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정훈]비운의 검독수리 T-50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8일 22시 20분


코멘트
“검독수리는 날고 싶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T-50의 별명은 골든이글. 우리말로는 검독수리다. 한국 공군에는 62대가 납품됐으나 수출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삼세판’이라고 인도네시아만큼은 뚫고 들어가겠다며 많은 이들이 땀을 흘리던 터에 국정원 요원들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으로 훼방을 놓았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싱가포르 수출도 마지막 단계에서 좌절됐다. T-50의 비운이 이어지고 있다.

▷T-50은 미국과 공동 개발했다. 미국 회사가 T-50의 주익(主翼) 제작을 맡았다. 미국은 제작 단가가 매우 비싸 한국은 높은 가격을 주고 주익을 인수할 수밖에 없었다. 2003년 약간의 대가를 주고 주익 제작권을 가져왔다. 감사원은 미국 회사에 준 대가가 불법이라며 관련자들을 형사고발했다. 다행히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들은 지금도 “국익을 위해 한 것인데 그럴 수가 있느냐”며 억울해한다.

▷T-50의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UAE 수출이 좌절된 것은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박정희 식 국가 개발’에 관심 많은 UAE 왕세자는 “대공미사일, 전자산업의 관련 기술을 제공해야 T-50을 사겠다”고 제의했다. T-50을 만드는 한국항공으로서는 권한 밖의 일이었다. 이탈리아 훈련기는 출시(出市)도 안 된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의 모그룹이 나서서 계열사의 기술을 뭉뚱그려 내놓아 우선협상대상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계열사들이 관련 기술 제공에 난색을 보여, UAE는 고등훈련기 사업의 재검토에 들어갔다.

▷UAE는 2009년 말 한국이 원전 사업을 따낼 적에도 고등훈련기 입찰 때와 똑같이 첨단기술 지원을 요구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관련 기관을 움직여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수출이 이뤄졌다. 최근 UAE는 왕실전용기를 제공해 최영함이 생포한 소말리아 해적을 한국으로 압송할 수 있게 도와줬다. 우호적인 관계를 활용하면 UAE에서 T-50이 역전승할 가능성도 있다. 인도네시아도 국정원 사건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눈치다. T-50이 날아올라야 할 큰 시장이 미국이다. 미국에서 스텔스기를 도입하는 대가로 T-50 수출을 성사시킨다면 검독수리는 불운을 뚫고 수직 상승할 수 있다.

이 정 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