 만이다. 마이크 김 구글스타트업캠퍼스 아태지역 및 한국 총괄은 “재택근무 등 코로나 이후 창업 생태계가 확 바뀌었기 때문에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식도 유연해져야 한다”며 “이번에 새로 만든 최첨단 영상·녹음시설인 크리에이터 스튜디오는 누구나 신청만 하면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세대의 창업을 돕는 구글구글은 10년 전 ‘구글 포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두 명의 창업가가 창고에서 세웠던 구글에는 ‘다음 세대의 창업가를 돕자’는 조직원들의 공감대가 있었다고 한다. 전 세계에 6곳이 있는 ‘구글스타트업캠퍼스’도 그중 하나다. 창업가들이 임차료 걱정 없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창업 지원 공간이다. 수면방, 수다방, 샤워실 등을 통해 ‘집같이 편안한 일터’를 표방한다. 서울 캠퍼스는 세계에서 세 번째,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2015년 문을 열었다. 김 총괄은 “2012년 가장 먼저 문을 열었던 영국 런던 캠퍼스는 지난해 문을 아예 닫았다”며 “개인적 성향이 강한 영국인과 달리 한국인은 직접 얼굴을 보고 일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재개관한 캠퍼스에서는 비즈니스 영어 등 실용적인 교육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구글 스타트업 프로그램이 갖는 경쟁력은 구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해외 진출 연결이다. 김 총괄은 “해외로 나가려면 영어가 중요하다”며 “해외 투자가를 만났을 때 자신 있게 사업 비전과 계획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리더십,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지원구글은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에서 지금까지 100곳 이상의 스타트업을 지원했다. 지난해 말까지 누적 투자 유치금액은 5129억 원, 창출한 일자리는 3300여 개다. 주요 교육 분야는 마케팅, 머신러닝, 세일즈, 리더십 등. 일례로 비대면 모바일 세탁 스타트업 ‘런드리고’는 사업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이 캠퍼스의 10주짜리 클라우드 아카데미 교육을 받았다. 핀테크 스타트업 ‘핀다’는 해외 투자자를 소개받고 해외 콘퍼런스에서 패널 토크할 수 있었다. 김 총괄은 “최근에는 여성 창업가와 구글 여성 임원들의 일대일 멘토링을 강화하고 있다”며 “코로나 이후 기술자와 대화하는 방법 등 리더십 교육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캠퍼스 재개관을 통해 새롭게 입주하게 된 스타트업은 세 곳이다. 명품 가격 메타서치 플랫폼 ‘리얼리’, 인공지능 에듀테크 ‘프로키언’, 스포츠 블록체인 스타트업 ‘위디드’다. 설립 1∼2년 된, 직원 5명 규모의 스타트업들이 6개월 동안 이 공간을 ‘공짜로’ 사용하게 됐다. 김 총괄은 “나라마다 ‘뜨는’ 분야가 다른데 한국은 지금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 주목받고 있다”며 “6개월만 지나도 입주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해 이 캠퍼스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더라”며 웃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2-06-30 03:00
소형발사체 도전 ‘로켓 덕후’… “우주 탐사는 미래위한 투자”신동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대표(25)를 만나기 전, 그 회사 임원에게 물었다. “대표님은 어떤 분인가요?” 돌아온 답은 이랬다. “로켓에 진심이십니다.” 대전 서구 대덕대로에 있는 이 회사 사무실에서 신 대표를 만나자마자 당시의 대화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이름 밑에는 ‘비히클(운송수단) 엔지니어’, 회사 주소는 행정구역이 아닌 지구상의 위도 경도(36.3724○N, 127.4146○E, Earth)가 쓰여 있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1일 발사에 성공하면서 ‘넥스트 누리호’ 시대를 맞는 우주 스타트업들에 기대가 모아진다. 소형 발사체(로켓)를 만드는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대표적이다. 신 대표는 “국가에서 발사체를 만들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줘 우리 같은 민간기업에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발사 성공 압박이 큰 한국항공우주연구원분들에게 그동안 같이 개발하자고 말하기 어려웠거든요. 이제 선배 엔지니어들을 찾아가 배우고 싶어요.” ○ ‘이상한 사람들’이 이끈 ‘로켓 덕후’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 중인 소형 발사체 ‘블루 웨일’(‘푸른 고래’라는 뜻)은 길이 8.8m, 무게는 2t 미만이다. 2024년까지 50kg 이내의 인공위성을 탑재해 500km 태양동기궤도로 ‘운송’시키겠다는 목표의 ‘우주 모빌리티’다. 소형 발사체는 대형 발사체보다 발사 비용이 훨씬 저렴하고 제작 기간도 짧다. 글로벌 조사기관인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소형 발사체 시장 규모는 올해 13억2200만 달러(약 1조7200억 원)에서 2032년 46억2400만 달러(약 6조 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 대표는 “이상한 사람들이 제 인생을 로켓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이상한 사람’은 그의 할아버지였다. 국수 공장을 운영하다 은퇴한 할아버지는 ‘우주 덕후’였다. 2004년 화성에 착륙한 로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소식 등의 신문기사들을 오려 손자에게 읽어보라고 건넸다. TV 다큐멘터리 ‘신화창조의 비밀’을 함께 보면서는 “기술자를 우대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너도 저런 기술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이상한 사람들은 부모였다. “어머니 권유로 어린이천문대로 별을 보러 다녔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어요. 각종 실험도구를 사다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발열 반응을 연구했고요. 매미와 잠자리의 날개를 붙여둔 종합장은 아직도 갖고 있어요. 부모님은 ‘하고 싶은 걸 해라, 하기 싫은 건 하지 마라’고 하셨어요.” 세 번째는 선생님들. 중3 때이던 2012년 금성이 태양면을 통과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마추어 로켓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던 신 대표는 자신의 망원경을 학교 과학 선생님들의 용인하에 교문 앞에 갖다놓고 거의 모든 전교생이 이 현상을 지켜보도록 했다. 로켓단체와 인터넷 천문 동아리에서 의기투합했던 ‘이상한’ 친구들이 훗날 창업의 동지들이 됐다.○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신 대표는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외환위기 시절 해체된 국내 대기업을 다녔던 아버지가 이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워털루대에 입학해 두 달 다닌 뒤 그만뒀다. 고교 때 한국의 친구들과 원격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그램을 개발해 2억 원 넘게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로켓 개발이었다. “가만히 있는데 돈이 들어오는 건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전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한 달에 두 번 주말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와서 로켓 개발을 점검했다. 결국 홀로 귀국해 친구들이 봐둔 대전의 작업실에서 1년 동안 먹고 자며 매달려 2016년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를 설립했다. ‘고졸보다는 대학을 다녀보는 게 어떨까’ 생각하다가 KAIST에 들어갔다. 신 대표처럼 다양한 도전 경험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특기자 전형을 통해서다. 트럼펫 연주가 취미인 '이상한 교수님'인 권세진 KAIST 인공위성연구소장은 학생 사업가인 신 대표에게 지식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 주역인 박성동 쎄트랙아이 의장도 든든한 힘이 돼 주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지금까지 270억 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사람도, 국가도 비전이 있어야 한다”신 대표는 누리호 2차 발사 이전 레벨센서 문제가 발견된 것에 대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로켓의 복잡성을 눈으로 확인하면 발사체 성공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우주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신 대표는 “뜬구름 잡는 소리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거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비전이 무엇인지 선포해야 해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달에 가겠다’고 했던 건, 기술력이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죠.” 신 대표는 ‘탁월한 뇌뮬레이션(두뇌로 시뮬레이션) 성능을 갖춘 분’, ‘밥 먹을 때 과학 다큐를 보는 분’, ‘구름 사이 별들을 보며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돌연변이’ 엔지니어를 채용한다. 단, 그 상상력만큼은 뜬구름 잡는 게 아니다. “왜 그렇게 설계했는지” 자신의 선택에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한다. “왜 이 일이 하고 싶은가”도 집요하게 묻는다. “주변에 살아갈 이유를 못 찾아 ‘현타’(현실자각 타임)인 사람들이 많아요.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있으면 지구는 참 아름다운 곳이에요. 남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신 대표는 스페이스X가 팰컨 로켓을 쏠 때 미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 간 적이 있다. 미 전역에서 온 스쿨버스가 해변가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로켓 발사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였어요. 우주 탐사는 절대로 돈 낭비가 아니에요.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이죠.” 그는 ‘왜 소형 발사체인가’라는 질문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멋진 일”이라며 “큰 걸 하겠다고 실패만 하는 것도 무모한 일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유인 우주선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사명에 담긴 ‘페리지’의 의미: 달·행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워지는 지점. ‘우리가 우주의 초입’, ‘가장 가까운 별에 도달하고 싶은 열망’,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들을 담았다. #신 대표가 꼽는 최고의 SF물: 1960년대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 “옛날 그래픽이지만 우주를 탐사하는 진취적 기상이 눈물나게 멋있다”고.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2-06-24 03:00
[광화문에서/김선미]회사를 옮겨 다니는 ‘요즘 직원’들의 속사정국내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닥터나우’의 사무실에는 자리마다 팻말이 있다. 직원의 영어 이름과 성격유형지표(MBTI), 자신을 규정한 단어들이 쓰여 있다. 예를 들어 이 회사 장지호 대표(25)의 MBTI는 외향적 리더 유형인 ‘ENTJ’이고, 자기소개는 ‘#디테일 집착 #사용성 #워커러버(worker lover)’다.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MBTI를 MZ세대는 혈액형 검사만큼이나 친숙하게 여긴다. 결과를 맹신해서는 안 되지만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이 회사는 왜 MBTI를 써 붙였을까. “경력 입사자가 많아 서로에게 말을 걸고 상대를 존중하는 계기가 필요했어요.”(장 대표) ‘추앙’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TV드라마에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성적인 사람은 그냥 내성적일 수 있게 편하게 내버려두면 안 되나?” 직원들의 MBTI를 써 붙인 회사라면 내성적인 직원을 억지로 직장 동호회에 가입시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국내 기업계의 화두는 단연 인재 확보다. 턱없이 부족한 정보기술(IT) 개발자를 ‘모시는’ 일이 기업 생존의 기본 조건이 됐다. 코로나19는 인재 전쟁에 불을 붙였다. 재택근무 덕택에 회사 눈치 보지 않고 이직(移職) 면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연한 근무형태를 찾아 대기업을 떠나 스타트업으로 옮기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기업들은 조직문화 정비에 바쁘다. 고된 출근길을 뚫고 회사에 온 직원들을 환대해야 한다.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밥을 주는 스타트업 문화의 영향을 받아 대기업들도 ‘식(食) 복지’를 늘리고 있다. 한 대기업은 간식을 워낙 후하게 제공해 직원들이 집에 싸 갈 정도다. “물가가 무섭게 오르니 회사에서 준 구운 계란으로 장조림 만들어 먹어요.” 일부 개발자들이 회사를 옮길 때마다 몸값이 ‘억’ 소리 나게 치솟으면서 ‘돈을 좇는 메뚜기’라고 비난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가려진 ‘달의 뒷면’이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지난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집값을 다락같이 올려놓아 MZ세대를 서울 바깥으로 밀려나게 했다”고 말한다. ‘밝을 때 퇴근했는데 집에 도착하면 밤이 되는’ 고단한 청춘들에게는 미래의 꿈보다 지금의 돈이 시급하다. 대출이자는 오르고 월세 내기도 힘겨운데 당장 연봉을 올려준다면 이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들 눈에는 한 직장을 충성스럽게 다닌 선배보다 여러 회사를 거치며 몸값을 불린 선배가 능력자로 비친다. 많이 배우고 많이 일하지만 적게 버는 미국 밀레니얼세대를 다룬 ‘요즘 애들’이란 책은 번아웃(burnout·소진)이 우리 시대의 상태라고 한다. ‘노오력’해도 벽을 넘을 수 없어 ‘공정’에 매달렸던 한국의 MZ세대는 그나마 자신이 협상할 수 있는 몸값으로 스스로를 ‘추앙’하며 버텨내는 중이다. 그러니 회사가 원격근무 한다며 감시의 눈을 들이대면 그냥 싫다. “지쳤어요. 나갈래요.” 서울 강남에 집 가진 기성세대가 “요즘 애들은 돈을 밝히느라 엉덩이가 가볍다”고 탄식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쉽게 말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2022-06-07 03:00
스타트업은 청년만 하나? 정년 앞두고 디지털치료제 도전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전시회(CES)에서 청바지와 후드티 차림으로 내내 부스를 지키며 열띠게 설명하는 ‘시니어’ 창업가가 있었다. 디지털치료제 스타트업 ‘히포티앤씨’ 대표인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64)였다. 디지털 제품으로 치료 효과를 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이 회사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헬스/웰니스 분야에서 두 개의 혁신상을 받았다. 국내 정보보호 학계의 대가로 내년에 교수 정년을 앞두고 있는 그는 ‘스타트업은 청년만 해야 하나’란 질문을 품고 2020년 4월 스타트업을 차렸다. “은퇴하면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을 쓸 데가 없다. 그동안의 노하우와 경험을 살려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 ○ 디지털 게임으로 ‘마음의 병’ 치료 최근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 산학협력관에 자리 잡은 히포티앤씨를 찾아가자 정 대표는 VR 기기를 써보라고 건넸다. 눈앞에 책상과 문방구 이미지가 펼쳐졌다. 가상현실에서 가방 안에 가위와 펜 등을 집어넣도록 음성 안내가 나왔다. 이 일을 얼마나 정교하고 빠르게 해내는지를 18개 척도로 측정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진단한다. 그는 “국내 ADHD 환자가 150만 명이 넘는데 병원에서는 대부분 약물치료를 권한다”며 “게임으로 행동 치료를 하면 부작용도 없고 언제 어디서나 치료할 수 있어 의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디지털치료제는 아직 생소하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치료제는 미국 페어테라퓨틱스사(社)의 마약류 중독치료 앱인 ‘리셋’으로 2017년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FDA 허가를 받은 디지털치료제가 아직 20여 개에 불과하다. 최근엔 미국 아킬리사가 만든 ADHD 치료용 게임이 최초로 판매 승인을 받았다. 한국은 이제야 식약처 품목 허가를 받기 위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막 태동한 시장이다.” ―왜 이 시장에 뛰어들었나. “알고 지내던 의사가 함께 운동을 하다가 디지털치료제 얘기를 하기에 창업하기 전에 1년여 공부해봤다. 나의 정보기술(IT) 경험을 총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정보보호 분야에서 숱하게 사업 제의를 받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디지털치료사업은 직접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에 시장 규모가 10조 원이 넘는다는 전망을 접하고 더욱 도전의식이 들었다.” ―디지털치료제의 효능은…. “ADHD뿐 아니라 코로나를 거치며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늘고 있어 심각한 사회 문제다. 마음에 병이 들면 만사가 귀찮아져 움직이지 않게 된다. 