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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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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바위솔 등 우리 자생식물 살려 지역소멸 막겠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진주바위솔, 정선국화, 울릉제비꽃은 원산지 명칭을 이름에 담은 아름다운 우리나라 자생식물입니다. 지역의 명칭을 딴 한반도 특산식물이 전국 45개 지방자치단체에 57종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심각하게 훼손돼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자생식물 증식기술을 갖춘 국립수목원이 이 식물들을 잘 보존시켜 지역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소멸을 막는 데 기여하겠습니다.”취임 50일을 맞은 임영석 국립수목원장(47)을 만났다. 국립수목원은 연간 40만 명이 방문하는 국민의 녹색 쉼터이자 다양한 산림생물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그는 ‘미스김라일락’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야생화인 북한산 백운대의 털개회나무가 1948년 미국으로 넘어가 미스김라일락으로 개량돼 세계적 관상수가 되었습니다. 자생지가 한국인데 지금은 우리가 역으로 수입해 로열티를 내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지역 식물 통해 지역 브랜드 만들자”유전자원을 사용하며 생기는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국제협약인 나고야의정서(2014년)가 발효되면서 생물자원의 주권 확립에 대한 국가 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생물자원 무기화에 따른 생물 주권 활용 발굴과 실용화 기술개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임 원장은 국립수목원의 자생식물 증식기술에서 이런 상황을 헤쳐갈 해법을 찾는다. “지역 자생식물이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지역소멸을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립수목원이 각 지역의 자생식물을 증식하고, 지자체들은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생산하면 자생식물로 지역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지역 브랜딩’이 됩니다. 울릉제비꽃을 보기 위해 울릉도 여행을 떠나면 그것이 곧 ‘가든 투어리즘’입니다. 지역 자생식물은 정원의 식물 소재나 반려식물로 활용할 수 있고 추출물이 항노화 기능 등을 갖기도 해 산업화도 가능합니다. 식물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가 상호 협력하는 ‘식물 거버넌스’를 구축하겠습니다. 벌써 몇몇 지자체장이 관심을 보입니다. 순천만국가정원처럼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국내에 ‘국립’이라는 명칭을 쓰는 수목원은 여럿 있지만 국가 공무원이 운영하는 수목원은 국립수목원이 유일하다. 1987년 광릉수목원으로 개원해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광릉숲은 조선의 제7대 왕 세조의 능(陵)인 광릉이 조성된 후 부속림으로 지정돼 엄격하게 관리돼 광릉요강꽃과 장수하늘소 등 희귀특산생물이 사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국립수목원은 이런 광릉숲뿐 아니라 경기 양평의 유용식물증식센터, 강원 양구 펀치볼 일대의 국립DMZ자생식물원, 강원 인제 점봉산과 경북 울릉도의 시험림 관리도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태적 가치가 가장 우수한 곳들이다. 20여 년간 산림청의 엘리트 공무원 코스를 밟아온 그가 국립수목원을 이끌게 되자 조직에 신선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취임해서 국립수목원 직원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우리 국립수목원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무엇이냐고요. 그 명확한 답을 찾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기초연구는 수목원 관리 운영과 함께 국립수목원의 중요한 한 축이되, 그 연구가 국민 생활과 동떨어지면 안 됩니다. 우리 조직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 나가겠습니다.”●식물통일 준비와 정원문화 확산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과 유엔식량농업기구 등 해외 근무 경험이 풍부한 임 원장은 식물통일에 대한 열망이 각별하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신비로운 장소가 비무장지대(DMZ)입니다. DMZ는 70여 년간 인간의 간섭이 최소화한 세계적 생태연구의 보고(寶庫)입니다. 국립수목원은 2016년 강원 양구군에 우리나라 최북단 식물원인 국립DMZ자생식물원을 열고 북방계와 북한의 식물까지 두루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남과 북이 같은 식물을 두고 다른 이름을 부르지만 지금 연구해두면 통일이 됐을 때 식물을 통해 우리 민족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식물 보전과 복원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식물통일’을 준비하겠습니다.”2000년대 중반 산림치유 개념을 국내 행정에 도입하고 지난해 산림청에 정원 조직을 신설하는 실무를 맡았던 그는 요즘 정원치유에 주목하고 있다. “정원은 청소년 등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위로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다양한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가능한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알리겠습니다.”지난달에는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전국 지자체 정원업무 관계자 200여 명을 불러모아 ‘2024 대한민국 정원네트워크 워크숍’ 행사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함께 노력해 모두가 정원이 풍부한 도시에서 삶의 질을 높여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임 원장에 따르면 이달 초 국립수목원 숲생태관찰로가 25년만에 새단장돼 선보였다. 숲의 천이과정을 볼 수 있는 460m 데크길로 조성된 공간으로, 동선의 경사를 낮춰 보행이 불편한 이용자도 편안하게 숲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요즘 구근식물이 싹을 내밀고, 큰산개구리가 우는 국립수목원에는 새들을 관찰하러 오는 관람객들도 눈에 많이 띈다.●미래를 향한 식물 연구와 교감국립수목원의 미래를 향한 식물 연구는 우주에도 눈을 돌렸다. “미 할리우드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이 우주선 안에서 감자를 키웠듯, 그동안 우주 환경에서 먹을 수 있는 작물 재배 연구가 있었는데요. 저희는 우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우주 식물 연구, 우주 선체에 반려식물이 공존하는 정원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다행히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교감이 시작돼 새로운 접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임 원장은 경기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사택에서 태어나 원예, 조경, 산림자원학을 두루 공부했다. 국내 1세대 조경가로 삼성래미안 아파트 조경을 담당했던 임삼춘 전 삼성물산 고문이 부친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그의 손목시계가 궁금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흑단으로 만든 시계가 있는 걸 보고 우리 나무로 시계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 5종류의 수종을 테스트해봤습니다. 이건 느티나무로 만든 시계에요. 나무는 자꾸 보고 만져봐야 정이 듭니다.”그는 올해 식목일 무렵 ‘어린 왕자 프로젝트’를 펼칠 예정이다. 국립수목원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 ‘내 나무’로 삼는 캠페인이다. 우선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작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반려식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습니다. 흔히 ‘내 나무’를 갖는다고 하면 나무 심기부터 생각하는데, 이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어린 왕자가 장미꽃과 관계를 맺듯 내 나무를 정해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돌보고 안아주는 것입니다. 잘생긴 나무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위태로운 환경에 심어진 연약한 나무에 마음이 향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72억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삶 속에서 ‘내 나무’를 가졌으면 합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3-05 09:30
일상에 들어온 가드닝…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가보니[김선미의 시크릿가든]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3월 3일까지 열리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다녀왔습니다. 올해가 벌써 29번째인 이 박람회는 매년 30만 명 이상이 찾는 국내 최대 규모의 리빙 전시회입니다. 올해에도 450여 개 브랜드가 참여했는데요. 특히 가드닝 부스들이 꾸려져 관람객이 몰린 모습을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에 정원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가드닝 라이프 스타일을 콕 찍어 보고 싶다면 코엑스 3층 D홀로 직행하셔도 좋습니다. 가드닝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그린무어’가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끕니다. 서울 서초구 신원동에 매장을 둔 이 회사는 김민경 공동대표(31)와 그의 영국인 남편 벤자민 피셔 공동대표(30)가 함께 이끄는 곳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아내는 패션, 남편은 약학을 공부하다가 만나 서울에서 가드닝 회사를 차리게 됐다고 합니다. 남편의 고향이 영국 런던 근교의 동화같이 예쁜 마을 코츠월드이고, 아내의 부모님은 경기 과천과 서울 서초동에서 오랫동안 조경 농장을 하셨다니 운명적 만남이 아니었을까요.이곳의 전시 부스에는 영국에서 직수입한 가드닝 제품들이 확실히 많습니다. 전 세계 가드너들이 선망하는 영국왕립원예협회(RHS)의 사슴 가죽 가드닝 장갑을 비롯해 캠브리지대학 식물원의 일러스트 엽서, 각종 꽃무늬 티 타월 등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집니다. 다알리아, 수선화, 개나리재스민, 수염패랭이 등의 식물 화분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영국의 자연보호 민간단체 내셔널트러스트가 펴낸 ‘시크릿가든’이라는 책도 샀습니다. 같은 제목의 기사를 연재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반갑던지요. 넋 놓고 예쁜 제품들을 탐하다가는 가산 탕진할 수 있으니 주의 바람입니다!‘정원생활 바이 오랑쥬리’ 부스에서 주례민 대표도 만났습니다. 정원생활 바이 오랑쥬리는 지난해 9월25일 ‘김선미의 시크릿가든’을 통해 소개했던 경기 용인의 가든센터입니다(). 주 대표는 말합니다. “라이프스타일에 식물이 빠질 수 없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나왔습니다. 정원에 쓸 수 있는 수반, 가드너들이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 국내에서 제작한 호미와 가방 등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정원 설계 시공에 대한 협업 제안도 환영합니다.”‘송버드(Songbird)’라는 업체도 흥미로웠습니다. 플랜테리어(plant+interior·식물 인테리어)에 빠질 수 없는 게 화분인데요. 이 업체는 개성 넘치는 화분마다 이름을 붙여 화분의 존재감을 묵직하게 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절로 떠오릅니다. 화분 위쪽에 식물을 담는 ‘큐피드’와 ‘버그 라이프’ 같은 화분은 곁에 두고 보면 자주 얼굴에 미소를 짓게 될 것 같아요.도시의 사무실과 아파트에서 한 뼘 실내 정원을 가꿀 수 있는 플랜테리어 모듈을 판매하는 ‘서울 가드닝 클럽’, 수경 식물을 선보이는 ‘메이크 정글’, 가드닝 앞치마와 장갑 등 각종 가드닝 용품을 선보이는 ‘세븐가드너스’, 토분을 파는 ‘그로브팟’ 매장도 들러보세요. 1층에 있는 제주 ‘스누피가든’ 매장에서는 각종 스누피 관련 상품을 판매합니다. 캠핑존과 상담존 등 스누피 캐릭터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들이 특히 인기네요.가드닝 매장이 아니어도 확실히 요즘의 리빙 트렌드는 식물과 함께 하는, 심신의 고요한 평화를 꿈꾸는 삶을 지향합니다. 서영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임태희 디자이너는 ‘집: Sweet Home’이라는 주제로 기획관을 선보이면서 행복이 가득한 집을 10개의 공간으로 구현했습니다. 요리가 취미인 아빠의 방, 식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섬세한 아들의 방…. 버려진 등을 뜨개질한 천으로 감싸서 만든 리사이클 새장 등을 보면 우리 시대가 원하는 따뜻함과 다정함이 무엇인지 느껴집니다.이 행사를 마련한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는 말합니다. “그린 문화로서, 환경을 위해서라도 정원문화와 정원산업은 앞으로 더욱 퍼져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가드닝은 우리 삶에 위로를 주니까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2-29 18:22
AI가 나만의 맛을 추천해주는 SPC ‘워크샵 바이 배스킨라빈스’인공지능(AI)이 나에게 맞는 아이스크림 맛을 추천해주는 공간이 생겼다. SPC 배스킨라빈스가 최근 문을 연 ‘워크샵 바이 배스킨라빈스(이하 워크샵)’이다. AI를 포함해 차세대 제품 연구개발(R&D) 역량을 선보이는 실험과 창조의 공간이다. ‘와사비’나 ‘크림브륄레’ 맛도 새로 만들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로 배스킨라빈스 본사 사옥 ‘SPC 2023’ 1층에 위치한 330㎡ 규모의 워크샵은 배스킨라빈스 기술력이 담긴 제품들을 비롯해 이 회사 기획자와 연구원들의 혁신적인 제품들을 가장 먼저 선보이는 곳이다. 소비자 반응을 확인해 가맹점 확대 적용을 테스트하는 등 R&D 센터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계획이다.특히 오픈AI가 개발한 챗GPT를 통해 신제품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생성형 AI로 제품 비주얼까지 그려내는 차세대 상품 개발 모델인 ‘배스킨라빈스 AI NPD(New Product Development) 시스템’을 최초로 시범 운영한다. 워크샵 매장에서만 접할 수 있는 제품 라인업으로서 빅데이터 딥러닝 기술 기반 AI를 접목해 신제품 ‘딥 플레이버(Deep Flavor)’도 매달 선보이게 된다.워크샵 매장은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브랜드 스토리텔러 ‘닥터’를 운영한다. 소비자들에게 취향에 맞는 아이스크림 맛을 추천하고, 배스킨라빈스 브랜드 스토리를 일대일로 설명해준다. 배스킨라빈스는 올해 상반기 중 닥터와 함께하는 ‘아이스크림 도슨트’ 프로그램을 선보여 소비자들에게 아이스크림에 대한 전문적이고 프라이빗한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배스킨라빈스는 SPC그룹의 마케팅 솔루션 계열사 섹타나인과 협업해 23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멤버십 서비스 ‘해피포인트’의 빅데이터를 토대로 고객들이 선호하는 맛을 분석해 반영한 제품을 워크샵 매장에 새롭게 내놓았다. ‘와사비’와 ‘크렘브뢸레’ 등 창조적인 맛을 포함해 기존의 ‘그린티’ 맛을 다양하게 변주한 ‘그린티 오렌지 자스민’과 ‘그린티 얼그레이’ 등의 맛도 만나볼 수 있다. 동물, 과일, 캐릭터 등을 달걀 모양의 케이크로 형상화해 케이크의 무궁무진한 변신을 담은 워크샵 매장만의 시그니처 ‘에그 케이크’ 라인업도 최초로 공개한다.워크샵 매장은 3가지 콘셉트의 공간으로 구분해 브랜드 체험을 강화했다. △워크샵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맛을 포함해 총 48종의 플레이버가 스토리와 함께 준비된 스토리 존 △ 매장에서 셰프가 직접 제조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선보이는 케이크 존 △이탈리안 정통 스타일의 젤라또 12종과 나만의 토핑을 조합해 즉석에서 즐길 수 있는 ‘젤라또 라이브 스테이션’이 마련되어 있는 버라이어티 존 등이다.배스킨라빈스 관계자는 “워크샵은 AI와 빅데이터 분석 등 차세대 기술을 접목한 혁신적인 신제품을 가장 먼저 선보여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고 배스킨라빈스의 미래를 제시하는 R&D센터 기능을 담당할 것”이라며 “워크샵 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매개로 소비자들에게 보다 전문적이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2-27 03:00
