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의 하얀 물결 속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기를[광화문에서/손효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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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손효림 문화부 차장
“지금 한 자리씩 띄어 앉으신 거죠? 낯설지만 그래도 익숙해져야겠죠?”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일 열린 한 콘서트에서 반짝이는 은빛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선 옥주현이 말했다. 관객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띄어 앉은 풍경은 관객은 물론이고 그에게도 새로운 모습이었나 보다.

“그거 아세요? 마스크를 쓰면 관객분들 표정이 의외로 더 잘 보인답니다. 눈이 또렷하게 드러나거든요. 어떤 분의 눈에서 빛이 반짝 나는 순간도 보일 정도예요. 앞으로도 (마스크의) 하얀 물결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에는 관객들을 다시 만난 데 대한 반가움이 진하게 묻어 나왔다. 동남아시아의 스콜처럼 양동이로 들이붓듯 폭우가 쏟아진 날이었지만 한 자리씩 비운 객석 대부분은 관객들로 가득 찼다.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던 이들이 앞다퉈 공연장을 찾은 듯했다.

지난달 22일부터 수도권에 있는 국공립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운영 재개 시점을 조정하고 있다.

이전처럼 다시 공연을 보고,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돼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다만 지켜야 할 점도 있다. 공연장에는 이전에 비해 조금 더 일찍 도착하는 게 좋다. 발열 체크를 하고 온라인으로 문진표 작성을 한 후 그 결과가 담긴 QR코드를 티켓과 함께 제시해야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날 오페라극장 입구에서는 “QR코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라고 묻는 노년층 관객들도 상당수 있었다. 직원들은 1부, 2부 공연이 시작하기 전 객석 곳곳을 다니며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관객에게 “코가 덮이도록 마스크를 올려 주세요”라고 당부했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렌트’의 배우와 제작진은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무대를 채워가고 있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꿈을 노래하는 이 작품은 실제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모두가 가슴을 졸이며 연습했다. 다행히 공연이 시작됐지만 이달 23일 막을 내릴 때까지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다. 배우, 제작진, 관객 등 누구라도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즉시 공연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출신으로 스페인에 거주하는 ‘렌트’의 협력 연출가 앤디 세뇨르 주니어는 아이비 최재림 정원영 등 한국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외국은 공연장이 다 문을 닫아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일을 잃었다. 지금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절대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오직 오늘뿐(No Day But Today)’이라는 렌트의 주제가 특히 가슴에 와닿는 요즘이기에, 한 회차 공연이 끝날 때마다 배우들은 울컥하며 눈물을 쏟아낸다고 한다.

“거리에서 키스하며 데이트를 하는 로맨스 영화가 지금은 판타지 영화가 돼 버렸다”는 민규동 감독의 말은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일상이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건지 모른다. 그냥 주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마스크#일상#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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