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3代세습 공식화, 南통일 기반 다질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29일 03시 00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그제 대장 칭호를 받아 사실상 후계자 자리에 올랐다.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에게서 물려받은 1인 독재정권을 아들 김정은에게 넘겨주는 3대(代) 권력세습 작업이 북녘 땅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65년에 걸친 김일성-김정일 독재를 신물 나게 겪고 또다시 김정은 체제에서 살아가야 하는 2400만 북녘 동포들의 운명이 기구하다.

북한의 권력 승계 움직임은 김정일이 2008년 여름 뇌중풍으로 쓰러진 뒤 갑작스럽게 진행됐다. 김정은은 올해 27세의 신출내기 청년에 불과하다. 군부를 포함한 권력기관에서 집권을 위한 체계적 경험을 쌓을 기회도 없었다. 김정일은 32세 때인 1974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중앙위 정치위원으로 선출돼 공식 후계자가 됐지만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 20년 동안 권력승계를 다졌다.

김일성이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 줄 준비를 하던 1970년대 중반은 북한이 정치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다. 지금 북한은 핵개발과 천안함 도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다. 화폐개혁 실패에 식량난이 겹치면서 최악의 경제위기에 빠져 있다. 김정일의 누이동생인 김경희와 측근 최룡해도 이번에 대장 칭호를 받았다. 혈족과 측근을 동원해 아들의 후견 세력을 구축한 형국이지만 견고한 간성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제 열린 노동당 대표자회에서는 김정일의 총비서 재추대 이외에 다른 주요 인사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정은이 당의 어떤 공식 직함을 부여받느냐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북한 내부 상황은 불안하지만 권력 세습이 어떤 결말을 볼 것인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북한의 붕괴를 포함한 경착륙을 예상한 전문가들이 많았지만 북한 정권은 오늘날까지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군부를 포함한 북한 집권세력이 김정은의 집권을 인정할 것인지, 김일성 일가의 독재 밑에서 굶주리는 북한 주민이 3대 세습에 순응할 것인지, 불가측한 변수가 너무 많다.

우리는 북한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북한이 권력 세습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체제 안정을 위해 개혁 개방의 시늉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북한 정권과 대치하면서 슬기롭게 공존하자면 지혜와 인내가 요구된다. 권력 세습이 순조롭지 못해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다각적인 전략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핵폐기 원칙을 견지하고 천안함 도발에 결연히 대응하는 것은 필연적인 방향이다. 북한 정권의 버릇을 고쳐놓자면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청와대 외교통상부 국방부 통일부 국가정보원 고위 인사들이 빈번하게 만나 내놓는 대북정책은 뒷북치기 일색이다. 우리가 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계속 수세에 몰려야만 하는가. 정부는 올 추석을 맞아 대규모 이산가족 고향방문 같은 적극적 제안을 할 수도 있었다. 북이 먼저 카드를 내놓은 뒤에야 진의를 파악하느라 끙끙대는 소극적 대북정책을 계속한다면 3대 세습을 안착시키려는 북의 술책에 말려들 수도 있다.

평화통일을 위한 대북정책 입안과 실행을 위해 정보, 협상, 공작 전문가도 길러야 한다. 언젠가 닥칠 통일에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시행착오와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통일세(稅)를 검토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레토릭이 아니었음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 독일 통일을 교훈 삼아 천문학적인 통일비용 마련을 위한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마스터플랜을 짜놓아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의 권력 승계를 계기로 평양을 겨냥한 정치전(政治戰)을 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일성 일가 권력 세습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북한 주민이 정확히 알도록 다양한 수단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적극 공세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남한 주도의 통일이 한반도 문제의 해법이라는 인식을 각인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편들기에 바쁜 중국에도 통일한국이 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위해 유리하다는 점을 전방위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억압과 빈곤 속에서 고통받는 북 주민을 구출해낼 막중한 사명이 우리 세대에 부과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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