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은우]‘100조 쿠팡’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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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배송을 내세운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첫날인 11일(현지 시간) 시가총액 100조 회사가 됐다. 국내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에 이은 2위이고, 현대차의 2배를 웃돈다. 흑자 한 번 낸 적이 없고 누적 적자가 4조5000억 원인 회사가 시가총액 100조라니, 주식시장에 밝지 않은 일반인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외국 투자자들은 어느 대목에서 쿠팡에 이처럼 높은 가치를 매겼을까.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현지에서 “한국 5000만 명이 실제 주거하는 면적은 로드아일랜드 정도”라고 했다. 로드아일랜드는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로 인구는 100만 명이다. 한국은 좁은 곳에 몰려 사니까 당일 배송을 할 수 있었고, 배달 문제가 해결되면서 e커머스 시장이 150조 원까지 커졌다는 뜻이다. ‘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면 대박 아닐까’ 하는 기대가 시가총액 100조 원을 만들었다. 우리에게 일상인 밀집 거주가 외국인에게는 대단한 성장 잠재력으로 보였던 것 같다.

▷‘승자 독식’ 추세도 상장 성공의 배경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혁신기업 상당수가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유통에선 아마존이 그 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끝없이 투입하며 마침내 시장을 지배하게 된 승자가 시장을 독식하는 것이다. 쿠팡에 투자한 ‘큰손’들은 본인들의 막대한 자금으로 이 회사가 시장을 지배하길 기대한다. 요즘 미국에서 승자는 자본이 ‘점지’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외부 자본 투입이 혁신기업의 성공 요소로 부각되면서 기업 오너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쿠팡 최대 주주는 33.1%를 가진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다. 김 의장의 지분은 10.2%다. 하지만 일반 주식 29배의 의결권을 부여한 차등의결권 덕분에 김 의장의 경영권은 탄탄하다. 창업자는 혁신적 경영을 하고, 소유권은 여러 투자자로 분산되는 구조다. 소유에 대한 집착도 덜하다. 벤처 창업자들은 투자자가 물러나라면 언제든 떠나겠다는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김 의장은 현지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창의성이 기적을 만들었다고 했다. 제2, 제3의 쿠팡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 환경은 여의치 않다. 쿠팡만 해도 설립 초기 택배차량의 불법 시비가 있었다.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이 없다는 이유였다. 합법화가 되긴 했지만, 이런 제한들은 혁신의 걸림돌이다.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제2 쿠팡 후보들도 적지 않다. 팀블라인드 멤버쉽컴퍼니 등은 설립 초기 미국과 중국으로 본사를 옮겼다. 한국인의 창의성이 꽃피도록 각종 제한을 풀고, 성장한 기업들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상장 여건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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