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동아마라톤 90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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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3월 21일 머리에 흰 수건을 동여맨 14명의 선수가 광화문과 영등포를 왕복하며 22.530km를 달렸다. ‘하프코스’로 시작된 첫 동아마라톤대회 우승자는 양정고보 재학생인 김은배. 이듬해 김 선수는 한국인 최초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해 6위를 한다. 김 선수는 당시 동아일보에 ‘올림픽촌에서’를 기고했는데, ‘선중의 뱃멀미가 아직 낫지 못해 연습 중에 뇌빈혈을 일으켰다. 운동장이 삥삥 돌아가는 것 같다’라고 썼다. 가난하고 힘없는 식민지 청년의 ‘무한도전’은 온 겨레에 희망을 줬다.

▷국제대회 가운데 보스턴 마라톤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동아마라톤은 근현대사 굽이굽이마다 ‘다시 달리자’라는 용기를 불어넣었다. 제2, 3회 대회에서 입상한 손기정 선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썼다. 비록 일본 선수로 출전했어도 반드시 ‘손긔졍’ ‘KOREAN’이라고 사인했다. 손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정간을 당하는 등 언론 탄압이 심해지면서 동아마라톤은 13년간 중단됐다. 동아마라톤이 부활한 1954년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이 오뚝이처럼 일어서려던 때였다.

▷그 후 매년 열린 동아마라톤은 사회 발전과 더불어 계속 업그레이드됐다. 1982년부터 국제대회로 거듭났고, 1990년대에는 황영조 이봉주 선수를 배출해 ‘올림픽 영웅’의 산실이 됐다. 2000년대에는 뉴욕, 보스턴, 런던 마라톤과 겨루는 국제대회로 성장했고 지난해까지 한국 최고기록을 21번이나 갈아 치웠다.

▷마라톤은 인생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사회와 경제가 팍팍해도 달리는 이들은 줄지 않는다. 동아마라톤 참가자가 1만 명을 처음 돌파한 해는 외환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1999년이었다. 건강과 성취감이라는 마라톤의 매력이 알려지며 ‘2030 여풍’도 거세지고 있다. 다음 달 17일 제90회 동아마라톤에는 역대 최고인 3만8500명이 참여하는데 마스터스 참가자 중 여성이 25%다. 특히 20, 30대 여성 참여율이 지난해보다 각각 64%, 20% 늘었다. 기운 잃은 경제, 답답한 정치…. 미래를 걱정하는 한숨이 들리지만 지난 시절 그래 왔듯이, 우리는 다시 달릴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동아마라톤#마스터스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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