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는 부동산정책, 투기 의혹의 ‘불씨’가 됐다[광화문에서/이새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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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샘 산업2부 기자
이새샘 산업2부 기자
“예전에도 비일비재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그런 줄은 몰랐네요. 요즘 시대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을 취재하며 부동산 업계 사람들에게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반응이다.

실제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실이 LH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법상 비밀누설 금지, 미공개정보 이용행위 금지 조항을 위반해 적발된 건수는 0건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했다는 것이다.

내부 감시가 그만큼 소홀했다는 얘기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4년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택촉법’은 택지 개발 및 신도시 조성을 활성화하기 위해 1980년 제정됐다. 주택 수급이 어느 정도 해결된 상황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법이라는 판단이었다. 대규모 택지 개발은 강제수용으로 원주민을 내몰고, 투기꾼의 이익만 키운다는 비판이 많았다. 인구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신도시 개발이 계속되면 구도심의 공동화와 슬럼화를 낳는다는 목소리도 컸다. 택촉법은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지연되며 살아남았지만 정부는 이후 신규 택지 지정을 사실상 중단했다. 정부 주택 공급의 방점은 대규모 택지 개발보다는 공공임대주택에 찍혔다.

신도시가 없으니 신도시 투기도 불가능했다. 특히 땅 투기 의혹이 나온 광명·시흥지구는 택촉법 폐지 방침이 나온 이듬해 보금자리주택지구에서 해제됐다. 신도시 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정부 정책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었던 셈이다. 사망선고를 받았던 신도시 정책이 다시 살아난 배경에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투기 우려를 이유로 들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도입하는 등 민간 재건축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며 다시 민간 정비사업이 활성화되던 시기였는데 이를 막은 것이다.

정부 의도와는 반대로 저금리로 불어난 유동성을 업은 아파트 가격은 민간의 주택 공급이 위축될 거라는 우려까지 안고 계속 치솟았다. 민간 규제는 계속하면서 공급 감소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신도시 카드가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공공이 공급 주체가 돼야 한다는 고집은 2·4공급대책까지 계속됐다. 신도시 정책이 부활하는 사이 시대는 바뀌었다. 국민들의 공정에 대한 감각도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투기 방지책은 신도시 발표 뒤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는 것 외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제도는 물론이고 공직자들의 도덕적 감수성도 과거에 머물렀다. 그 결과가 이번 LH 땅 투기 의혹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설계했다고 알려진 김수현 전 청와대 사회수석은 2011년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정권에 따라 세제, 공급, 금융정책 등이 자신의 지지 집단에만 경도될 경우 정책적 합리성은 무시되기 마련”이라며 “부동산정책의 큰 틀을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이를 장기간에 걸친 로드맵으로 정해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었다. 정부가 이 같은 원칙에 입각해 부동산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이 사태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이새샘 산업2부 기자 iamsam@donga.com
#부동산정책#투기 의혹#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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