미식과 휴식으로 봄을 맞는 호텔 패키지《곧 봄이다. 봄기운 맞으러 멀리 떠나볼 수도 있지만 서울 시내 호텔에서 미식과 휴식을 누리는 것도 봄을 편안하고 화사하게 맞는 방법이다. 다채로운 패키지 프로그램들을 소개한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스트로베리 딜라이트(Strawberry Delight)’ 패키지서울 남산에 위치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스트로베리 딜라이트(Strawberry Delight)’ 패키지를 선보인다. 객실의 풀에 몸을 담그며 프라이빗한 휴식을 즐기고, 오후에는 달콤한 디저트와 따뜻한 차를 맛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다. △객실 1박 △그라넘 다이닝 라운지 조식 2인 △그라넘 다이닝 라운지 애프터눈 티 세트 ‘스트로베리 에디션’ (2인) △실내 수영장, 피트니스 클럽 2인 무료 입장의 혜택이다.그라넘 다이닝 라운지에서 즐기는 애프터눈 티 세트 ‘스트로베리 에디션’은 제철 딸기를 활용한 디저트와 차를 제공한다. ‘딸기의 제왕’으로 불리는 신선한 킹스베리 생딸기를 비롯해 딸기 크림 브륄레, 딸기 피낭시에, 레드벨벳 케이크, 딸기 다쿠아즈 등 아기자기한 비주얼의 디저트와 크리스피 새우, 모르타델라 파니니 등 한입에 먹기 좋은 메뉴들이 음료와 함께 나온다. ‘스트로베리 딜라이트’ 객실 패키지는 3월 28일까지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용 가능하다.비스타 워커힐 서울 ‘슈퍼 비스타(Super Vista)’ 패키지비스타 워커힐 서울의 ‘슈퍼 비스타(Super Vista)’ 패키지는 최상급 유기농 말차와 천연 재료만으로 블랜딩된 슈퍼 말차 홈카페 세트를 제공한다. 슈퍼 비스타 Ⅰ패키지는 비스타 딜럭스 룸과 슈퍼 말차 홈카페 세트로 구성됐다. 슈퍼 비스타 Ⅱ 패키지에는 더 뷔페 조식도 포함돼 있다.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세이버 더 고메(Savour the Gourmet)’ 패키지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은 ‘세이버 더 고메(Savour the Gourmet)’ 패키지를 선보인다. △디럭스 킹 또는 디럭스 더블 1박 △르메르디앙 & 목시 서울 명동 총 4개의 레스토랑 & 바 내 이용 가능한 5만 원 상당의 크레딧 △실내 수영장 및 △피트니스센터 무료 이용 혜택이 제공되며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 시그니처 비치타월 1개도 선물로 증정된다. 서울드래곤시티 ‘프리미엄 딤섬 코스’ 패키지신개념 라이프스타일 호텔플렉스(HOTEL-PLEX) 서울드래곤시티가 3월 30일까지 ‘프리미엄 딤섬 코스 패키지’를 운영한다. △노보텔 스위트·노보텔 객실 1박 △페이 프리미엄 딤섬 코스 2인 △부대시설 이용으로 구성된다. 컨템포러리 차이니즈 다이닝 페이(FEI)에서 대표 딤섬 메뉴인 샤오룽바오, 하가우, 구채교, 샤오마이, 차슈바오를 비롯해 해물 누룽지탕, 깐풍기 등의 특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식사 메뉴와 후식, 보이차도 제공된다.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르 봉 디망쉬(Le Bon Dimanche)’ 선데이 디너 패키지소피텔 앰배서더 서울은 석촌호수 조망의 객실 투숙과 프렌치 뷔페로 주말의 재충전을 만끽하는 선데이 디너 패키지 ‘르 봉 디망쉬(Le Bon Dimanche)’를 선보인다. △석촌호수 전망의 럭셔리 레이크 객실 1박 △주말 프렌치 뷔페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 일요일 디너 2인 식사 △오후 2시 레이트 체크아웃 △시크 비스트로 페메종(Fait Maison) 조식 20% 할인 혜택이 포함되어 있다. 계절에 어울리는 프랑스 지역 가스트로노미와 프랑스 장인의 치즈 셀렉션을 즐기며 여유로운 일요일을 만끽할 수 있는 르 봉 디망쉬 패키지의 예약은 6월 27일까지, 숙박은 일요일 체크인에 한해 6월 30일까지다.안다즈 서울 강남‘식음 크레딧(F&B Credit Package)’ 패키지서울 강남구 압구정역에 인근에 위치한 하얏트 체인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호텔 안다즈 서울 강남은 호텔 내 다양한 미식을 즐길 수 있는 ‘식음 크레딧 패키지(F&B Credit Package)’를 선보인다. △객실 1박 △식음 크레딧 10만 원 △주류를 제외한 미니바 무료 이용 △실내 수영장과 피트니스센터 무료 이용 등 혜택이 포함된다. 제공되는 식음 크레딧은 조식과 룸서비스는 물론 모던 한식 다이닝을 선보이는 ‘조각보 키친’, ‘미트 앤 코 스테이크 하우스’, ‘바이츠 앤 와인’, 갓 구운 빵을 즐길 수 있는 ‘아츠’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2-27 03:00
아트캉스, 호텔을 감각하는 우리 시대의 방식호텔은 여행의 공간이자 쉼의 공간이고 감각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기꺼이 비용을 부담하고 고급 호텔에 들어서는 건 그에 아깝지 않은 만족감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새하얗고 푹신한 침구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오감을 일깨우는 식사일 수도 있겠다. 천장이 높은 수영장, 시야가 탁 트인 피트니스룸, 향이 좋은 보디클렌저와 로션, 어마어마하면서도 세심한 꽃꽂이…. 우리는 취향에 따라 호텔을 고르기도 하지만 호텔에서 취향을 습득하기도 한다. 사랑받는 호텔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략과 노고로 구석구석 공간을 채워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호텔에서 경험하는 낯선 감각 중의 최고는 아트가 아닐까 한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식사할 때 우리는 평소보다 느긋한 태도를 갖게 된다. 하루쯤은 호강하겠다는 마음이기 때문에 모든 감각을 열고 벽에 걸린 아트 작품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생긴다. 요즘 호텔의 아트는 세계적 미술관이나 갤러리급이다. 홈페이지에 작품 소개를 상세히 해 두고, 원하는 투숙 고객에게는 아트 투어도 해준다. 공간의 모퉁이마다, 식사 대기 장소에도 아트 작품들이 있다. 400여 점의 아트 여행‘아트캉스’(아트+바캉스)로 입소문이 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조선팰리스에 다녀왔다. 신세계그룹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최상급 브랜드 호텔로 2021년 5월 문을 연 조선팰리스에는 400여 점의 아트 작품이 곳곳에 비치돼 있다. 로비에 들어서면서부터 펼쳐지는 아트 여행의 시작은 미국 미술가 대니얼 아셤이다. 높이가 260cm에 달하는 ‘풍화된 푸른 방해석 모세상’(2019년)은 언뜻 보면 십계명을 든 모세상이지만 조각상의 벗겨진 부분에 푸른 수정들이 반짝인다.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으로 꼽히는 모세상과 똑같은 크기로 제작해 과거의 유물에서 새로움이 반짝이며 돋아나는 걸 표현했다. 신세계는 그룹의 자존심을 건 최상급 호텔을 브랜딩하면서 로비의 아트 작업을 얼마나 고민했을까. 그 선택이 아셤이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면서도 흥미롭다. 1980년 태어난 아셤은 요즘 전 세계 명품 브랜드들이 손을 잡고 싶어 열광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무려 143만 명. 최근에는 보석 브랜드 티파니와 ‘포켓몬 컬렉션’을 내놓았고, 크리스티앙 디오르와는 스니커즈와 가방, 포르쉐와는 ‘대니얼 아셤 포르쉐 911’을 선보였다. 그가 ‘미래의 유물’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발전시킨 세계관은 ‘허구의 고고학’이다. 구형 카메라 같은 사물들을 석고로 제작해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찾아낸 것처럼 펼쳐낸다. 그의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우리는 ‘미래의 과거’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오토니엘의 구슬 꽃, 정해나의 책가도…조선팰리스는 해외 명품 브랜드 관계자들이 출장 와서 자주 찾는다. 스위트룸에서는 이들 브랜드의 홍보 행사도 종종 열린다. 서울 테헤란로 한복판에 위치해 고층빌딩 숲과 선정릉, 시그니엘 타워까지 바라보는 전망을 갖춰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이 호텔의 아트 컬렉션은 세계적 작가들에서부터 한국의 신진 작가들의 작품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지난해 프랑스 최고의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현대 미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의 ‘국화(Chrysanteme)’는 은박 위에 검은 잉크를 찍어 국화꽃을 표현했다. 파리 팔레 루아얄을 비롯해 국내에서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 연못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꽃 작품을 통해 생명력과 부활의 의미를 전한다. 벨기에 출신의 도예가이자 미술가인 요한 크레텐의 ‘글로리 스프링(Glory Spring)’은 황금빛 구슬들로 낙관적 미래에 대한 설레는 빛남을 담았다. 도서관과 궁전 같은 공적 장소를 촬영하는 라인하르트 괴르너의 대형 사진 작품들, 로버트 모어랜드의 미니멀리즘 패널 작품, 흑백의 대비와 질감의 극대화로 꽃을 추상화하는 조셉 스타쉬케베츠의 꽃 시리즈…. 세계적 거장의 작품 이외에 김지원, 양주혜, 장인희, 박민하 등 국내 중견작가와 신진 작가 작품들도 눈에 많이 띈다. 특히 정해나의 책가도는 전통 장식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점이 돋보인다. 가로, 세로 60cm의 정방형 작품은 집에 들이고 싶을 정도다. 실제로 젊은 고객들이 호텔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지 종종 문의한다고 한다.‘이타닉 가든’에서의 아트 런치조선팰리스 36층에 위치한 한식당 ‘이타닉 가든’은 미셰린 1스타 레스토랑이다. 아름다운 한국의 식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나누기 위해 식당 이름을 ‘먹다(eat)’와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식물원)’을 결합해 지었다. 이곳에 걸린 이정진 작가의 사진 작품 세 점은 수묵화 느낌이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오픈 주방을 바라보는 U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중앙에는 이끼와 돌로 구현한 작은 정원이 있고, 각자의 자리 앞에는 세밀화로 그린 한식 재료 카드가 꽂혀 있다. 군고구마, 주전부리, 머위, 콩, 장, 대추, 매생이, 블랙 트러플, 한식 디저트가 담긴 자개함…. 카드마다 담긴 식재료에 대한 설명이 앞으로 다가올 식사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머위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조선 정조 때 이만영의 글에 ‘백 가지 풀 가운데 머위만이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머위는 강릉이 고향인 저에게는 어릴 적 ‘머구대(머위대의 방언) 나물 먹어봐’라고 하시며 숟가락 위에 얹어 주시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식재료입니다.” MZ세대인 손종원 이타닉 가든 셰프는 이 추억을 머위 냉채로 풀어 가져왔다. 숯에 구워낸 머위와 절여낸 머위장아찌를 곱게 간 잣과 감을 함께 버무리고 대하, 관자, 북장 조개를 곁들여 다양한 식감을 갖게 한 냉채였다. 파래김을 종이학처럼 접어낸 주전부리도 감동이었는데, 한식 코스의 마지막 자개함은 한국의 미(美)의 결정판이었다. 나비와 모란 문양을 새긴 나전칠기함 서랍을 열 때마다 탄복이 터져 나왔다. 막걸리로 속을 채운 초콜릿 봉봉, 들깨 가나슈, 청 겨자 사과 젤리, 햇생강 찹쌀 약과, 도라지 정과, 곶감 단자…. 눈 속에 입속에 한국의 꽃 작품이 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와서 점심 한식 코스를 즐기는 젊은 남성 몇몇이 보였다. 요리사들이 호텔에 찾아와 시식해보는 것일까 궁금해 호텔 측에 확인하니, ‘나만의 여유’를 찾아오는 MZ세대 고객이 많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젊은 여성이 혼자 와서 식사했는데, 원거리 연애를 하는 남자친구가 예약해줘서 온 것이었다.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며 영상통화로 남자친구에게 그 과정을 전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 요즘 세대는 호텔을 감각한다. 호텔은 우리가 사는 하나의 방식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2-27 03:00
요즘 뜨는 아트를 보려면 호텔로 가라… ‘아트캉스’의 시대호텔은 여행의 공간이자 쉼의 공간이고 감각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기꺼이 비용을 부담하고 고급 호텔에 들어서는 건 그에 아깝지 않은 만족감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새하얗고 푹신한 침구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오감을 일깨우는 식사일 수도 있겠다. 천장이 높은 수영장, 시야가 탁 트인 피트니스룸, 향이 좋은 보디클렌저와 로션, 어마어마하면서도 세심한 꽃꽂이…. 우리는 취향에 따라 호텔을 고르기도 하지만 호텔에서 취향을 습득하기도 한다. 사랑받는 호텔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략과 노고로 구석구석 공간을 채워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호텔에서 경험하는 낯선 감각 중의 최고는 아트가 아닐까 한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식사할 때 우리는 평소보다 느긋한 태도를 갖게 된다. 하루쯤은 호강하겠다는 마음이기 때문에 모든 감각을 열고 벽에 걸린 아트 작품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생긴다. 요즘 호텔의 아트는 세계적 미술관이나 갤러리급이다. 홈페이지에 작품 소개를 상세히 해 두고, 원하는 투숙 고객에게는 아트 투어도 해준다. 공간의 모퉁이마다, 식사 대기 장소에도 아트 작품들이 있다. ●400여 점의 아트 여행‘아트캉스’(아트+바캉스)로 입소문이 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조선팰리스에 다녀왔다. 신세계그룹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최상급 브랜드 호텔로 2021년 5월 문을 연 조선팰리스에는 400여 점의 아트 작품이 곳곳에 비치돼 있다. 로비에 들어서면서부터 펼쳐지는 아트 여행의 시작은 미국 미술가 대니얼 아셤이다. 높이가 260cm에 달하는 ‘풍화된 푸른 방해석 모세상’(2019년)은 언뜻 보면 십계명을 든 모세상이지만 조각상의 벗겨진 부분에 푸른 수정들이 반짝인다.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으로 꼽히는 모세상과 똑같은 크기로 제작해 과거의 유물에서 새로움이 반짝이며 돋아나는 걸 표현했다. 신세계는 그룹의 자존심을 건 최상급 호텔을 브랜딩하면서 로비의 아트 작업을 얼마나 고민했을까. 그 선택이 아셤이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면서도 흥미롭다. 1980년 태어난 아셤은 요즘 전 세계 명품 브랜드들이 손을 잡고 싶어 열광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무려 143만 명. 최근에는 보석 브랜드 티파니와 ‘포켓몬 컬렉션’을 내놓았고, 크리스티앙 디오르와는 스니커즈와 가방, 포르쉐와는 ‘대니얼 아셤 포르쉐 911’을 선보였다. 그가 ‘미래의 유물’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발전시킨 세계관은 ‘허구의 고고학’이다. 구형 카메라 같은 사물들을 석고로 제작해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찾아낸 것처럼 펼쳐낸다. 그의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우리는 ‘미래의 과거’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오토니엘의 구슬 꽃, 정해나의 책가도…조선팰리스는 해외 명품 브랜드 관계자들이 출장 와서 자주 찾는다. 스위트룸에서는 이들 브랜드의 홍보 행사도 종종 열린다. 서울 테헤란로 한복판에 위치해 고층빌딩 숲과 선정릉, 시그니엘 타워까지 바라보는 전망을 갖춰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이 호텔의 아트 컬렉션은 세계적 작가들에서부터 한국의 신진 작가들의 작품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지난해 프랑스 최고의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현대 미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의 ‘국화(Chrysanteme)’는 은박 위에 검은 잉크를 찍어 국화꽃을 표현했다. 파리 팔레 루아얄을 비롯해 국내에서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 연못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꽃 작품을 통해 생명력과 부활의 의미를 전한다. 벨기에 출신의 도예가이자 미술가인 요한 크레텐의 ‘글로리 스프링(Glory Spring)’은 황금빛 구슬들로 낙관적 미래에 대한 설레는 빛남을 담았다. 도서관과 궁전 같은 공적 장소를 촬영하는 라인하르트 괴르너의 대형 사진 작품들, 로버트 모어랜드의 미니멀리즘 패널 작품, 흑백의 대비와 질감의 극대화로 꽃을 추상화하는 조셉 스타쉬케베츠의 꽃 시리즈…. 세계적 거장의 작품 이외에 김지원, 양주혜, 장인희, 박민하 등 국내 중견작가와 신진 작가 작품들도 눈에 많이 띈다. 특히 정해나의 책가도는 전통 장식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점이 돋보인다. 가로, 세로 60cm의 정방형 작품은 집에 들이고 싶을 정도다. 실제로 젊은 고객들이 호텔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지 종종 문의한다고 한다.●‘이타닉 가든’에서의 아트 런치조선팰리스 36층에 위치한 한식당 ‘이타닉 가든’은 미셰린 레스토랑이다. 아름다운 한국의 식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나누기 위해 식당 이름을 ‘먹다(eat)’와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식물원)’을 결합해 지었다. 이곳에 걸린 이정진 작가의 사진 작품 세 점은 수묵화 느낌이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오픈 주방을 바라보는 U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중앙에는 이끼와 돌로 구현한 작은 정원이 있고, 각자의 자리 앞에는 세밀화로 그린 한식 재료 카드가 꽂혀 있다. 군고구마, 주전부리, 머위, 콩, 장, 대추, 매생이, 블랙 트러플, 한식 디저트가 담긴 자개함…. 카드마다 담긴 식재료에 대한 설명이 앞으로 다가올 식사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머위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조선 정조 때 이만영의 글에 ‘백 가지 풀 가운데 머위만이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머위는 강릉이 고향인 저에게는 어릴 적 ‘머구대(머위대의 방언) 나물 먹어봐’라고 하시며 숟가락 위에 얹어 주시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식재료입니다.” MZ세대인 손종원 이타닉 가든 셰프는 이 추억을 머위 냉채로 풀어 가져왔다. 숯에 구워낸 머위와 절여낸 머위장아찌를 곱게 간 잣과 감을 함께 버무리고 대하, 관자, 북장 조개를 곁들여 다양한 식감을 갖게 한 냉채였다. 파래김을 종이학처럼 접어낸 주전부리도 감동이었는데, 한식 코스의 마지막 자개함은 한국의 미(美)의 결정판이었다. 나비와 모란 문양을 새긴 나전칠기함 서랍을 열 때마다 탄복이 터져 나왔다. 막걸리로 속을 채운 초콜릿 봉봉, 들깨 가나슈, 청 겨자 사과 젤리, 햇생강 찹쌀 약과, 도라지 정과, 곶감 단자…. 눈 속에 입속에 한국의 꽃 작품이 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와서 점심 한식 코스를 즐기는 젊은 남성 몇몇이 보였다. 요리사들이 호텔에 찾아와 시식해보는 것일까 궁금해 호텔 측에 확인하니, ‘나만의 여유’를 찾아오는 MZ세대 고객이 많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젊은 여성이 혼자 와서 식사했는데, 원거리 연애를 하는 남자친구가 예약해줘서 온 것이었다.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며 영상통화로 남자친구에게 그 과정을 전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 요즘 세대는 호텔을 감각한다. 호텔은 우리가 사는 하나의 방식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2-25 10:00
