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김선미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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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kimsunmi@donga.com

취재분야

2024-06-27~2024-07-27
문화 일반71%
여행17%
미술3%
사회일반3%
환경3%
기타3%
  • 꽃잎이 열린다, 마음이 울린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행방을 종잡을 수 없던 비구름을 요리조리 피해 연꽃과 수련을 보고 왔다. 빗물로 말갛게 세수한 듯 하얀 얼굴의 백련, 곱디고운 홍련, 왈츠를 추는 요정 같은 노랑어리연…. 진흙에서 피어나 맑은 기운을 전하는 연꽃이 지금 절정이다. 앞으로 보름간 경기 양평 세미원에 가면 연꽃과 수련을 감상할 수 있다. 큰 쟁반 잎에 왕관 모양이 특징인 빅토리아 수련도 8월 초부터 꽃을 피울 예정이다. 세미원에서 차로 30분 더 달리면 도달하는 근사한 복합문화공간 이함캠퍼스 연못에도 연꽃이 피었다. ● 연꽃과 수련 감상 명소, 세미원 세미원 입장 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춰 도착하니 이미 관람객 여럿이 매표소 앞 연못가에서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다홍색 별 모양 겹꽃 수련이었다. 이 수련 이름은 ‘세미 1호’다. 태국의 한 수련 육종가가 2019년 세미원이 경기도 지방정원 제1호로 지정된 걸 기념해 기부한 품종이다. 세미원은 기증받은 괴근(塊根·덩이뿌리) 한 뿌리를 재배 증식해 2022년 국립종자원에 품종 등록했다. 올해 세미원 개원 20주년을 기념해 세미 1호 20개가 정원 입구에 배치됐다.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선정한 2024년 올해의 정원식물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연꽃과 수련의 차이점을 궁금해 한다. 연꽃은 수면에서 잎을 일으켜 세우는 정수(挺水)식물, 수련은 잎이 수면에 뜨는 부엽(浮葉) 식물이다. 알고 지내는 숲 해설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쉽게 기억하세요. 목련은 나무에 피는 연꽃, 수련은 물에 피는 연꽃. 수련은 꽃과 잎이 물에 바짝 붙어 있어요.” 머리에 쏙 들어오는 설명이지만 알아 두어야 할 게 있다. 수련의 ‘수’는 물 수(水)가 아니라 잠잘 수(睡)다. 아침 일찍 꽃잎을 열었다가 오후 세 시 이후엔 잎을 오므리기 때문에 잠드는 것 같다고 수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후부터 꽃잎을 닫는 건 연꽃도 마찬가지다. 신비로운 연꽃과 수련은 아침을 사랑하는 부지런한 자들을 위한 꽃인가 보다. 세미원이 8월 16일부터 9월 1일까지 여는 ‘빅토리아 수련 문화제’는 빅토리아 수련을 실컷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귀한 꽃이라 예년엔 10개체 등을 전시했는데 올해엔 무려 150개체를 선보인다고 한다. 빅토리아 수련은 영국 식물학자 존 린들리가 아마존 유역에서 처음 발견해 영국 빅토리아 여왕 이름을 붙였다. 큰 잎과 줄기에 가시가 있어 ‘큰가시연꽃’으로도 불린다. 다른 수련과 달리 밤에 꽃이 피기 때문에 ‘밤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있다. 송명준 세미원 대표는 “지금은 지름 70cm 정도인 빅토리아 수련 잎이 한 달 내로 150cm로 커져 장관을 이룰 것”이라며 “기후 위기로 연꽃 개화기가 점점 짧아지고 7월 집중호우로 관람객이 더 많이 찾아올 수 없던 것이 아쉬워 빅토리아 수련 문화제를 역대급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세미원은 한국 역사와 스토리를 곳곳에 담은 ‘K가든’이다. 한반도를 형상화하고 장독대에서는 분수가 솟아오른다. 바닥에는 빨래판 모양의 블록이 깔려 있다. 마음을 씻으라는 뜻이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쩌면 연꽃보다 더 많은 관람객을 마주친다. 정호승 시인의 시 ‘연꽃 구경’이 떠오른다. 시인은 ‘연꽃이 피면 달도 별도 새도 연꽃 구경을 왔다가 그만 자기들도 연꽃이 되어 활짝 피어나는데 유독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만이 연꽃이 되지 못하고 비빔밥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받아야 할 돈 생각을 한다’고 했다. ‘해마다 벼르고 별러 부지런히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인데도 끝내 연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꽃들이 사람 구경을 한다. 해가 질 때쯤이면 연꽃들이 오히려 사람이 되어 보기도 한다. 가장 더러운 사람이 되어 보기도 한다’…. 연꽃은 우리 인간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연꽃의 맑고 고운 기운 앞에서 삶을 돌아보게 된다. 세미원에 가야 할 이유는 또 있다. 한때 침수됐던 세미원 배다리가 보수공사를 마치고 올해 4월 다시 개통돼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잇는다. 1795년 조선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묘인 화성 현륭원을 참배하기 위해 정약용 등에게 지시해 한강에 설치했던 주교를 재현한 다리다. 선박 44척을 잇고 오방색 깃발을 매단 배다리를 건너면서 효심이 극진했던 왕의 행렬을 상상해 보고, 두물머리 명소인 어느 핫도그 가게에서 4000원짜리 핫도그를 사 먹는다. 밥 생각이 떠날 정도로 속이 든든해진다.● 문화를 담은 비밀의 정원, 이함캠퍼스 세미원에서 마음을 씻었다면 양평군 강하면에 있는 이함캠퍼스(면적 3만3000㎡)로 가 보자. 1978년 단추 회사 두양을 설립해 평생 모은 재산 600억 원으로 2013년 두양문화재단을 설립한 오황택 이사장(75)이 2022년 연 복합문화공간이다. 오 이사장은 2015년에는 100억 원을 들여 서울 북촌에 청년 인문학교 건명원도 세웠다. 이함캠퍼스는 당초 지난달 30일까지였던 ‘사물의 시차’ 전시가 호응을 얻자 10월 27일까지로 전시 기간을 연장했다. 오 이사장이 수십 년 수집한 20세기 디자인 가구 110여 점을 모은 전시다. 르 코르뷔지에, 장 프루베, 론 아라드를 비롯한 현대 디자인 거장들의 가구를 보고 있으면 이런 눈 호강이 따로 없다. 오 이사장의 조선 목가구 수집품을 전시하는 ‘선, 면, 결의 조우’라는 전시도 18일 시작해 8월 25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함캠퍼스에서 만난 오 이사장은 “수십 년 전 우리 고가구를 사 모으다가 서양 디자인 가구로까지 수집 분야가 확대됐다”며 “조선 목가구는 제각각 특별한 아름다움을 갖지만, 특히 사방탁자가 풀어내는 비례의 미는 현대 조형미의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함캠퍼스 정원이야말로 ‘시크릿 가든’이다. 정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아담한 키의 배롱나무가 계절이 여름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오 이사장은 1999년에 미술관을 짓고도 오랜 세월 정원을 가꾸느라 2년 전에야 이함캠퍼스를 열었다. 20여 년 전 심은 가느다란 메타세쿼이아는 이제 숲을 이뤘다. 조경은 오 이사장과 아내인 전은숙 두양문화재단 이사가 직접 담당한다. 남편은 소나무와 돌 같은 전통 조경, 아내는 카페 주변의 영국식 정원 조경을 나눠 맡는 식이다.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안목대로 한다”는 오 이사장의 수집 원칙에 따라 나무와 돌을 전국에서 공수해 왔다. 그에게 나무를 키우는 일과 인재를 키우는 일의 공통점을 물었다. “나무는 어릴 때부터 전정(剪定·가지 정리)을 해주면 근사한 수형(樹形)을 이룰 수 있어요. 너무 커버리면 전정이 힘들어져요.” 이함캠퍼스 카페의 창가에 앉으면 노출 콘크리트 소재 미술관 건물을 배경으로 연못이 펼쳐진다. 연못 중앙에 연꽃이 피어 있다. 황후 느낌의 세미원 연꽃 군락에 비하면 가녀린 꽃이지만 왠지 마음이 간다. 연꽃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국민이 좋은 것을 많이 접해야 우리 사회 수준이 높아진다”는 오 이사장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양평으로 떠났던 연꽃 구경을 마치며 생각해 봤다. ‘나는 오늘 하루 상념을 내려놓고 한 송이 연꽃이 되어 보았을까.’ 글·사진 양평=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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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꽃 잎이 열린다, 마음이 열린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행방을 종잡을 수 없던 비구름을 요리조리 피해 연꽃과 수련을 보고 왔다. 빗물로 말갛게 세수한 듯 하얀 얼굴의 백련, 곱디고운 홍련, 왈츠를 추는 요정 같은 노랑어리연…. 진흙에서 피어나 맑은 기운을 전하는 연꽃이 지금 절정이다. 앞으로 보름간 경기 양평 세미원에 가면 연꽃과 수련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큰 쟁반 잎에 왕관 모양 꽃이 특징인 빅토리아 수련도 8월 초부터 꽃을 피울 예정이다. 세미원에서 차로 30분 더 달리면 도달하는 근사한 복합문화공간 이함캠퍼스 연못에도 연꽃이 피었다.●연꽃과 수련 감상 명소, 세미원세미원 입장 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춰 도착하니 이미 관람객 여럿이 매표소 앞 연못가에서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다홍색 별 모양 겹꽃 수련이었다. 이 수련 이름은 ‘세미 1호’다. 태국의 한 수련 육종가가 2019년 세미원이 경기도 지방정원 제1호로 지정된 걸 기념해 기부한 품종이다. 세미원은 기증받은 괴근(塊根·덩이뿌리) 한 뿌리를 재배 증식해 2022년 국립종자원에 품종 등록했다. 올해 세미원 개원 20주년을 기념해 세미 1호 20개가 정원 입구에 배치됐다.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선정한 2024년 올해의 정원식물이기도 하다.많은 이들이 연꽃과 수련의 차이점을 궁금해 한다. 연꽃은 수면에서 잎을 일으켜 세우는 정수(挺水)식물, 수련은 잎이 수면에 뜨는 부엽(浮葉) 식물이다. 알고 지내는 숲 해설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쉽게 기억하세요. 목련은 나무에 피는 연꽃, 수련은 물에 피는 연꽃. 수련은 꽃과 잎이 물에 바짝 붙어 있어요.” 머리에 쏙 들어오는 설명이지만 알아 두어야 할 게 있다. 수련의 ‘수’는 물 수(水)가 아니라 잠잘 수(睡)다. 아침 일찍 꽃잎을 열었다가 오후 세 시 이후엔 잎을 오므리기 때문에 잠드는 것 같다고 수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후부터 꽃잎을 닫는 건 연꽃도 마찬가지다. 신비로운 연꽃과 수련은 아침을 사랑하는 부지런한 자들을 위한 꽃인가보다.세미원이 8월 16일부터 9월 1일까지 여는 ‘빅토리아 수련 문화제’는 빅토리아 수련을 실컷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귀한 꽃이라 예년엔 10개체 등을 전시했는데 올해엔 무려 150개체를 선보인다고 한다. 빅토리아 수련은 영국 식물학자 존 린들리가 아마존 유역에서 처음 발견해 영국 빅토리아 여왕 이름을 붙였다. 큰 잎과 줄기에 가시가 있어 ‘큰가시연꽃’으로도 불린다. 다른 수련과 달리 밤에 꽃이 피기 때문에 ‘밤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있다. 송명준 세미원 대표는 “지금은 지름 70cm 정도인 빅토리아 수련 잎이 한 달 내로 150cm로 커져 장관을 이룰 것”이라며 “기후 위기로 연꽃 개화기가 점점 짧아지고 7월 집중 호우로 관람객이 더 많이 찾아올 수 없던 것이 아쉬워 빅토리아 수련 문화제를 역대급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세미원은 한국 역사와 스토리를 곳곳에 담은 ‘K가든’이다. 한반도를 형상화하고 장독대에서는 분수가 솟아오른다. 바닥에는 빨래판 모양 블록이 깔려 있다. 마음을 씻으라는 뜻이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쩌면 연꽃보다 더 많은 관람객을 마주친다. 정호승 시인의 시 ‘연꽃 구경’이 떠오른다. 시인은 ‘연꽃이 피면 달도 별도 새도 연꽃 구경을 왔다가 그만 자기들도 연꽃이 되어 활짝 피어나는데 유독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만이 연꽃이 되지 못하고 비빔밥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받아야 할 돈 생각을 한다’고 했다. ‘해마다 벼르고 별러 부지런히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인데도 끝내 연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꽃들이 사람 구경을 한다. 해가 질 때쯤이면 연꽃들이 오히려 사람이 되어 보기도 한다. 가장 더러운 사람이 되어보기도 한다’…. 연꽃은 우리 인간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연꽃의 맑고 고운 기운 앞에서 삶을 돌아보게 된다.세미원에 가야 할 이유는 또 있다. 한때 침수됐던 세미원 배다리가 보수공사를 마치고 올해 4월 다시 개통돼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잇는다. 1795년 조선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묘인 화성 현륭원을 참배하기 위해 정약용 등에게 지시해 한강에 설치했던 주교를 재현한 다리다. 선박 44척을 잇고 오방색 깃발을 매단 배다리를 건너면서 효심이 극진했던 왕의 행렬을 상상해보고, 두물머리 명소인 어느 핫도그 가게에서 4000원짜리 핫도그를 사 먹는다. 밥 생각이 떠날 정도로 속이 든든해진다.●문화를 담은 비밀의 정원, 이함캠퍼스세미원에서 마음을 씻었다면 양평군 강하면에 있는 이함캠퍼스(면적 3만3000㎡)로 가 보자. 1978년 단추 회사 두양을 설립해 평생 모은 재산 600억 원으로 2013년 두양문화재단을 설립한 오황택 이사장(75)이 2022년 연 복합문화공간이다. 오 이사장은 2015년에는 100억 원을 들여 서울 북촌에 청년 인문학교 건명원도 세웠다.이함캠퍼스는 당초 지난달 30일까지였던 ‘사물의 시차’ 전시가 호응을 얻자 10월 27일까지로 전시 기간을 연장했다. 오 이사장이 수십 년 수집한 20세기 디자인 가구 110여 점을 모은 전시다. 르 코르뷔지에, 장 프루베, 론 아라드를 비롯한 현대 디자인 거장들의 가구를 보고 있으면 이런 눈 호강이 따로 없다.오 이사장의 조선 목가구 수집품을 전시하는 ‘선, 면, 결의 조우’라는 전시도 18일 시작해 8월 25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함캠퍼스에서 만난 오 이사장은 “수십 년 전 우리 고가구를 사 모으다가 서양 디자인 가구로까지 수집 분야가 확대됐다”며 “조선 목가구는 제각각 특별한 아름다움을 갖지만, 특히 사방탁자가 풀어내는 비례의 미는 현대 조형미의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이함캠퍼스 정원이야말로 ‘시크릿 가든’이다. 정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아담한 키의 배롱나무가 이 계절이 여름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오 이사장은 1999년에 미술관을 짓고도 오랜 세월 정원을 가꾸느라 2년 전에야 이함캠퍼스를 열었다. 20여 년 전 심은 가느다란 메타세쿼이아는 이제 숲을 이뤘다. 조경은 오 이사장과 아내인 전은숙 두양문화재단 이사가 직접 담당한다. 남편은 소나무와 돌 같은 전통 조경, 아내는 카페 주변의 영국식 정원 조경을 나눠 맡는 식이다.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안목대로 한다”는 오 이사장의 수집 원칙에 따라 나무와 돌을 전국에서 공수해 왔다. 그에게 나무를 키우는 일과 인재를 키우는 일의 공통점을 물었다. “나무는 어릴 때부터 전정(剪定·가지 정리)해주면 근사한 수형(樹形)을 이룰 수 있어요. 너무 커버리면 전정이 힘들어져요.”이함캠퍼스 카페의 창가에 앉으면 노출 콘크리트 소재 미술관 건물을 배경으로 연못이 펼쳐진다. 연못 중앙에 연꽃이 피어 있다. 황후 느낌의 세미원 연꽃 군락에 비하면 가녀린 꽃이지만 왠지 마음이 간다. 연꽃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국민이 좋은 것을 많이 접해야 우리 사회 수준이 높아진다”는 오 이사장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양평으로 떠났던 연꽃 구경을 마치며 생각해봤다. ‘나는 오늘 하루 상념을 내려놓고 한 송이 연꽃이 되어 보았을까’.양평=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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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정원은 ‘땅에 쓰는 시’ … 國現 학술행사 ‘정영선 현상’ 짚어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한국 조경 50년사를 대표하는 정영선 조경가(83)는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반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올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사상 처음으로 조경가의 역대 작업을 조망하는 전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9월 22일까지 열리는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에는 요즘 하루 1200명 넘게 찾는다.