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은우]용버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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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버들 양(楊)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경기 양주와 양평, 강원 양구가 대표적이다. 이런 지명이 많은 것은 버드나무가 산과 계곡이 많은 한국 지형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알곡을 선별하는 ‘키’도 버드나무로 만들었던 걸 보면 이 나무는 오랫동안 한국인과 함께했다. 양치질의 어원이 양지(楊枝·버드나무 가지)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나무가 뜬금없이 LH 투기 사건에 등장했다. LH 직원이 토지 보상비를 더 받으려고 용버들을 잔뜩 심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버드나무 중 하나인 용버들은 생존력이 강하고 성장력도 좋아서 보상을 받을 때 유리하다고 한다.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 A 씨 등은 광명·시흥 신도시로 발표된 경기 시흥시 무지내동에서 2017년부터 땅을 사들였다. 이후 그곳에 용버들을 심었다. 3.3m²당 1그루를 심는 게 적당한데 수십 그루를 심었다. 토지 수용 때 나무 보상비는 주로 그루당 이식 비용에 전체 그루 수를 곱해 결정한다. 많이 심을수록 보상비가 늘어나는 구조다. 나무 값을 감정할 수도 있는데 빨리 자랄수록 감정 가격이 높아진다. 용버들은 어릴 때 빠르게 자라는 속성수로 꼽힌다. 나무 선택부터 심는 방법까지 보상의 달인이라고 할 만하다.

▷과거 사례를 보면 보상비를 더 받으려고 가축과 꿀벌을 동원하기도 한다. 토지 수용 때 축산업 손실 보상 기준은 돼지 20마리, 토끼 150마리, 꿀벌 20군 등 일정 규모 이상으로 정해져 있다. 이 숫자를 채워도 무단으로 가축을 길렀다면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위례신도시 보상 때는 불법 벌통 8000개가 적발됐고, 미사지구 등에서는 가축 수천 마리가 적발되기도 했다.

▷현지 주민들은 의혹이 불거진 LH 직원들을 ‘사장님’이나 ‘부동산 업자’로 알았다고 했다. 거액에 땅을 사들이고, 나무까지 심는 모습이 부유한 사장님과 투기꾼의 중간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들의 거침없는 행동에는 자신감도 묻어난다. 가축 무단 반입을 걸러내듯, 나무를 너무 촘촘히 심으면 보상비를 줄이는 규정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논에 모심듯 나무를 심었다는 건 보상받을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LH 투기 의혹은 전직과 현직, 직원 직급, 논밭 등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퇴직자가 개입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불법과 적법의 경계에서 상당한 투기가 있었다고 의심해 볼 대목이다. 과거 수도권에서 단독주택 용지를 공급받은 직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절차를 따랐어도 그리 떳떳해 보이진 않는다. 국민은 처벌에 앞서 언제부터 얼마나 많은 투기가 있었는지 분명하게 알고 싶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
#용버들#양주#양평#양구#lh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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