도시의 라운지로 변신한 오목공원 회랑의 마법[김선미의 시크릿가든]서울 양천구 목동 오목공원에 갔던 건 오후 네 시쯤이었다. 35년 된 이 공원은 최근 리모델링 되면서 가로·세로 50m, 폭 8m, 높이 3.7m의 정사각형 회랑이 생겨났다. 그 회랑 위를 산책하는 느낌이 꽤 신선하다. 회랑 위에는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남학생이 등받이가 있는 1인용 의자에 앉아 회랑이 둘러싼 잔디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민들이 의자에 앉아 호수나 분수를 바라보며 쉬는 유럽의 공원들이 생각났다. 시선의 향방이 중요한가. 우리가 공원에서 바라는 건 부대낀 마음을 고요하게 내려놓는 일일 것이다.새 단장 된 오목공원의 의자는 가벼워서 쉽게 이동시킬 수 있었다. 공원에서 마음껏 의자를 움직여 쉴 자리를 잡는 건 엄청난 자유의지의 발현이다. 게다가 이 의자는 편안하게 몸을 파묻을 수도 있다. 롱 패딩을 입고 있던 그 학생은 무슨 생각을 그리 곰곰이 했던 것일까. 부디 편안한 마음을 얻으셨기를….●“사람을 생각하니 회랑이었다”이 공원을 변신시킨 ‘회랑의 마법사’를 만났다. 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로사이(loci) 대표(59)다. 한국을 대표하는 조경가인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와 함께 아모레퍼시픽의 서울 본사와 경기 오산 원료식물원, 서울 아산병원, 대구 사유원 등의 경관을 만들었던,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조경가 중 한 명이다. 오목공원 리모델링은 그의 첫 공원 프로젝트였다. 그를 만나기 전에 이전 조경작업들에 대해 질문하느라 통화한 적이 있다. 으스댐이나 꾸밈없이 나지막하게 설명하는 태도가 잘 깎은 단정한 연필 느낌이었다. 만나보니 그 느낌이 다르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다가 그의 아버지(고 박원근 전 경인일보 부사장)가 동아일보 수습기자 1기 출신의 사회부장을 지낸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회랑을 생각해낸 걸까. 그는 2021년 어느 날 서울 양천구청 온수진 공원녹지과장으로부터 느닷없이 연락을 받았다. 오목공원 리모델링 운영위원회가 지명공모를 결정하면서 그의 참여를 부탁한 것이다. 다른 프로젝트들로 바쁘던 박 대표는 “며칠 생각해 보겠다”고 한 뒤 현장을 방문해봤다. ‘힌트가 잡히면 지명공모에 참여하고, 영 오리무중이면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처음 와 본 오목공원은 어릴 적 부모님과 살던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단독주택 마당을 떠올리게 했다. “제가 화곡동에 살 당시에는 강서구, 양천구 구분도 없을 때였어요. 왠지 목동이 낯설지 않더라고요. 저희 화곡동 집은 대지 100평에 건물은 20평이 채 안 되고 나머지는 마당이었어요. 아버지가 아들 셋을 마당에서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아버지는 바쁜 와중에도 이런저런 꽃들을 심으셨습니다.” 공원 프로젝트는 의미가 있지만, 리모델링이란 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를 새롭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 제법 내린 비가 그의 마음을 오목공원으로 이끌게 된다. “햇볕을 가리는 오두막 같은 데에서 장기를 두던 할아버지들이 비가 들이치니까 허겁지겁 떠나더라고요. 갑자기 공원이 휑해졌어요. 사람들이 공원에서 마음껏 머물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온 오목공원 리모델링 콘셉트가 ‘어반 퍼블릭 라운지(Urban public lounge·도시의 공공 라운지)’였다. 로비는 서서 떠도는 공간이지만 라운지는 편하게 앉아서 차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그렇게 도시인이 행복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상정하고 김희정 모스건축사사무소 대표와 회랑을 설계했다.“지명공모에 부탁을 받고 참여한 거니까 오히려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과격한 방안을 낸 것 같아요. 과격하다는 건, 오래된 공원에 회랑이라는 건축물을 새로 넣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전통적으로 조경은 녹지 위주이고 기껏해야 정자 같은 시설을 배치하는 정도로 여겨졌거든요. 그런 기존 문법을 벗어나 회랑의 2층도 산책할 수 있게 하고, 공원의 가구도 고급으로 넣자고 했는데 덜컥 공모에 당선됐어요.”이 지점에서 서울 양천구청 온수진 공원녹지과장의 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오목공원의 변신은 박 대표가 3년 전 지명공모에서 발표한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게 구현됐다. 조경학도 출신으로 ‘2050년 공원을 상상하다’와 ‘공원주의자’ 책을 펴낸 온 과장의 말을 나중에 따로 들어봤다.“오목공원 지명공모 할 때 위원회 내부에서 가급적 원로 말고 중견 조경가에게 맡겨보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요즘 최고 인기인 박 대표님이 승낙을 안 하실 것 같아서 제가 직접 전화를 드렸던 것입니다. 저희가 한 일은 그저 최대한 설계자의 의도대로 조성되게 한 것뿐입니다. 양천구 입장에서는 박 대표님의 첫 공원 작품을 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없애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남긴다”이제 오목공원에서는 비가 내린다고 쫓기듯 공원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회랑에서 공원을 바라보며 느끼면 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계절의 감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맛있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카페, 꽃집, 서점을 회랑 안에 들였으면 했는데 상업 시설이라 주변 상권과 부딪히더라고요. 대신 식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곳은 오목공원이 리모델링 한다니까 ‘스타벅스’와 ‘쉐이크쉑 버거’가 발 빠르게 공원 앞에 문을 열더라고요(웃음). 하긴 미국 쉐이크쉑 버거 본점도 뉴욕의 공원인 ‘메디슨 스퀘어 파크’ 안에서 시작했네요.”그의 말을 듣다 보니 캐나다 도시계획 전문가 찰스 몽고메리가 썼던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라는 책이 떠오른다. 그는 이 책에서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도심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위로하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시에나 캄포 광장에서는 카페, 박물관, 원형극장이 어우러져 사람들을 광장에 머물게 한다. 17세기 초에 건립돼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인 보주 광장은 처음부터 도시의 거실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 지금도 잔디와 분수, 광장을 둘러싼 카페들이 도시인의 행복한 머무름을 유도한다.박 대표는 의견을 더한다. “목동만 해도 도시의 편의시설들이 많은 지역이잖아요. 원룸주택이 많거나 소외된 동네에 더 많은 공원과 녹지가 필요합니다.”오목공원은 30년 넘은 공원이라 높이 10m가 넘는 나무들이 많다. 하지만 그 나무들 밑은 썰렁했다. 오랫동안 공원에 쉴만한 그늘이 없어 사람들이 나무 밑으로 몰렸었고, 키 큰 나무의 잎들이 햇빛을 가려 다른 식물들이 자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 대표의 조경 원칙은 “없애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면 남긴다”이다. 예전의 공원 돌담도 그대로 뒀다. 기존의 나무들은 남겨두고 팥배나무, 산딸나무, 황매화 같은 중간 키의 나무들과 맥문동 같은 초본류를 심어 숲을 다양한 층으로 구현했다. 이렇게 되면 숲의 밀도가 높아지고, 단위 면적당 배출 산소도 많아지게 된다.●창조적 활용이 기대되는 네모난 공간박 대표와 회랑에 의자를 나란히 두고 앉아 안쪽의 잔디마당을 바라보았다. 회랑은 바깥의 숲과 내부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내부가 40cm 낮아 굳이 의자에 앉지 않아도 회랑 주변으로 많은 이들이 걸터앉을 수 있다. 실제로 점심시간 때 인근 회사원들이 그렇게 공원을 이용한다고 한다. 도시의 숲속 라운지는 밤에 또 얼마나 로맨틱할까. 비어있는 그 네모난 공간이 굉장히 창조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장소란 사실을 알게 됐다.“제가 상상했던 쓰임새 중 하나는 오케스트라 공연이었어요. 사람들이 여기 앉아 감상할 수도 있고 회랑 위에 올라가서 볼 수도 있고요. 벼룩시장을 열어 공원이 지역사회 사람들을 모으는 기능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도시의 라운지 정원을 표방한 곳이니까 이 구조물을 잘 활용하면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아직은 날이 춥지만, 이제 곧 꽃 피는 봄이 오면 그 공간이 사람들의 어떤 일상으로 채워질지 기대가 되었다. 박 대표가 헤어지면서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이라는 비매품 책을 건넸다. 2007년부터 10년간의 작업을 글과 사진으로 담은 책이었다. 천천히 탐독한 그의 글은 깊은 사유에 기반해 간결하고도 단단했다. 이 책에는 2015년 경남 클레이아크김해 미술관에서 열렸던 그의 작가정원 프로젝트 ‘아버지의 정원’도 실려 있다. 어릴 적 화곡동에 살았던 아버지의 정원을 소박하게 구현했던 작업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오목공원에 사람들이 모여 꿈을 꾸고 희망을 품을 때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가 대견해 하실 것 같다고. ‘사람’을 생각하며 오래된 공원을 ‘숲이 있는 도시형 공공 라운지’로 바꾼 어느 조경 건축가의 꿈은 그 옛날 아버지의 정원에 핀 꽃과 풀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2-11 12:43
‘K-가든’은 무엇을 담아야 하나[김선미의 시크릿가든]“K-가든을 너무 어렵게 접근하기보다 한 번도 한국 정원을 못 본 외국인들을 생각하면서 만들면 좋겠습니다. 다만 K팝이 우리 민요 형태가 아니듯 K-가든도 현대 감각으로 풀어야 합니다.” (최재혁 오픈니스 스튜디오 소장)“비무장지대(DMZ) 같은 한국의 분단 현실도 ‘K-’ 콘텐츠입니다. K-가든은 형태와 사상을 포함해 현대의 재료와 기술을 활용해 전통을 재해석한 한국의 정원입니다.” (정미애 국립수목원 연구사) 정원은 소득 3만 달러 시대의 여가문화로 꼽힌다.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즘 ‘K-가든’이란 말이 자주 들린다. 지난해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국제원예박람회에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한국 정원을 조성한 이후 K-가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K-가든은 당초 산림청에서 추진하는 정원 진흥사업에 명기된 용어다. 하지만 K-가든이 무엇인지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다. 외국에 조성하는 한국 정원인가, 한국 전통 정원을 구현한 정원인가. K-가든은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이런 고민 속에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6일 국립세종수목원 대강당에서 ‘한국의 정서와 개성을 담은 K-가든 워크숍: 정원, 한국을 담다’를 마련해서 다녀왔다. 시의적절하고 뜻깊은 행보였다고 생각한다.사회를 맡은 노회은 국립세종수목원 정원사업센터장이 이날 행사의 포스터를 가리키며 객석에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이 포스터가 마음에 드시나요. 요즘 어린이들도 알만한 존재가 디자인했는데 말이죠.” 챗GPT가 30초 만에 뚝딱 만든 포스터였다. “포스터에서 일본 정원 느낌이 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저희가 아무리 챗GPT에게 K-가든에 대해 새로운 명령을 내려도 일본 정원이나 중국 정원 같은 이미지가 계속 나옵니다. 그동안 일본과 중국 정원이 한국 정원보다 축적된 데이터가 많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죠. K-가든이 널리 퍼지면 그때에는 저희 마음에 쏙 드는 포스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개회사를 맡은 류광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장은 말했다. “K-가든은 급조된 개념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국립세종수목원은 ‘K-가든’과 ‘도시 속’을 키워드로 2020년 문을 열었거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해외에 조성하는 정원만 K-가든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아요.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려면 국내에서 무엇이 K-가든인지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거죠. K-가든은 기존의 한국 전통 정원과는 다릅니다. 전통 한복이 아니라 개량 한복을 어떻게 국민 생활 속에서 잘 보급하고 현대화시킬 것인가, 이게 K-가든 논의의 시작점이 돼야 할 것 같습니다. 반려식물 키트부터 스마트 가든, 정원도시, 정원박람회에 이르기까지 정원산업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K-가든이 진화해야 합니다. 정원의 형태와 디자인 등이 잘 정리돼 K-가든의 범위가 정립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가장 먼저 ‘국가별 대표정원 사례와 시사점’을 발표한 황주영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박사는 영국 프랑스 등이 정원을 문화유산으로 다뤄온 역사적 흐름을 소개했다. 황 박사는 “정자 놓고 소나무 심는 등 몇 가지 가시적인 오브제를 갖고 한국 정원이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정체성과 문화를 어떻게 정원에 담는가”라고 했다. 영국다움, 프랑스다움처럼 한국다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해외에서 한국적 요소를 재현할 수 있는 식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식물에만 치중하면 정원이 갖는 의미가 축소될 수도 있다고 했다.최재혁 오픈니스 스튜디오 소장은 카타르 도하에 조성한 1200㎡ 규모의 한국 정원 사례를 소개했다. 이 정원은 한국 전통 별서 정원의 공간 구성방식을 차용해 산수(山水)정원, 주택정원, 원림 정원 등 3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한국 처마의 단아한 선과 물에 비치는 자연을 표현했다. “켜켜이 쌓인 산수를 지나 원림에 다다라서 조용히 머무는 정원의 이미지를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소쇄원이나 병산서원을 보면 자연에 터를 잡고 주변 자연을 정원의 일부로 끌어들인 선조들의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검박한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도하의 한국 정원은 마당에 여백을 뒀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는 철 재료를 사용해 현대적 느낌으로 첩첩산중을 나타냈습니다. K-가든은 역사적 맥락 뿐 아니라 현대 조경을 포용력 있게 담아야 할 것입니다.”경기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에서 30여 년간 정원총괄 이사를 맡았던 이병철 보성그룹 부사장은 한국 정원의 미의 특성으로 곡선과 비대칭의 균형, 사계절이 분명한 다채로움을 꼽는다. 그는 K팝을 통해 K-가든의 발전방안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요즘에는 한국인이 없거나 구성원이 다국적인 K팝 그룹이 많이 생기고 있잖아요. K팝처럼 수용성이 커져야 K-가든도 저변이 넓어질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일본 정원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유명 관광지에 가면 꼭 일본 정원이 있지요. 일본은 정원 문화 콘텐츠를 굉장히 단순하게 프로그램화시키고 현지 식물과 문화를 접목시켜 그 나라에 맞는 일본 정원으로 재탄생시키거든요. 전통을 어떻게 재현할 건지 근시안적으로 매달리지 말고 세계인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우리 정원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찾아야 합니다.” 정미애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K-가든 실증 기반 개념 정립과 적용 연구’를 발표했다. 국립수목원은 완전성(채와 마당으로 이뤄진 공간 구조), 역사성(조선 중·후기~근대), 보존성 등의 기준으로 민가 정원의 현황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민가라는 공간을 통해 원형을 추적해 현대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현대 정원을 살펴보니 카페와 레스토랑에 실내 정원이 구현된 곳이 많습니다. 정원이 과거에는 개인의 영역이었지만 공공이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또 식물과 정원이 미술 공연 사진 음악 등 다양한 문화와 결합하는 추세를 보입니다. K-가든의 개념을 정립할 때 도움이 되도록 계속 자료를 구축해 K-가든의 대중화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김명회 산내식물원 대표는 3만 종에 가까운 조경식재용 식물을 재배하고 보급해왔다. 그는 ‘한국 정원 식물 소재 트렌드’를 소개하며 지역 특성에 따른 수종을 선정하고, 디자인 소재로서 식물 데이터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우리 자생식물이 K-가든의 중심 소재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 기후와 토질에 적합한 식물을 잘 선발해야 합니다. 하나하나의 식물 데이터도 절실하고요. 뇌성목, 노각나무, 당단풍나무, 팥배나무 등이 좋은데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건 분꽃나무입니다. 꽃, 향기, 단풍 등이 완벽한 자생식물이거든요. 개나리도 외부에 알리기 좋은 K-가든의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나리를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한국 전통 정원을 중심으로 한 K-가든의 재발견’을 발표한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원실 실장은 세종수목원 내 한국 전통 정원을 소개했다. 창덕궁 후원을 재현한 이 정원은 궁궐정원, 별서 정원, 민가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세종수목원 솔찬루는 창덕궁 후원 주합루, 세종수목원 도담정은 창덕궁 후원 부용정을 거의 똑같이 재현했는데요.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창덕궁 후원 같은 정원을 중부 지방에서도 즐겼으면 했기 때문입니다. 재현에 그치지 않고 ‘한국 전통 정원에서 무엇을 즐길까’를 고민했습니다. 일례로 부용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연꽃이죠. 경남 함안군에서 발견된 700년 된 씨앗을 발화시켜 만든 아라연꽃을 지난해 전시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손잡고 꽃담 전시를 하면서 꽃담의 패턴을 만드는 체험도 진행했습니다.”그는 “요즘 MZ세대들이 갈구하는 ‘풀멍(풀 보며 멍때리기)’ ‘꽃멍(꽃 보며 멍때리기)’ 같은 힐링이 반려식물 문화와 접목되면 훌륭한 K-가든 콘텐츠가 될 것”이라며 “자연스러움의 미학이 있는 K-가든의 콘텐츠들을 발굴해 세계인이 공감하는 한국의 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네 시간 동안 진행된 이 날의 주제 발표 및 토론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토론 맨 마지막에 신창호 국립세종수목원장의 정리 멘트가 간결하면서도 명쾌했다. “K-가든도 K팝처럼 먼저 우리 국민이 좋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세계로 나가 세계인의 공감을 얻어야 ‘K-가든’이란 용어를 붙일 수 있겠죠. 서두르지 말고 공론화 기회를 자주 만들어 튼튼한 배경을 세워야 K-가든이 성공할 것입니다. K-가든을 통해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개념을 하나씩 잡아가면서 즐거움을 찾고, 그 즐거움 속에서 ‘아, 이게 K-가든이구나’ 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세종=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2-08 08:00