명상 산책 심호흡 운동 소통만 해도 우울감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인공지능(AI) 모델로 분석해 개인별 맞춤형 치료를 제공한다.”○ “경력을 살려 미리 창업을 준비하라”인터뷰 사진을 촬영할 때, 정 대표는 회사 직원들과 함께 찍어도 되겠느냐고 했다. “스타트업은 대표 혼자 잘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경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전략을 짜고, 젊은 사람들이 실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히포티앤씨의 인적 구성은 신구(新舊)가 조화를 이룬다. 최연소 직원이 스무 살인데 비해 김문현 개발실장은 성균관대 정보통신대학원장을 지내고 은퇴한 AI 전문가다. 의학 자문은 삼성서울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진, 경영 자문은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신경공학 박사 출신인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 등이 포진해 있다. ―‘인맥 부자’라서 가능한 직원 구성 같다. “그동안 일하면서 만났던 인연들이다. 오래 전부터 알아온 윤 사장이 히포티앤씨의 미국 진출을 알아봐주고 있다. 보이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떻게 사회에 되갚을지 고민이다.” ―시니어 전문가들은 풀타임 직원인가. “은퇴한 전문가들은 급여를 덜 받고 주 2, 3회만 일해도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여성들의 경력을 단절시키면 안 된다. 일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기업도 정부도 도와야 한다.” ―창업이 두려운 50, 6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 많은 시니어들이 창업을 한다. 통닭 가게도 창업이지 않나. 자신의 경력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을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막걸리 마시며 소일하게 된다. 창업가는 청년 노년 구분할 것이 아닌, 그냥 창업가다. 인생은 넓은 우주에 점을 찍는 일 아닌가. 자신이 만족하는 점을 찍어야 한다.” 그는 20년 전, 시니어 시민기자들이 만드는 인터넷미디어 ‘실버넷뉴스’를 창간해 지금껏 운영하고 있다. “실버들을 위한 고민이 한 걸음씩 쌓인 것 같다”는 그는 생애 전 주기에 걸친 디지털치료제 개발로 ‘인생의 점찍는 일’의 궤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정 대표의 꿈: 미 CES의 키노트 연설자가 되는 것,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삶. #AI에 대한 견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더 좋은 전문가 역할을 하는 것.”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2-05-18 03:00
[광화문에서/김선미]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달에서 지구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 1961년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했던 소련의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우주는 매우 검지만 지구는 푸르스름했다”고 했다. 그로부터 60년이 흐른 지난해 9월, 우주 비행사가 아닌 네 명의 민간인이 우주에서 지구를 봤다. 일론 머스크가 2002년 설립한 민간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의 우주선을 타고 고도 585km까지 날아올라 사흘간 지구 궤도를 돈 것이다. 그들은 지구의 가족들에게 화상통화로 근황을 전했다.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고 있어. 창문으로 지구를 본다니까.” 인상적이었던 건 우주선 탑승객을 선정한 과정이다. 자수성가한 젊은 테크 기업가가 ‘인스피레이션 4’라는 이름의 이 우주비행 프로젝트에 지원해 동승자 세 명의 비용까지 댔다. 가족과 친구를 태운 게 아니다. ‘리더십, 희망, 관용, 번영’이라는 기준으로 함께 우주에 갈 동료를 선발했다. 이 중에는 소아암으로 다리에 보철을 넣은 여성 간호사도 있었다. 이들은 미 워싱턴주의 눈 덮인 레이니어산을 함께 오르며 ‘한 팀이 되어 성취를 이루는 것’을 훈련했다. 기업가는 앞이 보이지 않고 공기가 희박해져 힘겨워하는 동료들을 독려했다.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 해낼 수 있어요.” 그들은 정말 해냈다. 앞서 머스크에게도 ‘당신은 해낼 수 있다’고 믿어준 존재가 있었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다. 머스크는 ‘인류가 다(多)행성 종족이 되는 것’을 꿈꿨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고 별을 향한 인류의 의식을 확장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인류를 다른 행성에 이주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매달린 그는 지구와 환경이 유사한 화성을 목적지로 삼고 ‘완전한 재사용이 가능한 로켓’에서 우주여행의 답을 찾았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스페이스X는 로켓 발사에 실패를 거듭해 곤경에 빠졌다. 하지만 머스크는 “실패는 개발의 과정이며, 모든 발사는 발전의 기회”라며 사재를 쏟아부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광대이자 천재이며 관종, 선지자, 기업가, 쇼맨’이라 일컬은 머스크는 머스크여서 그렇다 치자. 주목할 점은 미 정부가 기업의 가능성을 보고 ‘실패의 기간’을 버텨낼 수 있도록 공공사업 발주를 통해 개발 자금을 댄 점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민간 기업의 주도와 정부의 파트너십으로 미국의 우주 탐사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일 윤석열 정부 인선에서 “굳이 만들 시점이 아니다”라며 과학교육수석을 신설하지 않았다. 과학기술부총리 신설 여부도 오리무중이다. 글로벌 과학기술 패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지만 돌다리도 두드려야 하는 국내 대기업들은 머스크처럼 경영하기 어렵다. 어제 인수위가 핵심 국정 목표로 내세운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실현하려면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과학정책 컨트롤타워 없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2022-05-04 03:00
글로벌 영양 불균형 해법은? 순식물성 대체식품서 ‘길’ 찾다경기 안양시에 있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더플랜잇’ 사무실에 들어섰다. 양재식 대표(36)를 비롯한 직원들이 모여 이 회사가 최근 내놓은 식물성 대체우유 ‘씰크(XILK)’를 시음하고 있었다. 양 대표는 “우유와 동일한 성분을 갖고 있는 콩과 해바라기씨 등의 원료를 배합해 만들었다”며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분들도 마실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2017년 설립한 이 회사는 계란을 넣지 않은 마요네즈와 크래커, 대체육(육류를 대체하는 단백질원)을 넣은 비빔밥 간편식 등 다양한 대체식품을 선보여 왔다. 왜 이 시장에 뛰어든 걸까. 양 대표는 “글로벌 영양 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라는 질문을 풀기 위해서라고 했다.○ “육류가 과도하게 소비된다”양 대표가 글로벌 영양 불균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동대 생명과학과에 다니며 저개발 국가들을 돕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다. 수업 시간에는 당뇨와 비만 등 주로 선진국에서 ‘많이 먹어 생기는 문제’들을 연구했지만 동아리에서는 ‘못사는 나라’ 사람들의 영양실조를 고민했다. 사료 농사에 치중하느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량 자원의 다양성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었다. ‘왜 같은 지구에 살면서 이토록 다른 영양 문제로 고민해야 할까.’ 그는 자본의 원리에 의해 인간의 식습관이 변하고 있다고 봤다. 사업적으로 ‘돈이 되는’ 육류가 과도하게 생산되고 판매되면서 과도한 섭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원, ㈜이롬의 생명과학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박사 과정을 밟던 그는 ‘누군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내가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 창업에 나섰다고 한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한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도 큰 영향을 미쳤다. ○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다른 맛”더플랜잇이 순식물성 대체식품을 만드는 작업은 철저히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이 회사는 식품에 포함된 성분 데이터를 지금까지 110만 개 축적했다. 이 데이터들을 배합해 대체식품을 개발한다. 원료의 분자 구조를 분석하면 우유와 비슷한 성분은 치즈나 버터보다 맥주에 더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양 대표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위해 좋은 먹을거리를 만들고 싶은 것이지 채식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고기를 먹는다고 비난하거나 먹지 말라는 게 아니라 고기를 먹지 않는 다른 선택지를 주고 싶다고 한다. 소비자 중에는 꺼리는 쪽도 있다. 대체식품의 맛과 향, 외형과 식감 등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다. 예로부터 ‘고기는 귀하고 좋은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대체육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찮다. 그래서 더플랜잇은 대체육을 토마토소스나 비빔밥 고추장에 넣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그는 “대체식품은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다른 맛일 뿐”이라며 “지구와 건강을 위해 일부러 먹는 것이 아니라 맛있어서 먹고 보니 지구와 건강에도 좋은 대체식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 고객 반응에 발 빠르게 대응양 대표가 지은 회사 이름은 ‘더플랜잇(ThePlantEat)’. 발음상 우리가 사는 행성(Planet)도 되면서 ‘지구를 위해 식물을 더 먹자’는 염원도 담았다. ‘씰크(XILK)’ 이름도 직접 지었다. ‘우유를 대체한다’는 의미로 우유(MILK)의 ‘M’ 위에 ‘X’를 그은 형태다. 전문 네이밍 회사의 도움을 받았냐고 묻자 그는 “스타트업은 가진 게 별로 없어 스스로 해야 하는 게 많다. 소비자가 한 번에 뭔지 알아볼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을 것,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말했다. 씰크는 이번 주부터 이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회사 측은 이 음료를 넣어 만든 아이스라테를 내왔다. 마셔 보니 두유 맛이 많이 났다. 양 대표는 “당초 이 음료는 카페라테 제조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는데 바리스타들로부터 두유 맛이 강하다는 피드백이 있어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며 “해바라기씨 대신 귀리, 콩의 단점을 보완하는 곡물 등을 넣어 개선된 버전을 다음 달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양 대표가 말하는 푸드테크 스타트업의 강점은 이처럼 고객의 반응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한 번에 완벽하게 제품을 내놓아야 하지만 스타트업은 시장이 필요로 하는 걸 확인한 뒤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이 회사 마요네즈도 초기보다 소비자 입맛을 반영해 고소한 맛이 강화됐다. 그는 “현재 20조 원 규모인 글로벌 대체우유 시장은 반드시 커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 ‘대체’로 여겨지는 먹을거리가 ‘기본’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 스타트업을 창업한다는 것=“하고 싶은 한 가지를 하기 위해 하기 싫은 99가지를 해야 하는 것.” #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스타트업의 규모를 키우기에 앞서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그 일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2-04-20 03:00
새와 나무를 관찰하는 ‘시민 과학자’들의 연대[광화문에서/김선미]화창했던 사월의 어느 날, 전남 구례의 화엄사 홍매화 앞에 섰다. ‘화엄사 홍매화 보기’라는 인생 버킷리스트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소원은 언제부터 왜 갖게 된 걸까. 구례에서 하동까지의 여정이 펼쳐지는 윤대녕의 단편소설 ‘3월의 전설’을 읽어서였을까. 마음의 행방을 쫓다보니 작은 단초들이 나왔다. 아파트 단지에서 듣는 새 소리와 이름 모를 꽃들…. 그들이 자연을 향한 관심을 차곡차곡 쌓게 한 것 같았다. 두 달 전 ‘서울의 새(Birds Seoul)’라는 이름의 탐조(探鳥) 모임에 나간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동네를 산책하며 계절에 따라 꽃과 나무가 변하는 걸 지켜보다가 새들이 눈에 들어왔고, 새 이름을 찾다가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이 모임을 발견했다. 서울에 서식하는 새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민 과학자’(과학에 관심 많은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탐구활동이었다. 이들을 만나 어린이대공원에서 오색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드러밍(drumming)’ 소리를 들었다.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뱁새가 그토록 귀엽게 생긴 줄도 처음 알았다. 혼자라면 ‘몰라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을 것들’을 동행한 시민 과학자들이 쌍안경을 빌려주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한 대학생은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펴냈던 조류도감 ‘한국의 새’를 들고 새를 볼 때마다 찾아봤다. 이진아 씨(53)는 10여 년 전 당시 초등학생 딸이 새에 관심을 갖자 딸과 함께 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동네의 보라매공원에서 본 검은딱새와 큰부리밀화부리는 알고 보니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찾아와 보고 싶어 하는 새들이었다. 새에 대한 관심을 나누고 싶어 2018년 시작한 게 ‘서울의 새’다. “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함부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겠죠.” 저술과 강연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진 시민 과학자들도 있다. 도시 생태에 관한 책을 지속적으로 펴내는 최성용 작가, 뒷산의 새를 그리는 이우만 화가….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老巨樹)’라는 책을 펴낸 김대수 씨(72)도 시민 과학자다. 호텔리어 생활을 은퇴한 후 전국의 노거수를 찾아다니며 관찰하고 기록했더니 한 권의 책이 됐다. 문화재청이나 산림청 홈페이지를 찾아야 알 수 있는 나무 정보들을 계절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나무는 씨앗이 떨어진 장소를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잖아요.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가지가 부러지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오랫동안 버텨온 나무들에 존경심이 듭니다.” 천년고찰 화엄사를 오가는 길에는 삼백 살 넘은 홍매화뿐 아니라 천년 된 산수유나무, 꽃송이가 눈처럼 날리는 섬진강변의 벚꽃, ‘눈물처럼 후두둑’ 지고도 남은 동백꽃도 있었다. 올해 쌀쌀한 봄 날씨로 꽃이 늦게 피느라 의외의 꽃 대궐을 볼 수 있었다. 버킷리스트에 매달리느라 비 내리는 3월에 억지로 찾아갔더라면 없었을 풍경이다. 꽃만 그럴까. 대전제를 세우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소중한 것들을 놓칠 때가 있다. 작은 씨앗이 자라 노거수가 되고, 작은 소통과 참여가 모여 대의(大義)가 된다. 그걸 봄의 자연이 가르쳐준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2022-04-07 03:00