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도 개봉 3개월 만에 2만 명 넘는 관객이 관람했다. 국내의 친숙한 공간들이 ‘정영선 표 조경’으로 완성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3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학술행사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는 ‘정영선 현상’을 짚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시대정신을 품는 정영선의 서사는 기후 위기의 지구를 돌보고 우리 것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공감을 넘어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배정한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정영선의 조경 세계를 세 개의 변곡점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서울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아시아공원(1986년)이다. 1973년 시작된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제1호 졸업생인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조경 설계 교본을 제시했다. 둘째는 그의 전성기를 연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희원(熙園·1997년)이다. 주변과 관계를 맺는 경관 경험을 극대화하면서 정원을 조경의 영역으로 다시 불러냈다. 마지막으로 선유도공원(2002년)은 폐정수장 흔적을 살려내면서 한국 조경 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배 교수는 “정영선의 작업이 ‘땅에 쓰는 시’가 된 것은 감상적 낭만이 아니라 땅을 읽어내고 연결시키는 태도에 있고, 그 태도가 경관을 이뤄냈다”고 평했다. 김아연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는 “정영선의 작업이 푸른 유산으로 남을 것인가 혹은 대한민국 조경 1세대의 예외적 사례로 기억될 것인가는 다음 세대의 실천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우리 자생식물들로 ‘눈물겹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 정영선과 달리 요즘 세대는 인스타그램을 겨냥한 풍경 만들기에 취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전국적인 정원 조성 사업에는 우리 땅에 대한 철학과 지구에 대한 위기의식이 빠져 있는 것 같다”며 “돌봄의 단어가 돼야 할 정원이 행정 단어로 변해 전 국토가 정원 테마파크로 변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후배 조경가들은 ‘정영선의 정신’을 이어받아 발전시키자는 발표를 했다. 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로사이 소장은 “미국 뉴욕 원다르마센터를 설계하러 함께 현장에 갔을 때 땅이 워낙 좋아 거의 건드리지 않고 길만 냈다”며 “풍경으로서의 땅 자체를 보존하는 것은 굉장한 결단이었다”고 평했다. 전은정 조경포레 소장은 “정영선 조경가는 늘 협업에 포용적이었기 때문에 경계를 넘나드는 성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조용준 CA 소장은 정제된 분위기의 선유도공원, 백규리 현대엔지니어링 건축조경팀 매니저는 대청마루와 숲속을 연상시키는 용산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예로 들며 조경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호영 HLD 소장은 “‘정원은 자연을 보살피는 것’이라는 정영선 조경가의 뜻을 새겨 우리 생태를 치열하게 지켜 내야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정영선 조경가는 “우리 국토는 하나님이 만드신 정원인데,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가 산꼭대기까지 계단을 만들며 훼손하고 있는 걸 보면 눈물이 난다”며 “이번 전시와 학술행사가 자연을 바르게 사랑하도록 도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함께 대담한 조 교수는 “한국의 불안정한 조건을 정영선 조경가가 개인 기량으로 돌파해 왔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이젠 법과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며 마무리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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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한국 조경 50년 역사를 대표하는 정영선 조경가(83)는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반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올해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사상 처음으로 조경가의 역대 작업을 조망하는 전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9월 2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는 요즘 하루 1200명 이상의 방문객이 다녀간다.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도 개봉 3개월 만에 2만 명 넘는 관객이 관람했다. 국내의 친숙했던 공간들이 ‘정영선 표 조경’으로 완성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3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부대 학술행사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는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정영선 현상’을 짚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시대 정신을 품는 정영선의 서사는 기후 위기의 지구를 돌보고 우리 것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공감을 넘어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배정한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정영선의 조경 세계를 세 개의 변곡점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서울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아시아공원(1986년)이다. 1973년 시작된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의 제1호 졸업생인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조경 설계의 교본을 제시했다. 둘째는 그의 전성기를 열게 된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의 희원(1997년)이다. 주변과 관계를 맺는 경관 경험을 극대화하면서 정원을 조경의 영역으로 다시 불러냈다. 서울 아산병원과 제주 오설록 등 탁월한 미감의 정원들이 잇따라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마지막으로 선유도공원(2002년)은 폐정수장의 흔적을 살려내면서 한국 조경 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배 교수는 “정영선의 작업이 ‘땅에 쓰는 시’가 된 것은 감상적 낭만이 아니라 땅을 읽어내고 연결시키는 태도에 있고, 그 태도가 경관을 이뤄냈다”고 평했다.김아연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는 “정영선의 작업이 푸른 유산으로 남을 것인가 혹은 대한민국 조경 1세대의 예외적 사례로 기억될 것인가는 다음 세대의 실천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우리 자생식물들로 ‘눈물겹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던 정영선 조경가와 달리 요즘 세대는 화려한 컴퓨터 조형 설계와 인스타그램을 겨냥한 풍경 만들기에 취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전국의 정원 조성사업에는 우리 땅에 대한 철학과 지구에 대한 위기의식이 빠져 있는 것 같다”며 “돌봄의 단어가 돼야 할 정원이 행정의 단어로 변해 전 국토가 정원 테마파크로 변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후배 조경가들은 ‘정영선의 정신’을 이어받아 발전시키자는 발표를 했다. 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로사이 소장은 “미국 뉴욕 원다르마센터를 설계하러 함께 현장에 갔을 때 땅이 워낙 좋아 거의 건드리지 않고 길만 냈다”며 “풍경으로서의 땅 자체를 보존하는 것은 굉장한 결단이었다”고 말했다. 전은정 조경포레 소장은 “정영선 조경가는 늘 협업에 있어 포용적이었기 때문에 경계를 넘나드는 성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조용준 CA 소장은 정제된 분위기의 선유도공원, 백규리 현대엔지니어링 건축조경팀 매니저는 한국의 대청마루와 숲속을 연상시키는 용산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예로 들며 조경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호영 HLD 소장은 “‘정원은 자연을 보살피는 것’이라는 정영선 조경가의 뜻을 새겨 우리 생태를 치열하게 지켜내야겠다”고 말했다.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정영선 조경가는 “우리 국토는 하나님이 만드신 정원인데, 요즘 각 지자체가 산꼭대기까지 계단을 만들며 훼손시키고 있는 걸 보면 뭘 어쩌자는 건지 눈물이 난다”며 “이번 전시와 학술행사가 우리가 자연을 바르게 사랑하도록 도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함께 대담을 진행한 조경진 교수는 “한국의 불안정한 조건을 정영선 조경가가 개인 기량으로 돌파해왔지만, 이제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며 행사를 마무리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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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의 안식처’ 키나발루…주인공은 식물, 인간은 거들 뿐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비밀의 정원이었다. 간이식당과 숲길 사이를 따라가니 입구가 나왔다. 울창한 나무들에 가려 있어 웬만해선 눈에 띄지 않는 문이었다. 하지만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바깥은 섭씨 30도가 넘었지만, 숲으로 이뤄진 정원 안은 24도였다. 동남아시아에 와 있는 것 맞나. 눈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나무들과 계곡물, 새들의 지저귐이 마치 한국의 깊은 산속 같은 청량감을 주었다. 이곳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사바주(州) 키나발루산 식물원이다.● 식물 천국, 키나발루산 식물원원숭이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높다란 나무들과 덩굴식물들, 고사리와 버섯, 신비로운 난초 등이 동남아시아 햇빛과 수분을 함께 머금고 있었다. 식물의 초록빛은 얼마나 다양한 깊이를 가질 수 있나. 온몸이 초록으로 물드는 기분이었다.그 초록의 세계에 노란색 능소화(凌霄花) 테코마 스탠스와 말레이시아 나라꽃인 빨간색 히비스커스가 이국의 정취를 더했다. 그런데 분홍색 꽃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메디닐라 스페시오사였다. 작은 꽃들을 원추 모양으로 피워내는 모습 때문에 별명이 ‘화려한 아시아 포도’다. 짙은 보라색 열매는 정원 속 새들에게 소중한 먹이가 된다고 한다. 생태계에서 식물은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다. 단순히 초식동물의 먹이가 아니라 태양과 동물을 연결하고 지구 환경의 균형과 생태적 안정성을 유지해 주는 고마운 존재가 식물이다.키나발루산 식물원은 면적 1.4ha(1만4000㎡)로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하지만 관광객은 물론 세계 식물학자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는 경이로운 ‘식물 천국’이다. 식물원이 자리 잡은 키나발루산(해발 4095m)은 동남아시아 최고봉이다. 총면적 753㎢에 이르는 키나발루 국립공원은 2000년 말레이시아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1000여 종의 난초와 600여 종의 양치류, 326종의 조류와 850여 종의 나비를 비롯해 동식물 5000여 종이 어우러져 사는 생물종 다양성을 인정받아서다. 저지대 딥테로카프 숲에서부터 참나무와 고산식물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들이 풍요롭게 공존하는 이곳을 연간 60만 명이 찾는다. 이토록 드넓은 키나발루산의 자연을 압축해 만날 수 있는 곳이 키나발루산 식물원이다.식물원은 전시 권역을 네 곳으로 구분했다. 일반식물, 약용식물, 난초, 그리고 멸종위기 희귀식물이다. 방문객이 몰리는 보르네오섬 식충식물 네펜테스는 희귀식물이라 주위에 펜스를 둘러놓았다. 아이들이 펜스 밖에서 신기해하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미래 세대를 위해 멸종위기 식물을 보존하는 이 식물원은 단순한 관광지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에코 투어리즘(eco tourism·환경 보호와 지역 발전을 목표로 하는 여행) 장소다.● 데사 목장에서 만난 지역 사람들키나발루산은 현지인에게 우리나라 백두산이나 한라산 같은 상징적이고도 영험한 존재다. 키나발루는 원주민 말로 ‘영혼의 안식처’를 뜻한다. 차로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다 보면 등산객을 위한 숙소가 여럿 보인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도 히말라야 등정에 앞서 훈련 삼아 이 산에 오른다고 한다.산길을 오르다가 만나는 마을이 라나우 지역 쿤다상이다. 고산지대여서 기후가 쾌적하다. 매주 열리는 타무 시장에서는 지역민들이 생산한 신선한 농산물과 수공예품을 구매할 수 있다. 관광지로 유명한 포링 온천도 여기서 40km 정도 가면 닿을 수 있다. 쿤다상에서 현지인에게도 인기 높은 관광지는 데사 목장이다. 넓이 199ha에 이르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목장으로 젖소 1000여 마리가 질 좋은 우유를 생산한다. 말레이시아판 상하 목장이랄까. 데사 목장 요거트 아이스크림은 백미당 요거트만큼이나 맛있었다.마침 말레이시아 추수감사절인 카마탄(5월 30~31일)이 낀 연휴여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목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선인장으로 만든 미니 가든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한쪽에서는 민속 의상을 입은 현지인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축제를 즐겼다. 이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데 한 현지 여성이 자신이 입고 있던 민속 의상을 건네며 걸쳐 보라고 했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이 여성은 옆에 있던 가족까지 한 명 한 명 소개해 주었다. 낯선 이방인에게 건네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미소가 여유롭고 환했다.●“당신을 만난 건 행운”이번 여행 숙소는 코타키나발루에 있는 수트라하버 리조트였다. 아침을 먹으러 뷔페 레스토랑 ‘파이브 세일즈’로 향하는 길가에는 여러 종류의 플루메리아속(屬) 식물들이 피어 있었다. ‘러브 하와이’로도 불리는 플루메리아의 꽃말은 ‘당신을 만난 건 행운’이다.여행에서 만남은 풍경이든 사람이든 낯설지만 설레는 일이다. 수트라하버 리조트는 요트장을 품고 있어 바로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선셋 투어’를 할 수 있다. 그리스 산토리니, 남태평양 피지섬과 함께 세계 3대 석양으로 꼽히는 코타키나발루 석양은 히잡을 쓴 현지인에게도 감탄의 대상이었다. 석양은 특히 ‘연인들의 아름다운 언어’일 것이다.리조트의 마리나 컨트리클럽 계단에는 망망대해를 용맹하게 바라보는 금색의 새 동상이 있다. ‘행운의 파라다이스 버드’다. 극락조에 해당하는 이 새는 리조트 메인 콘셉트인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의 도전 정신을 형상화했다고 한다.리조트에서 바다를 보면 5개의 섬이 시야에 펼쳐진다. 툰쿠 압둘 라만 해양국립공원이다. 그중 마누칸섬으로 향했다. 섬으로 가는 보트 위에서 패러세일링도 할 수 있다. 섬에 도착하니 에메랄드빛 물빛이 일렁였다. 스노클링 장비를 대여해도 되지만 바닷물이 워낙 맑고 깨끗해 물안경만으로도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잘 볼 수 있다.여행은 때론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기도 한다. 지름이 최장 1m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 라플레시아를 봤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1년에 약 일주일만 꽃을 피운다는 라플레시아를 보지 못했다. 리조트 식당 식탁에 놓인 라플레시아 장식품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하긴 이런 게 여행 아닐까. 다음을 위한 어떤 소망이나 약속을 품는 것…. 그 대신 이국의 열대림에서 숲의 마음과 새소리를 읽고 들은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인류의 번영을 위해 다양한 생물종을 지켜내야겠다고, 그 생명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게 일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키나발루산에서 만난 모든 생명체 여러분, 당신을 만난 건 행운입니다.”글·사진=코타키나발루=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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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디오 마니아들이여, 롯데백화점 잠실점으로 오라