제주에 꽃 피네, 동백에 매화 피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폭설이 지나간 후에 방문한 제주에는 곳곳에 눈이 쌓여 있었다. 그래도 남쪽 섬이라 겨울에도 초록색 지피식물들이 땅을 덮고 있었다. 그 위에 눈이 내려앉으니, 마치 흰 생크림을 얹은 녹차 셰이크 형상이었다.원래는 동백을 보러 떠난 여행이었다. 그런데 따뜻한 겨울 날씨 때문에 평년보다 46일이나 일찍 만개한 매화를 보았다. 일찍이 조선의 원예 백과사전인 화암수록은 ‘스물여덟 가지 벗의 총목록’에서 봄에 피는 매화인 춘매는 예스러운 벗, 동백은 신선 같은 벗이라고 했다. 지금 제주에는 이들 벗만 있는 게 아니다. 유채꽃, 제주수선화, 제주백서향도 만발했다.●백설(白雪)과 붉은 동백제주는 지난해 12월부터 동백꽃 대궐이었다. 우리나라 토종 동백은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눈물처럼 후두둑 (통째로) 지는 꽃’이지만 요즘 제주의 동백 성지들에서는 애기동백의 꽃잎이 한 장 한 장 나비처럼 흩날려 진분홍 카펫을 펼쳐낸다.제주의 동백 명소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날그날의 동백 상황을 중계한다. 여행을 준비할 때 참고하라는 뜻에서다. 그만큼 제주 겨울 여행의 백미가 동백이다. 전통의 ‘카멜리아힐’과 ‘동백수목원’을 비롯해 최근 생긴 ‘가시림’과 ‘동백포레스트’ 등이 동백 명소로 꼽힌다.이번 여행에서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두 달 전 문을 연 ‘가시림’에 가봤다. ‘생각하는 정원’, ‘베케’ 등을 잇는 제주의 새로운 민간 정원이다. 시간을 더한 마을이라는 뜻의 가시리(加時里)는 말을 키우던 목장이 넓게 자리하던 곳이다. 조경 사업을 하던 강남춘 대표(57)가 1만4000m²의 땅을 사들여 ‘시간을 더한 숲’이라는 뜻의 가시림을 가꿨다.제주는 봄같이 따뜻한 겨울 날씨였다. 그러다가 폭설을 맞았으니 동백꽃이 얼고 상했다. 제주 자생나무인 구실잣밤나무가 기후위기로 고사하는 일이 생겨나는 가운데 이젠 동백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백나무는 동박새가 꽃가루를 운반해 주는 조매화(鳥媒花)다. 날씨가 따뜻해져 동박새가 점점 북상하고 있다니 걱정이다.설탕처럼 반짝이는 눈 위에 떨어진 동백은 애련해서 아름다웠다. 동백의 꽃말은 진실한 사랑, 겸손한 마음이다. 꽃 한 송이 전체가 뚝뚝 떨어지는 토종 동백의 기개와 살랑살랑 꽃잎을 날리는 애기동백의 퇴장은 느낌이 크게 다르다. 사랑의 형태가 다를 뿐, 속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가시림에는 300여 그루의 동백나무만 있는 게 아니었다. 60여 그루의 황금 메타세쿼이아 터널, 카페 앞 삼지닥나무와 금감자…. 이끼볼 등 반려식물을 판매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주의 자생식물을 소개하면서 정원의 향유층을 젊은 세대로 넓히는 모습이었다.정원 안쪽에 병풍처럼 둘러싼 동백나무들 뒤로는 제주 자생나무인 멀구슬나무, 종가시나무, 후박나무가 이끼들과 어우러져 있었다. 곶자왈을 걷고 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흰배롱나무 밑에 산수국과 목수국이 섞어 심어진 모습을 보니 다가올 계절들의 꽃 피는 정원이 마음속에 그려졌다.3년 전 문을 연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그랜드조선제주의 오름 정원(6600m²)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동백 명소다. 햇볕이 잘 들어 중산간보다 동백이 여전히 싱싱한 모습이었다. 제주의 오름을 형상화한 오름 정원에는 물 없이 돌을 배치한 일본식 고산수 정원도 있다. 여름철에는 ‘수국 맛집’이라고 한다.●봄꽃들의 인사제주로 향하기 직전에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소장이 매화 개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걸 보고 연락해 봤다. “벌써 매화가 피었습니까.” “서귀포 걸매생태공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을 겁니다.”제주에 자주 가 봤지만, 걸매생태공원은 초행이었다. 중문에서 천지연 폭포 근처의 이 공원으로 향하는 1132번 도로 양옆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제주의 겨울에는 동백만 있는 게 아니었다. 먼나무의 빨간 열매가 도로를 환히 밝힌다. 멀리에서 보면 열매가 아니라 빨간 꽃 같다. 그래서 먼나무의 이름 유래 중에는 ‘(나무와 열매가) 멋(스러운) 나무’라는 설도 있고 ‘멀리에서 보아야 제격인 나무’라는 뜻도 있나 보다.걸매생태공원은 관광객보다는 도민들의 일상 공간인 듯했다. 아침 조깅족들이 “저기에 매화가 있어요”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매화꽃 향기를 전하는 장소 중 한 곳이었다. 대개는 2월 초순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역시나 올해는 빨랐다. 연분홍색 ‘꽃 팝콘’이 풍성했다. 아치형 다리 밑 물가에는 오리들이 헤엄치고, 노란색 유채꽃도 피었다.매화까지 봤으니 오설록 티하우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시간이 없는데 딱 한 곳, 제주를 느끼러 간다면 어디로 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추천하고 싶은 장소 중 한 곳이 서귀포시 안덕면의 오설록이다. 전면에 유리 통창을 배치해 제주의 돌과 식물을 감상하며 한라봉과 녹차 음료를 마실 수 있게 한 공감각적 공간이다.오설록에는 봄을 알리는 구근식물인 제주수선화가 만발했다. 그 옆 제주백서향의 은은한 향기는 너무도 황홀해 온종일 코를 대고 있고 싶을 정도다. 땅을 덮은 보라색 해국도, 겨울에도 싱그러운 초록 기운을 전하는 서광차밭도 반가웠다. 봄은 그렇게 고양이처럼 오고 있다.●스토리를 담아가는 제주제주에는 꽃이 주인공이 아닌 정원도 지난해 말 문을 열었다. 서귀포시 남원읍의 ‘담소요’다. 오롯한 쉼을 내세운 이곳에서는 현재 ‘헬로, 윈터’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정원 분야 명저 중 하나인 카렐 차페크 작가의 ‘정원가의 열두 달’ 책을 주제로 한 작은 전시다. 꽃보다는 풀을 많이 심어 사색의 정원을 표방한 이 정원에는 ‘모짜’ ‘렐라’ ‘체다’라는 이름의 오리 세 마리도 산다.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안돌오름 비밀의 숲은 가뜩이나 아기자기 예뻤는데 요즘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 나오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내비게이션 안내대로 가다 보면 비포장도로를 만나는데 그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흰 눈이 남아 있는 비포장도로 주변 풍경은 제주의 야생을 고스란히 전한다.이곳의 트레이드마크는 매표소를 겸한 민트색 푸드트럭이다. 표를 사서 들어서면 청량한 비밀의 숲이 펼쳐진다.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제주 빵지 순례편에 등장했던 동네 빵집 ‘송당의 아침’도 차로 불과 10분 거리다. 우유 큐브 식빵, 제주 우도 땅콩 식빵, 얼그레이 크랜베리 식빵을 사서 나오는데 왠지 드라마 주인공 이나영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서귀포시 안덕면 본태박물관은 한국 전통공예의 미래가치를 탐색하는 품격 있는 공간이다. 서양인 관광객이 눈에 많이 띄어 반가웠다. 조선 시대 양반가 부녀자가 신던 당혜에도, 옛 베개에도, 책가도에도 꽃자수와 꽃그림이 있었다. ‘아, 여기에도 꽃이 피었구나.’ 이곳에서는 상설 전시 외에도 이달 말까지 현대미술의 거장 구사마 야요이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다.제주는 갈수록 본연의 스토리를 담아내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의 ‘해녀의 부엌’도 좋은 예다. ㈜해녀의 부엌은 2019년부터 지역 공동체(해녀)와 청년 문화인들이 합심해 식사가 있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번에 관람해 보니 87세 제주 해녀 김춘옥 할머니의 인생 스토리를 청년 예술인들이 펼치는 연극, 해녀들이 잡은 뿔소라와 군소 등 해산물 뷔페, 김 할머니에 대한 관객 인터뷰로 진행됐다. 청년 손님들이 해녀에 그토록 관심이 많은 줄 몰랐다. 노쇠한 공동체가 어떻게 살길을 모색해야 하는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이틀 동안 제주의 하늘빛이 수십 번 바뀐 것 같다. 그때마다 바다와 숲, 꽃잎의 색도 따라 일렁였다. 알 수 없는 인생, 그래서 겸허함을 배우게 되는 것이 여행의 가장 큰 묘미가 아닐까.서귀포·제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2-03 01:40
선유도공원에서 사카모토 류이치를 떠올리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오늘 오후 서울에는 눈이 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시간을 낼수 있다면 선유도 공원에 가 보는 것을 추천드리며 이 글을 씁니다.희미한 어둠 속에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흑백의 건반을 비추는 동그란 조명이 보름달 같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세상으로 가기 전,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란 자서전을 남겼던 걸까.지난달 국내 개봉한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세계적 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1952∼2023)가 암 투병 중이던 2022년 9월에 촬영됐다(일찍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왔기에 그의 이름은 영어식으로 ‘류이치 사카모토’로 통하고 있다). 세상과 작별을 예감한 사카모토는 평생 만들어왔던 음악 중 20곡을 일주일의 촬영 동안 연주했다. 그 숭고한 모습을 아들 네오 소라 감독이 담았다. 사카모토가 그랜드 피아노 위에 펼치고 연주하는 순백(純白)의 악보를 보다가 어느 겨울 정원의 풍경이 떠올랐다. 눈 오는 날의 선유도공원이다. 서울 양화대교 중간에 있는 선유도공원은 옛 정수장을 재활용해 조성한 국내 최초의 환경 재생 생태공원이다. 한국에 몇 차례 왔던 사카모토가 선유도공원을 가 봤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영화 속 카메라가 천천히 비추는 피아노의 건반과 페달, 몸체와 의자는 자꾸만 선유도공원의 건축구조물을 기억 속에서 오버랩 시킨다.조성룡 건축가와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이 닿아 2002년 태어난 선유도공원은 과거 선유정수장이었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서남부 지역의 오염된 한강 물을 식수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기능이 끝나 폐쇄된 이 정수장을 도시재생을 통해 공원으로 바꾸면서 옛 건물을 남겨둔 건 ‘신의 한 수’였다. 폐허의 흔적을 여름에는 녹색 덩굴식물이, 겨울에는 흰 눈이 풍성하게 덮는다.뜻밖에 눈이 많이 오던 휴일에 들러본 선유도공원은 인적이 거의 없었다. 나만의 설국(雪國)이었다. 과거 정수장이었던 이 ‘물의 공원’은 겨울에는 눈의 공원이 된다. 나무들이 눈 속에 심어진 것 같다. 눈을 맞은 화살나무의 줄기는 화살촉 형상이 그 어느 계절보다 선명했다. 줄기가 새빨간 흰말채나무는 눈 위에 피운 모닥불꽃이었다. 선유도공원에서 왜 사카모토의 피아노가 떠올랐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아하’ 싶었다.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을 오르내리는 사카모토의 구도(求道)적 손놀림이 선유도공원에 있는 ‘시간의 정원’을 연상시킨 것이다. 눈 덮인 시간의 정원 계단은 피아노 흰 건반 같았다. 부서질 뻔한 옛 정수장 건물은 그 자체로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인 셈이었다. 한 계단 오르면 ‘도’, 세 계단 오르면 ‘미’. 그렇게 폴짝폴짝 오르내리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삶을 다하기 전 70세의 피아니스트는 길지만 투박한 손가락으로 섬세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스무 곡을 연주하는 영화에서 그의 대사는 이것뿐이다. “다시 합시다”, “잠시 쉬고 하죠. 힘드네. 무지 애쓰고 있거든.” 거장도 힘들 때, 틀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연주를 멈추고 몇 번이고 연습한 뒤 다시 시작했다. 감독인 아들은 그런 순간들을 삭제하지 않고 영화에 그대로 담았다. 사카모토는 종종 왼손으로 건반을 누르면서 오른손으로 지휘를 하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새의 날갯짓 같았다. “괜찮아. 다시 하면 돼”라고 자신을 향해, 또 우리에게 말하는듯한 섬세한 위로였다. 사카모토의 음악과 선유도공원은 풍화의 세월을 겪은 숭고미를 갖고 있다는 점,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점이 닮았다. 선유도공원 조경을 맡은 정영선 조경가는 말했었다. “용도 폐기된 정수시설을 부숴버리면 그 시절의 기억이 사라지기 때문에 옛것과 새것을 연결했다. 선유도공원은 마음이 쓸쓸한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했다.”영화 ‘오퍼스’에서 사카모토는 ‘20180219’란 제목의 곡을 연주한다. 2018년 2월19일 만들어 연주한 곡일 것이다. 그는 피아노 현 위에 집게와 나사 등을 꽂은 프리페어드 피아노(prepared piano·현이나 해머에 이물을 장치해 음을 변질시킨 피아노)로 2분음표 길이의 화음들을 연주했다. 현대 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가 완성했던 프리페어드 피아노의 전자음악 소리였다. 소음과 정적도 아우르는 음악, 기존 고정관념을 뒤엎는 음악…. 정수장 폐허를 거친 풍경으로 활용한 선유도공원도 ‘공원은 말끔해야 한다’는 기존 문법을 뒤엎었기 때문에 긴 생명력을 갖는 게 아닐까. 옛 정수장 건물은 날실과 씨실처럼 땅 위에서 직조(織造)된다. 쓸모가 다한 산업시설을 공원으로 부활시키는 발상의 전환은 제2, 제3의 선유도공원을 낳았다. 정수장을 활용한 서울숲(2005년 개장)과 서서울호수공원(2009년 개장), 철도 폐선을 활용한 경의선숲길(2012년 개장)…. 선유도공원에 서면, 특히 눈 오는 선유도공원에 서면 이런 생각이 든다. ‘폐허의 미학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사카모토는 평화로운 일상을 일순간에 폐허로 만드는 일본의 쓰나미와 지진을 자주 겪었다. 하지만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보았다. 그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 이렇게 썼다. ‘쓰나미로 인해 흙탕물을 뒤집어쓴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며 귀를 기울여보니 완전히 흐트러진 조율의 현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취 있는 소리를 내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피아노라는 것은 원래 목재라는 물질을 자연에서 가져와 철로 연결해 우리가 선호하는 소리를 연주하도록 만든 인공물이잖아요. 그러니 역설적으로 말하면 쓰나미라는 자연의 힘에 인간의 에고(ego·자아)가 파괴되어, 비로소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그는 환경과 생태보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삼림보전단체 ‘모어 트리즈’(More Trees)를 설립해 나무 기부 활동을 벌이고, 점차 사용량이 줄어드는 원목을 활용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모어 트리즈 홈페이지에는 사카모토의 사진과 그가 남긴 글이 있다. ‘인간은 항상 숲과 공존해 왔습니다. 하지만 숲이 무너지면 문명도 무너집니다. 우리는 미래세대를 위해 소중한 숲을 물려줘야 합니다.’ 그는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 어린이들을 모아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도 창립했다. 커다란 마음의 폐허를 음악으로 위로했다.영화 ‘오퍼스’는 발자국 소리로 마무리된다. 사카모토가 또 다른 세상으로 걸어가는 소리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생전의 그는 완성된 영화 편집본을 보고 “좋은 작품이 되었다”고 했다고 한다. 살아온 날들을 피아노 연주로 마무리하며 만족스럽게 세상과 작별하는 것. 이 얼마나 멋지고 부러운 작별인가. 선유도공원에도 피아노가 있다.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는 아니어도 누구나 연주할 수 있게 야외에 둔 갈색의 업라이트 피아노다. 시간이라는 악보를 연주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그 피아노를 보면서 마음속에 ‘상상의 풍경’을 그린다. 사카모토가 겨울의 선유도공원에서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연주하는 모습을, 사각사각 눈 내리는 소리와 그의 숨소리와 건반 소리가 어우러지는 음악을….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1-17 07:50