“약은 왜 배달 안될까? 비대면 진료 앱으로 환자도 의사도 만족”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병원과 약국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속출했다. 이런 의료 공백을 보완해준 게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다. 닥터나우는 2020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310만 명이 이용했다. 휴대전화에 앱을 깔아 증상을 선택하면 전화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진료 후에는 모바일 처방전을 발급받아 약을 배달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닥터나우의 장지호 대표(25)는 한양대 의대를 휴학하고 창업의 길에 나섰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가 가졌던 질문은 “왜 약은 배달을 받을 수 없나”였다.○ 고교 때부터 품었던 비대면 진료의 꿈그가 “장지호라고 합니다”라며 허리를 깊게 구부려 인사했다. 앳된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도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했다. 국내 의료 시장에서 ‘뜨거운 감자’인 원격의료 산업을 이끄는 그의 첫인상이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공유오피스 일부를 사용하는 닥터나우 사무실에서 장 대표의 자리는 일반 직원들 옆자리였다. ―비대면 진료를 생각한 계기는…. “대전이 고향인데, 고등학생 때 대전역 앞에 있는 노숙인 의료봉사센터에서 1000시간 동안 의료봉사를 하면서 의사의 역할을 지켜봤다. 그때 장애인 노숙인들에게 약을 배달하고 전화로 진료도 하다가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환자도, 의사도, 함께 봉사하는 약사도 만족하는 걸 봤다.” ―원격진료를 하려고 의대에 갔는가. “몇몇 의대 면접을 볼 때 교수들이 ‘자네는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는가’ 물었다. ‘원격진료를 하고 싶다’고 답했는데 나중에 보니 원격진료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금기어였다(웃음). 대학 1학년 때부터 미국의 최대 원격진료 회사인 텔라닥과 스탠퍼드대 병원 등에 메일을 보내고 찾아갔다. 2015년부터 의사와 환자 사이의 원격진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일본에 가보고서는 ‘한국에도 곧 그 시장이 열린다’는 생각을 했다. 청강으로 코딩과 디자인을 배운 게 창업에 실질적 도움이 됐다.” 원격진료는 코로나 사태로 정부가 ‘한시적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면서 비대면 진료로 불리고 있다. 장 대표가 2019년 9월 닥터나우의 전신인 ‘닥터가이드’를 설립해 약 배달 서비스를 고민할 때만 해도 이 영역은 불법이었다. 1964년 개정된 약사법은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한시적 허용 이후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선보인 건가. “그렇다. 제 나이보다 두 배 이상 오래된 법 규제가 발목을 잡던 중 2020년 3월 대구에 살던 누나가 전화를 걸어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는데 약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창업 멤버들과 2주일 동안 밤을 새워서 ‘배달약국’ 앱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다. 만든 지 24시간 만에 6000명이 앱을 설치하는 걸 보고 신기했다. 배달약국을 전국적으로 확장시킨 게 지금의 ‘닥터나우’다.”○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장 대표는 2020년 12월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시작하면서 이미 알려진 ‘배달약국’ 대신 ‘닥터나우’라는 명칭을 썼다. ‘의사를 지금 만날 수 있다’는 뜻을 담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약사법은 개설 등록된 약국이 아니면 약국이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의약계가 비대면 진료를 반대하는 이유는…. “오진(誤診)과 의료사고 등을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닥터나우 이용자들은 만족도가 높다. 저희 부모님은 혈압 약, 할머니는 당뇨 약을 배달받아 드신다. 직장인도 병원에 가려고 반차를 내지 않고도 만성질환 약을 받아볼 수 있다. 비대면 진료에서 의사가 더 자세히 증상을 물어봐 준다는 평가도 많다. 대형병원으로 쏠릴 것이란 당초 우려들과 달리 비대면 진료의 80%가 1차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가 기존 시장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병원 안 가고 약 안 먹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시장을 연 측면도 있다.” ―어떻게 제휴 병원과 약국을 모았나. “닥터나우는 전국 700여 개 의료기관과 제휴를 맺고 있다. 처음에는 의대 동아리 명부를 보고 선배 의사들을 찾아가 참여를 부탁했다. 약국은 ‘오늘은 광화문, 내일은 선릉역’ 이런 식으로 무작정 방문해 설명했다. 지난해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라며 투자해 준 게 큰 도움이 됐다(지금까지 투자액 120억 원). 이제는 비대면 진료 메타버스 사업도 시작하려 한다.” ―닥터나우는 진료과목이 아닌 증상별로 의사를 선택하도록 돼 있더라. “진료과목은 공급자 중심 마인드라고 생각했다. 증상으로 해야 환자 중심이다.”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은 정부의 한시적 허용 방침 속에 지금 ‘시한부 인생’이다. 닥터나우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회 공동 회장 사이다. 장 대표는 “지금이야말로 원격의료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라며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은 만들어야 한다.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바퀴를 굴려 굴러가게 해야 한다”고 했다.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수상= 의대 다닐 때 배운 디자인 실력으로 2019년 미국 IDEA 디자인어워드, 2021년 독일 iF 디자인어워드를 수상했다. “이런 대회에 나가면 유능한 개발자를 만나 모실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했다고 한다. 실제 닥터나우의 ‘1호 개발자’를 수상자 모임에서 만났다. #창업 후 좌절했던 순간= “단 한순간도 없다. 아직까지는 매일매일이 떨린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2-03-30 03:00
맞춤형 콘텐츠, 패션엔 어떻게 쓸까? 맞는 옷 추천 Z세대 사로잡아요즘 국내 10, 20대에게 강력한 패션 인플루언서가 있다. 올해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스타트업) 진입이 예상되는 패션 쇼핑앱 ‘에이블리(ABLY)’다. 교복 위에 입는 후드 티, 놀이공원 갈 때 입는 반바지 등을 1만∼2만 원대에 살 수 있다. 페이스북에는 4만3000여 명이 멤버로 활동하는 ‘에이블리 진심녀들’이라는 그룹도 있다. 상황에 맞는 옷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또래들의 댓글이 달린다. 이 앱을 만든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의 강석훈 대표(38)는 국내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인 ‘왓챠’를 공동창업했던 인물이다. 왓챠처럼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패션산업에 구현할 수는 없을까. 강 대표가 2018년 에이블리를 시작하며 품었던 질문이다.○ “‘패알못’이라 선입견 없었다” 서울 강남교보타워에 있는 에이블리 사무실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발렌시아가’ 운동화가 먼저 눈에 띄었다. 모자와 맨투맨, 바지는 검은색이었다. 입은 옷의 브랜드를 물었더니 “PPL(간접광고)이 될까 조심스럽다”면서 “옷은 ‘준지’, 모자는 ‘우영미 파리’”라고 답했다. ―스스로를 ‘패알못(패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던데. “워낙 안 꾸미니까 ‘회사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완벽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패알못이었던 것 맞다. 그랬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다양한 사용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강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 중퇴다. 4학년 1학기를 끝내고 공익근무를 마치던 시기에 친구들과 시작한 “왓챠에 미쳐” 휴학 학기가 다 찬 것도 모른 채 제적당했다. 이후 “20대 공동창업자들과 동아리처럼 회사를 운영하다가” 왓챠를 나왔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에 가는 건 생각 안 해봤나. “경기 수원 외곽지역에서 자랐는데 시내의 학교를 다니려면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와야 했다. 그 시간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폐지 줍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의 불평등한 구조를 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티브 잡스의 앱스토어를 보면서 누구나 개발할 줄 알면 도전해 재능을 성취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왓챠의 경험이 에이블리로 이어졌나. “왓챠를 할 때 가졌던 문제의식은 사람들이 블록버스터만 주로 본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다양한 좋은 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그걸 추천해주자는 생각을 했다. 에이블리도 같은 발상이었다. 패션을 콘텐츠로 접근해 각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넥스트 커머스’ 생태계 통해 창업 도울 것” 유튜브에 ‘에이블리’를 치면 ‘억대 매출 달성한 에이블리 학생사장 브이로그’ ‘열여덟 살에 쇼핑몰 창업하기’ 등이 뜬다. ‘에이블리 입점’이란 검색어를 입력하면 수많은 후기가 나온다. 에이블리는 입점 조건만 맞추면 누구나 옷을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현재 3만 명의 ‘셀러(판매자)’가 에이블리를 통해 상품을 팔고 하루 112만 명이 이 앱을 이용한다. 그런데 강 대표는 에이블리를 패션 쇼핑앱 회사라고 일컫지 않는다. ‘넥스트 커머스’라는 생태계를 만드는 회사라고 강조한다. 다른 경쟁회사들이 ‘있는 브랜드를 모아 보여주는 곳’이라면 에이블리는 ‘창업을 돕고 취향을 찾도록 도와주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에이블리에 10대가 많이 모이는 이유는…. “에이블리는 1인 판매자를 돕는 플랫폼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기성 브랜드보다 저렴한 상품이 많았다. 값싸고 다양한 스타일로 소비하려는 사용자들이 모이다 보니 그중에 10대가 많았다. 지금은 10대뿐 아니라 20∼40대도 동일한 비중으로 에이블리를 이용한다.” ―에이블리에서 보여주는 옷들이 10대가 입기엔 성숙한 것들도 있다. 미래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는가. “패션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10대 문화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게 될 거야, 이게 안 될 거야’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도 부모 세대는 모르는 또래 문화가 있었는데 이게 양지로 떠오른 게 아닐까. 요즘 10대는 유행보다 자신의 취향을 따르고 남의 취향도 존중한다. 브랜드의 설명보다 또래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궁금해한다. 더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 시대가 왔다.” ―에이블리가 옷값에 거품을 뺀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옷값은 브랜드 등 여러 요소로 매겨지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에이블리가 과도한 유통망을 줄이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걸러내는 역할은 했다고 생각한다.” 에이블리 화면은 개개인의 쇼핑 패턴에 따라 다르게 노출된다. “한국인의 취향지도를 그리고 있다”는 강 대표는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서비스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사람을 보는 관점을 키운 책들=①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커뮤니티의 성장과 구조에 대한 고민) ②나관중의 ‘삼국지’(각 인물에 자신을 투영해 수양) ③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인간 정신의 위대함) ④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내 삶과 선택의 주체가 내가 아닐 수도 있다. 늘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⑤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다음 회에는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닥터나우’의 장지호 대표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 기업과 창업가에 대한 질문이 있으면 startup@donga.com으로 보내주세요.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2-03-21 03:00
[광화문에서/김선미]故 이어령과 김정주가 남긴 꿈의 실행력과 사명의 씨앗한국 사회에서 ‘천재’로 불렸던 두 명이 지난달 말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떴다. 각각 88세와 54세로 생을 마감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과 김정주 넥슨 창업주다. 둘은 2010년대 초반 처음 만났다. 이 자리를 함께했던 지인에 따르면, 당시 이 장관은 김 창업주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정주는 만주 벌판을 달리는 21세기 칭기즈칸이다. 디지털 유목민을 이끄는 리더다.” 세 시간이 넘도록 둘은 미래 세대에게 희망이 되는 사업을 얘기했다고 한다.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둘에게는 의외로 공통점이 있다. 우선 ‘호기심 천국’인 얼리 어답터였다. 이 장관은 1980년대 후반부터 워드프로세서와 XT급 랩톱 컴퓨터를 사용했다. 1989년 ‘아래아 한글’을 개발한 국내 벤처 1세대 이찬진(현재 포티스 대표)을 알아보고 밀어준 것도 그였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인 김 창업주는 1988년 일본항공 장학생으로 선발돼 일본에서 컴퓨터 게임산업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봤다. 둘은 예술을 사랑했다. 국내 최초의 종합예술학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이 장관의 문화부 임기 마지막 날 설치령이 통과돼 1993년 개교했다. 초등학교 때 이화경향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1위로 입상한 뒤 미 줄리아드 예비학교를 다녔던 김 창업주는 경영활동을 하면서도 한예종에서 예술경영 전문사 논문을 마쳤다. 지인들과 ‘313 아트 프로젝트’ 갤러리를 설립해 다니엘 뷔렌 등 유명 작가들을 소개하며 국내 미술계 수준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질문하고 꿈꾸고 실행한 힘도 공통점이다. 어릴 때부터 ‘질문 대장’이었던 이 장관은 “물음표가 있기 때문에 느낌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한계를 두지 않고 꿈을 품었기에 다들 “안 된다”고 하는 걸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 김 창업주의 꿈은 ‘한국이 세계를 이끄는 기업가의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선문답 같은 얘기를 했지만 그는 상상력 너머의 세계를 꿈꾸고 자신의 ‘날아다니는’ 생각을 붙들어 사업으로 옮겨냈다. 두 사람이 남긴 것은 사명의 씨앗이다. 해외에서 사업을 해왔던 한 40대 사업가는 6년 전 이 장관을 만난 뒤 삶의 목적이 바뀌었다. 이 장관이 강조한 디지로그(digilog·생명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두 개의 스타트업을 차렸다. 이 장관이 “금빛 학이 군무를 추는 것 같다”며 이름 지어준 한국의 난초 종자(‘금학’)와 김치에너지드링크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에서 빛난다는 생각은 김 창업주도 같았다. 될성부른 K콘텐츠라면 스타트업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몇 년 전 이 장관을 만났을 때 그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과학시간에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는 학생과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학생이 있어요. 물이 된다는 아이들만 사회 요직을 차지하는 교육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감히 생각해 본다. 이 장관과 김 창업주는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했던 외로운 천재들이 아니었을까. 압축 성장을 하느라 여유가 없던 한국 사회가 이제는 천재들을 훨훨 날게 할 수 있는가.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2022-03-07 03:00