    롯데백화점 잠실점이 오디오 마니아를 위한 성지로 거듭난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이달 초 이 백화점 10층에 세계적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인 ‘JBL 럭셔리’와 ‘제네바’ 매장을 동시에 문 열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영국의 하이엔드 오디오 ‘바워스앤윌킨스’ 매장까지 더해져 약 100평 규모의 서울 강남권 백화점 최대 프리미엄 오디오 구역을 완성했다. 백화점 측은 40대 이상 남성 위주 고급 취미 아이템으로 여겨졌던 프리미엄 오디오에 대한 수요가 여성과 젊은 층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롯데백화점 프리미엄 오디오 상품군 매출의 절반이 여성 고객이었고, 2030세대 매출 비중은 전체의 약 40%를 차지했다.지역 특성도 감안했다. 잠실점 인근에는 고급 주거단지가 자리해 프리미엄 오디오에 대한 수요가 크다. 롯데백화점 본점에 이어 잠실점에 문을 연 바워스앤윌킨스 국내 2호 매장은 신혼 부부 및 오디오 애호가들의 이목을 끌며 단숨에 가전 상품군 내 매출 선두권 매장이 됐다.이번에 잠실점에 들어선 ‘JBL 럭셔리’ 매장에서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붐을 일으킨 ‘마크 레빈슨’, 영국 감성의 명품 사운드를 들려주는 ‘아캄’, 78년 역사의 오디오 기술력의 명가 ‘JBL’ 등 각 브랜드의 하이파이 스피커, 홈시네마 시스템, 헤드셋 등을 선보인다. 특히 JBL에서 꾸준히 잘 팔리는 ‘4312G 화이트 에디션’, ‘L100 블랙 에디션’ 등 롯데백화점 단독 상품도 전개한다. 돌비 애트모스 홈 시네마, JBL 인비저블 스피커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프리미엄 체험존도 고객들에게 몰입감 높은 사운드를 선사한다. 매장 오픈을 기념해 이달 말까지 인기 제품의 할인 판매도 진행된다. ‘제네바’ 매장에서는 프랑스 수제 명품 오디오 브랜드 ‘라부아뜨’,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급 오디오 브랜드 ‘탄노이’, 독보적 디자인과 기술력을 자랑하는 스위스 오디오 ‘제네바’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을 선보인다. 전국 제네바 매장 처음으로 구현한 청음실에서는 홈 시네마 체험도 할 수 있다. 탄노이의 ‘턴베리’, 제네바의 ‘XXXL’, 피에가의 무선 홈시어터 시스템 등 각 브랜드를 대표하는 최고가 제품을 만날 수 있다.이동현 롯데백화점 라이프스타일 부문장은 “프리미엄 오디오는 ‘듣는 명품’으로 주목받으며 수요가 급격히 확대되는 추세”라며 “서울 강북에는 본점, 강남에는 잠실점을 프리미엄 오디오를 찾는 고객들을 위한 첫 번째 쇼핑 목적지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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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타이어 “또로와 로로가 나가신다”

    금호타이어(대표 정일택)의 캐릭터 마케팅이 SNS에서 미래세대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2011년 타이어를 형상화한 캐릭터 ‘또로’와 ‘로로’를 개발해 TV광고, CGV 극장 및 골프존 비상대피도 안내 광고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또로’는 도로 위를 타이어가 ‘또르르’ 굴러가는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게 이름을 붙인 캐릭터다. 국내 고객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쉽게 발음할 수 있도록 받침을 없앴다. 또로의 여자친구는 ‘로로’. 길을 나타내는 路(로)와 영어 Road의 앞글자(Ro)가 합쳐진 이름으로, SNS 공모를 통해 결정됐다. 또로와 공통된 음절을 포함한 로로를 둘이 함께 사용하였을 때 타이어가 도로를 힘차게 굴러가는 어감을 표현한 ‘또로로로’가 된다.캐릭터는 미래의 잠재 고객인 아이들이 금호타이어를 최초의 타이어 회사로 자연스럽게 기억할 수 있게 하고, 다양한 연령층의 고객에게 친밀감을 확대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는 게 회사 측의 판단이다. 금호타이어는 앞으로도 캐릭터를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금호타이어는 캐릭터를 통해 고객들에게 친밀감을 높이고, 타이어의 기능과 안전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금호타이어’라는 기업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있다. 과거 국내 최대 직업 테마 놀이 공간인 한국잡월드 어린이 직업체험관, 금호타이어 핑크리본 캠페인, 금호타이어 여자오픈 골프 대회 등에서 홍보물(광고 A보드, 판촉물 등)로 활용하기도 했다.2010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CGV 비상대피도 안내광고는 또로로로를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토리 설정과 밝고 위트 있는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금호타이어의 브랜드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안전을 강조하는 공익 영상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하는데 중점을 뒀다. 현재 해당 광고는 타이어를 통한 모빌리티의 발전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타이어의 신(神) 또로’ 편이 방영 중이다. 캐릭터를 활용한 광고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은 SNS이다. 광고가 나온 이후 현재까지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고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또로로로의 성장스토리를 재미있게 풀어낸 인스타툰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이 인스타툰은 글로벌 컨텐츠로 제작돼 세계 곳곳으로 독자들을 만나며, ‘타이어’라는 소재를 기반으로 독자들과 공감대를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일상 웹툰 콘텐츠로 제작되고 있다. 또한 금호타이어의 유튜브 ‘엑스타TV’ 채널은 ‘또로로로 챌린지’라는 코너를 만들어 또로로로가 매월 직접 거리로 나가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는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들과의 소통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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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 전망 전 객실과 인피니티 풀… 속초 카시아호텔에서의 호캉스

    여름 휴가지를 고민할 때 선택지에 넣을 수 있는 호텔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강원 속초 대포항에 이달 초 문을 연 ‘카시아’ 호텔이다. 카시아는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세계적 프리미엄 호텔&리조트 그룹인 반얀그룹의 브랜드 중 하나로 이번에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였다. 카시아 호텔은 ‘별장 같은 휴식 공간’을 콘셉트로 인도네시아 빈탄과 태국 푸켓 등에서 운영 중이다. 대지 면적 1만 2022㎡에 지하 2층, 지상 26층 규모로 자리 잡았으며 전 객실이 동해 전망을 갖춘 게 특징이다. 모든 객실에는 주방 시설과 프라이빗 발코니 및 욕조가 설치됐다. 인피니티 풀을 포함한 실내외 수영장을 비롯해 오션뷰 야외 노천탕이 벌써부터 입소문이 났다. 책을 모티브로 한 통합 디자인과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이 호텔에는 곳곳에 아트북들이 즐비하다. 호텔에서 원스톱으로 먹고 자고 쉴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로 옆 대포항에서 해산물을 즐기는 등 바닷가 낭만도 누릴 수도 있다. 호텔 5층에는 사우나, 피트니스 센터와 함께 ‘엘레멘츠 스파’가 자리 잡고 있다. 혼자 또는 커플이 마사지 받을 수 있는 공간과 발 마사지 공간 등이 있다. 가족 투숙객을 위한 전용 라운지인 ‘패밀리 라운지’를 포함해 어린이 전용 수영장과 키즈 클럽, 가족 모임을 위한 연회 공간도 갖췄다. 인터내셔널 뷔페, 카페와 베이커리, 그릴 레스토랑뿐 아니라 루프탑 바에서 노을과 칵테일을 즐기면 해외여행이 결코 부럽지 않을 수 있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이 차로 불과 5분 거리. 속초 해수욕장은 차로 10분, 설악산도 20분이면 닿을 수 있다.NOW HOTEL서울 남산에 위치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 이국적 분위기의 휴식공간 ‘오아시스 야외 수영장’을 개장했다. 친구, 가족과 독립된 공간에서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오아시스 카바나 패키지’를 추천한다. 객실 투숙 1박, 오아시스 4인 주간 카바나 이용권, 그라넘 다이닝 라운지 조식, 피트니스 및 실내 수영장 2인 무료 이용 혜택이 있다. 이 패키지는 10월6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가 시원한 풀캉스 패키지를 내놓는다. 야외 수영장 ‘리버파크’를 이달 28일 개장하고 풀캉스 패키지 8종과 풀사이드 세미 뷔페가 포함된 패키지까지 선보인다. 이용 고객 전원에게 프리미엄 비건 화장품 ‘달바’의 기초제품과 바캉스백, 비치 타월로 구성된 여름 바캉스 세트를 증정한다.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투숙을 원하면 ‘다이브 인투 리버파크’ 패키지를 선택하면 된다. 그랜드 딜럭스 룸 투숙과 리버파크 입장권, 푸드 트럼 콤보 세트 등이 포함돼 있다.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호텔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이 야외 수영장 ‘알티튜드 풀 앤 라운지’를 열었다. 투숙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어 20, 30대 고객이 특히 많이 찾는다. 수영장 옆 ‘알티튜드 라운지’에서는 수영장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시원한 수영장 뷰를 감상하며 다양한 음식과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6인 이상 단체 좌석이 있어 캐주얼한 파티도 가능하다.서울드래곤시티의 엔터테인먼트 시설 스카이킹덤 34층에 위치한 루프톱 다이닝 공간 ‘카바나 시티’가 이달 6일 여름시즌 영업을 시작했다.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루프톱수영장을 배경으로 도심 속 휴식을 선사하는 장소다. 78㎡ 크기의 메인 풀과 3개의 선베드, 수심이 얕은 키즈풀 3개와 화이트 샌드로 채워진 모래사장 3개로 구성돼 있다. 카바나 시티 이용객은 BBQ 전문 브랜드 ‘꿉당’의 메뉴를 이곳에서 즐길 수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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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정원식물 클러스터’를 아시나요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식물원이나 수목원, 정원박람회에 다니다 보면 궁금해진다. 이 식물은 누가 어디에서 키운 걸까. 식물 업계에는 유명해도 일반 대중은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충남 천안이 ‘한국의 정원식물 클러스터’라는 것이다. ‘산내식물원’, ‘미산식물’, ‘도담식물’, ‘열린식물원’ 등의 업체들이 천안에 모여 정원식물을 재배한다. ‘허니가든’ 등 신생 업체도 정원식물의 메카에 힘을 더한다. 새로운 품종을 발굴해 보급함으로써 국내 정원산업 생태계를 떠받치는 주역들이다. ●우리 정원식물을 키워내는 손길들도담식물의 이정관 대표(50)는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 가드너 출신이다. 대학에서 조경과 원예학을 전공한 후 7년 동안 일했던 천리포식물원은 새로운 식물이 가득한 천국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역시 천리포수목원 가드너 출신인 송기훈 대표(63)의 ‘미산식물’을 업무상 종종 방문하면서 관심이 점점 식물 농장으로 향했다. 송 대표가 다양한 식물을 수집하고 번식시키는 모습, 그러면서도 경제적 안정을 이룬 모습이 크게 부러웠다고 한다.정원식물 농장을 세우는 꿈을 안고 이 대표는 천리포수목원을 나와 미산식물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실장으로 3년을 일했다. “식물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농장에서 배우면서 독립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 대표를 키운 업계 선배인 송기훈 대표는 지금의 국내 ‘그라스(사초과와 벼과 식물) 열풍’을 불러온 주역이다. 2003년 정원식물 업계에 뛰어들어 당시 국내에 생소하던 억새와 수크령 등을 육종하고 보급했다. 일례로 잎에 흰색 줄무늬가 있는 ‘딕시랜드’라는 품종의 억새는 이 농장의 한 포기 풀에서 비롯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 대표는 2011년 3월 천안 풍세면 보성리의 농지를 매입해 ‘도담식물’을 창업했다. “식물원에서 경제 관념 없이 식물에만 빠져 살았기 때문에 사업자금 준비가 미미해 사업 초반에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선·후배들이 일하는 식물원들이 주요 식물 납품처가 되면서 큰 힘이 됐습니다. 최근에는 각종 정원 행사가 많아지고 정원 작가라는 직업이 뜨면서 다양한 식물을 찾아 농장을 방문하는 분들이 늘었습니다.”4500평 부지에 자리 잡은 도담식물은 하우스(3000평)와 노지(1500평)에서 1000여 종의 숙근초와 관목을 재배하고 있다. 국내 식물원과 수목원에 식물을 공급하고 조경용 식물 생산과 납품, 정원 컨설팅도 한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알파인 정원의 차이브 ‘실버 차임스’, 서울식물원의 애기말발도리 ‘던컨’, 강원 춘천 제이드가든의 맥문동 ‘스프링 스노우’ 등이 이 농장에서 재배돼 공급된 식물들이다. 특히 스프링 스노우는 맥문동 군락에서 우연히 씨앗이 떨어져 나온 개체 중 봄에 새순이 흰색으로 돋아나는 개체를 선발해 이 대표가 특허 등록한 것이다. 그가 육종한 부채붓꽃 ‘스노우 윈디’, 노란색 잎의 느티나무 ‘마이다스 터치’도 특허 등록됐다.이 대표는 선배로부터 받았던 도움의 손길을 이젠 후배에게 내민다. 천리포수목원 식물팀장을 지냈던 ‘허니가든’의 이주헌 대표(45)는 이정관 도담식물 대표의 도움으로 인근의 농장 부지를 구해 지난해 창업할 수 있었다. 총 13년간 천리포수목원에서 일하고 조경 설계와 정원시공 회사도 다닌 이주헌 대표는 “그동안 관심을 많이 못 받던 우리 자생식물을 정원식물로 키우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천안의 업계 선배들이 주로 식물원과 수목원, 농가를 대상으로 식물을 공급하는 데 비해 갓 창업한 그는 “일반 개별 소비자도 대환영”이라고 한다.●새로운 품종 개발과 식물 출처 관리가 힘천안은 물류망이 발달해 전국으로 식물을 공급하기에 편리하다. 또 정원식물 재배 업체가 모여 있어 관련 전공 학생들의 견학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식물로 맺어진 업계 선·후배들의 정보 공유와 식물 교류도 ‘한국의 정원 클러스터’를 가능케 하는 힘이다. 무엇보다 전문성을 갖춘 대표들이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새로운 식물 품종 개발에 매달린다는 게 이 클러스터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식물의 학명과 유통명이 달라 혼란을 일으키기 일쑤인 국내 식물 시장에서 이들은 식물 출처를 정확하게 밝혀 전파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뭘까. 이정관 도담식물 대표는 말한다.