한평생 양돈 사업가 “위로가 필요해 감각의 정원 만들었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지난해 말 울산에 새로 생긴 어느 정원 측에서 연락이 왔다. “정원주인 이상국 ‘미지의’ 대표와 장석주 시인이 참여하는 정원 토크에 초대합니다. 콘서트와 핑거 다이닝(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도 예정돼 있습니다.” ‘미지의’라는 정원 이름부터 미지의 느낌이었다. 정원 소개문은 이랬다. ‘아직 읽지 못한 책, 들어보지 못한 음악, 처음 만나는 작품, 맛보지 않은 음식, 가보지 않은 정원, 그리고 돌 나무 물이 있는 곳, 미지의.’지방에 막 문을 연 정원이 유명 시인을 초대하는 토크쇼와 콘서트를 연다는 것도 새로웠지만, 이 설명이 특히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온전한 평온함을 위해 포크와 나이프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핑거 다이닝을 준비했습니다. 미지의 정원 이야기를 담은 메뉴로 천천히 맛을 산책하며 장소를 경험해 보세요.’●정원에 붙은 시적(詩的)인 이름들울산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15분쯤 이동하니 목적지 주소에 도착했다. 어디가 미지의일까. 주변에는 한옥으로 된 한정식집들이 보였는데, 유독 미술관 같은 현대식 건물이 눈에 띄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봤다. 정원의 입장권을 살 수 있는 미지의 아트숍이었다. 고급스러운 장소들에서 만날 수 있는 향기가 났다. 정원의 주제인 돌, 나무, 물을 주제로 작가들이 만든 향수와 작품을 파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이상국 미지의 대표와 마주쳤다. 그가 안내하는 정원의 출입구는 도로를 가운데에 두고 아트숍 맞은편에 있었다.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곡선의 통유리 건물, 그 앞에 넓게 펼쳐진 정원(5000㎡)이 보였다. 영남알프스 9봉 중 하나인 고헌산이 폭 감싸는 형세였다. 소나무와 남천, 힘찬 물줄기의 폭포, 그리고 울퉁불퉁한 질감의 우윳빛 돌들…. 정원 바로 옆에 태양을 안고 흐르는 골안못에는 흰뺨검둥오리들이 헤엄쳤다. 이 대표와 40여 분간 정원을 둘러봤다. 정원은 10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구역마다 시적(詩的)인 이름과 설명이 있었다. 목화, 연화, 지의, 백야, 애추, 비연…. 예를 들면 이끼 공간의 이름은 ‘지의’(地衣)였다. 이끼를 ‘아주 느리게 오랜 시간을 끝맺고 자연으로 되돌아간 땅의 옷’으로 표현했다. ‘목화’ 구역의 설명은 이렇다. ‘긴 침묵을 깨고 돌 위에 스며든 꽃-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답습니다. 변화할 수 없지만 아주 단단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아름답게 피어나 자리 잡은 돌꽃입니다.’ 이 대표에게 물었다.―돌꽃이라고요. 아름다운 표현입니다.“정원을 만들 때 제가 가장 신경 쓴 건 존귀한 자연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요하게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생각하니 돌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돌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마음에 드는 돌이 없어 중국에서 수입하려던 찰나 경북 문경에서 찾았습니다. 3200t을 사 왔는데 건물 짓는 비용보다 돌 사는 데 돈이 더 들어갔어요.”―정원의 각 공간을 개념화한 게 놀랍습니다.“제 머릿속에 있던 정원, 어릴 때 뛰어놀던 자연을 담고 싶었습니다. 제 생각을 글로 옮기는 건 장석주 시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평생 양돈업 하다가 정원에서 찾는 위로 ―정원은 어떻게 만들게 됐습니까.“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해 울산에서 37년째 양돈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만 보며 살다가 마음의 휴식처가 필요해 2018년 이 땅을 샀습니다. 지형이 아름다워 개인 거처를 만들려고 했는데 사회가 점점 피폐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공간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정원의 나무들을 전부 산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게 하는 도토리나무, 싸리나무, 때죽나무, 망개나무, 진달래…. 정원에는 빼어난 수형의 나무들만 있는 게 아니다. 돌 틈에서 피어난 나무도 있고, 벼락 맞은 돌배나무도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암에 걸리거나, 암보다 심한 아픔을 겪었는데도 가지에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요. 정원의 놀라운 위로와 치유죠.” ―정원에서 위로와 치유를 받습니까.“저는 사업하면서 힘든 부분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 정원에 나와 질문을 던집니다.”―그러면 답을 얻나요.“우리가 문명의 틀에 갇혀 그 어떤 깊은 곳을 못 보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왜 이토록 아플까 하면 자연이 뭐라고 하겠어요.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지 않을까요. 제 경우엔 비 오는 날 정원을 걷다가 나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는 비 오면 어디 들어가 피할 수나 있지. 나는 비가 오면 맞고 때로는 폭풍도 맞으면서 이 자리에 꿋꿋하게 서 있다.’ 그렇게 용기를 얻고 내 미래를 다시 설계해 보는 것, 그것이 자연의 위로 아닐까요.”●전문가들과 협업한 정원 브랜딩정원이 자연과 다른 점은 인간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정원은 인간의 꿈과 이상을 자연에 구현한 장소다. 그래서 정원에서는 심미적 활동이 이뤄진다. 미지의가 여느 정원들과 차별되는 점은 공간에 미감(美感)과 스토리를 담은 것이다. 다양한 인생의 면모로 공간을 개념화한 것, 돌 나무 물의 소리를 채집해 공간의 소리를 만든 것, 정원 콘셉트에 맞춰 차, 향, 음식, 가구, 그릇, 브랜드 필름까지 만들어낸 것….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미지의 감각들이 깨어난다. 이 대표는 문화 기획사 ‘쿨데삭’의 김성렵 대표와 손잡고 음악 미술 요리 등 각 분야 30여 명의 전문가와 협업했다. 정원 소개서에는 이들의 명단이 마치 영화 엔딩 크레딧처럼 쓰여있다. 정원주가 전문가들의 제안을 적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원주가 중심을 잡되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마음과 귀를 연다면 “울산의 문화 명소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꿈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날 계단식 테라스 홀에서는 토크쇼와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관객 10여 명을 향해 조곤조곤 얘기해주고 고요한 음악을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장석주 시인은 “살다가 꺾였을 때 땅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했다. 정원보 음악가는 이 곳의 돌 나무 물을 주제로 한 브랜드 필름 음악을 연주한 뒤,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키야키가 좋아’란 짧은 에세이를 읽어줬다. 누군가에게 미지의 음식은 스키야키였던 것인데, 미지의 정원에 그 글을 들고 와 들려주는 젊은 음악가의 센스가 돋보였다. 무엇보다 미지의에서 식사는 또 다른 형태의 명상일지 모르겠다. ‘2024 미셰린 가이드 서울’에 등재를 예고 받은 서울 강남의 아시안 노르딕 식당 ‘마테르’의 김영빈 오너셰프는 미지의의 열 개 구역을 각각의 메뉴로 구현했다. 드라이아이스를 키위 워터에 넣어 생기는 수증기로 안개를 표현한 ‘무념’, 감자칩 위에 곱게 간 계란으로 골안못에 비치는 햇빛을 표현한 ‘심연’, 당근으로 만든 틀 안에 당근 피클과 캔디드 계피를 넣고 제철 꽃으로 윗면을 가드닝한 ‘연화’, 흑임자 파블로바(머렝 디저트)로 돌무더기를 형상화한 ‘애추’…. 놀랍고도 아름다운 메뉴들이다. 책자 형태의 메뉴판에는 메뉴 설명뿐 아니라 질문이 한 개씩 쓰여 있다. ‘지금껏 당신의 인생에서 인내 뒤에 찾아온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였나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긴 인생이 되듯 당신이 내딛는 한 걸음에서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통유리창을 통해 정원을 바라보면서, 접시 위에 구현된 또 다른 섬세한 정원을 맛보면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하다가 깨닫는다. ‘그래. 정원은 성찰의 공간이었지.’울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1-11 15:22
“당신과 겨울 정원에 가고 싶어요. 우리, 수원에서 만날까요.” [김선미의 시크릿가든]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곳을 바라본다면, 그 시선이 계절을 담은 정원을 향하고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수원 일월수목원 방문자센터에 들어섰을 때, 당신과 함께 정원을 바라보는 상상을 했답니다. 너른 통유리 창을 통해 겨울 정원이 펼쳐지고 있었어요. 소파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아,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구나’. 정면의 나무들을 고요하게 응시하다가 옆 사람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참 온화했어요. 그 정원에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요.●겨울 정원의 미학겨울에 데이트할만한 장소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겨울 정원이라고 답하겠어요. 수원시는 지난해 5월 동쪽(영통구)에는 영흥수목원, 서쪽(장안구)에는 일월수목원을 열었어요. 수원 어디에서든 차로 20분 내로 도달하는 두 공립 수목원에는 추운 겨울에도 기품 있는 경관을 전하는 ‘겨울 정원’이 있답니다. 대왕참나무 잎사귀와 수국 꽃은 잘 나가던 계절의 빛은 잃었을지언정 형태는 굳건히 남아 있어요. 잎이나 꽃잎이 시들기는 해도 떨어지지는 않는 식물 생리현상을 ‘조위성’(凋萎性)이라고 하는데요. 우리네 사랑도 닮은 것 같아요. 사랑은 떠나도 사랑했던 기억은 남아 있잖아요. 겨울 정원은 갈색을 사랑하게 만들더군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화양연화(花樣年華)가 꼭 젊은 날이어야 할까요. 봄 여름 가을을 지내고 산전수전을 겪은 겨울 정원의 갈색 식물들은 오후 세 시의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어요. 요즘 유행인 절제된 ‘올드머니 룩’(시간이 빚어낸 고급스러운 자연미)이 그곳에 있었어요. 분홍과 파랑의 여름 수국은 싱그럽지만, 갈색 겨울 수국의 우아한 분위기만큼은 따라올 수 없을 거예요.겨울 정원은 형태와 질감이 선명해집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잎을 떨군 나무들의 몸통에 가만히 손바닥을 대 봅니다. 은사시나무는 수원에 자생하는 수원사시나무와 이태리포플러인 은백양이 자연교잡해 생겨난, 수원을 대표하는 나무에요. 그 하얀 몸통이 영혼을 청량하게 깨우는 듯했어요. 가을 단풍이 고왔던 중국복자기는 붉은 수피를 종잇장처럼 벗는 모습도 예술이네요. 심은 지 얼마 안 돼 아직 작은 붉은 말채나무와 노랑 말채나무가 좀 더 자라나면 겨울 정원에 은근한 화려함을 더하겠죠. 사라지는 것들을 애도하려고 했는데 웬걸요. 그 속에 구원이 있어요.겨울의 마른 그래스(풀)는 ‘와비사비’(わびさび) 미학도 떠올리게 합니다. 불완전하고 비영속적이며 미완성된 수수한 것들의 아름다움이요. 흔히 일본의 미적 감성이라고 여겨지지만, 솜씨 좋은 조선의 도공들이 일찍이 불완전한 막사발을 빚지 않았더라면 와비사비는 애초에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도 있지요. 그래스는 다른 식물에게 은근한 배경이 되면서 오히려 존재감이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 이런 대사가 있었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욕심인걸요. 인간의 사랑이 어떻게 완전하고 영속적일 수 있겠어요. 부족한 점들은 이해하면서 서로에게 그래스 같은 배경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일월저수지 주변도 함께 걷고 싶어요. 수목원이 바로 옆에 조성되면서 저수지를 찾는 철새들이 늘었다고 해요. 정원 문화가 성숙하면 그다음 단계로 탐조 (探鳥) 문화가 이어진다죠.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가 둘러싼 일월저수지에 흰색 이마를 가진 물닭들이 헤엄치는 풍경을 보면서 가만히 불러보았어요.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시인과 촌장의 ‘풍경’)…. ●조선의 식목왕과 가드너겨울 풍경에 설경(雪景)이 빠질 수 있나요. 하얀 눈이 내린 어느 추운 날, 수원의 동쪽 영흥수목원에 가보았어요. ‘정조효원’이라는 이름의 한국 정원에 소복하게 눈이 내려앉았더랬죠. 매서운 추위였지만 정조의 효심과 사상을 기억하는 화계와 돌담, 계류와 연못가를 걷는 고요함이 좋았습니다.수원 화성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신도시에요. 신도시 화성 주변에 나무를 많이 심도록 한 정조의 ‘미래를 보는 눈’에 탄복합니다. 창덕궁 후원 등 정원에서 위로받고 성찰한 긴긴 시간이 쌓여 그 혜안이 만들어진 것 아닐까요. 수원의 두 수목원은 ‘조선 최고의 식목왕’ 정조와 ‘조선 최고의 가드너’ 다산 정약용 선생의 스토리를 공간으로 풀어냈습니다. 영흥수목원에 정조효원이 있다면 일월수목원에는 ‘다산정원’이 있어요. 다산이 평생 즐겨 가꿨던 석류, 매화, 치자나무, 파초, 국화를 심은 곳이에요. 온몸으로 상상합니다. 맑은 치자꽃 향기를 맡고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던 조선의 로맨틱한 과학자 다산을….●정원 온실 세계 여행수원의 두 수목원에서는 시간 여행만 가능한 게 아니에요. 마음만 먹으면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로 매일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어요. 영하 10도의 추위도 문제 될 게 없는 여행이에요.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수목원 온실로의 여행이랍니다.온실에 들어섰을 때 안경에 김이 하얗게 서리면 지구 반대편으로 순식간에 공간 이동이 마쳐진 겁니다. 독특한 질감과 화려한 색상의 이국적 식물들, 연못과 물소리…. 온실은 추운 겨울 정원 속 오아시스입니다. 부드러운 곡선의 온실 보행로는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탐험가의 길이죠. 왠지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온실에서는 당신의 웃음소리가 식물의 호흡과 섞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의 칵테일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일월수목원 온실은 건조·지중해, 영흥수목원은 아열대 우림을 기후대 테마로 하고 있어 첫인상부터 확 달라요. 일월수목원에 부겐빌레아와 밍크 선인장이 있다면, 영흥수목원에는 화려한 관엽식물들과 빅토리아 수련이 살아요. 밖에는 흰 눈이 펑펑 내리는데 말예요.●자연과 시간의 정원정원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봤으면 해요. 두 수목원은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일월수목원은 수원시가 2014년부터 10년 가까이 조성했어요. 영흥수목원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지방재정이 부족해 민간사업자가 공원을 조성해 기부채납하는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으로 문을 열었죠. 지금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앞마당이 되는 진정한 도심형 수목원입니다. 연간 회원권(성인 기준 연 3만 원) 끊어 틈나는 대로 볕 좋은 책마루에 앉아 정원과 생태 관련 책을 읽고, 식물 세밀화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주민들이 부럽습니다.건축물을 보면서 건축가를 기억하듯, 이제는 정원사의 노고에도 감사를 돌리는 사회 수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소개하고 싶은 정원사가 있어요. 2017년 일월수목원 조성 초기부터 참여한 김장훈 수원시 녹지연구사입니다. 과거 논밭이었던 일월수목원 터를 지금의 모습으로 일군 주역이지요. 사업 추진 초기부터 수목원 전문가를 채용한 수원시도 선례 드문 앞선 행정을 보여줬습니다. 서울대 출신 전문 정원가인 김 연구사가 일월수목원을 가꾸고 영흥수목원의 개원까지 도운 마음을 짐작합니다. 정원을 일으키고 돌본 일종의 부성(父性) 아니겠어요.그는 말을 아꼈지만, 창의적인 도전을 이어 나가기에 공무원 사회는 여전히 딱딱한가 봅니다. 다음 달 이곳을 떠나는 그는 당부합니다. “당장 식물들이 자라나지 않아 허전해 보인다고 이것저것 마구 심거나 무리하게 변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계속 겸손하게 숙고하고 차근차근 진행하기를 바랍니다. 정원은 자연과 시간이 만듭니다.” 정원에는 사랑과 인내와 미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 희로애락에 요동치는 마음을 정돈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변하는 모든 계절의 순간이 은혜라는 걸요. 그 정원에서 당신과 오래오래 추억을 쌓고 싶습니다.수원=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4-01-05 18:00
“공부하고 대비하면 상속세 부담 덜어낼 수 있다”12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20층 CC큐브. ‘동아일보 자산승계학교’의 첫 수업이 진행됐다. 동아일보는 법무법인 ‘시완’과 손잡고 이날부터 내년 2월 20일까지 매주 화요일 세 시간씩 상속과 증여에 관한 교육을 진행한다. 법률 세무 회계 부동산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선다. 이날 1교시 강의를 맡은 김문수 전 국세청 차장이 수강생들에게 이 수업에 오게 된 이유를 질문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자기 사업을 20여 년째 하면서 내년 기업공개(IPO)를 앞둔 사업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때문에 많은 상속세를 내야 했던 대학교수, 자녀들에게 상속과 증여 방법을 찾는 중소기업 회장…. 공부를 위해 저녁 시간에 모인 수강생들의 눈빛이 빛났다.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창업세대가 고령화되면서 창업세대가 쌓아온 자산 및 기업의 승계가 국가적 문제로 떠올랐다. 사전 계획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턱대고 승계하려면 세계 최고 수준인 50%에 달하는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야 한다. 상속인들이 막대한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회사의 경영권을 내놓기도 한다. 법무법인 시완의 정재완 대표 변호사는 “이번 교육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가족과 자산에 대한 승계 계획을 세우고 효과적으로 실행하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부동산 법인과 금융자산을 활용한 절세 전략, 특정 법인을 활용한 가업 승계 등의 강의가 앞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2교시 수업은 이정근 세무사가 강의를 맡은 ‘사전준비 로드맵’이었다. 이 세무사는 “세금을 피할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며 “준비한 사람만이 사업과 자산을 안전하게 승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수강생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상속과 증여 중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나. “증여의 목적은 상속세 절감이나 부의 이전이다. 통상적으로 피상속인의 재산가액이 10억 원 내외로 크지 않은 경우라면 상속으로 받는 것이 공제금액이 크므로 유리하다. 반대의 경우라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어떤 자산을 어느 시기에 어떤 방법으로 증여할지 고민하는 게 좋다.” ―상속재산이 많지 않다. 신고를 안 해도 되나. “부동산의 경우 상속 당시 평가된 가익이 나중에 양도할 때 취득가액이 되어 양도소득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피상속인의 재산이 많지 않아 상속세가 나오지 않는 경우라도 상속세 신고를 통해 재산가액을 높게 신고해두면 나중에 발생할 양도소득세를 줄일 수 있다.” ―상속세 조사는 무조건 나오나. “상속세는 결정세목이라 하여 정부의 과세처분이라는 행정처분에 의해 납세의무를 확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고된 상속세의 올바른 과세표준과 세액을 반드시 검증한다. 다만, 재산가액의 규모가 10억 원 내로 크지 않거나 납부세액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관할 세무서에서 서면 결정으로 끝내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실지 조사로 진행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3-12-20 03:00