“AI 딥러닝 기술로 암 정복될까요” 공학박사-전문의가 뭉쳤다대개 20년 정도 경험을 갖춘 의사는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그만큼 경험의 축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갖는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빠른 속도로 더 많은 데이터를 습득하면 진단도 더 정확해지지 않을까’. 2013년 설립된 국내 의료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루닛(Lunit)’은 이런 질문을 갖고 그 답을 AI에서 찾았다. 루닛의 목표는 뚜렷하다. AI로 암을 정복하겠다는 것, 서범석 루닛 대표(39)는 “루닛의 AI가 지금까지 학습한 데이터가 약 400만 건”이라며 “이는 흉부 엑스레이는 150년, 유방촬영술은 120년의 경험을 가진 전문의(醫) 수준”이라고 말했다.○ 딥러닝 AI가 폐암과 유방암 진단 루닛의 대표 제품은 2018년 나온 ‘루닛 인사이트’다.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한 AI가 흉부 엑스레이나 유방촬영술로 찍은 영상을 분석해 폐 질환이나 유방암을 진단한다. 루닛 인사이트의 판독 정확도는 97% 이상이다. 흉부 엑스레이와 유방촬영술을 판독하는 과정에서 30% 이상의 위음성률(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암일 확률)이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루닛 인사이트는 국내 톱10 병원 중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7곳이 사용 중이다. 40여 개국, 500여 곳의 의료기관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의료 분야의 전문성을 살리고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루닛 창업자인 백승욱 의장(39)과 서 대표는 AI 연구 인력뿐 아니라 전문의와 과학 자문단을 모으는 데 초기부터 정성을 기울였다. 무명(無名)의 스타트업이 세계적 전문가들과 약속을 잡는 것은 대체로 어렵다. 그래서 해외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부지런히 참석해 석학들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거나 함께 걸으면서 회사를 소개해 나갔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에 거주한 경험이 풍부한 서 대표가 회사의 ‘얼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현재 루닛의 직원 중 15%는 외국인이다.○ 공학박사와 암에 관심 많던 의사의 만남 백 의장은 KAIST 전자공학과 01학번, 서 대표는 생명과학과 00학번인데 나이는 서른아홉 살 동갑이다. 백 의장이 KAIST 박사과정에 있던 2013년 창업한 루닛에 서 대표가 2016년 합류했다. 이들은 KAIST 시절 방송동아리를 함께했다. 당시 백 의장은 연출과 편집, 서 대표는 아나운서였다. KAIST 졸업 후 서울대 의대 본과로 편입해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하던 서 대표는 환자 진료보다는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따로 창업을 준비하다가 ‘AI로 암을 정복하자’는 백 의장을 만나 의기투합했다. 이때 서 대표가 가장 고려한 것은 ‘루닛이 과연 글로벌한 생각이 있는가’였다. 사실 루닛은 설립 때부터 목표가 글로벌 회사였다. 백 의장이 대학원 선후배들과 창업할 당시 KAIST에는 글로벌 1등만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연구소 동료들이 주로 취업하는 회사가 삼성전자나 애플 같은 1등 회사였기 때문이란다.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창업을 위한 시간이었어요. 딥러닝이 등장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거든요. 그때 ‘딥러닝 기술의 AI로 풀 수 있는 세상의 문제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급한 마음 안 갖고 공부하면서 인간적으로 깊게 친한 공동 창업자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사업의 힘든 시기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백 의장)○ “AI는 인간을 돕는 도구” 루닛의 다음 목표는 암 진단(루닛 인사이트)을 넘어 암 치료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암 환자에게서 떼어낸 조직세포를 AI가 분석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주는 솔루션인 ‘루닛 스코프’를 올해 상반기(1∼6월) 미국에서 내놓을 예정이다. 미국 진출을 위해 지난해 7월 미국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가던트헬스’로부터 300억 원의 전략적 투자를 유치하는 등 지금까지 16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올해 기업공개(IPO)를 한다는 소식에 ‘몸값’이 오르고 있다. 회사의 성장을 바탕으로 수익을 키워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만약 의료 AI가 발전을 거듭해 의사들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일부의 우려에 대해 백 의장과 서 대표는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의사가 분석해야 할 데이터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는데 사람 눈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AI는 복잡한 데이터를 잘 분석할 수 있도록 인간을 도와주는 도구”라고 말한다. 비행기가 비행할 때 10%는 조종사가 맡고 나머지 90%는 자동 비행하는 것처럼 많은 일을 AI가 하더라도 최종 판단은 의사의 몫이라는 것이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급적이면 하지 말라고 한다. 다만 창업을 안 해보고 삶을 마감하면 너무 분해 못 견딜 것 같다면 그땐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백 의장) “열정이 없으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단, 혼자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팀을 꾸려 잘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서 대표)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2-03-02 03:00
“회계사와 컨설턴트 관두고 3D 프린팅에 빠져든 이유”[Question & Change]동아일보는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를 신문 지면에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가가 걸어온 길을 한정된 지면에 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대화 내용을 추가로 싣는다.▶지면기사 보기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24/112031438/13D프린팅으로 맞춤 안경을 만드는 콥틱의 성우석 공동 대표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 전에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IBK증권과 삼성증권에서 M&A(인수합병) 컨설턴트를 했다. 심신이 지쳤던 어느 날, 생각해봤다. ‘50세, 60세가 됐을 때 나는 무엇을 할까’. 직업의 수명이 길지 않은 세계에서 답이 안 나왔다. 답답한 심정으로 이런 저런 공부를 하다가 크리스 앤더슨의 ‘메이커스’ 책에서 답을 찾았다. 그 책을 통해 3D 프린팅을 알게 된 후 책에 나온 것들을 하나하나 다 실행해봤다. ▽성우석 ㈜콥틱 공동대표(43)―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했더라. 통계학과는 사실 점수를 맞춰서 갔다(웃음). 공부하다보니 통계학과는 잘 안 맞는다는 생각에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회계사 준비도 그 당시에 했다. ―회계사 일은 얼마동안 한 건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삼일회계법인에 다녔고, 군대 갔다가 제대하면서 M&A뱅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IBK증권에서는 M&A와 사모펀드 업무를 했고, 삼성증권에서는 M&A를 맡았다.―아버님이 사업을 하셨는데, 그걸 이어받을 생각은 안 했나. 삼성증권에서 컨설팅을 계속 해야 하나, 아니면 사모펀드로 옮겨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이쪽(제조업) 업무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해서 하게 됐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아버지 사업을 도와드렸다. 아버지는 30년 넘게 엔지니어 생활을 했고, 엔지니어링을 바탕으로 20~30년 사업을 하셨다. 원래는 내게 사업을 이어받으라 하셨다. 하지만 내가 가보니 그곳에선 아버지의 말씀이 곧 법이었다. 내가 “이렇게 해야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아무리 말해봐야 그곳에서는 신입사원 급이 사업을 하겠다고 설치는 것과 같았다. 갑갑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공부를 하다가 롱테일 경제학의 창시자인 크리스 앤더슨의 ‘메이커스’라는 책을 접했다. 그 책을 통해 3D 프린팅을 알게 됐다. 책에 나온 것들을 하나하나 다 실행해봤다. ―책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하나씩 해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제조는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분야였다. ‘Back to basic(기본으로 돌아가라)’이라고, 다시 제조업이 각광받고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역이 발달하지만 결국은 리쇼어링(reshoring·기업이 해외로 진출했다가 고비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는 것) 얘기도 많이 나오지 않나. ‘제조업은 근처에서 생산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3D프린팅이 핵심 기술이었다. ‘메이커스’ 책을 읽다보니 ‘이런 게 있네,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조업에 적성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공장을 많이 다녔던 기억이 있다. 또 M&A 업무를 할 때도 제조업 분야를 자주 맡았다. M&A를 하려면 회사를 잘 파악해야 했는데, 당시 나는 현장을 많이 다녔다. 특히 자동차 부품업 현장을 많이 갔다. M&A 뱅커들은 전화 통화로 필요한 부분을 해결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 가서 일하는 체질이라, 일하기 시작하면 공장 등 현장을 다니며 그 곳 분들과 생활을 함께 했다. ―본업을 그만둘 때 걱정은 안 됐나. 회계법인은 군 복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뒀고, 그 다음에는 뱅커 생활을 했지만 워낙 이직이 많은 직업군이라 퇴사 자체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었다. 일을 ‘무대뽀’ 방식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던 경험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할 때는 군복무 전이었는데, 당시 미필·미혼 남자는 출장을 많이 보내거나 연속성 없는 일을 많이 시켰다. 답이 없는 컨설팅 업무도 많이 했다. 선배들과 다같이 밤을 새워가면서 답을 찾았다. 이 모든 게 창업을 위한 준비와 교육이었던 셈이다. 심신이 지쳐서 관둔 것도 있었지만, 내 상사들의 모습이 감당이 안 됐다. (그 연차가 되어도) 여전히 지금 나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컨설턴트라는 직업 자체가 수명이 짧다. ‘50세, 60세가 됐을 때 나는 무엇을 할까’ 라는 생각 했을 때 답이 안나왔다. 지금은 평생 직업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일을 그만둔다고 하니 가족의 반응은. 아내는 나를 믿어줬다. 회계사 자격증도 있으니 최악의 경우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내가 처음에 3D프린팅을 한다고 했을 때는 다들 ‘두세 달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점점 살을 붙이고 구체화시키니 ‘네가 사업을 아느냐’며 아버지가 특히 많이 말렸다. 지금은 아버지가 제일 지원을 많이 해 준다.―사업가인 아버지로부터는 뭘 배운 거 같나 외주를 어떻게 쓰는지, 전문가는 어떻게 찾아내는지 등을 배웠다.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뭐가 부족한지 알아야 전문가를 찾을 수 있다. 내가 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어떻게 얼마나 버텨야 하는지도 배운 것 같다.―3D 프린팅을 어떻게 공부하고 실행에 옮겼나. 당시 나는 집에 장비를 들여오고, 컴퓨터를 한 대 사서 모델링부터 했다. 하다보니까 정말 재밌었다. 3D 모델링 프로그램 종류도 굉장히 많은데, 그 중에 한 프로그램으로 모델링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모델링을 해서 유럽 회사에 주문했다. 첫 제품은 아이폰 케이스였다. 모델링이 제일 쉽고 제품화하기도 편한데다 다양한 니즈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몰드를 만들 필요가 없으니 몰드 비용을 아껴서 만들면 재밌는 걸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공장을 별도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당시는 모델링해서 업체에 주문하면 흰색의 거친 표면을 가진 형태로 나왔다. 이걸 연마해야 해서 내가 손으로 일일이 다 사포질을 했다. 3D 프린팅 후 후가공이 중요했다. 또 안경은 3D 프린터로 최대 200개까지 한 번에 만들 수 있는데, 직접 사람 손으로 일일이 연마를 하기란 불가능하다. 연마 후에는 염색을 해서 색을 입혀야 한다.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설비가 필요했는데, 찾아보니 관련 동영상들이 있었다. 그 영상을 몇 천 번 반복해 보면서 필요한 기계를 하나씩 주문해나갔다. 아버지 지인들 중에 중소제조업을 하는 분들이 많아 도움을 받았다. 지금 인덕원 공장에 있는 라인이 그렇게 영상 하나하나를 찾아서 만든 라인이다. ―사업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모아둔 돈으로 시작했고,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3억 원을 받아 프린터를 들였다. 그 이후부터는 속도가 빨랐다.―기술보증기금은 뭘 믿고 자금을 대준 건가. 일단 내가 어떤 식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 케이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디자인의 완제품을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주는 생산 플랫폼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팩토리형 디맨드’라고 해서, 요구가 있으면 팩토리를 제공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했다. 그때 안경은 무조건 해야 하는 아이템이라 생각했다.―안경에 대한 특별한 경험이나 관심이 있나. 어릴 때부터 안경을 써왔는데 내 귀는 짝귀라 위치가 다르다. 그래서 예전부터 이걸 맞춰줄 수 있는 서울 논현동의 한 작은 안경점에서만 안경을 맞췄다. 늘 ‘왜 이 안경점은 잘 맞춰주는데 왜 다른 안경사한테 안경을 맞추면 안경이 비뚤어지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런 부분을 안경 제조에 반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맞춤형 안경을 제작하면서 쌓이는 빅데이터는 어떻게 활용되나 설계 노하우는 당연히 쌓이고 있다. 또 소비자들이 본인과 비슷한 얼굴의 유형을 선택하면 어울리는 안경을 추천해줄 수 있도록 데이터화시킨 알고리즘을 만들게 된다. 안경은 동그란 형태부터 네모에 가까운 형태까지 전통적으로 분류가 있다. 그 안에서 디테일 차이가 발생하는데, 변주가 발생하면서 디자인이 40여 가지로 확 늘어난다. 안경 디자이너들은 “여기에 0.2mm만 올리자” “0.3도를 꺾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것만으로도 느낌이 조금씩 달라진다. ―2017년 설립 후 지난해까지 회사가 쭉 성장했는데. 올해는 어떤 단계인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스케일업 단계에 있다. 스케일업 할 때 문제가 터지면 안 된다.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에 브랜딩에 대해 많이 다잡고, 생산 과정도 훨씬 탄탄하게 다지는 작업을 했다. 직원은 계속 뽑고 있다. 지금은 개발자를 중심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동안 제품 디자인 쪽을 꽤 갖췄기 때문에 개발 인력과 그에 따른 디자인 백업도 많이 필요하다. UI, UX 디자이너 위주로 충원을 많이 하고 있고, 마케터들도 뽑는다. 올해는 브리즘의 오프라인 매장을 10호점까지 낼 계획이다. 다음달(3월)에 서울 잠실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콥틱의 조직문화는 어떤가.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다 보니 격이 없는 분위기다. 지난해부터는 팀장체제로 전환해 팀장과 많은 이야기를 하려하고 있다. 팀장들이 개선하는 시스템도 많이 생겼다. 예전에는 내가 직접 했다면, 지금은 팀장 등 직원이 하는 일의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팀장은 경력직이 입사하자마자 맡기도 하고, 신입사원이 팀장을 맡기도 한다.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재무와 관련해 조언한다면. 나는 현금흐름을 중요시 한다. 보통 매출에서 비용을 빼면 남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매출채권과 매입채무의 시기도 매우 중요한다. 그런 걸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날짜관리를 정확히 해야 한다. 콥틱은 B2C라 돈이 바로 들어오지만, B2B인 업체는 ‘(돈을) 3개월 뒤에 줄게’라고 했을 때 뭐라 말을 못한다. 즉각적으로 돈이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관리가 잘 안 되면 자금은 순식간에 구멍 난다. 자금 계획은 6개월 이상 세워놓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쓰는지’ 확인하고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투자 라운드가 도는데 최소 6개월이 걸린다. 처음엔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거의 막판까지 끌고 가다가 시기가 안 맞아서 (사업을) 더 진행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 것으로 안다. ―창업을 꿈꾸는 문과 출신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나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스타일이라, 필요하다 싶으면 직접 만들어본다. 잘 만들지 못해도 계속 만들다보면 필요한 부분이 생길 것이다. 그때 그 부분에서 필요한 사람을 찾아도 되고, 외주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올해 CES에 참가한 성과는. ‘우리가 미국으로 가면 잘 될거야’라는 안이한 생각이 아니라 ‘미국으로 가면 잘 되겠지만 고생은 많이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고생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도 가늠하게 됐다. 미국에는 올해 3월 크라우드펀딩으로 온라인에 먼저 진출할 예정이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하나 내는 것이 목표다. 매장 내는데 최소 1년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어서 빠르면 내년 초가 될 것 같다.―창업해서 가장 위기는 언제였나. 매일이 위기다.(웃음) 나 같은 경우 5개년의 사업계획을 잡고, 자금을 늘 모니터링하고, 매일 밤 통장잔고를 확인한다. 나는 소소한 실패를 많이 했다.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결국 혼자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 개발이 그런 경우다. 초창기에는 내가 많이 시스템을 맡았는데 엉성했다. 지금은 개발팀이 세팅되면서 전혀 다른 차원이 펼쳐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들을 더 믿고, 그 사람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상황을 자꾸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창업가가 직원들에게 신뢰를 보내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들이 만든 시스템을 현장에 적용하는 것. ―창업해서 보람 있던 순간은. 직원들이 우리의 비전을 믿고 전력을 다해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보람이다. 각자 자신의 젊음과 소중한 시간들을 쏟아 붓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는 게 보람 있다.―사람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겠다. 그렇다. 면접 볼 때 ‘우리는 아직 작은 기업이라 한 명이 들어왔을 때 우리 문화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서로 잘 맞는 게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다. 보통 면접은 1시간가량 진행되는데, 지원자보다 우리가 오히려 말을 많이 한다. 우리 회사가 이런 회사고, 이런 문화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우리랑 잘 맞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스킬적인 부분은 뻔한 부분이 많다. 디자인 쪽은 툴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디자이너들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새로운 툴을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데 배움에 대해 거리낌이 없는지 등이 중요하다. ―롤모델이 있나. 스티브잡스가 롤 모델이다. 잡스는 자기의 방향을 꿋꿋하게 믿고 갔다. 돈을 벌어다주는 제품이더라도 다음 단계를 위해서는 다 버리는 추진력도 있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 하나 그때그때 끌리는 운동을 한다. 예전에는 테니스를 쳤다. 공으로 하는 운동을 기본적으로 좋아한다. 야구도 좋아해 경기할 때는 내야수로 뛴다. 다만 골프는 안 친다.성우석 ㈜콥틱 공동대표 △고려대 통계학과 △2002~2005년 삼일회계법인 △2009~2010년 IBK투자증권 IB본부 △2011~2012년 삼성증권 IB본부 △2015~현재 더메이크 대표이사 △2017~현재 콥틱 대표이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2022-02-28 10:23