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다양한 식물이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국내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식물들도 많고, 이것들을 제대로 평가하는 기회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무분별하게 들여오기보다는 잘 자랄 수 있는 강건한 품종들을 선발하고 육성해야 합니다.”요즘 우리 자생종을 정원에 도입하려는 다양한 시도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자생종의 중요성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자생종을 정원에 사용하기에는 기후적으로 맞지 않거나 구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자생종들은 개화 기간이 짧거나 더위에 약한 것이 많습니다. 또 농장에서 자생종을 재배해도 홍보나 판매가 어려워 대부분 폐기되고 맙니다. 자생종과 자생종, 자생종과 외래종 등의 교잡을 통해 우리 정원에 맞는 훌륭한 식물을 육성하는 게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송기훈 미산식물 대표의 말도 들어보았다.“한국은 주거 형태가 아파트 위주라 정원식물의 내수 시장이 여전히 크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는 골프장과 식물원, 요즘에는 아파트에 조경이 많이 들어가죠. 외국에 비해 시장이 훨씬 늦게 시작됐는데도 산림청이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지원해 주면서 관 주도로 빠르게 활성화했어요. 장기적으로는 민간 주도로 시장이 커 나가야 할 것입니다.”●‘도담 브라이트 가든’에서의 오후이정관 도담식물 대표의 개인 정원인 ‘도담 브라이트 가든’에 가 봤다. 그는 2016년 천안 풍세산업단지 인근의 전원주택단지인 ‘조은자연마을’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관리되지 않은 커다란 벚나무와 회화나무, 벌레들이 가득한 유실수가 빽빽하게 자리 잡아 답답한 첫인상을 주는 집이었다. 우편 집배원이 “이 집이 마을에서 가장 더러운 집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그는 기존의 나무들을 정리하고 울타리와 배수로를 새롭게 설치했다. 식물이 잘 크려면 무엇보다 토양이 좋아야 하기에 집 앞마당과 뒤뜰은 양질의 마사토로 복토를 했다. 대지가 220평인 이 집에 조성한 100평 규모의 정원 이름은 ‘도담 브라이트 가든’. “천리포수목원 가드너로 일할 때부터 무늬가 있는 식물, 잎 색상이 밝은 식물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밝은 식물들에서 기쁨을 얻고 싶었어요.”전문 가드너가 만든 정원은 키 큰 교목과 그보다 낮은 관목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짜임새 있는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부터 울창한 교목을 심은 게 아니었다. 잎 색상이 보라색인 자엽 자작나무는 심을 땐 연필 크기였는데 4년 만에 8m 높이로 훌쩍 자랐다. 무늬 자작나무, ‘울프 아이’라는 품종의 산딸나무는 잎에 무늬가 있어 잔잔하면서도 화려했다. 유럽너도밤나무와 모감주나무는 길쭉한 직립 형태로 이국적 느낌을 전했다. 이 대표가 가녀린 줄기를 접목해 6년간 키웠다는 무늬 층층나무 사이로는 흰 나비가 날아다녔다. 집 앞쪽과 뒤쪽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햇볕이 잘 드는 마당 앞 화단에는 풍년화, 실목련, 고광나무, 매자나무, 미국수국, 분꽃나무, 히어리 등을 심었다. 뒤쪽에는 반그늘을 좋아하는 자주받침꽃, 산수국, 만병초, 헬레보러스(크리스마스 로즈), 100여 종의 비비추와 천남성 등이 있다. “정원에 식물을 심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간과 질감입니다. 서로 다른 느낌의 식물을 주변에 배치하는 것이 질감이 비슷한 식물을 연속적으로 심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배치가 됩니다. 예를 들어 직선적 느낌의 향나무 주변에 억새처럼 둥그런 수형의 식물을 배치하고, 털수염풀의 부드러움 사이에 알리움의 강렬한 느낌을 더하면 식물들이 서로 대비를 이루면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요. 요즘 정원식물로 추천하고 싶은 건 자주터리풀 ‘엘레간스’입니다. 잎은 단풍 모양으로 깨끗하게 갈라지고, 꽃도 진한 분홍색으로 크고 예쁘거든요.”무려 4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는 이 정원은 이 대표의 식물 시험장이기도 하다. 새롭게 도입한 식물을 심어 사진처럼 꽃은 잘 피는지, 여름과 겨울은 잘 이겨내는지, 생육속도와 병충해는 어떤지 살펴보고 관찰한다. 이런 테스트를 통해 좋다고 판단되면 대량으로 증식하고 상품으로 재배하는 것이다. 그는 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식물과 추억을 쌓지 않고 처음부터 완벽한 정원을 원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묘목과 작은 포트에 담긴 꽃을 심어 그 성장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데요. 꽃이 피어난 것을 보며 기뻐하고, 힘든 하루의 휴식이 되는 정원이 제게는 즐거운 놀이터에요.”‘한국의 정원식물 클러스터’를 이루는 천안의 업체 대표들은 식물을 보러 주로 산을 함께 다닌다고 한다. 그들이 산을 함께 오르며 식물을 관찰하고 의견을 나누는 장면을 흐뭇하게 상상해 보았다. 업계의 열정과 노력, 식물과 함께 하는 정원문화가 어우러져 우리 풍토에 맞는 정원식물이 더 풍성하게 개발되기를 기대해본다. 천안=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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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은 멀리… 몸은 낮게 보라, DMZ 식물 세상[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난생처음 보는 식물이었다. 흰색 떡고물을 열매에 보슬보슬 버무려 빚은 듯했다. ‘백두산떡쑥’이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이곳은 강원 양구군 해안면에 2016년 문을 연 국립DMZ자생식물원. 이 식물원은 9개 주제원(園) 중 백두산떡쑥 등이 있는 북방계 식물 전시원을 1년에 딱 2주간, 5월 말에서 6월 초(올해는 9일까지)에만 개방한다. 진귀한 우리 식물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다. 인근 DMZ펀치볼둘레길, 대암산 용늪, 두타연에도 야생의 위로가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우리 식물을 참 많이 만났다. 시야를 넓혀서 걷다가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들여다봐야 가능한 만남이었다. 허둥지둥 앞만 보고 가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시 ‘풀꽃’에서 읊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북한-북방계 식물을 만나다 이른 오전 국립DMZ자생식물원에 도착하자 서늘한 기운이 몸을 파고들었다. 해발 670m에 자리 잡은 국내 최북단 식물원답다. 댕강나무들의 달콤한 꽃향기를 거쳐 전망대에 이르자 펀치볼이 시야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휴전선과 맞닿은 우리나라 최대 분지로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펀치볼(punch bowl·화채 그릇)처럼 생겼다고 이름을 붙였다. 처절했던 전쟁의 아픔을 지닌 이 침식분지는 종전 후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지정돼 생태계 고유 모습을 간직하게 됐다. 직선거리로 약 7km 떨어진 북한 매봉이 가칠봉과 을지전망대 사이로 손에 닿을 듯 보인다. 저 북녘땅에 사람이 살고, 우리 식물도 산다. 이 야외 식물원에는 희귀식물이 즐비하다. 특히 북방계 식물 전시원에서는 북한 식물과 북방계 식물을 만날 수 있다. 남한엔 살지 않고 북한에만 사는 식물을 북한 식물, 빙하기에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남하해 현재까지 남아 있는 식물을 북방계 식물로 분류한다. 북방계 식물 전시원에는 백두산떡쑥과 오랑캐장구채를 비롯해 북한 식물 30여 종, 만병초와 갯활량나물 같은 북방계 식물이 200여 종 있다. 북한 식물을 어떻게 확보했을까. 이 식물원은 과거 북한 주변 지역으로부터 구했던 종자를 발아시켜 보전하고 있다. 세계 여러 식물원과 종자를 교류하고, 개인 수집가들에게서 식물을 기증받기도 한다. 이들 식물은 서늘한 날씨에 배수가 잘되는 토양인 펀치볼 일대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아 지구를 뜨겁게 달군다면 기후변화에 취약한 이들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문득 지난해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열린 ‘식물 평행세계’(조경진 조혜령 작가)라는 이름의 전시가 떠올랐다. 같은 종(種)이지만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식물들로 하나의 정원을 만들었다. 비정치적 존재인 식물에 두 개의 이름을 안긴 분단 현실이 안타까웠다. 식물은 죄가 없다. 우리가 고광나무라고 부르는 식물을 북에서는 조선산매화라고 부른다. 귀룽나무는 구름나무, 백당나무는 접시꽃나무로 불린다. 우리 이름도, 북의 이름도 곱다. 외딴 양구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식물 연구진은 “우리가 북한 및 북방계 식물을 충분히 연구해 둬야 식물 통일을 대비할 수 있다”고 한다. 국립DMZ자생식물원은 국내 유일의 고층 습원(해발 1280m)인 대암산 용늪을 본떠 고층 습지원도 조성했다. 사초, 동의나물, 참조팝나무, 산수국 등이 자연스럽게 군락을 이뤘다. 저층 습지 연못가에는 부채붓꽃과 제비붓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붓꽃을 유독 좋아했던 세계적 화가 고흐(1853∼1890)가 이 사실을 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와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붓꽃 60∼70%가 희귀식물이지만, 특히 부채붓꽃은 산림청 지정 멸종위기 희귀식물이다. 부채처럼 퍼지는 잎과 붓을 닮은 보라색 꽃이 볼수록 신비롭다. ●DMZ 비밀의 숲에서 보낸 찬란한 하루 국립DMZ자생식물원 뒤편 DMZ펀치볼둘레길이야말로 비밀의 숲이었다. 금강초롱꽃, 함박꽃나무, 관중, 금강제비꽃, 도깨비부채, 쪽동백나무, 감자난초 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둘레길이 전국 어디에 또 있을까. 다만 기억할 것! 시야는 넓게, 몸은 낮춰야 작고 담백한 우리 식물이 보인다는 것을. 총길이 73.22km의 DMZ펀치볼둘레길은 산림 휴양 통합 플랫폼 ‘숲나들e’(foresttrip.go.kr)에서 예약하고 방문해야 한다. 평화의 길, 오유밭길, 만대벌판길, 먼멧재길 등 네 가지 길 가운데 골라 걸을 수 있다. 그중 추천하고 싶은 길은 오유밭길이다. 우리 식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걷다가 다다르는 ‘부부 소나무’ 전망대에서 펀치볼을 전망할 수 있다. 한 그루인 듯 두 그루인 부부 소나무 사이에 있는 또 한 그루의 소나무는 자식일까. 오유밭길에서는 쪽동백나무가 숲길에 깔아준 ‘하얀 별 카펫’을 밟았다. 쪽동백나무가 떨군 하얀 꽃은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불시착한 별일지도 모른다. 고광나무도 한창 순백의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싱아도 만났다. 박완서 작가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던 그 싱아는 싱그러운 풀이었다. 잊지 못할 순간은 주먹 크기의 꽃을 주렁주렁 매단 함박꽃나무를 만났을 때였다. 말간 얼굴의 꽃이 나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어주는 것 같아 괜히 눈물이 났다. 나 힘들다고 애써 설명하지 않았는데 알아봐 주고 환하게 지어주는 그 함박웃음 . 누군가에게, 때로는 스스로에게 저 따스한 웃음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전쟁의 상처를 다독여주는 국립DMZ자생식물원 ‘워(War) 가든’ 철조망 앞에 피어 있는 꽃도 함박꽃이었다. DMZ펀치볼둘레길을 걸어 본 다음 국내 람사르 습지 1호인 대암산 용늪으로 향했다. 해발 1280m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굽이굽이 비포장 임도(林道)를 30분 정도 운전해야 다다를 수 있다. ‘반만년 생태계의 신비, 대암산 용늪’이라고 적힌 표지판에는 네 개의 관련 부처 설명이 달려 있다. 산림청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환경부는 람사르 습지, 국가유산청은 천연보호구역, 국방부는 통제보호구역으로 관리하는 곳. 용늪은 철쭉이 이제야 한창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한 달여를 거슬러 올라간 또 다른 세계였다. 용늪에 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DMZ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생태 공간이었다. 양구에 간다면 금강산에서 발원한 힘찬 물줄기가 원시 절경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두타연도 방문하기를 권한다.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에서는 ‘평범한 날들의 찬란한 하루’라는 제목의 전시도 열리고 있다. 박수근 화백의 식나무 그림, 그가 식물을 그릴 때 참고한 목련 그림도 전시돼 있다. 위대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국립DMZ자생식물원의 북방계 식물 전시원이 잠시 열려 있는 이번 주말, 양구에 가보면 어떨까. 평범한 날들의 찬란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글·사진 양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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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백두산떡쑥을 만나러 양구에 갈 시간[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난생처음 보는 식물이었다. 흰색 떡고물을 열매에 보슬보슬 버무려 빚은 듯했다. ‘백두산떡쑥’이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이곳은 강원 양구군 해안면에 2016년 문을 연 국립DMZ자생식물원. 이 식물원은 9개 주제 원(園) 중 백두산떡쑥 등이 있는 북방계식물 전시원을 1년에 딱 2주간, 5월 말에서 6월 초(올해는 9일까지)에만 개방한다. 진귀한 우리 식물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다.인근 DMZ펀치볼둘레길, 대암산 용늪, 두타연에도 야생의 위로가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우리 식물을 참 많이 만났다. 시야를 넓혀서 걷다가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들여다봐야 가능한 만남이었다. 허둥지둥 앞만 보고 가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시 ‘풀꽃’에서 읊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북한과 북방계 식물을 만나다이른 오전 국립DMZ자생식물원에 도착하자 서늘한 기운이 몸을 파고들었다. 해발 670m에 자리 잡은 국내 최북단 식물원답다. 댕강나무들의 달콤한 꽃향기를 거쳐 전망대에 이르자 펀치볼이 시야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휴전선과 맞닿은 우리나라 최대 분지로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펀치볼(punch bowl, 화채 그릇)처럼 생겼다고 이름을 붙였다. 처절했던 전쟁의 아픔을 지닌 이 침식분지는 종전 후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지정돼 생태계 고유 모습을 간직하게 됐다. 직선거리로 약 7km 떨어진 북한 매봉이 가칠봉과 을지전망대 사이로 손에 닿을 듯 보인다. 저 북녘땅에 사람이 살고, 우리 식물도 산다.이 야외 식물원에는 희귀식물이 즐비하다. 특히 북방계식물 전시원에서는 북한 식물과 북방계 식물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엔 살지 않고 북한에만 사는 식물을 북한 식물, 빙하기에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남하해 현재까지 잔존하는 식물을 북방계 식물로 분류한다. 북방계식물 전시원에는 백두산떡쑥과 오랑캐장구채를 비롯해 북한 식물 30여 종, 만병초와 갯활량나물같은 북방계 식물이 200여 종 있다.북한 식물을 어떻게 확보했을까. 이 식물원은 과거 북한 주변 지역으로부터 구했던 종자를 발아시켜 보전하고 있다. 세계 여러 식물원과 종자를 교류하기도 한다. 이들 식물은 서늘한 날씨에 배수가 잘되는 토양인 펀치볼 일대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아 지구를 뜨겁게 달군다면 기후변화에 취약한 이들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문득 지난해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열린 ‘식물 평행세계’(조경진 조혜령 작가)라는 이름의 전시가 떠올랐다. 같은 종(種)이지만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식물들로 하나의 정원을 만들었다. 