“기다리고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영국 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서울 성북구 성북동 켈리타앤컴퍼니에 들어서면 창밖으로 정원이 펼쳐진다. 이 회사 최성희 대표가 오랫동안 정성껏 가꿔온 정원이다. 시각 디자이너 출신으로 광고회사 아트 디렉터를 지냈던 그는 재택근무 개념조차 없던 20여 년 전 자신의 집에서 창업했다. 회사들의 로고 제작과 공간 콘셉트 설정 등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만들어주는 일이었다.성심당, 백미당, 갤러리아 Gourmet 494, 나인원한남, 서울공예박물관, 조선호텔앤리조트 격물공부, 최근엔 현대백화점 가스트로테이블 등의 BI가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음식 공예 공간 등 분야는 달라도 관통하는 ‘켈리타 스타일’이 느껴진다. 손으로 그린 드로잉, 한지와 흙 등 자연 소재, 외길을 걸어온 지역 장인들과의 협업물이 고급스러운 결을 빚는다. 최근 방문한 그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계피와 솔방울을 장식한 격물공부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여있었다. 그는 브랜딩 작업이 정원을 가꾸는 일과 닮았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계절에 따라 제자리에서 자기다울 때 가장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준다고 생각해요. 인간이든 식물이든 씨앗에 유전정보가 들어있잖아요. 대를 이어 생명력을 갖는 건 자기다움이에요. 지금 저희 정원에는 1000년 전에도 영국에서 자라던 꽃이 살고 있어요. 남의 것을 흉내내지 않고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고유의 본질을 찾아 시각화하려고 노력합니다.”최 대표는 지난 18년 동안 이맘때쯤 새해 캘린더를 제작해왔다. 자신이 다닌 국내외 도시를 스케치한 캘린더를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판매로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 만든 2024년 캘린더의 주제가 ‘영국 정원’이다. ―왜 영국 정원인가.“영국 시골의 기숙사 학교로 유학 보낸 아들을 챙겨주러 10년 동안 영국을 자주 드나들었다. 아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동안 자주 시간을 보낸 장소가 영국 정원이었다. 그동안 영국 정원에서 느꼈던 위로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다녔던 정원 중 12곳을 골라 그렸다. 정원에는 열두 계절이 있다. 지난 18년 동안은 도시여행을 다뤘는데 이제는 계절마다 아름다운 정원을 통해 힐링의 시간을 나누고 싶다.”―영국 정원이 준 위로는.“2016년 가을 혼자서 위즐리 정원을 방문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그라스를 보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한참 신나게 걷다가 도토리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을 줍기 시작했다. 벤치에 앉아 손바닥을 닮은 낙엽들을 보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메마른 손이 떠올라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그해 봄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위즐리 정원의 오래된 나무들 사이에 앉아 꾹 참고 있던 큰 슬픔을 내어놓고 위로를 받은 것 같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 날의 기억을 2024년 캘린더 11월 스케치에 담았다.”―영국 정원의 매력은.“영국 정원에는 계절을 꽃 피우는 아름다운 식물과 오래된 건축물뿐 아니라 정원사가 심어놓은 저마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바쁜 일상을 잠시 떠나 시간 여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주로 런던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생각하지 못했던 낯선 동네를 여행하는 묘미도 있다.”서울 성북동에 있는 그의 주택 정원을 거닐다 보면 진짜 가드너의 정원이라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계절마다 씨앗을 모으고 압화도 배운다. 최 대표는 몇 년 전만 해도 시든 꽃을 잘라내던 일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 자연에 순응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껴주는 일, 식물이 건강하게 자라날 양질의 흙을 만드는 일에 요즘 관심을 쏟는다. 그는 가드너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순응’을 꼽는다. 해시계에 일상의 리듬을 맞춰야 한다고 한다.―20여 년 가꾼 정원에 오랜 영국 정원 투어가 미친 영향은.“처음엔 화려한 꽃들을 보고 이름을 외우고 씨앗도 샀다. 그러다 도구들도 모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흙이 보였다. 잘 설계된 퇴비 통에서 낙엽 등을 제대로 발효시켜 만들어 사용하는 까만 부엽토는 정말로 촉촉하다.” 아들은 가는 정원에서마다 씨앗을 사는 엄마를 ‘씨만 사 여사’로 불렀다고 한다. 서머셋 지역의 시골 정원에 방문했을 때에는 인근 골동품 가게에서 커다란 삽도 샀다. 서울로 돌아올 때 그 삽을 애지중지 포장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이 “엄마, 저는 삽을 들고 비행기 타는 여자와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다고. “그냥 기타라고 생각해”라며 들고 온 그 삽은 지금 성북동 켈리타 정원에서 잘 사용되고 있다. 그 사이 아들은 미술사를 공부하는 청년으로 자랐다. ―가드닝과 자녀 교육의 닮은 점이 있나.“무엇을 좋아하는지 본성을 잘 살펴 관찰하고 마음껏 자랄 수 있는 토양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기다리고 바라보고 기도하며 있는 그대로 예뻐해 주는 게 식물에게도 자녀에게도 필요한 것 같다.”―영국 정원에서 배운 삶의 자세는.“눈 부신 햇살도 아름답지만 뿌연 하늘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정원의 식물은 빛이 바래더라도 아름답다.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 정원이 가르쳐준다. 정원을 갖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삶은 밝을 때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 하지만 밝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최 대표가 2024년 캘린더에 담은 영국 정원들〉1월 그레이트 딕스터 정원 (Great Dixter House & Gardens) 위대한 정원사이자 가든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로이드의 숨결이 살아있는 정원. ‘그레이트 딕스터’라는 이름의 가옥과 함께 과감한 볼륨과 강렬한 색으로 정원이 구성됐다. 어머니의 사랑이 이어지는 토피어리(topiary·장식적으로 자른 나무)와 초원의 메도 정원(meadow garden), 식물과 종자를 판매하는 너서리(nursery)까지 방문할 때마다 해가 지도록 볼거리와 배울 거리가 넘친다.2월시싱허스트 캐슬 정원 (Sissinghurst Castle Garden) 계절마다 다채로운 색상을 자랑하는 비타 색빌웨스트의 정원. 일찌감치 도착해서 스콘과 티 한잔으로 시작하면 지치지 않고 돌아볼 수 있다. 중세 분위기의 붉은 벽돌 타워를 지나며 벽으로 나누어진 정원구성이 흥미를 더한다.3월러샴 정원 (Rousham House & Gardens) 지형과 경사를 이용한 호수와 건축물로 곳곳에 장관이 펼쳐진다. 회화를 공부한 건축가이자 정원사였던 윌리엄 켄트의 초기 디자인이 잘 보존된 풍경 정원이다. 사과나무 배나무 포도나무 등이 회화적 이미지를 더하고 큰 숲과 물길이 흐르는 산책로가 교차된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대비가 드라마틱하다.4월옥스퍼드 보타닉가든 (Oxford Botanic Garden)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보타닉가든인 옥스퍼드 대학 식물원은 1621년 약용식물 연구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들린 타워를 바라보며 500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을 관찰할 수 있고 처웰강에서 나룻배를 즐기는 풍경도 운치 있다.5월 첼시 플라워쇼 (Chelsea Flower Show) 영국의 왕립원예협회(RHS·Royal Horticulture Society)에서 주관하는 세계적인 원예 축제로 매년 5월 말 첼시 지역의 왕립병원 정원에서 열린다. 정원디자인 트렌드를 볼 수 있고 다양한 식물과 정원용품도 살 수 있어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6월 왕립식물원, 큐가든 (Kew Gardens) 정원이라기보다 공원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규모와 방대한 식물 데이터를 갖춘 세계적 기관이다. 2024년 캘린더에는 큐가든의 상징인 대온실과 큐가든 설계에 참여했던 윌리엄 체임버스의 중국탑을 그렸다. 하루에 다 돌아보려는 마음을 비우고 방문할 때마다 수련 온실 등 몇 가지를 정해 천천히 즐긴다.7월 앤 해서웨이 코티지 (Anne Hathaway’s Cottage) 셰익스피어의 아내 앤 해서웨이가 나고 자란 시골집과 사랑스러운 정원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 전으로 돌아가 꽃과 채소가 어우러진 코티지 가든으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8월도브 코티지(Dove Cottage Garden by William Wordsworth & Dorothy) 영국의 대표적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와 동생 도로시가 살았던 코티지 정원. 곳곳에 놓여있는 돌에 새겨진 워즈워스의 시와 식물들을 함께 감상하고 차분히 동네 풍경을 즐길 수 있다. 9월 하우저앤드워스 소머셋 정원(Oudolf field at Hauser & Wirth Somerset)세계적 정원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는 영국 서머셋의 작은 시골 마을 브루턴의 하우저 앤 워스 갤러리에 자연주의 정원을 조성했다. 2만6000여 종의 다년생 초화들은 꽃피는 봄부터 메마른 겨울 정원까지 숨 막히게 아름다운 계절의 순환을 포용한다.10월 더 피그 (The Pig near Bath)더 피그는 영국 시골 곳곳에 자리 잡은 키친가든 중심의 작은 호텔이다. 가는 곳마다 정원이 너무 아름다워 가든 리스트에 넣었다. 허수아비가 있는 텃밭에서 키워진 신선한 계절 채소들은 인근 25마일 내의 농부와 어부들이 제공하는 로컬 식재료들과 어우러져 사랑스럽고 행복한 식탁을 이룬다.11월 위즐리 정원 (RHS Garden Wisley)영국 왕립원예학회원가 운영하는 방대한 정원으로 가드너들이 꿈꾸는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가든샵 구성도 좋아 식물 마니아들의 성지다. 1879년 오크우드의 실험정원으로 시작된 정원답게 오크 낙엽들이 가을 정원의 운치를 더한다. 알파인 하우스(Alpine House)에서는 고산식물을 볼 수 있고, 암석정원(Rock Garden)과 온실에는 싱그러운 에너지가 가득하다. 컨디션 좋은 날 하루종일 일정을 비우고 가는 걸 추천한다.12월 리틀 스파르타 (Little Sparta by Ian Hamilton Finlay)스코틀랜드 목초지 한복판에 위치한 프라이빗 정원. 가드너이자 시인이었던 이안 해밀턴 핀레이(1925~2006)의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 바람 부는 대지에 툭툭 놓인 돌조각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노래한다. 그 사이를 걸으면 문학과 예술이 만난 핀레이의 기이하고 시적인 정원에 푹 빠진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3-12-16 10:00
“K콘텐츠가 세계에서 통한다”… 차세대 미디어 대전“20%의 고객이 80%의 매출을 일으킨다는 법칙이 미디어 시장에서도 통합니다. 미디어 시장의 슈퍼 사용자는 Z세대입니다. 어려서부터 인터넷 세상에서 자란 Z세대는 해외 콘텐츠에 마음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미국에서 ‘복면가왕’이 큰 인기를 끌고 ‘블랙핑크’가 미국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 콘텐츠의 힘과 가능성을 봅니다.” 더글러스 몽고메리 ‘글로벌 커넥츠 미디어’ 대표(전 워너브러더스 부사장)가 11일 서울 마포 호텔나루 서울에서 열린 ‘2023 차세대 미디어 대전’에서 이같이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한국전파진흥협회와 함께 연 이 행사에서 그는 기조연설자로 나서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의 비즈니스 성공 전략’을 발표했다. 몽고메리 대표는 동아일보와 따로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K팝과 K드라마는 서구 콘텐츠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게 매력 포인트”라면서 “Z세대는 콘텐츠의 국적을 따지지 않고 지식재산(IP) 자체로 소비하기 때문에 한국도 IP를 세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차세대 미디어 대전은 방송·미디어의 최신 산업동향과 미래전략을 공유하고 국내외 산학연 교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과기정통부가 여는 미디어 분야의 대표 행사다. 2015년 시작돼 올해 9회째를 맞았다. 이날 또 다른 기조연설자로 나선 장경익 '콘텐츠미디어그룹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의 콘텐츠 제작계열사 스튜디오앤뉴' 대표는 ‘무빙의 사례로 본 K콘텐츠의 가능성’을 발표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영화 ‘부산행’, 디즈니플러스 ‘무빙’ 등을 히트시킨 그는 2021년 디즈니와 5년짜리 장기 콘텐츠 파트너십을 맺었다. 그는 “디즈니플러스가 새롭게 도전하는 플랫폼이라 창작자의 자율성을 좀 더 보장해 주는 게 마음에 들었다”며 “K콘텐츠는 어떤 장르든 한국인의 정(情)이라는 훈훈한 정서를 담고 있어 서구인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가족과 친구를 지키는 소시민적인 모습을 그린 ‘무빙’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휴머니즘을 담은 글로벌한 이야기”라며 “‘부산행’에서 좀비가 눈물을 흘리는 신파적 요소를 좀비의 고장인 해외에서는 신선하게 여겼다”고 전했다. 이번 차세대 미디어 대전의 주제는 ‘변화하는 미디어의 혁신적 대응’이었다. △인공지능(AI) 디지털 기술 기반 제작 및 유통시장 활성화 방안 △콘텐츠로부터 시작되는 미디어 플랫폼 확장전략 △기술 변화가 가져올 미디어 콘텐츠 산업 변화 등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박윤규 2차관은 “최근 방송미디어 산업도 디지털 대전환기를 마주하고 있다. AI 기반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통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3-12-13 03:00
“아동의 정신건강과 주거 지원은 아동의 권리 입장에서 펼쳐야”“아동 정신건강 지원사업이 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지니 학교 밖, 가정 밖의 소외 청소년들은 공공서비스도 받지 못하고 있어요.” “햇빛이 안 들어오는 집이라 불을 끄면 아침인지 밤인지 구별이 안 돼요.” 아동권리보장원(정익중 원장)이 1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2023년 제2차 아동정책포럼 ‘아동정책시행계획 및 아동정책영향평가’를 열었다. 아동 정신건강과 공공임대주택 거주 아동의 주거환경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이번 포럼은 아동정책영향평가 전문평가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아동정책 시행 계획 및 아동정책영향평가 우수 사례 발표를 통해 아동중심 정책 개발과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열렸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출범한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으로 아동복지 정책과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개발, 지원한다.●“아동기 정신건강은 성인기 정신건강과 직결”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전진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정신건강연구센터장은 ‘정신건강 위기아동 지원정책 전문영향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전 센터장은 “코로나19 이후 아동 정신건강 문제의 위험성이 지속적으로 커지는데도 정신건강 정책에서 아동에게 초점을 둔 논의는 여전히 제한적이라 이번 평가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동 정신건강과 관련한 여러 부처의 지원이 있지만 지원들이 통합, 조정되지 않아 중첩되기도 하고 사각지대도 발생하고 있다”며 “예산 문제로 공공기관의 상담 및 심리치료 서비스는 아동 한 명이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고 지적했다. 정신건강 서비스의 지역 간 격차가 크고, 종합심리검사의 경우 30만 원 정도의 적잖은 자기 부담이 발생하는 점도 한계점으로 꼽혔다. 보장원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가는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 확대 △모바일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정신건강 상담기회 제공 △학교 기반 상담서비스 ‘위클래스’ 확대 등을 개선 권고사항으로 제시했다. 지정토론에 나선 박소연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민간 상담센터에서 제공되는 인력의 전문성에 대한 낮은 신뢰와 공공기관을 통한 정신건강 상담의 효과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현 상황에서는 전문인력의 전문성 강화가 시급하다”며 “아동의 욕구를 어떻게 반영할지 보다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공임대주택 거주 아동이 놀림받는 현실”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 주거지원 정책 전문 영향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공공임대 주택 거주 아동이 ‘영구’라고 불리는 등 또래의 놀림을 받는 가운데 주거 과밀이 아동의 신체·정신건강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아동 가구의 주거 문제가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제한된 주거복지자원 배분 과정이 대개 정치적 결정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정치적 약자인 아동이 소외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단기 개선방안으로 2024년 주거종합계획과 제3차 아동정책종합계획에 지하(반지하), 비주택에 거주하는 아동가구 등 총 3만7000개 아동 가구에 대한 즉각적 주거 지원 계획이 포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기적으로는 △주거기본법 주거 약자에 ‘아동 청소년’을 포함시켜 이들이 최저 주거기준 미달일 경우 즉각 지원할 것 △아동복지법과 청소년복지지원법을 개정해 보호대상 아동 및 청소년에게 ‘가정환경과 유사한 주거 지원’을 명문화할 것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대한민국 모든 아동정책이 아동권리 관점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3-12-06 03:00