“첫 사업 매각하며 돈 거의 못벌어… 도서관에 6개월 숨어지냈죠”[Question & Change]동아일보는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를 신문 지면에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가가 걸어온 길을 한정된 지면에 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대화 내용을 추가로 싣는다.▶지면기사 보기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24/112031438/13차원(3D) 프린팅 안경 브랜드 ‘브리즘’의 서울시청점 매장에 들어서면 여느 안경점과는 다른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장 한 쪽에 성인 남성 키보다 큰 열십자(十) 모양의 기계가 있다. 바로 3D 스캐너다. 직원 안내에 따라 스캐너 앞에 서자 기계 중심부를 비롯해 열십자 방향으로 달려있는 카메라가 기자의 얼굴을 3초간 스캔했다. 이어 30초 뒤 카메라 바로 아래에 놓인 태블릿PC 화면에 3D 스캐닝된 기자 얼굴이 나타났고, ‘결과보기’ 버튼을 누르자 얼굴 너비와 눈동자 사이 너비, 콧등 높이 등 18개 항목의 측정결과가 나왔다. 이에 맞는 안경 사이즈와 모델도 추천됐다. 브리즘은 3D 프린팅 기술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안경을 제작한다. 브리즘 운영사 ㈜콥틱의 박형진(48)·성우석(43) 대표는 이 아이디어로 창업하기 위해 1년 넘게 3D 안경 공부 모임을 했다고 한다. 안경과 제조업에 대한 질문을 갖고 창업에 뛰어든 두 대표의 창업기(記)를 동아일보가 들어봤다. 우선 박 대표 이야기다.▽박형진 ㈜콥틱 공동대표(48)―동업이라는 게 쉽지 않을텐데. 두 분은 잘 맞나? 다퉜던 적은 없나. 일로 엮이지 않았으면 안 친해졌을 것 같다(웃음). 관심사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싸운 적이 없다. 평생 안 싸우고 살았다는 부부가 있던데, 가만 보면 이런 관계라면 그게 가능하겠구나 싶다. 의견이 다른 경우는 이슈마다 너무 많다. 하지만 성 대표와 역할 구분이 확실하고, ‘저 분야는 저 사람이 전문가다’라고 인정한다. 또 내가 반응하는 지점과 성 대표가 반응하는 지점이 다르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인 반면 성 대표는 차분하다보니 짧게 짧게 섭섭할 수는 있었겠지만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나와 성대표는 이미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상태에서 40대 이후에 만났기 때문에 처음부터 욕심을 많이 내려놨다. 나는 예전에 사업할 때는 ‘사업의 중심은 나고,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야한다’는 생각에 목적을 갖고 사람을 선택했다. 그렇다보니 뜻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끌고 갔고, 문제가 생겼던 경험이 있었다. 사업이라는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만났기에 처음에는 ‘사업을 같이하자’라는 말은 안 했다. 좋은 아이템을 갖고 만났지만 사업이라는 건 시기가 있고, 기술 수준의 성장과 시장성에 대한 확신이 없던 상태여서 1년간 매주 수요일에 만나 스터디를 했다.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았나보다. 대학 졸업 후 P&G코리아에서 마케팅을 하다가 디즈니코리아에서 ‘비즈니스 플래너’라는 직함으로 2년간 서울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해당 프로젝트가 중국 상해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진로를 고민하게 됐다. 고민 중 일본 여행을 하다가 봤던 안경점이 생각났다. ‘안경 소비자들이 안경을 구매할 때 잘 맞지 않는 문제 등으로 고충을 겪는데, 왜 일본 안경점은 잘 되지’ 라는 질문을 갖게 됐다. 디즈니 안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고 ‘알로(ALO)’라는 이름으로 안경사업을 시작하게 됐다.―‘알로’가 설립 후 꽤 알려졌는데. 알로는 2006년에 설립해 2012년에 매각했다. 순조로운 매각이 아니었고, 엑싯하면서 거의 창업자인 나는 정작 돈을 벌지 못했다. 당시 업(業)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던 상태에서 ‘내가 마케팅을 한 사람인데 저거보단 잘하겠다’라는 과도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하다보니 3~4년간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헤맸다. 요즘 같은 스타트업 지원 생태계가 있고, 기관들이 관심을 가졌다면 좋은 자금을 받아서 잘 성장시켰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자금을 개인들에게 의존해야하는 상황이었고, 그러다보니 이해관계 충돌 등의 문제가 생겼다.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잘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준비도 안 돼 있었다. 내부 관리가 잘 안 되는 상황에서 밖으로 확장을 하는 데에 몰두했던 것도 실패 요인 중 하나다. 알로는 내게 매우 아픈 스토리다. ―‘알로’를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면. 나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유능한 스타트업 대표나 기업을 일군 사람 중에서는 다양한 역량을 골고루 갖춘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로를 계기로 나라는 사람을 가만히 봤더니 한쪽으로 치우쳐있더라. 그걸 자각하지 못했었다.―매각 후에는 뭘 했나. ‘알로’로 너무 큰 상처를 받았고, 갈데가 없어서 모교인 연세대 도서관에서 6개월을 숨어 지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다. 3개월은 ‘출근한다’고 말하고 도서관으로 갔다. 아내가 그 시기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난 후 더 이상 속일 수 없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아내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많이 힘들었겠네’라는 한 마디만 했다. 아직도 그 순간이 고맙고 기억에 남는다.―퇴사가 쉽지 않은데 용기의 근원은 어디서 나왔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업이 직장생활보다 더 힘들거나 덜 힘든 문제는 아니다. 이보다는 각자 라이프스타일과 기질에 따라 이 길이 더 편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사업은 죽을 수도 있는 싸움이기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뒤에서 누군가 관리한다는 느낌 때문에 큰 조직에 있을 때 더 힘들었다. ―창업은 뭐라고 생각하나. 사업이라는 과정 자체가 인간이 진정으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창조의 영역’인 것 같다. 사업에 대해서 보통 ‘내가 아이템이 없으니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라고 많이 말하는데, 아이템과 아이디어는 마치 정자와 같다. 수억 마리가 떠돌아다니는 가운데 상황, 돈, 조직이라는 난자를 만나야 수정된다. 수정됐다고 해서 아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착상이 되고,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그게 스타트업이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온다고 해서 끝나는것도 아니다. 사업의 과정이 이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 살면서 이런 과정을 해보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 같다. 결과가 잘되면 제일 좋겠지만, 무엇보다 과정이 즐겁다. ―CES 2022에는 왜 가게 됐나. 지난해 온라인으로 열린 CES에 참여했었는데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했다. 전시회라는게 아무생각 없이 돌아다니다가 우연하게 이뤄지는 만남이 중요한건데, 온라인은 그런 게 안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둔 상황에서 CES는 가장 좋은 창구라고 생각했다. 올해는 오프라인으로 열렸는데,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라 가기 전에는 걱정이 컸다. 콥틱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CES에서 서울관에 부스를 설치했는데, 제일 안쪽에 위치해있어 흥행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서울관의 공간 기획을 잘 해 밖에서 봤을 때 들어가고싶게끔 만들었고, 사람들도 많이 보러왔다. 게다가 안경은 인구의 절반이 관심을 갖는 분야고, 방문객이 콥틱 부스에서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다보니 콥틱 부스 자체가 흥행에 성공했다. ―CES 참석으로 미국 시장에 대한 확신은 생겼나? 미국은 안경이 비싸지만 양질의 서비스를 찾기 힘들다. 다인종 사회인데 반해 안경 시장은 보통 백인 얼굴에 맞춰져있다보니 소비자들의 불만도 많다. CES 2022 전시 현장에서 개인적으로 안경을 구매하고싶다는 문의도 꽤 있었고, 실리콘밸리 베이스의 벤처투자자(VC)가 투자하고싶다는 경우도 있었다. ―콥틱 내부 분위기가 궁금하다. ‘대표님’과 같은 직급 호칭을 쓰지 않고 닉네임을 부른다. 나의 경우 직원들이 ‘젠마’라고 부르고, 성 대표는 ‘윌’이라 칭한다. 팀장 중에 40대가 한 명 더 있긴 한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가장 많다. 예전에 20대 직원들이 일을 할 때 ‘박 대표님께서 성 대표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라고 호칭을 쓰다가 시간이 다 가더라. 그래서 호칭을 붙이지 말자고 정했다. ―직원은 어떤 기준으로 뽑나. 콥틱 직원들은 다양하다. 안경 디자이너의 경우, 조용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친구가 일하고 있다. 반면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은 파이팅이 넘치는 스타일이고, 브랜딩을 맡은 직원은 아티스트 출신이다. 나는 팀플레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넓은 시야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작은 것에 목을 매거나 ‘나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고객 경험은 여러 가지 요소가 연결돼 완성되는데, 이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안경 시장은 8%씩 성장중인데 반해 한국 시장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것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콥틱의 경쟁력은? ‘맞춤형 안경’이라는 개념은 옛날부터 소규모로 안경을 만드는 장인들 사이에서 있긴 했다. 하지만 편안함이 아니라 개성을 위한 맞춤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한국에서 착용감에 초점을 맞춘 안경은 브리즘밖에 없다고 자신한다. ―안경산업의 미래는.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내에 스마트폰이 안경으로 들어온다고 본다. 수많은 IT기업, 광학기업이 여기에 엄청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안경에 칩과 배터리가 들어가면 안경은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안경 착용감에 대한 이슈도 더 커질 것이다. ―앞으로의 꿈은. 사업적으로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글로벌 기업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외형이 얼마가 되는지보다는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고 ‘이 기업을 통해 내 삶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 개인적으로, 단기적으로는 좋은 팀과 함께 과정을 즐겁게 이어가는 것이 목표다.박형진 ㈜콥틱 공동대표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2002~2004년 P&G 코리아 마케팅 본부 △2005~2006년 월트디즈니코리아 디즈니랜드 개발 담당 △2006~2012년 ALO 대표이사 △2014년~현재 어반딜라이트 대표이사 △2017년~현재 콥틱 대표이사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2-02-27 12:33
“얼굴 다 다른데 왜 안경 크기는 같을까”… 3D프린팅서 답을 찾다#1. 사람마다 얼굴 모양과 크기가 다른데 왜 안경은 미리 만들어 놓은 걸 그냥 쓸까. 우연히 간 일본 여행에서 사람들의 안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보다 더 다양한 취향을 보여주는 안경이 많았다. #2. 금형을 만들 필요 없는 3차원(3D) 프린팅을 활용하면 제조업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생산하기 전에 금형을 만들 필요도 없고, 생산량이 딱 한 개인 제품도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 공동대표가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 각기 다른 질문을 품고 안경 전문가와 3D 프린팅 전문가로 방향을 튼 박형진(48), 성우석(43) 두 사람은 2015년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2017년 공동 대표로 콥틱을 창업한 뒤 얼굴 형태에 맞춰 디자인해주는 3D 커스텀 안경 브랜드 ‘브리즘’으로 각자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P&G코리아에서 마케팅을, 월트디즈니코리아에서 디즈니랜드 개발 담당 일을 했던 박 대표는 일본 여행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2006년 안경 회사 ‘알로(ALO)’를 창업했다가 회사를 매각했다. 과도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문제였다. “스토리를 얘기하려면 소주 10병은 필요하다”고 한다. 박 대표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려 모교인 연세대 도서관에서 6개월을 숨어 지내듯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성 대표를 만났다. 당시 성 대표는 ‘롱테일 경제학’의 창시자인 크리스 앤더슨의 ‘메이커스’를 읽고 3D 프린팅에 푹 빠져 있었다. 회계사, 컨설턴트로 일했지만 엔지니어 출신으로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 공장을 많이 다녀서인지 제조업이 익숙했다. 컨설팅 맡은 회사의 공장에서 지내며 답을 찾는 ‘현장파’였다. 제조업의 미래를 바꾸는 ‘메이커’(만드는 사람)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성 대표는 자신이 직접 만든 3D 안경을 쓰고 나왔다. 3D 프린팅 안경 제조라인을 찍은 동영상을 몇천 번 돌려본 뒤 중소 제조업체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생산라인을 갖춰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모은 돈과 기술보증기금에서 받은 3억 원으로 장만한 3D 프린터를 사용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라 박 대표는 ‘앞으로 함께 일할 운명’을 느꼈다. 하지만 둘은 서두르지 않았다. ‘안경 전문가’와 ‘3D 전문가’는 1년 넘게 3D 안경 공부 모임을 한 뒤 창업에 나섰다. ○ “10년 안에 스마트폰이 안경으로 들어올 것”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22에서 콥틱 부스는 문전성시였다.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그룹의 기술담당 임원이 찾아와 안경을 가상 착용해 보며 관심을 보였다. 브리즘은 3D스캐너로 얼굴을 측정해 1만 명 이상 누적된 빅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 추천 서비스로 안경의 크기와 모양을 추천한다. 열흘 정도 제작을 거치면 ‘나만의 맞춤 안경’이 완성된다. 디지털 기기를 많이 쓰면서 젊은층의 고도 근시가 늘고 평균수명 연장으로 노안 인구도 증가하면서 우리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안경을 쓴다. 카카오벤처스 등이 2019년 콥틱에 시드 투자할 때 가장 주목한 점도 “이 사업이 충분히 큰 시장을 가졌느냐”였다. 콥틱의 포부는 전 세계 안경시장의 27%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미국은 다인종 사회인데도 안경이 백인 얼굴에 맞춰져 고객 불만이 많다고 봤다. 국내에서 금지된 안경의 온라인 판매도 미국에서는 가능하다. 아이폰용 브리즘 앱을 활용하면 고객이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스캔하고 인공지능(AI)이 추천한 안경을 주문할 수도 있다. 박 대표와 성 대표는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이내에 스마트폰 기능이 안경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증강현실 기술로 안경과 스마트폰의 경계가 무너지는 방향으로 안경이 진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공동대표의 회사 내 호칭: 10년 넘게 명상으로 스트레스를 다스려 온 박 대표는 ‘젠마’(젠 마스터), 성 대표는 영어 이름 윌리엄의 앞 글자를 딴 ‘윌’로 불린다. 20대 직원들이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는데”라고 길게 말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영어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콥틱의 목표: “브리즘 안경으로 내 삶이 좋아졌다”는 평을 듣고 싶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2022-02-25 03:00