비정치적 존재인 식물에게 두 개의 이름을 안긴 분단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가 고광나무라고 부르는 식물을 북에서는 조선산매화라고 부른다. 귀룽나무는 구름나무, 백당나무는 접시꽃나무로 불린다. 우리 이름도, 북의 이름도 곱다. 외딴 양구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식물 연구진은 “우리가 북한 및 북방계 식물을 충분히 연구해 둬야 식물 통일을 대비할 수 있다”고 한다.국립DMZ자생식물원은 국내 유일의 고층 습원(해발 1280m)인 대암산 용늪을 본떠 고층습지원도 조성했다. 사초, 동의나물, 참조팝나무, 산수국 등이 자연스럽게 군락을 이뤘다. 저층 습지 연못가에는 부채붓꽃과 제비붓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붓꽃을 유독 좋아했던 세계적 화가 고흐(1853~1890)가 이 사실을 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와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붓꽃 60~70%가 희귀식물이지만, 특히 부채붓꽃은 산림청 지정 멸종위기 희귀식물이다. 부채처럼 퍼지는 잎과 붓을 닮은 보라색 꽃이 볼수록 신비롭다.●DMZ 비밀의 숲에서 보낸 찬란한 하루국립DMZ 자생식물원 뒤편 DMZ펀치볼둘레길이야말로 비밀의 숲이었다. 금강초롱꽃, 함박꽃나무, 관중, 금강제비꽃, 도깨비부채, 쪽동백나무, 감자난초 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둘레길이 전국 어디에 또 있을까. 다만 기억할 것! 시야는 넓게, 몸은 낮춰야 작고 담백한 우리 식물이 보인다는 것을.총 길이 73.22km의 DMZ펀치볼둘레길은 산림 휴양 통합 플랫폼 ‘숲나들e’(foresttrip.go.kr)에서 예약하고 방문해야 한다. 평화의 길, 오유밭길, 만대벌판길, 먼멧재길 등 네 가지 길 가운데 골라 걸을 수 있다. 그중 추천하고 싶은 길은 오유밭길이다. 우리 식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걷다가 다다르는 ‘부부 소나무’ 전망대에서 펀치볼을 전망할 수 있다. 한 그루인 듯 두 그루인 부부 소나무 사이에 있는 또 한 그루의 소나무는 자식일까.오유밭길에서는 쪽동백나무가 숲길에 깔아준 ‘하얀 별 카펫’을 밟았다. 쪽동백나무가 떨군 하얀 꽃은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불시착한 별일지도 모른다. 고광나무도 한창 순백의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싱아도 만났다. 박완서 작가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던 그 싱아는 싱그러운 풀이었다.잊지 못할 순간은 주먹 크기의 꽃을 주렁주렁 매단 함박꽃나무를 만났을 때였다. 말간 얼굴의 꽃이 나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어주는 것 같아 괜히 눈물이 났다. 나 힘들다고 애써 설명하지 않았는데 알아봐 주고 환하게 지어주는 그 함박웃음…. 누군가에게, 때로는 스스로에게 저 따스한 웃음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전쟁의 상처를 다독여주는 국립DMZ자생식물원 ‘워(War) 가든’ 철조망 앞에 피어 있는 꽃도 함박꽃이었다.DMZ펀치볼둘레길을 걸어 본 다음 국내 람사르 습지 1호인 대암산 용늪으로 향했다. 해발 1280m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굽이굽이 비포장 임도(林道)를 30분 정도 운전해야 다다를 수 있다. ‘반만년 생태계의 신비, 대암산 용늪’이라고 적힌 표지판에는 네 개의 관련 부처 설명이 달려 있다. 산림청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환경부는 람사르 습지, 국가유산청은 천연보호구역, 국방부는 통제보호구역으로 관리하는 곳. 용늪은 철쭉이 이제야 한창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한 달 여를 거슬러 올라간 또 다른 세계였다. 용늪에 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DMZ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생태 공간이었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힘찬 물줄기가 원시 절경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두타연도 방문하기를 권한다.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에서는 ‘평범한 날들의 찬란한 하루’라는 제목의 전시도 열리고 있다. 박수근 화백의 식나무 그림, 그가 식물을 그릴 때 참고한 목련 그림도 전시돼 있다. 위대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국립DMZ자생식물원의 북방계식물 전시원이 잠시 열려있는 이번 주말, 양구에 가보면 어떨까. 평범한 날들의 찬란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식물들이 살고 있는 북으로부터 요 며칠 대형 오물 풍선이 날아들더니, 급기야 동해로 탄도 미사일까지 발사됐다는 소식이다. 30여 년 전 양구에서도 남과 북이 가칠봉 정상에서의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와 대남방송 등을 통해 서로를 자극했다고 한다. 여전히 계속되는 분단 현실이 참 마음 아프다. 우리 식물들에게는 죄가 없는데 말이다.양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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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르고뉴 와인의 명맥을 잇는 루이자도

    ‘루이자도(Louis Jadot)’는 프랑스 대표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 지역의 최대 규모 와이너리다. 1826년 첫 포도밭을 매입한 이후 우수한 품질과 맛을 인정받으며 15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남쪽 보졸레부터 북쪽 샤블리까지 부르고뉴 지역 전반을 아우르는 214ha 규모의 포도밭을 기반으로 연간 약 900만 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루이자도의 포도밭에는 화학 비료나 제초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있다. 세심하게 일궈야 하거나 언덕에 위치한 밭에서는 옛날 방식으로 말을 이용해 경작한다. 밭의 표면 정도만 관리할 뿐 땅 깊은 곳에는 어떠한 인위적인 작업도 하지 않는다. 지역 농가에서 공급받는 포도도 장기 계약을 통해 철저하게 재배 과정을 감독하며 품질을 인증받은 포도만을 구입한다.루이자도는 1995년 오크통 제조사 ‘카뒤(Cadus)’를 설립해 와인 숙성에 사용하는 오크통은 직접 제작해 사용한다. 뛰어난 오크나무 생산지에서 원자재를 구매하는 것은 물론, 30개월간의 세심한 건조 과정을 거쳐 부르고뉴 전통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사용하는 오크통에 따라 와인의 맛과 풍미가 크게 좌우되는 만큼 더 나은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결정이다.본 프르미에 크뤼 ‘끌로 데 우르쉴’은 루이자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대표 와인이다. 1826년 루이자도에서 처음으로 매입한 포도밭에서 생산하는 독자적인 모노폴 와인으로, 인위적인 개입을 최대한 배제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된다. 신선한 흙 내음과 섬세한 부케 향이 어우러져 우아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 특징이다.우아하고 은은한 풍미가 매력적인 루이자도 와인은 프랑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37곳 가운데 19곳에 납품될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미국 ‘프렌치 런드리’, ‘장 조르쥬’ 같은 최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프랑스 ‘라비니아’, 영국 ‘해롯’ 등 각국의 럭셔리 주류샵에서도 판매되고 있다.루이자도는 2013년 프랑스를 넘어 미국 오리건주까지 생산지를 확대했다. 오리건주에서 생산된 와인인 ‘레조낭스(Resonance)’는 6월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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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폴액세서리의 발편한 시리즈로 사뿐사뿐∼ 에디강 작가와 협업한 구호의 하트 포 아이로 사랑 가득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빈폴액세서리’가 발의 편안함을 높이면서도 캐주얼 및 오피스룩에 활용할 수 있는 ‘발편한’ 시리즈를 선보였다.매 시즌 꾸준히 사랑받는 남성 어반 스니커즈와 브랜드 상징 페니파싱 자전거의 바퀴 일부를 패턴화해 디자인한 레트로 컵솔 스니커즈에 기능성을 더했다.딱딱한 중창에 라텍스 작업으로 쿠셔닝했고, 습도가 잘 조절되는 오솔라이트 깔창으로 착화감을 개선했다. 신발 내부 안감은 땀 흡수와 열 배출에 특화된 캠브렐라 소재로 통기성을 높였다. 클래식 메리제인, 토오픈 뮬, 버클 스트랩 샌들 등 여성 신발에는 고탄성 스펀지 인솔을 추가했다. 오래 신어도 발의 편안함을 유지하는 데 신경 썼다. 밑창에는 아가일 패턴 논슬립 기능으로 미끄러짐을 최소화했다. 요즘에는 샌들에도 양말을 신는 것이 트렌드다. 빈폴액세서리는 신발에 맞게 특별 제작한 양말을 세트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부드럽고 신축성이 좋은 코마 원사 소재와 함께 발바닥에는 부드럽고 뽀송한 테리(Terry) 소재를 사용해 도톰하고 푹신하다. 발목 부분은 립조직을 제거해 조이지 않고, 봉제선이 없는 심리스 토 기법을 적용해 발가락 부분에 거슬리는 부분 없이 편안하다. 바닥 도톰 쿠션 장목/중목/스니커즈 양말, 메쉬 바닥 도톰 쿠션 중목/스니커즈 양말로 구성됐다. 빈폴액세서리의 발편한 시리즈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패션/라이프스타일 전문몰 SSF샵은 물론 주요 빈폴 매장에서 판매된다.이상우 빈폴액세서리 팀장은 “스타일리시하고 세련된 슈즈가 오래 신어도 편안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발편한 시리즈를 새롭게 내놓게 됐다” 며 “양말을 함께 착용한다면 발편한 시리즈의 편안함, 안정감의 진가를 경험하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컨템포러리 브랜드 ‘구호(KUHO)’는 시각 장애 어린이들에게 밝은 세상을 열어주는 ‘하트 포 아이(Heart For Eye)’ 캠페인을 진행한다.올해 21회째를 맞이한 하트 포 아이 캠페인은 구호가 2006년부터 패션의 아름다움을 시각 장애 아이들과 함께 나누자는 취지에서 매년 진행하고 있다. 작가들과 협업해 특별한 ‘하트’ 모티브의 아이템을 선보이고 판매 수익금은 삼성서울병원에 기부한다. 현재까지 417명의 아이들에게 개안수술과 치료비를 후원했다.구호는 이번에 개성 있는 캐릭터를 통해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 ‘에디 강(Eddie Kang)’과 협업했다. 에디 강은 상실의 고통을 치유하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담아 ‘예티(Yeti)’라는 캐릭터를 소환했다. 복슬한 털의 실루엣과 동그란 눈이 인상적인 예티는 사랑을 상징하는 수호자, 안내자, 어린이 보호자로서 역할을 한다. 구호는 예티 캐릭터와 작가의 ‘드로잉 하트’ 시리즈를 활용한 티셔츠, 에코백 등을 선보였다. 이번 하트 포 아이 상품은 성인용/아동용 티셔츠, 니트 카디건, 에코백으로 구성됐고, 전국 구호 매장, ZIP739와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패션/라이프스타일 전문몰 SSF샵에서 판매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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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팰리스 콘스탄스와 웨스틴 조선 서울 아리아

    요즘 미식을 찾는 고객들은 호텔 뷔페에 간다. 음식을 통한 공감각적 경험을 중시하는 문화에 맞춰 호텔 뷔페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꼭 맛봐야 할 시그니처 메뉴는 물론이고 각 구역별 특화 메뉴, 테이블 서비스로 제공되는 에피타이저, 다채로운 메뉴와 곁들이는 주류 페어링까지. 여느 파인 다이닝보다 합리적이고 다양한 미식의 경험을 뷔페에서 누릴 수 있다. 조선호텔앤리조트에서 운영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뷔페인 웨스틴 조선 서울의 ‘아리아’, 그리고 아리아의 헤리티지를 이어 받아 하이엔드 뷔페를 선보이는 조선 팰리스의 ‘콘스탄스’가 각 시그니처 스테이션의 신메뉴를 선보이고프라이빗 테이블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해 고객들과 만난다. 조선 팰리스 콘스탄스뷔페에서 경험하는 스시 오마카세, 테이블에서 바로 즐기는 그릴드 랍스터조선 팰리스 24층에 위치한 ‘콘스탄스’는 9m의 웅장한 층고와 큰 통창을 통해 시원하게 펼쳐진 서울의 시티뷰를 배경으로 그릴, 일식, 중식, 한식 등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신선한 프리미엄 스시를 제공하는 ‘스시 스테이션’은 마치 스시 오마카세에 온 듯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뷔페 구역이다. 시간대별로 도미, 아까미, 흰돗대기 새우, 우니 등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스시를 비롯해 10여종의 프리미엄 스시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프라이빗 테이블 서비스로 고객의 테이블마다 제공되는 ‘그릴드 랍스터’는 뉴질랜드 청정 지역 버터와 허브버터를 발라 센 불에 빠르게 구워 겉은 노릇노릇 속은 촉촉하게 구워낸 것이 특징이다. 뷔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디저트 스테이션’에는 제철 과일을 활용한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들이 세팅된다. 산딸기 타르트, 라즈베리 바닐라무스, 딸기 슈와 더불어 망고, 청포도 등을 활용한 판나코타 등이 제공된다. 다양한 요리와 어울리는 주류 리스트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웨스틴 조선 서울 아리아테이블마다 ‘프렌치 어니언 수프’, 뷔페 최초 디저트로 빙수 제공국내 프리미엄 뷔페 트렌드를 선도해 온 웨스틴 조선 서울의 ‘아리아’도 프리이빗 테이블 서비스 및 이색적인 신메뉴를 새롭게 추가해 서비스의 품격을 높였다. 고객이 착석하면 모든 테이블에 조선호텔의 오랜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나인스 게이트의 ‘정통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인당 1개씩 제공한다.아리아에 마련된 일식, 한중식, 그릴, 파스타, 인도, 누들&딤섬, 수프, 콜드&샐러드 등 총 10개의 오픈 키친에서는 아리아의 시그니처 메뉴들을 비롯해 각 스테이션마다 셰프들의 전문성을 담아낸 다채로운 메뉴들을 만날 수 있다.그릴 스테이션에는 미국 텍사스 스타일의 거대한 ‘카우보이 스테이크’가 새롭게 고객을 맞는다. 일반 스테이크보다 약 4배 큰 사이즈의 등심, 갈비살, 새우살이 있는 립아이 부위의 스테이크로 허브와 갈릭버터 소스를 바른 후 직화로 구워 고기의 풍미와 육즙을 풍부하게 했다. 중식 스테이션에는 웨스틴 조선 서울의 중식당 ‘홍연’에서 맛볼 수 있었던 시그니처 ‘북경 오리’를 비롯해 현지 스타일로 매콤하게 조리한 ‘싱가포르식 칠리 랍스터’를 만날 수 있다. 일식 스테이션에는 성게&연어알밥이 별미로 제공된다. 호텔의 라운지앤바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시그니처 빙수인 수박 빙수도 아리아 디저트 스테이션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시그니처 빙수를 뷔페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것은 최초 시도다. 에피타이저부터 메인, 디저트까지 조선호텔의 시그니처 메뉴들을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뷔페이니 눈과 입이 호강하는 가성비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NOW HOTEL■ 그랜드워커힐서울 레이디스 데이 아웃 패키지그랜드워커힐서울은 평일 낮 시간을 이용해 스위트룸에서 브런치와 함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레이디스 데이 아웃(Ladies Day Out)’ 패키지를 선보였다. ‘클럽 스위트’ 객실과 아차산 풍경을 파노라믹 뷰로 감상할 수 있는 ‘그랜드스위트’ 객실에서 한낮의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길 수 있다. 객실로 제공되는 브런치 메뉴는 수제 훈제연어 샐러드와 셰프 추천 수프, 파스타 2종을 비롯 최상급 꽃등심 스테이크와 전복 구이, 워커힐 특선 소시지, 야채 모둠으로 구성된 홈 플레이트와 디저트 플레이트가 포함된다. 가까운 지인들과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특별한 시간을 즐기고 싶어하는 고객들을 위해 마련된 상품으로,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중에 이용할 수 있다. 성인 최대 4명까지 이용 가능하며, 패키지 이용객은실내 수영장 및 피트니스 등 호텔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위(WE)호텔제주 힐링 서머 패키지 위호텔제주는 시원한 여름 호캉스를 즐길 수 있는 힐링 서머 패키지를 내놓았다.21만평에 달하는 한라산 청정 숲 산책로와 천연 화산 암반수를 가득 채운 수영장에서 힐링할 수 있다. 