“지친 삶 어루만지는 우리 옛 정원, 세계가 주목한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국화 분재를 스탠드 조명 옆에 두니 벽에 꽃 그림자가 비쳤다. 아, 이게 우리 옛 선조들의 식물감상 방식 ‘국영시서’(菊影詩序·방 안에서 국화 앞에 촛불을 켜서 벽에 비치는 그림자 감상)였구나…. 전남 담양 소쇄원 제월당 뒤 일렁이는 파초를 보면서는 생각했다. 조선 사대부는 연잎과 파초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고 했지….선조들은 별서정원을 두고 자연을 감상하며 선비의 정신을 길렀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아 잘난체하지 않는 정원에서 시원하고 맑은 인품을 닦았다. 두 칸짜리 작은 집이면 족했다. 기존에 흐르던 계곡물과 바위를 정원의 핵심 요소로 끌어들인 소쇄원의 물소리는 요즘 말로 ‘물멍’하기에 제격이었을 테니. 현대를 사는 한국인에게 정원은 어떤 의미일까. 획일화된 아파트에 살면서 개성이 사라졌던 한국 주거 환경에 다시 자연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에 텃밭을 만들고 베란다에도 작은 정원을 가꾼다. 경쟁과 세상 소음에 지쳐 선조들의 정원을 끌어들이고 싶은 건 아닐까. 국내외 명사 12명의 정원생활을 소개한 ‘인생정원’의 저자이자 한국 조경계의 원로학자인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를 만나 한국인의 정원에 대해 탐사했다. ●“아파트 텃밭 정원 가꾸면 층간소음 문제도 해결될 것” ―왜 정원이 필요한 겁니까.“요즘 우리 아이들이 갈 데가 게임방과 학원 두 군데밖에 없잖아요.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게임방 가서 ‘사람 죽이고’ 학원에서는 경쟁에 시달려요. 그런 환경에서 과연 아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자연과 지속적으로 교감하면서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곳, 예술 감각을 깨우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곳이 있어요. 그게 정원이에요.”성 교수를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펼치는 정원 효용론에 공감하게 됐다. 한국 전통 정원 전문가로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한국 정원 ‘희원’, 천리포수목원 입구 정원,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등을 설계해 온 그는 우리 사회 문제들의 해답을 정원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정원이 사회 문제들을 풀 수 있다고요.“한국 사회에 정원이 많이 퍼져야 해요. 8년 전 어느 지방 건설업체가 수도권에 진출하면서 주차장을 지하로 내리고 지상을 전부 녹지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제안 드렸죠. 나무만 많이 심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경계를 따라 텃밭 정원을 만들자고요. 그랬더니 텃밭을 함께 가꾸면서 아파트 주민끼리 친해졌어요. 눈인사만 하던 사이에서 함께 먹을거리를 나누는 관계로 발전한 거죠. 도시에서 텃밭은 소셜 스페이스(사회적 공간)에요. 요즘 층간소음 문제 많죠? 이웃끼리 이름을 불러주며 밥도 같이 먹는 친한 사이가 되면 서로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많은 사회 문제들이 정원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어요.”●“사회 지도층이 관심 갖고 정원문화 이끌어야”성 교수는 올해 7월 국내외 명사 12명의 정원 가꾸는 삶을 소개한 책 ‘인생 정원’을 펴냈다. 영국 찰스 3세와 윈스턴 처칠, 미국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조선 정조대왕….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명사들은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내면의 미적 감각을 총동원해 정원을 가꿔 소통했으며, 그래서 우리 사회 지도층도 정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원을 가꾼 명사들의 공통점이 있습니까.“서구의 유명 위인들은 물론 고산 윤선도와 다산 정약용 등 한국의 위인들도 정원을 잘 가꿨어요. 어쩌면 정원이 있었기에 그들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 같아요. 정원을 통해 고난과 갈등을 승화시켰으니까요.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디다. 어린 시절 부모나 조부모와 함께 정원생활을 했다는 점이에요. 어릴 적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정원은 사람됨의 조건인데, 여유 없이 살아온 우리는 정원을 지나치게 사치품으로 인식하는 측면이 있어요. 특히 한국의 사회 지도층이 정원에 관심도 안목도 없어 안타깝습니다. 부디 정원의 가치와 효용을 알고 정원문화를 확산시켜줬으면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게 미래가 있습니다.”―한국에는 순천만국가정원과 울산 태화강국가정원, 이렇게 두 개의 국가정원이 있습니다. 지방정원과 민간정원도 나라에서 정하고요. 한국의 국가정원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국가가 정원을 주도하는 게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아, 그래요? 의외인걸요.“세계에서 국가 정원을 지정해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 정원은 지극히 개인적 심미 활동의 산물인데 국가라는 최고 권력이 개입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안 맞죠. 그럼에도 우리나라처럼 정원 문화가 꽃피우지 못한 상황에서는 당분간 국가나 공공이 정원 정책을 끌고 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원박람회도 좀 더 정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정원박람회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제가 1990년대부터 각국의 정원박람회를 많이 다녔습니다. 특히 독일이요. 합리적이면서 실속을 챙기는 독일인들은 ‘그린(Green) 문화’를 삶 속에서 실천합니다. 한국은 정원박람회를 쇼나 이벤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힘이 많이 들어가고 단발성으로 그치는데요. 독일의 정원박람회는 도시를 일거에 쇄신하는 전략입니다. 독일은 입지와 상태가 나쁜 땅에 박람회를 열어서 그 주변이 개발의 힘을 받도록 합니다. 지저분하고 낙후된 공간이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뀌면 민간이 스스로 찾아와 주변을 개발하죠. 공공에서 리드하고 민간이 따라오는 선순환을 이뤄야 합니다.” ●“한국 정원의 가치를 개념화해야”성 교수가 조경작업에 참여했던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의 한국 정원 ‘희원’은 우리 정원의 품격 있는 가치를 보여준다. 날이 갈수록 입소문이 나서 미술관 찾아오는 사람 절반, 정원 찾아오는 사람 절반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는 “자꾸 우리 정원을 만들어 정갈한 한국 정원의 가치를 함께 나눠야 한다”고 한다.―요즘 젊은 세대들은 해외 정원에는 많이 가보는데요. “영국 코티지(농촌풍) 정원은 쫓아다니고 따라 만들려고 하면서 정작 우리 정원은 몰라요. 왜 우리 것을 잊었을까 안타까워요. 생각해보면 한국은 일단 정원에 대한 용어학(terminology)이 발달하지 못했어요. 현대 한국조경의 역사가 50년 됐지만 급하게 외국 것들을 받아들이느라 우리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 없었어요. 일본만 해도 정원 미학을 소개하는 용어가 많지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만 즐겼지 그걸 개념화, 용어화하는 과정이 없었던 거예요.”―해외에는 ‘철학의 길’ 같은 개념도 많잖아요.“아, 말씀 잘하셨어요. 독일인 이참 씨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낼 때 만났더니 이렇게 얘기합디다. 왜 한국분들이 독일 하이베르크까지 가서 철학자의 길을 찾는지 모르겠다고요. 칸트는 걷지도 않았던, 그저 만든 관광상품이라고요. 그곳보다 훨씬 근사한 철학자의 길이 한국에 있다고요. 퇴계 이황이 친구 후배 제자들과 함께 걸었던 안동 토계에서 청량산을 잇는 낙동강변 길이 바로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철학의 길’이라고요. 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퇴계 이황의 정원 철학, ‘긴수작 한수작’ 그런 점에서 성 교수가 강조하는 퇴계 이황의 정원 철학 개념이 있다. ‘긴수작(緊酬酌·어려운 학문적 행위) 한수작(閒酬酌·취미나 놀이 같은 한가한 행위)’이다. 퇴계의 삶에서 자연은 옛 성현의 삶을 본받으며 살아가기 위한 필수 여건(긴수작)인 동시에 즐기기 위한 매개(한수작)였다. ―긴수작 한수작 개념이 어떻게 정원과 연결됩니까. “‘긴수작 한수작’은 퇴계 선생이 주신 훌륭한 정원 용어입니다. 자연법칙으로 이뤄진 미학의 장으로서 정원은 퇴계에게 배움과 휴식, 그리고 심미의식을 즐기는 장소였어요. 퇴계는 어려운 공부만을 하기(긴수작)보다 산수를 한가하게 노니면서 감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열심히 하는 ‘긴수작’은 기성 세대들은 대체로 다 잘하죠. 과연 ‘한수작’도 잘하는지는 모르겠어요. 한수작이 제대로 있어야 삶이 온전해집니다.”성 교수는 “퇴계는 이사하는 곳마다 연못을 파서 마음을 비추고 검박한 정원을 만들어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 연꽃을 벗 삼았다”며 “퇴계가 조선의 대학자로 남아있는 건 정원에서 기른 인품이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랑스도 감탄하는 한국 정원의 정갈한 멋성 교수에 따르면 수준 높은 전시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의 뤽상부르 박물관은 2025년 한국 정원 전시를 열고 싶다는 의사를 최근 표시했다. 예산 문제와 한국과의 협조 등으로 진척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상원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뤽상부르 박물관이 어떻게 한국 정원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정원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프랑스인들이 자기들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한국 정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K-드라마’를 보니 인간이 만든 고궁과 산이 만나는 모습이 참으로 자연스럽고 친밀해 보이더라고 합니다. 서구처럼 인간의 질서가 강요된 정원이 아니라 자연이 건강한 활력을 갖는 정원이라면서 ‘K-정원’(한국 정원)에서 정원의 미래를 찾더라고요. 자연의 섭리를 읽어내고 겸허하게 마음으로 즐기는 정원이 한국 정원인 걸 알아본 거죠.”그는 어릴 때부터 일상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자연과 접촉하는 경험이 위인을 낳는다고 강조한다. “건물은 소수 집단을 위한 이기적인 전유 공간이라 할 수 있지만 바깥 공간은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지요. 정원은 사유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우리 선조들이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깨끗하게 했듯, 우리 아이들이 자연의 물소리를 들으며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민족은 예로부터 자연과 교감이 정말 많았습니다. 영민해서 어느 순간 통하고 나면 잊었던 마음과 감각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오랫동안 한국의 굵직굵직한 조경 정책과 실무에 관여했던 성 교수는 최근 자신의 정원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늘 바빴던 아버지로서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미래에 태어날 손자 손녀와는 정원에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면서. 정원생활을 통해 인간의 부족함을 넘어서려고 애썼다는 우리 옛 선조들의 지혜가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다. ▽성종상 교수는-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대통령자문건축문화선진화위원, 한국조경설계연구회장, 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장,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등 역임-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 한국ICOMOS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인사동길,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한국정원 희원, 선유도공원,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등 설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3-12-05 10:30
우울한 노년이 마음을 열었다…신구대 식물원의 정원치유[김선미의 시크릿가든]봉선화, 동백, 해바라기, 앵초, 느티나무…. 어르신들의 가드닝 앞치마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 이름이 크게, 본래의 이름 석 자는 괄호 안에 작게 쓰여 있었다. 가을빛이 깊어가는 정원에 26명의 어르신이 모였다. 우울증을 진단받거나 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분들이었다. 하지만 표정이 맑고 환했다. “우리 행복팀이 가꾼 정원이랍니다. 해바라기 백합 목련을 심었어요.” 물 조리개를 들고 꽃에 물을 주거나, 잡초를 뽑는 자세가 진지하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사회적 약자 가드닝 ‘할매 할배의 초록손’이곳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신구대 식물원이다. 신구대 식물원은 ‘할매 할배의 초록손’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약자 가드닝 프로그램을 3년째 펼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우울한 어르신들을 정원 활동에 참여시켜 사회적 관계 형성을 돕는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니 어르신들은 처음엔 강사의 안내에 따라 ‘시루떡 감자떡 찹살떡’, ‘감자탕 설렁탕 매운탕’ 등의 구호를 박수치며 따라했다. 인지 기능을 높이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다. 체조로 몸도 풀고 따뜻한 가을 햇살 아래 도란도란 간식시간도 가졌다.식물원 내 오감치유정원에서 열린 이날의 주요 프로그램은 ‘꽃 누르미 액자 만들기’. 진행을 맡은 강사는 말했다. “오늘은 눌러 말린 꽃들로 액자를 만들어 보려고 해요. 아크릴 필름에 사진을 함께 오려 붙여 보세요. 보기 좋은 곳에 올려두고 그동안의 식물원 활동을 항상 행복하게 떠올리시면 좋겠어요.” 어르신들은 19주 동안 채소정원 만들기, 그라스 가든 산책, 허브 향기 테라피, 꽃무릇 정원에서 인생 사진 남기기, 정원 요정(허수아비) 만들기 등의 활동을 했다. 어르신들이 만든 정원 요정에 왠지 마음이 끌렸다. 형형색색 솜 구슬을 단 스웨터를 입고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젊은 날 모습일까. 참여자들 대부분이 홀로 사는 분이어서 마음이 짠했다. 식물원에 따르면 사회복지사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하던 어르신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웃게 됐다고 했다. 자신의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젠 다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신구대 식물원은 올해 상·하반기 진행한 이 정원치유 프로그램의 성과를 평가해 최근 산림청에 보고했다. 우울증 진단을 받거나 우울증 자가진단 경고 이상인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실험군(프로그램 참여자)과 대조군(미참여자)으로 나눠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사회적 건강을 살펴봤다. 그 결과 신체적으로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실험군의 경우 평균 0.8kg 체중이 감소(대조군은 평균 0.36kg 증가)했다. 다리에 힘이 생기고 손의 소근육도 발달했다. 한국정신과학연구소 통합뇌휴먼심리연구소에 의뢰해 진행한 정신적 건강의 척도지 검사에서는 실험군의 우울 점수가 평균 8.02점 감소(대조군은 평균 1.85점 감소)했다. 활력, 삶의 질, 마음 챙김에서도 실험군은 대조군에 비해 월등히 높은 성과를 보였다. 사회적 건강 조사는 심층 인터뷰로 진행했다. “‘살구꽃’ 어르신이 먼저 친절하게 대해주고 아는 척해줘서 고마웠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은 아직 힘들지만 앞으로 실천하고 싶다”, “집에서 혼자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 여기 와서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것이 더 좋고 행복해졌다”, “동료들과 같이 활동하는 것이 기다려진다.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생겼다”….산림청은 올해 신구대 식물원 등 11개 기관에 사회적약자가드닝프로그램을 위탁해 실시했다. 우울증세 어르신, 치매 돌봄 가족, 정신 질환자 등이 대상이었다. 영국의 이든 프로젝트와 왕립원예협회(RHS), 미국 시카고 식물원, 호주 왕립식물원 등 해외에서는 정원치유가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국가공원위원회 주도로 2030년까지 치유정원 30곳을 조성한다는 목표다.●‘오후만 남은 휴일’에도 찾을 수 있는 식물원17만 평 규모로 2003년 문을 연 신구대 식물원은 서울에서 매우 가깝지만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정원’이다. 분당내곡간도시고속화도로가 지나는 그린벨트 사이에 숨어있는 탓이다. 서울시민이 먼 길을 나서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는 거리다. 매월 다양한 교육 클래스도 열린다. ‘이야기가 있는 가드닝 클래스’를 비롯해 수목전문가 양성과정, 시민정원사 과정 등도 풍부하다. 식물원 곳곳에 두꺼비 동상이 있는 것은 사라져가는 두꺼비를 지키기 위한 염원을 담은 것이다. 멸종위기식물 보존사업과 식물자원 수집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휴일 오전 내내 자고 일어나 라면 끓여 먹고 나와 거닐 수 있는 곳, 숲의 소리와 흙내음을 느끼며 주중에 쌓인 피로를 떨쳐낼 수 있는 곳, 사계절 다른 색을 선물해주는 곳. 살면서 힘을 다시 낼 수 있는 일상의 치유는 이런 게 아닐까. 연간회원권 하나 끊어두고 언제든 찾아 ‘내 정원’으로 삼고 싶은 곳이다. 무엇보다 ‘할매 할배의 초록손’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손을 잡아 드리면서 생각했다. 누구든 부모님 모시고 계절마다 오면 좋을 곳이라고. 그저 손 잡고 정원을 느릿느릿 함께 걷는 것만으로 무척 행복해하실 것 같다고. 문득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다. 누구든 위로가 필요할 때엔 숲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수선화에게 -정호승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전정일 신구대 식물원장 인터뷰―신구대 식물원 사회적 약자 가드닝 프로그램의 차별점은.“전국 300여 개 대학 중 식물원을 가진 곳은 서울대 원광대 신구대 이렇게 세 곳이다. 그중 일반에게 개방하며 식물의 수집 보존 연구 전시 교육 휴양 등 종합 서비스를 하는 곳은 신구대 식물원이 유일하다. 우울한 독거노인들이 드넓은 식물원에 와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다.”―왜 정원치유가 필요한가.“2025년이면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고 한다. 요즘 60대는 엄청나게 건강하다. 그분들을 사회적으로 가만두면 안 된다. 정원에 나와 일하게 하면 건강보험료 지출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독일에서는 정원치유를 대체의학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는 활동이 정원치유다. 고령층이 정원의 프로슈머(prosumer·생산자이자 소비자) 역할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신구대 식물원의 비전은.“작은 전문대이지만 공익사업에 힘 쏟고 있다. 식물이 보존됨으로써 지구가 보존된다. 우리의 비전은 식물원 문화의 최고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식물을 매개로 종합적인 문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교육도 문화의 일부다.”성남=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3-11-26 07:00