“댕댕이에 마이크로칩 싫어요”… ‘코 무늬’에서 답 찾았다[Question & Change]동아일보는 14일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창업가가 걸어온 길을 한정된 지면에 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대화 내용을 추가로 싣는다.▶지면기사 보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16/111845153/1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이 받은 CES2022 ‘최고 혁신상’을 펫나우라는 스타트업이 받았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말로만 스타트업이지 규모가 꽤 큰 회사는 아닐까. 서울 서초구 AI양재허브에 위치한 펫나우 사무실에 들어서자 의구심이 무색하게 직원 규모도, 사무실 규모도 단출했다. 설립된 지 만 4년이 채 안 된, 직원 12명의 스타트업이었다. 사무실 내에선 인터뷰를 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AI양재허브에 입주한 회사들과 함께 쓰는 공용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임준호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CES에 전시부스를 설치하려면 수 천만 원이 들기 때문에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갈 엄두를 못 냈습니다. 직원들과 ‘상 받게 되면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이번에 상을 받게 됐지 뭐예요. 그냥 혁신상이면 모르겠는데 최고 혁신상이어서 바로 미국 가는 항공권을 끊었습니다. 최고 혁신상은 주로 세계적인 기업들이 휩쓸기 때문에 사실 꿈도 안 꿨습니다.” CES에 갔을 때의 상황과 펫나우를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담겨있었다. ―어떤 점을 인정받아 CES2022 최고 혁신상을 받게 된건가. 미국은 반려동물 천국이다보니, 반려동물 관련 회사들이 상을 제법 받는다. 하지만 그동안 대부분 목걸이 등을 착용하는 방식으로 나왔고, ‘비문(鼻紋·코의 무늬)’과 같은 생체인식은 굉장히 혁신적이라고 느낄 만큼 없었던 기술이었다. ―CES에 가서 어떤 점을 부각시켰나. 미국에 가기 전에 미국의 반려인을 인터뷰해 한국 반려인과 어떤 점이 다른지 살펴봤다. 대체로 비슷했지만 미국이 한국보다 좀 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 동물의 신원확인을 위해 마이크로칩을 삽입하는 방식에 대해 미국의 많은 반려인들은 “우리 강아지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이라며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미국은 유기동물이 1년에 1000만 마리씩 나오기 때문에 마이크로칩 삽입은 대부분 유기동물보호소에서 관리 차원에서 쓰이고 있었다. 일반 반려인이 펫나우의 비문 인식 기술에 대해 듣더니 깜짝 놀라며 ‘이렇게 간편하고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미국) 정부는 뭐하고 있는 거냐’고 하더라. 이런 반응을 듣고 ‘아이(반려견)에게 피해주지 않고, 집에서 편안하게 등록할 수 있고 조회할 수 있다’는 점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사실 마이크로칩의 단점은 명확하다. 반려견 몸 속에 삽입하는 것을 반려인이 굉장히 싫어하고, 침습행위라 수의사에게 가야해서 번거로운데다 비용도 10만 원가량 든다. 일반인은 마이크로칩을 인식하는 스캐너를 갖고있지 않기 때문에 길가다 길 잃은 강아지를 만났을 때 바로 주인을 찾아줄 방법이 없다. 결국 스캐너가 있는 동물병원이나 보호소로 데려가야 하는데, 거기로 데려갈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반면 펫나우의 앱은 비용도 안 들고, 아무데서나 등록할 수 있다. 신고도 바로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장점이 훨씬 많다보니 미국인들도 쉽게 이해하더라. ―동물 신원인증 수단으로 왜 하필 비문을 선택했나. 사람의 경우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지문, 홍채, 귀의 정맥무늬 등 7가지가 있다. 하지만 접근성과 보편성, 편리성 등을 따졌을 때 지문이나 안면을 많이 쓴다. 강아지도 홍채로 구분할 수 있지만 (사람만큼 계속) 눈을 뜨지 않는다. 또 미용 전후로 얼굴의 윤곽선이 달라져 안면인식도 어렵다. 그래서 비문을 선택하게 됐다. ―비문 아이디어는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 반려동물이 워낙 많은 미국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비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코에 잉크를 묻혀서 도장을 찍는 방법이 나왔는데 불편해서 더 이상 발전하진 않았다. 그러다 5년 전쯤 휴대전화에 안면인식 기술이 탑재되면서 이 기술을 동물 신원확인에 활용해보자는 니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10여 개의 회사가 이 아이디어로 창업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이 인식율을 높이지 못해 사업을 접었다. ―초기 비문 데이터는 어떻게 확보했나. AI는 데이터가 있어야 학습을 할 수 있다. 사람 안면인식 관련 데이터는 전세계적으로 몇십억 장이 있다. 하지만 강아지는 쉴 새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선명한 코 사진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결국 나랑 CTO 등이 DSLR카메라를 들고 5개월 동안 전국의 반려견 카페, 유기동물 보호소, 애견미용학원 등을 찾아다니며 직접 강아지 비문사진을 찍었다. 갈만한 곳은 다 다녀보니 2만 장의 비문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더 남았다. 펫나우의 비문 인식 관련 논문이 SCI급 해외 저널인 IEEE의 심사를 통과해 게재됐는데, 당시 약 10만 개의 데이터로 AI가 학습한 결과 인식률이 98.97%로 나왔다. 하지만 이건 실험실의 데이터고, 실제 환경에서는 조명과 거리 상황 등에 따라 인식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려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반려견의 코 사진을 찍어서 앱에 올려주면 AI가 더 똑똑해져 인식율이 높아지게 된다. 데이터를 많이 올릴수록 그 자체만으로 유기동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가깝게 간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펫나우 기술의 차별화된 점은 무엇인가 비문 인식은 물론, 비문 사진 촬영에도 AI를 도입한 것이다. 강아지가 휴대전화 카메라를 보고만 있으면 아무리 움직여도 3개의 AI가 강아지 모습을 끊임없이 추적하면서 코에 초점을 맞춰 선명한 사진을 찍는다. 이 AI는 촬영한 사진이 선명한지 여부까지 판단하고, 만에하나 흐릿하면 사진을 버린다. 이 모든 과정이 0.08초 안에 일어난다. ―펫나우의 수익 모델은 뭔가. 보험사와 연계해 펫보험 상품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다. 펫보험에 가입하거나 반려견이 진료를 받고 보험료를 청구할 때 펫나우로 신원인증을 하면 인증 수수료를 받는 구조를 생각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신원이 확인되면 펫보험의 가격은 내려간다. 견종마다 잘 걸리는 질환이 무엇인지 통계가 하나씩 쌓여가면서 보험사에서 수가도 정할 수 있게 된다. 펫보험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동물의 신원확인이 어렵다는 데 있다. A 강아지로 펫보험에 가입을 했는데, B 강아지가 치료받은 뒤 A 강아지가 치료받은 것처럼 속여 보혐료를 청구해도 보험사가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펫나우의 원래 창업자는 따로 있다던데. 펫나우는 내가 칩스앤미디어에서 대표이사로 있었을 때 직원으로 고용했던 후배가 2018년 8월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그런데 창업 1년 뒤인 2019년 여름, 후배가 ‘창업을 했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미래를 어떻게 그려야할지 모르겠다’면서 나에게 컨설팅을 의뢰했다. 문제를 진단한 뒤 나오려 했는데, 후배가 ‘회사를 맡아달라’고 해서 펫나우의 대표를 맡게 됐다. 펫나우는 본래 강아지 비문을 이용하는 아이디어로 플랫폼 사업을 하려 했다. 하지만 비문의 인식율이 잘 나오지 않아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비문 인식율을 높이려면 기술기반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고, 딥테크 회사로 피버팅(pivoting·사업방향 전환)했다. 자금 유치도 시작하고, 사업모델도 새로 만들고, 연세대에서 AI 영상처리를 전공한 박대현 박사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도 회사 규모가 작으면 인정받기 쉽지 않을텐데. 아무리 공익적인 목표가 있어도 반려인 입장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회사에 자신의 반려견 비문을 등록하는 것은 꺼림칙할 수 있다. 그래서 대기업의 인정도 받고, 학계로부터 기술적인 공인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삼성전자의 ‘C랩 아웃사이드’ 프로그램과 포스코의 벤처플랫폼 지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각각 30대 1,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SCI급 해외 저널인 IEEE에도 논문을 제출했고, 두달동안 검증을 받은 후 심사를 통과해 공식적으로 게재됐다. 최고의 학회로 꼽히는 미국 전자공학계로부터 기술적으로 공인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신뢰를 하나씩 쌓아나갔고, CES로 향할 자신감도 얻게 됐다. ―펫나우 이전에 창업한 경험이 있나. 펫나우는 내게 세 번째 창업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창업은 2003년 반도체 설계회사 ‘칩스앤미디어’였다. 당시에 혁신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고 운도 좀 따라서 잘 성장했다. 하지만 회사가 궤도에 오르니 재미가 없었다. 내 전공이 반도체를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보니 반도체 설계가 욕심이 났다. 칩스앤미디어를 매각하고 첫 창업 성공에 힘입어 2008년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를 따로 차렸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감당하기에는 막대한 자금이 드는 사업이었고, 금융위기 등이 겹쳐 고생을 많이 하다가 결국 사업을 접었다. 성공과 실패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니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 경험이 있다보니 쉬는 동안 컨설팅 의뢰가 들어왔다. 작은회사들의 미래전략 등을 세워주거나 특허전략을 세우는 등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2000년대 초반의 제1 벤처붐 시기에 이어 현재의 제2 벤처붐 시기에도 창업을 하신건데, 첫 벤처붐과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벤처버블이라고 불렸던 제1 벤처붐 때는 창업이 비교적 용이했지만 성장시킬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했다. 대부분 공학자 출신이다보니 창업을 한 뒤에 비즈니스 모델과 마케팅 전략은 어떻게 세울지, 자금은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는지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는 창업투자회사가 많지도 않았고. 망한 회사도 정말 많았다. 요즘도 내 눈높이로는 아직 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굉장히 좋아졌다.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은. ‘유기동물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펫나우의 모토다. 이 모토를 추구하다보면 펫보험 비용도 저렴해져 펫보험의 대중화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 올 여름에는 고양이 비문 인식 베타서비스를 시작하고, 내년 CES에서 고양이 비문 인식 서비스를 정식으로 내놓을 예정이다.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2-02-18 10:17
“유기동물 年 13만 마리… 코무늬가 해결책 될까”[Question & Change]국내 1500만 명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다. 반려동물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어두운 그늘도 있다. 몰래 버려지는 유기 반려동물이 연간 13만 마리나 된다. 임준호 펫나우 대표(55)는 생각했다. 유기동물 없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휴대전화로 동물의 비문(鼻紋·코의 무늬)을 찍어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길거리에 버려진 동물도, 행여 주인을 잃은 동물도 주인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동물 신원확인에 뛰어든 반도체 전문가펫나우는 2018년 8월 설립됐다. 임 대표는 이 회사의 설립자는 아니다. 서울대 전자공학 박사인 그는 2003년 칩스앤미디어라는 반도체 설계회사를 창업해 매각한 적이 있다. 이 성공에 힘입어 2008년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를 따로 차렸다. 막대한 자금이 드는 사업이라 결국 사업을 접었다. 창업에서 1승 1패를 기록한 셈이다. “성공과 실패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니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스타트업 창업을 돕는 컨설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2019년 8월 펫나우에 합류했다. 당초 펫나우라는 회사를 만든 사람은 임 대표가 칩스앤미디어에서 뽑았던 직원이다. 동물 신원확인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긴 했지만 촬영의 낮은 인식률을 해결하지 못해 사업을 접고 싶어 임 대표에게 컨설팅을 받으러 찾아왔다. 이 문제를 인공지능(AI)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임 대표에게 창업자는 부탁했다. “그럼 이 회사를 맡아 주세요.” 임 대표는 기술 기반의 딥테크 회사로 피버팅(pivoting·사업방향 전환)했다. 연세대에서 AI 영상처리를 전공한 박대현 박사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하고 개발자들을 모았다. “한 번씩의 성공과 실패를 겪었더니 어디에 어느 분야의 고수가 있는지 알게 되더라고요.”○ 움직이는 강아지를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회사 방향을 정하고 인재를 영입했지만 근본적인 과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AI는 반복적 학습을 통해 데이터가 쌓여야 정확도가 높아진다. 문제는 AI가 학습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초기 데이터가 마땅하지 않았다. 강아지의 선명한 코 사진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쉴 새 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임 대표와 박 CTO는 직접 비문 사진 촬영에 나섰다. DSLR 카메라를 들고 반려견 카페, 유기동물 보호소, 애견미용학원 등을 찾아다녔다. 5개월 동안 갈 만한 곳은 다 다녀보니 약 2만 장의 개 비문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유기동물을 찾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이 비문 인식도 잘해야 하지만 누구나 손쉽게 비문 촬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펫나우는 강아지가 휴대전화 카메라를 보고만 있으면 아무리 움직여도 초점이 맞는 사진이 촬영되는 AI 시스템을 개발했다. 앱을 켜서 반려견을 향해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하기만 하면 3개의 AI가 끊임없이 강아지 모습을 추적하면서 선명한 이미지를 도출해 낸다. “사진이 앱에 입력되면 AI가 이미 확보된 기존 데이터들과 비교해 강아지의 신원을 확인해주는 원리입니다. 촬영에 AI를 도입한 회사는 지금껏 없었습니다.” 펫나우 앱 정식 서비스는 올해 6월경 나올 예정이다. 현재의 베타서비스로도 등록과 조회, 잃어버렸거나 길 잃은 동물의 신고가 가능하다. ○ “반려동물과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임 대표가 마주친 또 다른 과제는 펫나우 회사와 기술력의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었다. 직원이 12명에 불과한 스타트업이 개발한 기술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래서 두드린 게 삼성전자의 ‘C랩 아웃사이드’ 프로그램이었다. 3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됐다. 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포스코의 벤처플랫폼 지원도 받게 됐다. 학계도 공략했다. 그 결과 펫나우의 비문 인식 관련 논문은 SCI급 해외 저널인 IEEE의 심사를 통과해 게재됐다.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22에서 국내 스타트업으로는 유일하게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펫나우의 다음 단계 목표는 보험사와 연계해 펫보험 상품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다. 유기동물을 없애자는 취지로 아무리 공익을 추구해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기업은 버틸 수 없다. 펫보험에 가입하거나 반려견이 진료를 받고 보험료를 청구할 때 펫나우로 신원인증을 하면 인증 수수료를 받는 구조를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펫보험 가입률이 0.3%에 불과합니다. 반려동물의 신원확인이 어려워 보험료가 비싸기 때문이에요. 이 신원확인이 가능해지면 보험료를 낮출 수 있습니다.” #펫나우의 사명: 전 세계 사람들이 동물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앞으로의 계획: 조만간 고양이 비문 인증 서비스도 내놓을 예정.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2-02-17 03:00