패키지는 6월 1일부터 9월 8일까지 이용할 수 있으며 투숙일 30일 이전 예약 시 인원 추가비 1인 무료 혜택과 7% 할인을 제공한다. 슈페리어룸 1박, 조식뷔페 2인을비롯해 야외 수영장, 야외 자쿠지와 실내 수영장 그리고 피트니스룸을 2인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2박 투숙 시 혜택으로 식음 크레딧 5만원권을 1회 제공한다. 특히 ‘아쿠아 카밍’과 ‘크리스탈 싱잉볼’ 등 웰니스 프로그램 4종 하나를 택하여 2인이 이용할 수 있다 ■아난티호텔 섬머 세일아난티 앳 부산 코브와 아난티 앳 부산 빌라쥬가 6월 10일까지 연박 특가 프로모션 ‘섬머 세일’에 돌입한다. 각 호텔을 2박 이상 예약하면 30%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으며, 투숙 기간은 9월 30일까지다. 아난티 앳 부산 코브는 이국적인 오션뷰 야외 수영장 ‘인피니티 풀’, 아난티 앳 부산 빌라쥬는 복층 객실로 차별화된 매력을 선보인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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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출서울’의 채소 요리 클래스에 가보니… “우리, 채소 요리 만들어 먹을까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호텔리어 워킹맘의 인스타그램에 어느날부터인가 채소 요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버터를 녹인 팬에 구운 채소, 식용 꽃을 얹어낸 완두콩 스프…. 채소들의 빨강 노랑 초록 색상과 ‘지글지글’ 불에 달궈지는 소리가 어찌나 건강한 행복감을 전하던지. 그녀는 요리 사진과 영상에 이런 문장들을 달곤 했다. ‘이번 주도 힐링’. ‘나의 꾸준한 채소 식단을 위해’. 매번 채소의 변신이 무궁무진해 놀라웠다. 알고 보니 그녀는 정기적으로 채소 요리 클래스에 다니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양출서울’이다. 김승미 양출서울 대표(45)는 함께 일하던 송호연 셰프(32)의 제안으로 2014년부터 운영하던 일본 가정식 식당을 2020년부터 채소 요리 식당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정기적으로 채소 요리 클래스를 진행하고, 저녁에는 채소 요리를 내놓는 와인바로 변신한다. 20일 이 클래스에 찾아가 봤다. 여기에 모인 30대 여성 수강생들은 수년째 이 요리 수업을 들어온 ‘베테랑 수강생’들이었다. 편안한 라운지 음악이 조용하게 흐르는 가운데 셰프를 향하는 아일랜드형 조리대에 수강생들이 둘러앉았다. 파인애플, 대저토마토, 아스파라거스, 양파 등이 마치 갓 수확된 듯 신선한 상태로 준비돼 있었다.클래스를 이끄는 송호연 셰프는 가장 먼저 아스파라거스를 다듬기 시작했다. 먹음직스러운 굵은 아스파라거스는 평소 거래하는 농장을 통해 구했다고 했다. 가정식 식당을 할 때에는 귀한 채소를 어렵게 구해 요리해 내도 손님들은 남기기 일쑤였다. 고기는 다 먹어도 채소는 남기는, 채소를 하찮게 여기는 음식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4년 전 아예 ‘채소가 중심이 되는 식당’으로 콘셉트를 바꾸자 채소 요리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건강한 요리’에 대한 수요도 생겨났다. 채소 요리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예뻐지는 요리, 오감을 깨우는 요리로 새로운 위상을 얻었다. 이제 세상은 채소를 즐겨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채소는 지친 삶을 위로하는 ‘소울 푸드(soul food)’가 됐다. “토마토를 갈아서 끓인 후 걸러내면 맑은 물이 똑똑 떨어져요. 얼마나 깨끗한 맛인지 몰라요. 채소 요리를 마친 후 설거지할 때 향이 참 좋아요.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조차 예쁠 정도라니까요.” (김승미 양출서울 대표)이 요리 수업은 고요하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셰프와 수강생들이 오랫동안 교감해온 만큼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저 어떻게 파인애플을 썰어내는지, 어떻게 토마토를 다지는지 셰프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필요한 부분을 메모해 두는 식이다. 채소 요리는 신기했다. 파인애플은 굽기만 해도 당도가 올라가 달달해졌다. 구운 배추를 썰어 먹는데 마치 채소 스테이크를 먹는 기분이었다. 채소는 요리 방법에 따라 식감이 정말로 다양하게 바뀌었다.수강생들이 말했다. “1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이 시간이 제게는 정말 힐링이에요”, “평소 집에 있는 채소들을 활용해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 먹게 되니까 채소를 묵혀 버리는 일이 없게 돼요”. 이날 수업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국내 대형 로펌에 다니는 40대 미혼의 남성 변호사도 이 채소 요리 클래스의 수강생이라고 했다. ‘미래의 신부’에게 건강한 요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다닌다고 한다.요리 수업 동안 콩나물, 무, 브로콜리, 당근을 건조해 우려낸 채소 차가 제공됐다. 몸속 장기까지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 같았다. 8살 아들을 둔 한 수강생은 아들이 5살 때부터 이 클래스를 다녔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채소를 만지게 하고 냄새 맡게 했더니 이제는 각종 채소 요리를 즐긴다고 해서 부러웠다. 이 얼마나 훌륭한 자녀 교육인가. 송 셰프는 “대개의 아이들은 채소 특유의 쓴맛을 싫어한다”며 “아이가 채소를 먹기 꺼려한다면, 갈아 넣거나 다져서 채소의 정체를 숨겨 요리하는 걸 권한다”고 했다. 채소 요리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채소 요리를 통해 건강뿐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을 챙기는 것이다. 채소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채소를 공급하는 농장들이 많아지고, 그러면 소비자가 선택할 채소들이 다양해지는 ‘채소의 선순환’이 가능해진다.만들기도 쉽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레시피 3가지 (4인 기준)완두콩을 얹은 구운 배추1. 작은 알배추를 4등분해 오일 두른 팬에서 노릇하게 굽는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2. 1의 구운 알배추는 접시에 옮겨 주고 1의 팬에 오일을 둘러 다진 양파를 넣어 볶아 향을 내다가 화이트 와인을 살짝 부어준다. 3. 2의 팬에 완두콩, 다진 파슬리, 소금, 후추, 채수(채소 우린 물)를 넣어 간을 한다.4. 준비된 접시에 2의 알배추를 담고 3의 완두콩을 올리고 레몬 제스트,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을 뿌려 완성한다.구운 파인애플과 컬리플라워1. 파인애플 반 통을 네 조각으로 잘라 오일 두른 팬에서 노릇하게 구워 준다.2. 컬리플라워는 잘게 썰어 1의 팬에서 볶아준다. 다진 파슬리,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3. 준비된 접시에 2의 컬리플라워를 담고 올리브오일을 뿌려 완성한다.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오믈렛1. 계란 7개는 볼에 풀어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잘 풀어 준비한다. 2. 아스파라거스는 먹기 좋게 다듬어 슬라이스 해주고 봉오리 부분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기 좋게 잘라 볼에 담아 준비한다. 3. 대저토마토는 3개 준비해 꼭지를 제거하고 끓는 물에 30초 데쳐 얼음물에 담근 후 껍질을 벗겨 다진다. 4. 다진 토마토에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 레몬 제스트, 다진 마늘, 허브를 넣어 드레싱을 만들고 2의 아스파라거스와 섞어준다. 5. 양파는 얇게 저민 후 4의 볼에 같이 섞어준다. 이때 레몬즙을 살짝 넣는다.6. 1의 재료를 팬에서 저어가며 익힌다. 다져둔 토마토와 다진 파슬리도 넣어 익힌다. 7. 준비된 접시에 6을 담고 5의 재료를 올린 후 올리브오일을 뿌려 완성한다. 글·사진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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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소가 주인공인 삶… “우리, 채소 요리 만들어 먹을까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호텔리어 워킹맘의 인스타그램에 어느날부터인가 채소 요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버터를 녹인 팬에 구운 채소, 식용 꽃을 얹어낸 완두콩 스프…. 채소들의 빨강 노랑 초록 색상과 ‘지글지글’ 불에 달궈지는 소리가 어찌나 건강한 행복감을 전하던지. 그녀는 요리 사진과 영상에 이런 문장들을 달곤 했다. ‘이번 주도 힐링’. ‘나의 꾸준한 채소 식단을 위해’. 매번 채소의 변신이 무궁무진해 놀라웠다. 알고 보니 그녀는 정기적으로 채소 요리 클래스에 다니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양출서울’이다. 김승미 양출서울 대표(45)는 함께 일하던 송호윤 셰프(32)의 제안으로 2014년부터 운영하던 일본 가정식 식당을 2020년부터 채소 요리 식당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정기적으로 채소 요리 클래스를 진행하고, 저녁에는 채소 요리를 내놓는 와인바로 변신한다. 20일 이 클래스에 찾아가 봤다. 여기에 모인 30대 여성 수강생들은 수년째 이 요리 수업을 들어온 ‘베테랑 수강생’들이었다. 편안한 라운지 음악이 조용하게 흐르는 가운데 셰프를 향하는 아일랜드형 조리대에 수강생들이 둘러앉았다. 파인애플, 대저토마토, 아스파라거스, 양파 등이 마치 갓 수확된 듯 신선한 상태로 준비돼 있었다.클래스를 이끄는 송호윤 셰프는 가장 먼저 아스파라거스를 다듬기 시작했다. 먹음직스러운 굵은 아스파라거스는 평소 거래하는 농장을 통해 구했다고 했다. 가정식 식당을 할 때에는 귀한 채소를 어렵게 구해 요리해 내도 손님들은 남기기 일쑤였다. 고기는 다 먹어도 채소는 남기는, 채소를 하찮게 여기는 음식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4년 전 아예 ‘채소가 중심이 되는 식당’으로 콘셉트를 바꾸자 채소 요리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건강한 요리’에 대한 수요도 생겨났다. 채소 요리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예뻐지는 요리, 오감을 깨우는 요리로 새로운 위상을 얻었다. 이제 세상은 채소를 즐겨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채소는 지친 삶을 위로하는 ‘소울 푸드(soul food)’가 됐다. “토마토를 갈아서 끓인 후 걸러내면 맑은 물이 똑똑 떨어져요. 얼마나 깨끗한 맛인지 몰라요. 채소 요리를 마친 후 설거지할 때 향이 참 좋아요.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조차 예쁠 정도라니까요.” (김승미 양출서울 대표)이 요리 수업은 고요하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셰프와 수강생들이 오랫동안 교감해온 만큼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저 어떻게 파인애플을 썰어내는지, 어떻게 토마토를 다지는지 셰프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필요한 부분을 메모해 두는 식이다. 채소 요리는 신기했다. 파인애플은 굽기만 해도 당도가 올라가 달달해졌다. 구운 배추를 썰어 먹는데 마치 채소 스테이크를 먹는 기분이었다. 채소는 요리 방법에 따라 식감이 정말로 다양하게 바뀌었다.수강생들이 말했다. “1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이 시간이 제게는 정말 힐링이에요”, “평소 집에 있는 채소들을 활용해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 먹게 되니까 채소를 묵혀 버리는 일이 없게 돼요”. 이날 수업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국내 대형 로펌에 다니는 40대 미혼의 남성 변호사도 이 채소 요리 클래스의 수강생이라고 했다. ‘미래의 신부’에게 건강한 요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다닌다고 한다.요리 수업 동안 콩나물, 무, 브로콜리, 당근을 건조해 우려낸 채소 차가 제공됐다. 몸속 장기까지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 같았다. 8살 아들을 둔 한 수강생은 아들이 5살 때부터 이 클래스를 다녔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채소를 만지게 하고 냄새 맡게 했더니 이제는 각종 채소 요리를 즐긴다고 해서 부러웠다. 이 얼마나 훌륭한 자녀 교육인가. 송 셰프는 “대개의 아이들은 채소 특유의 쓴맛을 싫어한다”며 “아이가 채소를 먹기 꺼려한다면, 갈아 넣거나 다져서 채소의 정체를 숨겨 요리하는 걸 권한다”고 했다. 채소 요리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채소 요리를 통해 건강뿐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을 챙기는 것이다. 채소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채소를 공급하는 농장들이 많아지고, 그러면 소비자가 선택할 채소들이 다양해지는 ‘채소의 선순환’이 가능해진다.만들기도 쉽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레시피 (4인 기준)●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오믈렛1. 계란 7개는 볼에 풀어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잘 풀어 준비한다. 2. 아스파라거스는 먹기 좋게 다듬어 슬라이스 해주고 봉오리 부분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기 좋게 잘라 볼에 담아 준비한다. 3. 대저토마토는 3개 준비해 꼭지를 제거하고 끓는 물에 30초 데쳐 얼음물에 담근 후 껍질을 벗겨 다진다. 4. 다진 토마토에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 레몬 제스트, 다진 마늘, 허브를 넣어 드레싱을 만들고 2의 아스파라거스와 섞어준다. 5. 양파는 얇게 저민 후 4의 볼에 같이 섞어준다. 이때 레몬즙을 살짝 넣는다.6. 1의 재료를 팬에서 저어가며 익힌다. 다져둔 토마토와 다진 파슬리도 넣어 익힌다. 7. 준비된 접시에 6을 담고 5의 재료를 올린 후 올리브오일을 뿌려 완성한다. ●구운 파인애플과 컬리플라워1. 파인애플 반 통을 네 조각으로 잘라 오일 두른 팬에서 노릇하게 구워 준다.2. 컬리플라워는 잘게 썰어 1의 팬에서 볶아준다. 다진 파슬리,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3. 준비된 접시에 2의 컬리플라워를 담고 올리브오일을 뿌려 완성한다. ●완두콩을 얹은 구운 배추1. 작은 알배추를 4등분해 오일 두른 팬에서 노릇하게 굽는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2. 1의 구운 알배추는 접시에 옮겨 주고 1의 팬에 오일을 둘러 다진 양파를 넣어 볶아 향을 내다가 화이트 와인을 살짝 부어준다. 3. 2의 팬에 완두콩, 다진 파슬리, 소금, 후추, 채수(채소 우린 물)를 넣어 간을 한다.4. 준비된 접시에 2의 알배추를 담고 3의 완두콩을 올리고 레몬 제스트,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을 뿌려 완성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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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노의 숲’이 된 광릉숲…25살 국립수목원의 생일 음악회[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전나무 숲길 한가운데에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광릉숲은 ‘피아노의 숲’이 되었다.국립수목원이 24일 작은 숲속 음악회를 열었다. 그랜드 피아노를 숲길에 놓고 음악회를 연 것은 국립수목원 역사상 처음이다. 음악회 제목은 ‘피아니스트 임미정과 친구들 초청 숲과 나무 음악회’. 이날 25주년 생일을 맞은 국립수목원은 최근 방문객들에게 참가 신청을 받은 뒤 추첨을 통해 30명을 초대했다.임미정 씨가 청중들에게 말했다. “숲속은 생명이 자라는 곳이잖아요. 여러분은 음악이 흐르는 동안 새 소리, 바람 소리도 함께 듣게 될 거예요. 일반적으로 다른 음악회들에서는 연주가 진행될 동안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게 금지되지만, 자연 속인 여기서는 마음껏 음악과 하나가 되세요.”그는 자연과 가까운 음악가라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C장조 K.545를 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선율이 각종 새 소리, 전나무 숲길 옆을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어우러져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냈다.