3만 년 세월 모과나무 정원에 사색을 담은 남자[김선미의 시크릿가든]바스락~. 낙엽 카펫이 깔린 만추(晩秋)의 정원에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 수줍은 듯 작은 연분홍 꽃을 피운 꽃댕강나무였다. 잎을 모두 떨어뜨린 653살 모과나무는 노란 열매를 금괴처럼 주렁주렁 달았다. 맞은편 단풍나무는 이에 질세라 빨간 별들을 하늘에 띄웠다.우리는 왜 정원에 가는가. 정원을 산책하면서 어떤 심적 상태에 이르기 원하는가. 궁극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품격을 어떻게 고양시키는가. 대구시 군위군 ‘사유원’(思惟園)에 다녀온 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2021년 9월 10만 평 규모로 문을 연 사유원에는 지금까지 유료 입장객 6만2000명이 다녀갔다. 이곳은 올해 7월 대구시로 편입되기 전까지 경북 군위군이었다. KTX 동대구역에 내려서도 차로 한 시간 더 달려야 도달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전국에서, 해외에서 찾아온다. 입장객 10명 중 6명이 서울과 수도권 거주자다. 깊은 산자락에서 열리는 음악회도, 요가 클래스도 성황이다. ● 사유를 일으키는 정원사유원에 두 번 가봤다. 작년 11월, 그리고 올해 11월. 처음에는 얼떨결에 갔다. 삶의 해답을 알지 못해 허둥대다가 마음의 고요함을 찾을 곳이 필요하던 때였다. 인생의 멋을 아는, 눈과 발이 빠른 지인들이 SNS에 올리던 사진들이 방문의 계기를 줬겠지만, 당시로선 절박한 심정이었다.사유원의 첫인상은 놀라움이었다. 들어서자마자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여정이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알바루 시자(포르투갈)와 국내 유명 건축가 승효상 최욱 등의 건축물이 나타났다. 그들의 이름에 탄복한 것이 아니다. 건축물이 으스대지 않는 크기와 모양새로 자리 잡아 풍경의 부분으로 사유를 일으키는 게 좋았다.숲길마다 새로운 경관이 펼쳐지고, 장면마다 주인공이 바뀌었다. 오래된 모과나무와 소나무, 마음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흔들리는 은빛 억새…. 작은 경당 ‘내심낙원’에 스며드는 한 줄기 햇빛을 보면서는 생각했다. ‘구원의 빛이 아닐까.’ (관련기사 : )관람객은 원하는 만큼 정원을 둘러보면 된다. 사유원이 제시한 추천 관람코스는 1시간짜리부터 4시간짜리까지 네 가지 종류다. 하지만 삶에 정답이 없듯, 사유원 산책의 정답도 없을 것이다. 오르다 지치면 벤치에 앉아 빛과 바람을 느끼며 쉬면 어떤가. 이리 걷다가 아닌 것 같으면 저리 걸어보면 또 어떤가. 정원에 위로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 숲의 바다에서 고요하게 쉬기이달 초 취재차 간 두 번째 방문에서는 또 놀랐다. 작년 11월보다 관광객이 훨씬 많았다. 단체 버스로 온 대전의 건축가들, 외국인들, 기업체 연수자들이 일반 관람객과 어우러져 레스토랑과 카페는 꽉 찼다. 그래서 현장의 빈자리를 확인하고 예약 후 들어선 게 ‘현암’이다. 사유원에서 첫 번째로 지어진 이 작은 건물에 들어서면 장대한 팔공산 산세가 파노라마 뷰로 눈 앞에 펼쳐진다. 숲의 바다 위에 건물이 떠 있는 느낌이다. 현암에서는 하루 세 번 티 하우스가 진행된다. 정향 잎으로 만든 돈차를 우려 마시는 시간은 고요했다. 졸졸 차 따르는 소리가 자연의 물소리로 들렸다. 속세에서 시달렸던 마음이 물줄기마다 씻어졌다고나 할까. 사유원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의외의 공간을 만난다. 숲길을 오르다 지칠 무렵에는 쉼터가 나타난다. 벽체를 세운 작은 조형공간도 있고 벤치도 있다. ‘다불유시’(多不有時)라는 곳도 있다. WC의 영어 발음을 한자어로 넉살스럽게 표현한 화장실이다. 생태 화장실을 만들자는 설립자의 의견에 따라 승효상 건축가가 지었다. 그저 바닥에 작은 네모 하나 파낸 야외 화장실을 보면서 전남 순천 선암사의 해우소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일을 보며 풍광을 느낄 수 있어 한국의 아름다운 화장실로 일컬어지는 그곳….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 해우소에 가라, 쭈그리고 앉아 실컷 울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난다는 정호승 시인의 시 ‘선암사’도 떠올랐다. ● ‘소쇄원 감성’을 담은 한국정원사유원 첫 방문에서 건축물이 기억에 남았다면, 두 번째 방문에서는 건축과 어우러진 자연이 눈과 마음에 들어왔다. 사유원 내 전통 한국 정원인 ‘유원’도 그중 하나다. 소나무와 석재로 계곡과 연못을 구현한 이곳의 정자에 오르자 가을바람이 꽃향기를 실어날랐다. 사유원의 조경은 세계조경가협회 ‘제프리 젤리코상’을 올해 한국인으로는 처음 받은 정영선 조경설계서안 대표와 그의 후배인 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로사이 대표가 주로 담당했다. 박 대표는 말한다. “사유원 설립자는 2006년 산을 매입해 2009년부터 정원을 조성했다. 그는 건축가, 조경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질문하면서 적극적으로 공간에 개입한다. 여러 의견을 듣되 본인이 소화해 구현한다는 점에서 직접 마스터플래너 역할을 하는 셈이다. 웬만한 사업가라면 골프장으로 개발했을 법한 야산을 정원으로 만들면서 가급적 벌채하지 않았다. 산을 망가뜨리지 않고 경관을 가치 있게 드러내고 싶어 했다. 유원은 ‘소쇄원 감성’을 담고자 했다. 우리 옛 정원의 문법을 살려 경사지에 물을 흐르게 하고 모았다. 경관을 넘나드는 공간을 지금 시대에 재현하고 싶었다.”● “사유원 설립자는 스티브 잡스형 경영인”사유원은 유재성 전 TC태창 회장(77)이 모과나무를 사 모으면서부터 시작됐다. 1989년 그는 300년 수령의 모과나무 네 그루가 일본으로 밀반출될 위기라는 얘기를 회사 정원사로부터 들었다. 부산항으로 달려가 이미 컨테이너에 실린 모과나무를 사 왔다. 그때부터 오래된 모과나무를 사서 회사 공장에 심기 시작했다. 나무를 심을 더 넓은 땅이 필요해 사들인 군위의 야산이 지금의 사유원 부지다. 300년 넘은 모과나무 108그루를 심었으니 3만 년 넘는 세월을 모은 셈이다. 사유원에서는 설립자의 숨결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60여 개의 사인 보드에는 그의 필체로 새겨진 각종 글귀가 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의역하는 등 각 공간에 맞게 직접 내용을 선정했다고 한다. 한문을 오랫동안 익히고 공자 노자 장자를 두루 공부한 이력도 느낄 수 있다. 이토록 드넓은 땅에 유명 건축가와 조경가를 불러 모아 정원을 조성한 사유원 설립자가 갈수록 궁금해졌다. 여러 통로를 통해 평가를 들어봤다. “거친 듯해도 굉장히 섬세하고 꼼꼼한 사람”,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스티브 잡스 같은 경영인”, “시인이 되고 싶었던 예술 애호가이며 예술 후원자이자 그 자신이 예술가”…. 골프를 하지 않는다는 그는 몽골 초원을 오토바이로 달리고, 새와 열대어를 촬영해 온 전문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어떤 생각으로 사유원을 조성했는지 유재성 사유원 설립자로부터 들어봤다. 그가 언론매체와 가진 첫 인터뷰다.● 유재성 사유원 설립자 단독 인터뷰―대구의 태창철강 회의실 한가운데에 최재훈 작가의 달항아리와 찻사발들을 두고 있는 게 신선하다. 정원과 문화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인가.“경북 김천의 초가집에서 나고 자랐다. 밭에서 따온 고추가 빨갛게 지붕 위에서 익고 있을 때, 흙 마당에서는 어머니가 멍석을 깔고 칼국수를 만들어 주셨다. 마당에 핀 채송화와 봉선화를 보면서 국수를 먹던 유년기 경험이 문화와 정원조성의 시작이 된 것 같다. 50년 전 경북대 후문 앞에 터를 잡고 살면서 다양한 나무를 심었고, 사업을 하면서는 전국 계열사마다 공장 정원을 가꾸었다.”―일본에 팔릴 뻔한 모과나무를 웃돈을 주고 사들여서는 뭘 했나.“모과나무를 산 후 애지중지하며 공부해 나무에 대해서는 상당한 경지에 오르게 됐다. 20년간 모과나무를 비롯해 소나무, 소사나무, 백일홍 등을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유원을 만들게 됐다. 풍상을 이겨낸 모과나무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에 모과나무 108그루를 심고 조경한 장소를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으로 이름 지었다.”늦가을 풍설기천년은 장관이었다. 굵직한 모과들이 나무에도 땅 위에도 가득했다. 그중에는 수령 653년으로 추정되는 높이 3.9m, 둘레 4.85m의 모과나무가 있다. 2021년 한국교원대 환경교육과 김기대 교수가 국가문화유산 포털에서 천연기념물과 시도기념물로 등재된 모과나무 고목 5그루의 키, 둘레길이 등을 토대로 단순 및 다중회귀 분석을 통해 관계식을 산출해 651년이라는 수령을 추정했다. 653년 전인 1370년은 고려 공민왕이 재위하던 시기다. 사유원 직원들은 “자꾸 보면 어느 순간 할아버지 같이 느껴지는 나무”라고 한다. ―모과나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모과나무는 여러 미덕이 있다. 오래된 고목에서 봄이 되면 어김없이 분홍빛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노란빛으로 물든 열매와 아름다운 단풍을 보여준다. 특히 수령 300년 넘은 모과나무들은 어김없이 다가오는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 존재의 미학을 보여준다.” TC태창은 태창철강 등 8개 계열사와 공익재단 두 곳을 가진 그룹이다. 사유원도 그중 한 계열사다. 유 설립자는 1946년 부친이 대구 북성로에 문을 연 70평짜리 철재 가게 ‘태창철재’를 1967년 물려받아 매출 1조 원대에 육박하는 기업으로 키웠다. 1970~1980년대 포항제철 냉연코일과 열연코일 판매점 권한을 취득하며 기업의 성장 토대를 마련했다.―개인과 회사의 성장 과정이 궁금하다. “김천에서 태어났지만 6·25 전쟁 때 대구로 피난 와서 대구상고와 영남대를 나왔다. 대구중 2학년 때 쓰러져 전신 마비가 되는 등 힘든 투병 생활을 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건강을 회복해 합기도와 등반을 했다. 협화상회에서 시작해 태창철재, 태창철강으로 이어진 기업사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맞물려 여느 기업 못지않은 고난을 겪었지만 창의와 도전정신으로 헤쳐왔다.”―사유원의 모델이 된 해외 정원이나 공간이 있나. 어떻게 국내외 유명 건축가, 조경가와 협업하게 됐나.“수십 년에 걸쳐 전 세계의 유명한 공원, 정원, 박물관과 미술관을 두루 다녔다.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기존의 어느 장소도 모델로 삼지는 않았다. 특정 장소를 모델로 삼는 것은 아류를 낳는 것이다. 세상에 없는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한 결과가 사유원이다. 사유원만의 차별점을 깊이 생각했고, 취지에 공감하며 잘 표현할 전문가들을 찾아 모셨다.”―협업의 성과는 어떻게 평가하는가.“성과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조성했지만 문을 연 지는 불과 2년이 지났을 뿐이다. 평가는 관람객들의 몫이다. 겸손하게 가꾸는 일만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사유원에서 특별히 마음을 두는 장소가 있나. 추천 감상 포인트는.“10만 평에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담았기에 어느 한 곳에 마음을 두지는 않는다. 다만 팔공산 비로봉(1193m)과 산맥을 차경하는 사유원은 일출과 일몰 장면이 절경이다. 현암, 금오유현대, 팔공청향대, 소강탄금대, 대붕대 등 원내 곳곳에 조성된 전망대와 평상, 벤치에서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감상하기를 추천드린다.” ―사유원이 어떤 공간이 됐으면 하는가.“사유원은 이름이 말하듯 관람객들에게 사유를 제공하는 곳이다. 마음속에 묵혀둔 수많은 고민과 근심을 풀어내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과 이정표를 사색하며 걸어보는 곳이면 좋겠다.”유 설립자는 평생 키워온 TC태창의 회장 자리를 지난해 딸에게 물려주고 미래세대를 키워내는 사야장학재단 이사장 자리만 맡고 있다. TC태창은 지난해 대구시와 연간 5억 원씩, 4년간 20억 원을 기부하는 내용의 약정을 체결했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이 기부금을 오페라, 뮤지컬, 국악 분야 발전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사유원에서는 음악회 등 각종 문화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인상적이다. 문화 메세나에 대한 평소 생각은.“기업은 영업활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한다. 이윤은 다시 회사 발전을 위한 투자와 직원 후생복지를 위해 투입되지만, 기업이 활동하고 존재하도록 도와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정 부분 환원돼야 한다. 여러 환원 방법 중 저는 문화 메세나를 택했다. 문화예술을 통해 수준 높고 가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야장학재단, 사야문화재단, 더 나아가 사유원을 만든 것이다.” ―사유원을 ‘전국구 정원’으로 성장시킨 소회와 앞으로 계획은.“격려도 많지만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지적도 여전히 있다. 사유원의 설립 취지와 정체성을 지키면서 꾸준히 보완하겠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텅 빈 극점에 도달해 고요함을 철저히 지키면 만물이 아울러 일어난다고 했다. 사유원으로 모든 것이 돌아옴이 보기를 원한다. 그 후 국가의 것이 되어 국민의 것으로 돌려주는 것이 희망이다.”사유원에서는 나무를 심는 기업인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돈을 벌어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문화와 사색의 정원을 만들었다. 우리 사회를 향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묵묵히 알려주는 ‘사유’의 나무를 심는다. 모과나무는 천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사유원 모과나무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희망한다.대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3-11-18 10:00
해양수산부,“치솟는 수산물 먹거리 물가를 잡아라”해양수산부가 날로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현장점검반과 일일점검반을 구성했다. 물가안정책임관인 박성훈 해수부 차관을 필두로 각각 5명의 실무자를 투입해 수산물 물가를 집중관리하고자 한다. 국민 생활에 밀접한 대중성어종(6종)과 천일염 등 총 7종을 물가 안정 관리품목으로 지정했다. 해수부 현장점검반은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반장인 수산정책실장을 중심으로 주 1회 이상 마트와 전통시장 등 소비 현장부터 위판장 등 생산 현장까지 다양한 물가 현장을 방문할 계획이다. 일일점검반은 관리품목 가격과 수급 동향, 현장 의견 등 특이사항을 매일 분석해 물가안정책임관에게 보고한다. 물가안정책임관은 일일점검반이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필요한 조치가 있을 때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유통업체 등 민간 협조가 필요한 부분은 장차관이 직접 뛰면서 협력해나갈 계획이다. 해수부 측은 “10월 수산물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3.0% 상승한 가운데 고등어와 오징어가 각각 5.7%, 15.6% 올랐다”며 “수산물 소비자물가는 올해 2월 정점을 기록한 이후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지만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높아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해수부는 김장철을 맞아 김장 주재료 중 하나인 천일염 가격 안정에도 나선다. 정부 비축 물량을 최대 1만 t까지 공급한다. 이달 1일부터 전통시장과 마트 등에서 정부 비축 천일염 10kg 상품을 시중 가격의 3분의 1 수준인 1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또 다른 가격 상승 품목인 명태와 오징어도 정부 비축 물량을 각각 3000t과 500t씩 소비자가격 대비 30% 할인된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국내산 수산물을 구입할 때 최대 60%까지 할인(정부지원 할인율 30%)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 수산대전’도 매달 열고 있다. 11월 ‘대한민국 수산대전’은 2일부터 26일까지 25일간 개최되며, 전국 14개 마트(1766개 점포)와 24개 온라인 쇼핑몰이 참여한다. 이 밖에 전국 30개 수산(전통)시장에서 국내산 수산물 구매 금액의 최대 40%를 1인 최대 2만 원 한도로 온누리상품권으로 환급해주는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환급 행사’를 진행하고 ‘수산물 전용 제로페이 모바일상품권’도 매주 목요일 발행한다. 정부는 대표적인 대중성 어종인 고등어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할당 관세를 시행하고 있다. 6일부터 고등어 1만 t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부여하는 할당 관세 제도 시행에 나섰다. 이번 조치로 중대형 고등어 공급 부족이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2023-11-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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