“극단적 투명으로 극단적 진실을”…라이프스타일 완성을 꿈꾸다[Question & Change]동아일보는 14일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창업가가 걸어온 길을 한정된 지면에 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대화 내용을 추가로 싣는다.▶지면기사 보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13/111761814/1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는 2018년 이 회사를 차리고 2019년 3월 비대면 모바일 세탁서비스인 ‘런드리고’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받은 투자금액은 750억 원. 최근엔 국내 최대 규모의 호텔 세탁 사업을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B2B 세탁시장에 진출했다. 워커힐 노보텔앰베서더 등 국내 5성급 특급호텔 등 30여 개 호텔의 침구와 유니폼 등을 세탁하게 됐다. 런드리고가 대체 어떤 서비스기에. 그리고 그가 꿈꾸는 미래는. ―‘런드리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인구학적 분석을 해 봤나. 1인 가구 이용자가 월등히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최근 조사를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1인가구가 40%, 2인가구가 30%, 나머지가 30%정도였다. 가구를 구성하는 인원수보다 가구 구성원의 성격이 중요하다. 3인가구라 해도 남편이 스타트업에 다녀 셔츠를 자주 입지 않는다면 드라이클리닝보다는 물빨래를 많이 해야 한다. 런드리고 서비스는 돈을 내고 세탁을 외부에 맡긴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소득이 높을수록 이용이 많다. 그래서 국내 1000대 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흥미롭게도 부동산 집값과 런드리고 이용 빈도가 거의 일치한다. 서울 강남지역의 이용이 월등히 높고 서초 송파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 순이다. 그 중에서도 한남더힐이나 나인원한남 등 초고가 아파트는 열 채 중 한 채가 런드리고를 이용한다. ―세탁시장의 어떤 부분을 노려 진출했나. 드라이클리닝은 이미 대안적인 성격이 많이 있다. 세탁소도 많고 프랜차이즈 형태도 있다. 현재 드라이클리닝 시장은 크지만, 결국에는 세탁이라는 단어가 재정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세탁의 절반은 물빨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생에서 세탁이라는 주제가 절반밖에 해결되지 않는 거다. 빨래에 대한 주도권과 경쟁력을 누가 미래에 가져가는가가 중요하다. ―런드리고는 어떻게 이용하면 되는가. 필요한 때에만 이용할 수도 있고 월정액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런드리고’라는 앱을 휴대전화에 깔아 세탁을 신청하면 ‘런드렛’이라는 이름의 세탁수거함을 보내드린다. 그 수거함에 세탁물을 넣어 오후 11시까지 문 밖에 내놓으면 하루 만에 세탁을 완성해 가져다드린다. 물빨래 30L 3번, 와이셔츠 20벌, 드라이클리닝 3벌, 수거 및 배송 3회 기준으로 현재 한 달에 6만 원대(할인 적용 중)부터 이용할 수 있다. 국내 7만 가구가 월정액으로 이용 중이다. 세탁수거함인 런드렛은 현재 120cm 높이의 천 소재 박스에 자물쇠가 달린 형태인데 소비자들이 집 안에서 보관하기 편하도록 올해 상반기 내로 완전히 접히는 형태의 ‘런드렛 2.0’ 버전을 선보이려고 한다. ―런드리고는 회사 입장에서도 비용이 많이 들텐데. 그렇긴 하다. 그걸 ‘규모의 경제’로 해결하려고 한다. 기계화 자동화를 통해 스마트팩토리를 만들었으니까 그걸로 수익성을 만들어가려는 거다. ―빨래가 덜 말라왔거나 얼룩이 안 지워졌다는 등의 고객 불만도 있더라. 세탁 비즈니스가 그래서 어려운 거다. 워낙 이용하는 분들이 많기도 하고 세탁에 대한 만족도가 까다롭기도 하다. 고객 눈높이에는 100점에 못 미칠 수도 있지만 90점 이상의 서비스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더 완성도를 높이려 한다. ―세탁을 재정의하고 혁신해 이루려는 것이 뭔가. 세탁이 혁신되면 주거 공간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집 안에 세탁기가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요즘 이삿짐을 보면 세탁기 대신 런드렛이 실려 있는 경우를 본다. 세탁기의 점유율을 우리가 빼앗아 온 셈이다. 1인 가구 증가로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 TV보다는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고 냉장고에서 냉동고 이용을 많이 한다. 얼마 전 LG전자에 가서 우리 서비스에 대해 강의했다. ‘가전의 LG’도 이런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긴장하고 있었다. ―런드렛을 훔쳐가는 경우는 없나. 한국은 굉장히 안전한 나라다. 아직까지는 이걸 들고 훔쳐간 사건이 없다. ―앞으로 세탁산업의 모바일화가 가속화할 것인가. 배민프레시 대표로 일할 때 모바일로 신선식품을 사는 비율은 미약했다. 불과 5년 사이에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생활의 패러다임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세탁도 그런 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아직도 세탁산업은 98%가 오프라인 기반이다. 신선식품도, 대부분의 모든 산업도 모바일화 온라인화 됐는데 유독 세탁만큼은 안됐다. 물류적 성격 때문에 안 됐던 것이다. 현재 세탁소가 연간 1500개씩 없어지고 있다. 모바일과 경쟁하다 없어진 게 아니라 이미 2012년부터 줄어들고 있다. 노령화가 원인이다. 세탁업주들이 고령화했는데 세탁 종사하는 분들 중에서 이 사업을 꼭 내 자식에게 물려줘야겠다는 분은 드물다. 그래서 이 분들이 은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탁업계의 ‘대사직 시대’인가. 정말로 세탁산업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이미 선진국은 이미 이런 형태를 지나 미국과 일본은 동네세탁소가 많이 사라졌다. 코로나가 이 경향을 가속화하고 있다. 65세 이상 분들이 경제활동을 길게 이어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기존 세탁업주들과 상생할 수 있는 ‘실버 서포트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이 분들이 힘들어하는 세탁 부분이나 배송을 우리가 돕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업계에 뛰어들지 않았어도 10년 뒤면 동네 세탁소의 70%는 사라질 추세다. ―고객 입장에서는 그동안 동네 세탁소 말고도 프랜차이즈 세탁소라는 대안이 있었다. 30년 전 나온 프랜차이즈 세탁 서비스는 2세대 세탁서비스로 한 시대를 장악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바일이다. 프랜차이즈 세탁소에는 여전히 고객이 직접 가서 빨래를 맡기고 2, 3일 걸려 찾아야 한다. 직장인은 밤늦게 퇴근해 세탁소를 찾아갈 수 없어 주말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고객이 배달을 원할 경우에는 프랜차이즈 사장들이 본인 또는 고객의 비용으로 배달해야 한다. ―그래서 ‘모바일 비대면 세탁’을 생각한 건가. 모바일을 대주제로 삼고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지 비대면이 나왔다. 모바일로 버튼만 눌러 서비스를 신청해도 세탁 수거와 회수 등 사람을 만나는 건 답이 없다. 세탁은 원가가 핵심이기 때문에 더 자동화 기계화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세탁업은 일본문화가 많이 반영돼 도제식 장인문화가 심하다. 곁다리에서 보면서 배워야하고 지식의 전파가 안 된다. 사람이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사람이 해야 높여주는 그런 특이한 문화가 있다. 사람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은 기계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런드렛을 쓰면 세탁소 비닐을 안 사용해도 되겠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깨야 한다. 런드렛은 일반 세탁소에서 쓰는 흰 옷걸이도 안 쓴다. 돈 좀 더 주고 만들어서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게 했다. ESG가 별건가. ―올해 매출 목표는. 올해 500억 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직원 300명인데 모바일 서비스와 인사 등 여러 분야에서 직원도 계속 뽑고 있다. 저희는 인프라를 많이 깔아야하고 소프트웨어 기술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스마트 팩토리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가. 공장 1층에서 세탁이 마쳐져 2층으로 올라오면 개별 고객의 옷이 분류돼 포장된다. 최근 B2B 세탁서비스를 하기 위해 아워홈에서 운영해 온 국내에서 가장 큰 세탁공장을 인수했다. 호텔 레스토랑 미용실 등 자영업자들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작년부터 수선 서비스도 하던데. 수선도 산업과 관련이 있다. 소비자들이 이젠 해외직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입어보고 사지 않는다. 각 브랜드마다 ‘라지’ ‘38’ 등이라고 해도 사이즈가 미묘하게 다르다. 온라인 패션이 성장을 계속 하면 수선의 니즈가 같이 따라간다. 이걸 모바일 비대면 서비스로 제공했더니 잘 된다. ―감각파 패션 디자이너 오유경 씨가 ‘라이프고즈온’(Lifegoeson) 타월을 만들었더라. 호텔 어메티니처럼 고급스러워 보였다. 지난해 12월 ‘라이프고즈온’ 제품을 내놓았다. 샴푸 타월 치약 목욕 가운 등의 라이프스타일 제품이다. 세탁수거함 ‘런드렛’은 집 안팎을 드나드는 신기한 물류구조를 갖고 있다. 세탁물을 런드렛에 넣어 보낼 때 제품을 집 안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는 거다. 고객 입장에서는 정기적으로 필요한 걸 자연스럽게 구매할 수 있고, 배송비가 세탁 서비스에 이미 포함돼 있기 때문에 추가 배송비를 낼 필요가 없다. 일단 시작은 정기적으로 집에서 사용하는 제품으로 삼고 욕실 주방 제품을 만들었고 제품군을 더 확장해나갈 것이다. ―결국 의식주 완성을 이루는가. 결국 주거다. 의식주를 플랫폼에서 올인원 해결하게 해주고 싶다. ―Lifegoeson은 누가 작명했나. 제가 직접 했다. 상표권도 제가 갖고 있고. 의식주컴퍼니의 영어 사명이다. 세탁으로 글로벌 1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만큼 깊은 고민을 하면서 세탁하는 곳은 다른 나라 어디에도 없다고 자부한다. 내년에는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에 진출하려고 한다. ―만약에 누가 나서 이 업체를 팔라고 한다면.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진짜 좋은 서비스를 해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게 저한테는 행복인거 같다. 첫 번째 차렸던 덤앤더머스를 엑싯(투자 회수)하면서 돈은 동년배에 비해서는 많이 번 편이다. 돈은 적정하게 있으면 된다. 욕심은 부리다보면 끝이 없다. ―직원 뽑을 땐 뭘 보고 뽑나 ‘우리와 잘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결국에는 스타트업이니까 비정상적인 에너지를 써야 할 일도 있고, 어려운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중요하다. 대기업에서는 조직이 천천히 해결할 일을 스타트업에서는 빠르게 풀어야 한다. 스타트업은 그래야 성장한다. 기본적으로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삶을 바꾸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디에서 사업의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나.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다. 요즘 다시 읽는 게 헤지펀드의 대부 레이달리오가 쓴 ‘원칙’이다. 그 책에는 ‘극단적 진실과 극단적 투명성을 믿어라’는 구절이 있다.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을 보면 모두가 진실을 투명하게 제대로 보지 못하면 인류 멸망까지도 이를 수 있다. 다소 섬뜩한 내용이지만 회사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한국의 일하는 문화는 진실을 투명하게 적극적으로 나누는 것을 불편해 하고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면 진짜 근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공급자 중심의 불투명한 세탁산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극단적으로 투명해져야 한다. 그래야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 ―당신의 사명은. 일상의 변화가 각 가정에서부터 사회로 전염돼 삶이 윤택해졌으면 한다.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서 벗어나 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더 소중한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의 생각“창업은 다시 혼자가 되는 과정.”“창업가는 망각의 동물. 성취의 기쁨만 생각나.”“돈이 목적이면 문제가 생길 때 무너진다.”“창업은 비정상적 에너지를 써야 결과가 나오는 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2022-02-16 12:10
서른 살 생일에 대기업 나와 빨래에서 답 찾기까지[Question & Change]동아일보는 14일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창업가가 걸어온 길을 한정된 지면에 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대화 내용을 추가로 싣는다.▶지면기사 보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13/111761814/1서울 용산 센트럴파크타워에 있는 ㈜의식주컴퍼니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카페 같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노란색과 초록색이 배합된 냉장고, 시내 전망이 확 트인 창가를 따라 놓인 책상, 안마의자가 놓인 1평 남짓의 Rest Room과 식물들. 이 곳은 세탁 서비스를 하는 회사 맞는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통유리 문에 새겨진 각 회의실의 명칭이었다. ‘Dryclean Room’ ‘Wash Room’ ‘Spot Room’….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조성우 대표에게 회의실 이름을 그렇게 붙인 이유를 물었다. “재미나 브랜딩 차원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면 사무실 직원들도 현장 중심적 사고를 할 것일지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고객 경험과 직결되기 때문에 현장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창업을 고민하게 된 시점은 언제부터인가.현대중공업 홍보실에서 근무한 지 5년이 넘어갈 무렵이다. 당시 모시고 있던 고위직의 인사이동으로 갑자기 부서가 해체됐다. ‘정말 열심히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이별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회사 생활에 한계를 느꼈다. 당시 같이 일했던 선배와 술 한 잔 했는데, 그 선배가 “회사 다니는 건 홀로 서는 거다. 너도 이제 앞으로 혼자 서는 길을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현대중공업에서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에 대해 홍보하는 역할을 했는데, 정작 나는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는 것 같아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퇴사는 2011년에 했다. 퇴사일이 내 생일이라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다시 태어난다는 마음으로 사표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날 냈다.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당시에는 대기업에 입사하는게 ‘가장 잘됐다’라고 얘기하던 때였다. 부모님도 현대중공업에 다니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하지만 아들의 인생을 부모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님과 상의 없이 퇴사했고, 퇴사를 한 후에 “회사를 그만 뒀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앓아누우셨다. 당시 ‘벤처’는 어감이 좋지 않았다. 겉멋 든 사람들이 하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잘 나가던 대기업 관두고 창업한다고 하니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현대중공업을 퇴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창업을 했더라. 퇴사할 무렵 티몬, 위메프, 쿠팡 등이 막 등장하면서 소셜커머스가 ‘뜨고’ 있었다. 이걸 보면서 나도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인받은 금액만큼 카페나 레스토랑 이용권을 붙여 덤으로 주고, 사람들끼리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덤앤더머스’라고 붙였다. 매출의 1%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델도 넣었다. 하지만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수익이 나지 않으니 사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사업하면 무조건 몇 달 안에 대박날거라고 생각했다. 