한혜열 성악가(베이스)가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윤호근 음악가의 피아노에 맞춰 우리 가곡을 부를 때에는 바람이 불어 악보가 날아갈 뻔하기도 했다. 숲길에 그저 그랜드 피아노 한 대만이 오롯이 놓여 있을 때부터 예감했다. 자연 속에서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리라는 것을. 인근 주민이라는 청중 김미자 씨(72)는 “평소 자주 다니는 수목원이지만 오늘의 감동은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임미정 씨는 2018년 강원 양구군 국립DMZ자생식물원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연 것을 계기로 이날 국립수목원 25주년 작은 숲속 음악회에 서게 됐다. 스콧 큐엘라 미국 뉴욕 시라큐스대 교수, 윤호근·한혜열 한세대 교수가 이날 음악회를 함께 꾸민 그의 친구들이었다. 임 씨는 2019년부터 강원도 DMZ(비무장지대) 접경 지역에서 PLZ(Peace and Life Zone)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경기도 DMZ 오픈 페스티벌 총감독도 지냈다. 청년 예술가들을 미얀마에 파견하는 코이카 프로젝트 봉사단 사업 등 자연 속에서 새로운 장르와 융합문화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이날 국립수목원은 ‘융복합 연구혁신으로 산림생물의 무한 가치를 창출하는 국가대표 연구기관’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오랜 세월의 더께를 지닌 전나무 숲길을 개방해 그동안 없던 숲속 음악회를 연 것도 이 비전에 따른 것이다. 앞으로 인문학과 예술을 숲에 접목한 융복합 콘텐츠로 국립수목원의 가치를 널리 홍보하겠다고 한다.국립수목원 전나무숲은 강원 평창 월정사 전나무숲, 전북 부안 내소사 전나무숲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으로 통한다. 1915년부터 전나무를 심기 시작해 1970년 박정희 대통령, 1997년 김영삼 대통령,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전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을 이뤘다. 아름다운 선율이 흐를 동안 자꾸만 저절로 하늘을 올려다보게 됐다. 나무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거나 바람에 흔들리는 모든 순간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고마운 사실을 일깨웠다.바람결에 실린 우리 가곡 ‘마중’과 ‘시간에 기대어’를 들으면서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피아노의 숲’이 아닌 일반 공연장의 무대였어도 이렇게 노랫말이 별처럼 찾아와 마음 속에 박혔을까.‘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마중’에서)‘저 언덕 넘어 어딘가 그대가 살고 있을까. 계절이 수놓은 시간이란 덤 위에 너와 난 나약한 사람. 바람이 닿는 여긴 어딘가. 우리는 남아 있을까. 연습이 없는 세월의 무게만큼 너와 난 외로운 사람. 난 기억하오. 난 추억하오. 소원해져버린 우리의 관계도 사랑하오. 뜨겁게 태우던 우리의 마음도 사랑하오(중략). 변해버린 그대 모습 그리워하고 또 잊어야 하는 그 시간에 기댄 우리.’ (‘시간에 기대어’ 에서)임영석 국립수목원장은 말했다. “흔히 음악회라고 하면 어떠한 소음도 허락하지 않는 상황을 떠올리지만, 오늘의 음악회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숲속 음악회는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마음을 풀어놓고 감각에 집중할 수 있어 청중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숲속의 다양한 생물들이 좋은 음악에 아름다운 화음으로 답을 해 준 게 아닐까요. 이런 도전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국립수목원 전나무 숲속에 내려앉은 ‘한 편의 음악영화’가 마음속에 오래오래 여운을 남긴다. 그랜드피아노의 건반을 가만히 두드려 보았다. ‘도도레도 파미’. 해피 버스데이, 25살 국립수목원!포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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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원에서 공존을 배우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이제야 비로소 서울에서도 정원박람회가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16일 서울 뚝섬한강공원에서 개막한 서울국제정원박람회(10월 8일까지)에서 남녀노소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 희망을 보았다. 서울정원박람회는 2015년부터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과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등에서 열려왔지만 왠지 ‘그들만의 리그’인 느낌이 있었다.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건 올해가 처음. 접근성과 수준이 역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서울시는 기존 정원박람회를 이번에 국제 행사로 키우면서 역대 최대 규모 터(약 20만 ㎡)에 76개 정원을 조성했다. 주제는 ‘서울, 그린 바이브(Seoul, Green Vibe)’. 지하철 7호선 자양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시원한 한강을 배경으로 ‘무료’ 정원 여행이 시작된다. 박람회장 가든센터에서 ‘식물 지름신(神)’이 내릴 확률이 높으니 튼튼한 팔과 장바구니를 준비하기를 권한다. 박람회가 끝나도 정원들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하니 인근 주민들 삶이 부러워진다.●도시 정원의 회복력물결처럼 구불구불한 동선으로 이뤄진 정원이었다. 보자마자 핀란드 자작나무 냄비받침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작가의 정원에 감히 냄비받침이라니. 하긴 정원을 느끼고 누리는 데에 정답이 어디 있나. 각자 경험대로 상황대로 즐기면 된다. ‘회복의 시간’이라는 이름의 그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보라색 알리움과 하늘색 정향풀 등이 바람결 따라 흔들렸다. 이곳은 뚝섬한강공원인가, 아니면 미지의 호숫가인가. 호흡이 편안해지고 자꾸만 식물과 눈 맞추고 싶다.국내외 작가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작가 정원은 ‘정원이 가진 회복력’과 ‘정원과의 동행’이라는 키워드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창엽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과 교수는 아내인 이진 정원가와 함께 조성한 ‘회복의 시간’ 정원을 이렇게 설명한다.“뚝섬한강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정서적 회복의 시간을 갖도록 자연과 온전히 연결하고 싶었다. 주변 인공물들에서 시각적으로 해방되기 위해 지면보다 아래로 내려가는 입체적 지형을 만들었다. 또 마치 벌이 꽃들을 다니며 수분(受粉)을 돕듯, 의도적으로 좁게 만든 보행로를 통해 이용자들이 식물과 맞닿도록 했다. 우리 인간이 꽃씨를 묻혀 식물의 자연발화를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건축가로서 순수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밀당(밀고 당기기)’ 하는 기묘한 그 사이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이 교수는 10여 년간 영국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스타 건축가들과 작업했다. 그런데 영국 RHS 위즐리 가든을 방문한 뒤 ‘인간이 만들어낸 명작은 자연의 위대함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가족이 살던 런던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도시 어디에 살든 10분 이내에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녹지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런던의 정원이 키웠고, 직장 스트레스는 자전거 출퇴근길의 도시 정원 풍경이 날려줬다. 그는 말한다. “서울에도 누구나 비용을 내지 않고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공공정원이 늘어나면 한국이 직면한 저출산, 혐오 범죄, 자살률 같은 사회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방글라데시 작가 MD 아슈라풀 아자드가 조성한 정원 이름은 ‘심심해지다, 명상하다, 고마워하다’였다. 작가는 디지털 기기에 사로잡혀 사는 현대인에게 ‘심심한 시간’이 가장 필요하다고 봤다. 원형의 띠를 둘러 시선을 정원 외부와 차단하고 내부에는 다년생 식물인 수크렁 한 종류만 심었다. 잡다한 생각을 막고 고요하게 식물의 단순함과 아름다움을 바라보자는 것이다.정원은 관조와 사색의 장소다. 김영민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와 김영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 소장이 만든 초청 정원 이름은 ‘앉는 정원’이다. 꽃과 풀은 지친 땅을 쉬게 하고 사람은 앉아서 꽃, 풀, 물, 바람을 보며 쉬어 가라고 한다. 김 소장은 “이 정원에서는 사적으로 아늑하게 앉을 수도 있고, 평상에서 콩고물이라도 나눠 먹으며 둘러앉을 수도 있고, 한강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정원에서 앉는다는 행위는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뜻일 것이다. 시민들과 조경 전공 학생들이 꾸민 작은 정원들에도 내면을 탐구하거나 가족애를 보듬는 경향이 나타났다. ‘삼삼한 매력정원’은 손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추억을 남기기 위해 함께 풀과 나무를 심으며 만든 삼대(三代)의 정원이다. ‘언제나 나, 너 하늘을 봐요’라는 제목의 학생동행정원은 정원 안에 놓은 원형 거울 속으로 연녹색 나뭇잎들이 살랑댔다. ‘기억과 함께 동행’이라는 이름의 작가 정원은 줄무늬 조형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바닥에 신비한 빛줄기를 그려냈다. 나무줄기로 만든 식물 이름표, 계단 틈새에 심은 다육식물들…. 각각의 정원에 세심한 아름다움이 있었다.●비인간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정원중국 작가 허양과 천훙량이 만든 ‘섹션 가든’은 사람, 동물, 식물이 공유하는 정원이다. 이 정원에서 만난 허양 작가는 중국미술학원(China Academy Of Art) 출신이었다. 어려서부터 고향인 항저우의 산에서 놀면서 곤충을 연구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정원의 나무 둥치를 가리키며 “이건 애벌레의 식량이다. 한국의 딱정벌레들과 다른 작은 벌레들을 이 속에 넣었더니 한 달 후 성체가 되어 날아갔다. 이 정원은 곤충들을 위한 서식지가 되었다”고 했다. 곤충이 어떤 토양에서 잘 자라는지 흙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뚝섬한강공원에 가족 소풍을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할 것 같았다. 도시 속 딱정벌레 유충이 먹는 발효 톱밥과 부식질(腐植質) 흑토 등을 아크릴 상자를 통해 보여주고 작은 터널을 뚫어 통과해보게 하는 식이다. 경사진 지형을 한국의 산과 평원, 습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그에 맞는 우리 식물을 심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이번 박람회에서 반가운 점은 나비, 벌, 곤충 같은 생명체들과의 공생을 추구하는 정원을 여럿 선보인 것이다. 토양에 탄소를 공급하는 점균류 구조를 형상화한 정원, 나비 모양 구조물을 통해 기후위기의 나비효과를 상기시킨 정원, 꽃가루를 매개하는 곤충류를 위한 쉼터를 표현한 ‘곤충 호텔’도 눈에 띄었다. 국립생태원이 뚝섬한강공원 수영장을 습지식물 전시에 활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정원이 단순히 알록달록 꽃을 심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아닌 생명체가 더불어 사는 장소라는 걸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정원 수준이 한 단계 도약했음을 실감했다.도시의 정원에서 다양한 새 소리를 듣고 생물 다양성을 발견하는 것은 축복이다. 서울시는 “한강을 가장 넓은 면적의 탄소 저장고로 조성하고 지구를 살리는 정원의 힘을 느끼게 하겠다”고 한다. 어쩌면 박람회가 끝난 후부터가 중요할지 모른다. 시민과 기업의 참여로 일상 속에 정원이 스며들어야 한다.●‘바이오필릭 서울’을 향한 꿈이번 박람회에는 기업 동행 정원이 17곳 조성됐다. 미국 월트디즈니사가 선보인 ‘인사이드 아웃’ 정원은 기업 정원의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다음 달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국내 개봉을 앞두고 영화 캐릭터들 색상에 맞춰 정원을 꾸몄다. 푸른색 ‘슬픔’ 캐릭터 구역에 엔드리스 수국과 델피늄을, 주황색 ‘불안’ 캐릭터 구역엔 주황철쭉과 나리를 심었다.기업 정원은 브랜드 전략이자 주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조성한 ‘도심 속의 보석’ 정원은 유리 블록으로 된 조형물 안에 이끼가 낀 커다란 돌을 놓고 주변에 연꽃을 심었다. 그저 멋으로 만든 정원이 아니다. 이 회사가 추진하는 서울 광운대 역세권 개발사업 ‘히든 네이처(숨겨진 자연)’ 콘셉트를 표현한 것이다. 삼성물산 조경브랜드 ‘에버스케이프’는 붉은색 전망대 구조물로 시선을 압도한다. 헨켈코리아는 재활용 플래스틱 화분에 어린 나무를 심어 미래의 숲을 표현했다. KB증권 ‘깨비정원’은 기업 브랜드 아이덴티티(BI)에 맞춰 식물과 구조물을 노란색으로 맞췄다.세계 각국이 바이오필릭 시티(Biophilic City·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를 내세운다. 인간이 도시 속 자연과 함께하면 창의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더 잘 돌보고 배려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있다. 시민정원사와 학생들의 정성과 참여, 차량으로 전국을 다니며 식물 관리를 안내해주는 이동형 반려식물 클리닉같이 우리 사회에 퍼지는 정원 문화가 값진 이유다.17일 박람회 현장에서 진행된 정원 토크쇼도 정원의 의미를 일깨웠다. 직장 동료(국립세종수목원 박원순 전시원실장과 노회은 정원사업센터장), 공동대표(조경스튜디오 ‘초신성’의 신영재·최지은 소장), 부부 조경가(‘바이런’ 김영찬 소장과 ‘천변만화’ 이양희 대표)가 ‘따로 또 같이 정원매력탐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중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정원은 더 다양한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기반’이라는 점이었다. 우리가 조금만 배려하면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 5월의 정원에서는 파랑새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뚝섬한강공원 정원들의 식물은 사계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라날 것이다. 직접 정원을 만든 건 아닐지라도 정원을 자주 드나들며 그 속의 생명체들과 교감한다면 ‘내 정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것이 바이오필릭 시티에서 공공정원이 갖는 회복력과 동행의 힘이다. 이번에 조성된 정원들이 시민, 기업과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정원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서울도 세계의 바이오필릭 시티들과 어깨를 겨루는 날이 온다.글·사진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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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너의 이름 부르러 국립수목원으로 간다[김선미의 시크릿 가든]

    햇빛에 반짝이는 나무 잎사귀들이 초록의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 낸다. 눈이 시원해지니 허파까지 상쾌해진다. 얼마 전까지 노란색 황매화와 분홍색 진달래가 기세를 뽐냈다면 오월의 꽃은 흰색이 대세다. 은근한 자태가 보고 있어도 그리운 가침박달, 청순한 병아리꽃나무, 흰양귀비…. 큰줄흰나비는 순백의 민백미꽃이나 미나리냉이 위에 내려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이번 주말 가족 나들이를 계획한다면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을 추천하고 싶다. 오월의 신록이 아름다운 곳, 우리나라의 대표적 희귀 야생난초인 광릉요강꽃이 지금 만개한 곳, 지나온 날들을 나무들이 말해주는 곳, 그래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 바로 국립수목원이다.● 희귀한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봉선사천(川)을 가로지르는 수목원교(橋)를 건넌다. 초록색 하트 잎을 품은 계수나무가 반긴다. 수목원 여행의 시작이다. 가만 보니 대형 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든 관람객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이 꽃을 피운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1990년대 박신양 최진실 주연 영화 ‘편지’를 봤던 독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수목원 연구사인 남자 주인공이 여자 친구를 새벽에 전화로 깨워 수목원으로 데려간 장면을. 남자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오늘 아침 귀한 꽃이 피어났다고, 그 꽃을 자신이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여자가 꽃 이름을 묻자 남자는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개불알꽃요.” 당시 영화 주요 촬영지가 국립수목원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관람객들은 이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찾아온다. 개불알꽃은 가운데가 길게 늘어지는 꽃잎 모양을 보고 민간에서 익살스럽게 불렀던 이름이다. 하지만 국가수목유전자원목록위원회는 입에 올리기 민망했던 이 꽃의 이름 대신 ‘복주머니란’을 선택해 2007년 펴낸 국가표준식물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고로 개불알꽃은 이제 복주머니란으로 불러야 한다. 복주머니란속(屬) 식물은 세계적으로 멸종 위험에 처해 있다. 한국에는 복주머니란, 털복주머니란, 광릉요강꽃 등 이렇게 3개 종(種)이 자생한다. 특히 광릉요강꽃은 동아시아에만 분포하는 희귀식물로 국내에서도 경기, 강원, 전북 등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1931년 광릉숲 죽엽산 자락에서 처음 발견됐다. 입술 모양 꽃잎이 요강처럼 생겼다고 해서 광릉요강꽃으로 불린다. 서양 이름은 ‘Korean lady’s slipper’(한국 숙녀의 슬리퍼). 무분별하게 채취돼 자생지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이 희귀식물을 국립수목원이 2021년 세계 최초로 기내(시험관이나 배양기 안) 종자 발아에 성공했다. 대량 증식의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많은 이들이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개불알꽃)이 같은 꽃인 줄로 잘못 알고 있다. 하지만 둘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복주머니란은 분홍빛을 띠고 통통한 형태인 데 비해 광릉요강꽃은 중앙의 붉은 부분을 미색 꽃잎이 갸름하게 감싼다. 특히 광릉요강꽃은 잎이 360도 퍼지는 여성의 풀(full) 스커트 형태라 ‘치마난초’로도 불린다. 치마를 확 펼쳐 춤 추는 무용수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동양적 느낌이 물씬 난다. 국립수목원 희귀특산식물보존원 부근 나무 장벽 구역에서는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을, 약용식물원 가는 방면 복주머니란속 전시원에서는 교잡종인 ‘얼치기복주머니란’을 볼 수 있다. 빛이 들 때마다 카메라 셔터들이 찰칵찰칵. 이번 주말을 넘기지 않고 방문하면 좋겠다. 지금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수목원에서 생각하는 과거와 미래 국립수목원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가가 운영하는 수목원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1984년 조성공사를 시작해 1987년 문을 열었다. 조선 세조 능(陵)인 광릉의 부속림이어서 500년 넘게 잘 관리된 땅에 전국 임업시험장에서 가져온 나무들을 심었다. 수목원 명칭은 처음 광릉수목원에서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바뀌었다. 개원 당시 수목원 입구에 세웠던 ‘광릉수목원’ 표석은 수목원 산림박물관 앞으로 옮겨졌다. 전시 공간이 102ha 규모인 국립수목원에는 7개 테마 숲길이 총연장 20km에 걸쳐 조성돼 있다. 숲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숲생태관찰로(길이 460m)를 걸은 뒤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육림호를 바라보는 코스가 가장 사랑받는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새 소리를 들으며 ‘물멍’(물을 멍하니 바라보기)을 하면 감각은 열리고 마음은 내려놓게 된다. 어른 팔 만한 물고기들도 보인다. 40여 년 전 경기 청평 내수면연구소에서 기르던 물고기 5000여 마리를 옮겨왔는데 그중 잉어와 비단잉어가 살아남았다고 한다. 물, 나무, 산, 숲이 어우러지는 육림호는 국립수목원 대표 명소다. 특히 봄에는 물가에 핀 연분홍 철쭉이 청순한 경관을 이룬다. 그런데 산철쭉과 철쭉도 사람들이 자주 이름을 틀리게 부르는 예다. 흔히 철쭉으로 불리는 진분홍 꽃 이름은 산철쭉이고, 물철쭉으로 잘못 불리는 연분홍 꽃 이름은 철쭉(연달래)이다. 사랑은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아닐까. 이젠 철쭉을 철쭉으로 불러야 한다. 국립수목원은 역대 대통령 기념 식수들이 자리 잡고 있어 ‘국가대표’ 수목원의 차별점을 보여준다. 대대로 심은 전나무 숲길도 유명하다. 국토 녹화와 임업 발전에 공을 세운 인물들을 헌정한 ‘숲의 명예전당’도 들러 보면 좋겠다. 세계적 육종학자 고 현신규 박사, 임업에 열정을 지녔던 고 최종현 SK 창업회장을 비롯해 8명이 헌정돼 있다. 개원 25주년을 맞은 국립수목원은 어린이날을 맞아 ‘알숲놀숲’이라는 산림 새싹 키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알파 친구들아, 숲에서 놀자, 놀면서 숲을 즐기자’라는 뜻으로 식물학자와 정원사 같이 수목원을 둘러싼 다양한 직업군을 아이들이 체험하도록 준비했다. 미래 세대가 디지털 기기를 잠시 내려놓고 숲과 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국립수목원 속 나만의 시크릿가든 국립수목원은 25개 전문 전시원에 식물 4854종(19만9212본)이 심어져 있다. 광릉요강꽃 같은 희귀식물 23종, 장수하늘소를 비롯한 천연기념물 20종이 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에서). 드넓은 국립수목원에서는 누구든 ‘나만의 식물’ ‘나만의 시크릿가든’을 삼을 수 있다. 누군가는 봄을 일찍 알리는 풍년화에, 누군가는 바람에 쓰러지고도 새잎을 돋아내는 휴게 광장의 121세 오리나무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누군가는 키 작은 나무언덕에 올라 헝클어진 마음을 정돈할 것이다. 기자는 우리 자생식물의 검박한 아름다움에 빠져 있다. 그래서 국립수목원 희귀특산식물보존원이 나만의 시크릿가든이다. 보존원 울릉도본원에는 만병초가 피어 있다. ‘만 가지 병을 치유하는 풀’이라고 했던가. 정자(퍼걸러)에 올라 울릉도 희귀특산식물 두메부추와 섬시호 등을 바라본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했던 풀 . 오월 국립수목원은 삶의 의지를 일깨운다. :금강산도 식후경:국립수목원 직원들이 꼽은 인근 맛집① 광릉불고기: 불고기만큼 밑반찬도 호평② 동이손만두: 건강한 맛 만두전골. 무한 리필 물김치도 인기③ 모심: 봉선사 근처 손두부 요리 전문점.④ 하마네추어탕: 고모리 추어탕 맛집.⑤ 어반제주: 고모리 저수지 인근 제주 감성 피자 & 파스타 집. 글·사진 포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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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릉요강꽃 본 적 있나요…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미래[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햇빛에 반짝이는 나무 잎사귀들이 초록의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낸다. 눈이 시원해지니 허파까지 상쾌해진다. 얼마 전까지 노란색 황매화와 분홍색 진달래가 기세를 뽐냈다면 오월의 꽃은 흰색이 대세다. 은근한 자태가 보고 있어도 그리운 가침박달, 청순한 병아리꽃나무, 흰양귀비…. 큰줄흰나비는 순백의 민백미꽃이나 미나리냉이 위에 내려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이번 주말 가족 나들이를 계획한다면 경기 포천의 국립수목원을 추천하고 싶다. 오월의 신록이 아름다운 곳, 우리나라의 대표적 희귀 야생난초인 광릉요강꽃이 지금 만개한 곳, 지나온 날들을 나무들이 말해주는 곳, 그래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 바로 국립수목원이다.●희귀한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봉선사천(川)을 가로지르는 수목원교(橋)를 건넌다. 초록색 하트 잎을 품은 계수나무가 반긴다. 수목원 여행의 시작이다. 가만 보니 대형 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든 관람객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이 꽃을 피운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1990년대 박신양·최진실 주연의 영화 ‘편지’를 봤던 독자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수목원 연구사인 남자 주인공이 여자친구를 새벽에 전화로 깨워 수목원으로 데려간 장면을. 남자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오늘 아침 귀한 꽃이 피어났다고, 그 꽃을 자신이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가장 좋은 것을 어서 보여주고 싶은 게 사랑일 것이다. 여자가 꽃 이름을 묻자 남자는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개불알꽃이요.” 당시 영화의 주요 촬영지가 국립수목원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관람객들은 이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찾아온다.개불알꽃은 가운데가 길게 늘어지는 꽃잎 모양을 보고 민간에서 익살스럽게 불렀던 이름이다. 하지만 국가수목유전자원목록위원회는 입에 올리기 민망했던 이 꽃의 이름 대신 ‘복주머니란’을 선택해 2007년 펴낸 국가표준식물목록에 그 이름을 올렸다. 고로 개불알꽃은 이제 복주머니란으로 불러야 한다.복주머니란 속(屬) 식물은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험에 처해 있다. 한국에는 복주머니란, 털복주머니란, 광릉요강꽃 이렇게 세 종류의 종(種)이 자생한다. 특히 광릉요강꽃은 동아시아에만 분포하는 희귀식물로, 국내에서도 경기, 강원, 전북 등에 매우 제한적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1931년 광릉숲 죽엽산 자락에서 처음 발견되고 입술 모양 꽃잎이 요강처럼 생겼다고 해서 광릉요강꽃으로 불린다. 서양 이름은 ‘Korean lady’s slipper’(한국 숙녀의 슬리퍼). 무분별하게 채취돼 자생지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이 희귀식물을 국립수목원이 2021년 세계 최초로 기내 종자 발아에 성공했다. 대량 증식의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많은 이들이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개불알꽃)이 같은 꽃인 줄로 잘못 알고 있다. 하지만 둘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복주머니란은 분홍빛을 띠고 통통한 형태인데 비해 광릉요강꽃은 중앙의 붉은 부분을 미색의 꽃잎이 갸름하게 감싼다. 특히 광릉요강꽃은 잎이 360도 퍼지는 여성의 풀(full) 스커트 형태라 ‘치마난초’로도 불린다. 치마를 확 펼쳐 춤 추는 무용수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동양적 느낌이 물씬 난다. 국립수목원 희귀특산식물보존원 부근 나무 펜스 구역에서는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 약용식물원 가는 방면의 복주머니란속 전시원에서는 교잡종인 ‘얼치기복주머니란’을 볼 수 있다. 빛이 들 때마다 카메라 셔터들이 ‘찰칵찰칵’. 이번 주말을 넘기지 않고 방문하면 좋겠다. 지금을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수목원에서 생각하는 과거와 미래국립수목원은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가가 운영하는 수목원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1984년부터 조성공사를 시작해 1987년 문을 열었다. 조선 세조의 능(陵)인 광릉의 부속림으로 500년 넘게 훼손되지 않고 잘 관리된 천혜의 부지에 전국 임업시험장에서 가져온 나무들을 심었다. 수목원 명칭은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바뀌었고, 개원 당시 수목원 입구에 세웠던 ‘광릉수목원’ 표석은 수목원 내 산림박물관 앞으로 옮겨졌다. 전 세계적으로 온대북부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온대활엽수 성숙림에 서어나무와 졸참나무 등이 사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국립수목원로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이 맑아지면서 온 몸이 연두빛으로 물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102ha 규모의 전시공간을 갖춘 국립수목원에는 7개 테마의 숲길이 약 20km에 걸쳐 조성돼 있다. 숲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숲생태관찰로(460m)를 걸은 후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육림호를 바라보는 코스가 가장 사랑받는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새 소리를 들으며 ‘물멍’(물을 보며 멍때리기)하면 감각은 열리고 마음은 내려놓게 된다. 어른 팔만한 물고기들도 보인다. 40여 년 전 경기 청평 내수면연구소에서 기르던 물고기 5000여 마리를 옮겨와 그중 잉어와 비단잉어가 살아남았다고 한다. 물, 나무, 산, 숲이 어우러지는 육림호는 국립수목원의 대표 명소다. 특히 봄에는 물가에 핀 연분홍 철쭉이 청순한 경관을 이룬다. 그런데 산철쭉과 철쭉도 사람들이 자주 이름을 틀리게 부르는 예다. 흔히 철쭉으로 불리는 진분홍 꽃의 이름은 산철쭉, 물철쭉으로 잘못 불리는 연분홍 꽃의 이름은 철쭉(연달래)이다. 사랑은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아닐까. 이젠 철쭉을 철쭉으로 불러야 한다.국립수목원은 역대 대통령의 기념 식수들이 자리 잡고 있어 ‘국가대표’ 수목원의 차별점을 보여준다. 소나무와 주목 등 상록 침엽수가 주를 이루지만 노각나무와 무궁화도 있다. 대대로 심은 전나무 숲길도 유명하다. 국토녹화와 임업 발전에 공을 세운 인물들을 헌정한 ‘숲의 명예전당’도 들러보면 좋겠다. 세계적 육종학자인 고 현신규 박사, 천리포수목원을 일군 고 민병갈 원장, 임업에 열정을 지녔던 고 최종현 SK 창업회장,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조기에 달성한 고 손수익 전 산림청장 등 8명이 헌정돼 있다.올해 25주년을 맞은 국립수목원은 이번 어린이날을 맞아 ‘알숲놀숲’이라는 산림 새싹 키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알파 친구들아, 숲에서 놀자, 놀면서 숲을 즐기자’라는 뜻으로 식물학자와 정원사 등 수목원을 둘러싼 다양한 직업군을 아이들이 체험하도록 준비했다. 미래세대가 디지털 기기를 잠시 내려놓고 숲과 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국립수목원 속 ‘나만의 시크릿가든’국립수목원은 25개 전문 전시원에 4854종(19만9212본)의 식물이 식재돼 있다. 광릉요강꽃 등 희귀식물 23종, 장수하늘소 등 천연기념물 20종이 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의 시 ‘꽃’에서). 드넓은 국립수목원에서는 누구든 ‘나만의 식물’, ‘나만의 시크릿가든’을 삼을 수 있다. 누군가는 봄을 일찍 알리는 풍년화에, 누군가는 바람에 쓰러지고도 새잎을 돋아내는 휴게광장의 121살 오리나무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누군가는 수목원 안의 키 작은 나무언덕에 올라 헝클어진 마음을 정돈할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우리 자생식물의 검박한 아름다움에 빠져 있다. 그래서 국립수목원 내 희귀특산식물보존원이 ‘나만의 시크릿가든’이다. 보존원 내 울릉도 분원에는 만병초가 피어있다. ‘만 가지 병을 치유하는 풀’이라고 했던가. 정자(퍼골라)에 올라 울릉도 희귀특산식물인 두메부추와 섬시호 등을 바라본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했던 풀…. . 오월의 국립수목원은 삶의 소중함과 의지를 일깨운다.★금강산도 식후경: 국립수목원 직원들의 추천 맛집⓵광릉불고기: 불고기만큼 밑반찬에 대해서도 호평.⓶동이손만두: 건강한 맛의 만두전골. 무한정 리필 물김치도 인기.⓷모심: 봉선사 근처의 손두부 요리 전문점.⓸하마네추어탕: 고모리 추어탕 맛집. ⓹어반제주: 고모리 저수지 인근 제주 감성의 피자·파스타집.포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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