대학 친구와 후배 등 나까지 포함해 5명이 함께 창업했다. 5년 6개월가량 회사를 다니며 모았던 돈을 포함해 내 모든 걸 창업에 넣었다. 인턴은 27명이나 뽑았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당시 포털 배너 광고비가 1시간에 3500만 원이었다. 자본금의 5분의 1을 거기에 썼다. 배너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서버가 다운됐고, 기술력이 부족하다보니 2주 동안 복구를 못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던 모든 것들이 와장창 깨지기 시작했다. 회식 한 번만 해도 100만 원씩 없어졌다. ‘30명 가까운 사람들의 소중한 미래와 인생을 너무 무책임하게 생각하고 사업을 시작했구나’라는 반성이 들었다. 무서웠다. 결국 6개월가량 버틴 뒤 울면서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이별했다. ―첫 창업이 망한 것인데. 그 뒤로는 어떤 과정을 겪었나. 함께 창업했던 5명이 모여 굉장히 깊은 토론을 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해보자’라고 생각해 남성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종합 서비스로 피봇팅(Pivoting·방향전환)을 했다. 처음엔 ‘대동회식도’라는 이름의 회식장소 추천 서비스였다. 이용자가 예산과 인원 수, 지역 등의 조건을 입력하면 식당을 추천받고 예약까지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발전된 아이디어가 ‘구독’이었다. 이 자체가 큰 개념이다보니 정기성을 갖는 아이템들을 배달해주는 방향으로 다시 한 번 피봇팅을 했다. 샐러드 도시락이 가장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신선식품에 집중했다. 직장인들이 회사에 있을 때 신선식품 배송이 집으로 오면 불안하니, 출근하기 전에 배달되는 콘셉트를 착안했다. 국내 새벽배송의 효시 격이다. 하지만 3번의 피봇팅이 1년 안에 일어나는 혼란이 있다보니 그 과정에서 초기 멤버들이 하나둘씩 떠났다.이때부터 암흑의 시간이 펼쳐졌다. 나와 후배 한 명만 남아 새벽배송을 만들었다. 밤에 잠도 못자고 직접 새벽배송을 했다. 개인의 생존 자체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덤앤더머스 창업 후 초기 1년 반에 대한 기억이 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 새벽배송이 조금씩 잘 되기 시작했다. ―이 회사를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이 인수했던데. 콜드체인을 만들면서 2014년도에 약 20억 원의 매출이 났다. 그 전까지는 엔젤 투자만 받았는데, VC(벤처캐피털)투자도 한 번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한 VC에서 우아한형제들을 만나보라고 조언해줬다. 당시 이 회사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했다가 성과가 잘 안 나는 상황이어서 우리 서비스를 긍정적으로 봤다고 들었다. 만나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날 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회사를 방문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 때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도 같이 왔다. 김 대표는 그 자리에서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인수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서 덤앤더머스를 팔거나 M&A를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고민이 됐다. 우리 힘으로 여기까지 잘 왔고, 더 잘 되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더 큰 회사, 더 좋은 회사의 힘을 받아 더 많이 잘 성장해야겠다. 더 이상 일개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대표인 후배에게 의사를 물어봤고, 부대표는 내게 “형님 뜻대로 하세요. 저는 (매각)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인수 후 서비스는 ‘배민프레시’로 이름이 바뀌고, 초기에 굉장히 잘 됐다. 하지만 배달의민족에는 배민프레시뿐 아니라 배민라이더스라는 또 다른 크고 중요한 사업도 있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프레시 산업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분위기도 있었다. 2년 6개월가량 배민프레시 대표를 지내다가 ‘충분히 내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해 퇴사하게 됐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을 그만두고 나서 어땠나. 스타트업 창업자로서 창업부터 M&A까지 한 번의 사이클을 7년에 걸쳐 끝내고 자유의 몸이 된 것이었다. 기쁨의 눈물이 나와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무리를 짓고 집에 딱 들어간 순간 주변이 하얘지는듯한 느낌을 받았고, 눈물이 쏟아졌다. ‘창업이라는 게 다시 혼자가 되는 과정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사업 중간 중간 창업자들은 다 떠났고, 부모님은 힘들어하셨다.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허무했다. 우울증이 오고 몸도 아팠다. 독감시즌도 아닌데 독감에 걸리고 대상포진도 걸렸다. 한 달 동안 집밖을 안 나가다가, 7년 동안 나를 위해 한 번도 투자한 적이 없다는 생각에 대학시절 교환학생을 다녀온 미국 서부지역으로 여행에 나섰다. ―미국 여행에서 지금의 ‘런드리고’(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 아이디어를 얻어왔다는데. 친구와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던 중 도둑이 렌터카 뒷 유리창을 깨고 짐을 다 가져가는 도난 사건을 겪었다. 그런데 도둑이 유일하게 안 가져간 게 있었다. ‘아마존프레시’ 가방에 담아놨던 빨래다. ‘그 가방에 좋은 옷도 많았는데, 왜 안 가져갔을까’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다닐 때 경험도 문득 생각났다. 오전 7시에 정장을 입고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면 빨래가 늘 스트레스였다. 뭔가 느낌이 왔다. 미국 동부에 있는 필라델피아로 지인을 만날 겸 놀러갔다. 그리고 지인으로부터 주변에 세탁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미국 한인사회의 ‘세탁왕’ 같은 분이었다. 그 분을 통해 중국인이 운영하는 세탁 공장도 가 보게 됐다. 셔츠를 기계들이 다림질하고 있었다. 식품과 달리 세탁은 기계화·자동화가 많이 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필라델피아에 갈 때까지만 해도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다. 일단 ‘알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공장 방문을 계기로 진지하게 어떤 직감이 확 왔다. 그때부터 일본, 한국의 공장을 다니며 3개월을 고민했다. ‘창업이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창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변화와 혁신이 없는 세탁시장을 바꿔볼 수 있겠다, 청결하게 잘 세탁해주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면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느낌이 왔다고 곧바로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날아가다니. “이게 설명이 잘 안 되는 부분이다. 뉴욕에서도 세탁왕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서울 강남에서 김포까지 가는 거리였다. 그 분의 연락처를 받고 연락을 안 했을 수도 있고 여행길에 굳이 먼 길을 찾아가 만나지 않아도 됐던 상황이었다. 창업가는 망각의 동물인 것 같다. 막상 창업하면 왜 또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마약과 같다고나 할까. 성취를 했을 때의 즐거움과 기쁨, 좋은 것만 생각난다.” <TO Be Continued…>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2022-02-15 10:02
“강남 아파트 2억 공간에 세탁기 들일 필요 있나요”《창업 열기가 뜨겁다. 크고 작은 스타트업에서 고용과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동아일보는 ‘Question & Change’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길을 만들면서 변화와 혁신을 이뤄내는 창업가들을 소개한다.》 요즘 서울 마포의 오피스텔에도, 용산구의 나인원한남 등 초고가 아파트에도 문 앞에 자주 보이는 물체가 있다. 자물쇠가 달린 120cm 높이의 직사각형 박스. 이름은 ‘런드렛’이다. ㈜의식주컴퍼니의 조성우 대표(41)는 당연하게 생각돼 왔던 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집 안에 세탁기는 꼭 필요한가. ○ 집 안에 세탁기가 없다면 서울 용산 센트럴파크타워에 있는 의식주컴퍼니 사무실은 둥근 조명과 식물들이 카페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그곳에도 런드렛이 있었다. 오후 11시까지 모바일로 세탁을 신청하고 여기에 빨랫감을 넣어 문 밖에 내놓으면 하루 만에 완성돼 온다. 조 대표는 “고객의 집 안과 밖을 드나드는 신기한 물류 구조를 갖춘 세탁수거함”이라고 설명했다. “세탁이라는 단어를 재정의해야 합니다. 동네 세탁소는 주로 드라이클리닝을 하지만 우리 삶에서 세탁의 절반은 물빨래예요. 세탁을 통합적으로, 그것도 비대면으로 하루 만에 해결해주는 서비스(런드리고)가 있다면 소비자들은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겠죠.” 조 대표의 신념은 ‘세탁 혁신은 주거공간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집 안에 세탁기, 건조기, 스타일러를 두려면 두 평은 필요합니다. 평당 1억 원인 서울 반포자이 아파트라면 세탁공간에 2억 원이 드는 셈이에요.” 그의 집에는 세탁기가 없다. 그는 빨래를 인생의 ‘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을 구성하는 중요한 ‘소재’일 뿐이다. 하지만 누가 빨래를 할 것인가로 부부가 싸우다 보면 소재가 주제로 둔갑할 수 있다. 빨래로 싸우다 이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하는 사업인데도 ‘내가 직접 빨래하는 게 속 편하다’던 어머니가 맞벌이인 저희 부부의 아기를 돌봐주시면서 석 달 전 런드리고를 ‘영접’하셨어요.” ○ ‘성취의 기쁨만 기억한다’는 창업 DNA 현대중공업 홍보실에서 일하던 그는 30세 생일 때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사직서를 냈다. “각지게 신문 스크랩하는 쳇바퀴 직장생활에 ‘현타’(현실 자각타임)가 와서”였다. 하지만 그 시절 창업 씨앗이 마음속에서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홍보 업무를 위해 정독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는 물었다. “임자, 해 보긴 해 봤어?” 처음 차린 소셜커머스 스타트업 ‘덤앤더머스’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곧 대박 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인턴을 27명이나 뽑았다. 자본금 1억5000만 원 중 3500만 원을 한 시간짜리 배너 광고에 썼다가 서버가 다운됐다. 6개월 만에 울면서 사과하고 이별했다. 남성 직장인 대상 와이셔츠 배송으로 사업을 틀었다가 신선식품 새벽 정기배송 사업에서 답을 찾았다.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간 투자회사에서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을 만나 보라고 했고 김봉진 대표가 직접 찾아와 그 자리에서 “인수하겠다”고 했다. 업계 용어로 ‘엑시트(exit·투자 회수)’에 성공했다. 좀 쉴 만도 한데 조 대표는 ‘런드리고’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창업가는 망각의 동물이에요. 성취했을 때의 기쁨만 생각나는 거예요. 그게 창업의 DNA인가 봐요.”○ “투명하게 일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는 영세하고 고령화된 국내 세탁업을 미래 산업으로 접근했다. 지금까지 750억 원을 투자받아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팩토리들을 지었다. “유독 세탁업만큼은 모바일로 진행되지 않았고 도제식 문화가 강해 지식의 공유도 이뤄지지 않아요. 세탁에서도 일하는 방식을 극단적으로 투명하게 바꿔야 고객이 원하는 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는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의 말을 늘 되새긴다고 한다. ‘트렌드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체 불가능한 사명을 찾는 것이 미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는 새로운 시장을 계속 읽어낸다. 사람들은 점점 더 몸과 정신이 편안한 방향으로 지갑을 열고 있다. 얼마 전 비대면 옷 수선 서비스를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으로 입어 보지 않고 옷을 사니 수선할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엔 샴푸와 수건 등 호텔급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협업해 팔기 시작했다. 런드렛을 통하면 별도 배송비가 들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포장재도 필요 없다. 그는 의(와이셔츠 배송), 식(신선식품 배송), 주(세탁 등 라이프스타일)의 순서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해 왔다. 그는 그것이 그의 대체 불가능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창업의 순간: 첫 번째 회사를 매각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눈물이 쏟아졌다. 뭘 위해 달려왔는지 허무했다. 한 달 후 ‘나를 찾아 떠난’ 미국 여행에서 도둑이 렌터카 창문을 깨고 죄다 훔쳐갔다. 차에 세탁물만 남아 있었다. 그때 비대면 세탁 서비스를 생각했다. #회사 이름의 의미: 의식주컴퍼니의 영어 사명(社名)은 ‘Lifegoeson’이다. 의식주는 계속 존재하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사람들의 니즈는 커질 수밖에 없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2022-02-14 03:00
[광화문에서/김선미]과학적 창의성으로 삶을 ‘감각’하는 방법들“아침 해가 희미하게 장밋빛 망토를 걸치고, 동쪽 높은 언덕의 이슬을 밟고 오는구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의 친구인 호레이쇼가 근위장교 마셀러스에게 한 말이다. 해가 뜨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지난해 말 세상을 뜬 사회생물학의 대가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저서 ‘창의성의 기원’에서 이 대사를 언급하며 인류 진화의 탁월한 성취로 ‘은유’를 꼽는다. 생생한 이미지를 찾도록 상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은유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야만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과학 저서 ‘인간 본성에 대하여’와 ‘개미’로 두 차례 퓰리처상을 받은 윌슨은 과학적 창의성이 인문학과 예술의 시야를 넓힌다고 봤다. 그가 1984년 내놓은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을 향한 인간의 사랑) 가설’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요즘 과학계와 예술계에서 각광받는 학설 중 하나다. 인간 유전자 속에 자연에 대한 애착이 내재돼 새소리를 듣거나 식물의 잎을 만지면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는 것이다. 자연은 다중감각이 가능한 환경이다. 오랫동안 시각에 밀려나 있던 촉각과 후각 등 정서적 감각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진행된 ‘No Limits in 서울’이라는 제목의 온라인 심포지엄은 참신하고 인상 깊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주최한 무장애 예술주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우리의 감각이 어떻게 전이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 탐색하는 자리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란 주제로 강연한 이토 아사 도쿄공업대 교수(미학)는 각 존재가 지닌 고유의 세계 인식, 즉 ‘움벨트(Umwelt)’ 개념을 강조했다. 일례로 시력을 잃은 50대 남성은 눈이 아닌 다른 감각을 통해 역에서부터 집까지 간다. 길을 건너 100m 정도 직진하면 오른쪽에서 장어구이 식당 냄새가 나고 계속 가면 두부 냄새가 난다. 시각장애인은 ‘시각이 결여된 비장애인’이 아니라 ‘다른 감각들로 보는’ 사람들이다. 이토 교수는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팀을 이뤄 작품을 감상하는 ‘음성 이미지 미술관 여행’이란 프로젝트도 진행한 적이 있다. 비장애인은 작품의 크기와 색상 등 객관적 정보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시각장애인에게 들려줬다. 이런 주관적 의미를 나누자 대화는 은유로 가득 채워지고 서로 다른 관점이 만나 공동의 해석이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눈이 보인다는 게 항상 우월하지만은 않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국내 SF소설계를 이끌고 있는 김초엽 작가의 강연 주제는 ‘아름다움을 감각하는 다른 방법들’이었다. 10대 때 3급 청각장애 판정을 받은 포스텍 생화학 석사 출신의 김 작가는 인간의 오감을 넘어 갯지렁이나 로봇의 감각을 상상하며 감정을 이입한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겨왔던 인간의 감각이 사실은 얼마나 협소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한다. 장애까지는 아니어도 노화는 시각과 청각을 약화시키게 마련이다. 침침해지는 감각을 슬퍼하지 말고 다른 풍성한 감각들을 찾는 즐거운 탐험에 나서면 좋겠다.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2022-02-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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